한국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으며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불황 속에서도 떠오르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6R 산업이다. 6R는 수선(Reform) 재충전(Refill) 재활용(Recycling) 위험관리(Risk) 보상(Reward) 오락·도박 (roulette) 등 6가지 분야를 말한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이 올 초 발표한 ‘불황에 뜰 업종’ 여섯 가지 중 첫 번째가 ‘리폼’으로 불리는 ‘의류 수선 사업’이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온라인몰에서는 옷, 구두 수선을 위한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옥션에서는 재봉틀, 구두수선 상품, 운동화 창갈이 서비스 등 수선 관련 상품들이 6월에만 9천300여개가 팔려나가 작년 동기(5천400여개)에 비해 72% 가량 성장했다.

▲ 리폼하우스는 “앞으로 전국 주요도시에 지점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평소에 관심이 많은 일본과 홍콩, 중국시장 외에도 뉴욕 중심 맨하튼에 진출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는 이나연 대표

의류분야 최초로 리폼이라는 신조어 접목

‘불황? 우리는 그런 거 몰라요.’ 리폼하우스의 이나연 대표는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미소 짓는다. 이화여대 정문 앞과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리폼하우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종업원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오래 전에 유행하던 옷을 새롭게 리폼하려고 찾아오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옷을 최신 유행으로 디자인하기 위해 상담하려는 사람들과 리폼한 것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는 리폼하우스.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폼을 하려고 찾는 부류는 단순히 불황 때문에 절약하려고 찾는 고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개성을 충족하기 위해 찾는 부류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세계적인 명품 패션이라 할지라도 개개인 모두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명품패션이라 하더라도 30%에게만 어울린다는 얘기가 있다. 즉 개인별로 취향, 체형, 체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딘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명품의류를 구입한 후 발끝부터 머리까지 아예 맞춤형으로 다시 개조하는 것이다. 이나연 사장은 이야말로 리폼기술의 진수라고 말한다. 개인의 취향, 체격, 체형을 모두 고려한 리폼. 이렇게 되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패션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준이 되려면 대단한 디자인 능력과 경력이 필수적이다. 새 옷은 오랜 시간 고민하여 디자인한 후, 이를 토대로 대량으로 생산하면 되지만, 리폼은 개인의 취향과 체형, 체격을 모두 반영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헌 옷을 손상 없이 분해해야 하고 제한된 상황에서 디자인, 재단한 후 새옷처럼 완벽하게 다시 가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완전한 리폼은 새 옷보다 3배나 어렵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고객이 방문하면 이에 걸 맞는 코디네이션을 해야 하는데, 이 것만 하더라도 전세계적인 패션을 모두 습득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늘 공부하는 것도 필수적인 것이다.

 ‘리폼’이라는 용어조차 흔하지 않던 시절, 의류 분야에 최초로 리폼이라는 신조어를 접목시켜 지금까지 리폼문화를 선도해온 이 대표. 이 대표는 “리폼은 미국에서 청소년을 교화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종종 고객들이 ‘이 옷 리폼하신 후 저도 리폼해주세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라며 “인간생활의 가장 기본적 요소인 의식주 중에서 한눈에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의복을 리폼한다는 것은 단순히 옷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품격까지도 개선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라고 말한다.

리폼하우스를 찾은 대학 3학년 오선미양(22ㆍ서울 서대문구)은 “묵혀 두었던 옷을 꺼내서 들고 왔다”며 “다시 리폼해서 입으면 새 옷 한 벌이 생기는 것과 같은데, 요즘 유행하는 옷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이 대표의 리폼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실제로 리폼 하우스에는 이민자들도 많이 와서 의뢰하는데 한국에 오갈 때마다 들르기도 한다. 또 이 대표와 신뢰를 쌓은 사람들은 그의 스타일과 실력을 믿고 옷만 보내기도 한다. 오늘날 기성복 시장은 꾸준히 발전해 상당한 수준의 상품들이 나와 있지만 여전히 개개인이 원하는 세밀한 부분을 다 맞출 순 없다. 이 대표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 하는 시대에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데 있어서 의복이 상당히 중요합니다”라며 “예전처럼 무작정 유행을 쫓아가기보다는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성숙한 문화를 가진 젊은 층이나 중년 분들은 품위를 유지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리폼은 오래된 옛 친구 같아
디자인 부티크를 20여 년간 운영할 때부터 ‘자신이 만드는 옷은 10년 이상 입어야 하지 않나’ 하는,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이나연 대표. 그에게 리폼은 오래된 옛 친구와 같다. 이 대표는 “오래된 친구는 서로 좋은 점과 나쁜 점, 결점까지도 다 알고 있지만 멀리 하지 않고 그 관계를 항상 유지합니다”라며 “새 옷은 새 친구에게 거리를 두고 조심스러워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바로 리폼은 오래된 친구의 결점을 제거해 ‘저 친구에게 이런 면이 있었네’라고 느끼며 너무 좋은 친구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늘 1mm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는 “기성복의 서양 패턴이 들어온 이후 어깨선, 허리부분 등은 국내에 맞게 많이 변화되어 왔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 이를테면 ‘구심점’은 변하지 않더군요”라며 “제가 굉장히 섬세하게 여기는 각도와 선, 그것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질 수 없는 핵심입니다. 체형에 딱 맞는 1mm의 정확성, 1mm의 오차로 균형을 잃어버릴 수 있고 또 그 차이로 매우 훌륭한 ‘안성맞춤’의 옷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것을 정리하고 데이터화해서 업계에 전수하는 것에 대한 비전이 있고, 전국적으로 리폼을 많이 하는 추세라는 사실이 상당히 고무적이다”며 이 사장은 리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폼하우스는 1992년 4월 이대점 개설 이후 현재 강남점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패션 기자들이 리폼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다양한 부류의 옷을 거침없이 디자인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들린 여자'로 표현했다는 일화가 있는 이나연 대표. 이 대표는 '자원은 유한하지만 창의는 무한하고, 무한한 예술적 장르에 리폼이 있다'는 표현으로 리폼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다. 리폼하우스는 “앞으로 전국 주요도시에 지점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평소에 관심이 많은 일본과 홍콩, 중국시장 외에도 뉴욕 중심 맨하튼에 진출하고 싶다”고 강한 포부를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