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일 이명박 정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63)이 국무총리에 내정됐다. 정부는 화합과 중도실용을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 정책과 잘 맞는 인물이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한때 민주당 대선후보에 거론됐을 만큼 현 정부와 다른 길을 걸어온 정운찬 내정자가 내각을 잡음 없이 이끌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케인스학파’ 경제학자로 현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던 터라 현 정부의 경제 운용 기조에 변화를 줄 가능성도 있다. 경제 운용에서 총리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그러나 정 내정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효과적으로 행사한다면 ‘윤증현(기획재정부 장관)-윤진식(청와대 경제수석 겸 정책실장)-강만수(경제특보)’의 경제 라인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적임자
정운찬 전 총장의 총리 기용에 대해 정치권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는 정운찬 내정자의 성향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역대 국무총리는 보편적으로 관리형과 정치형으로 구분된다. 실무형 관리 총리에는 현 한승수 총리를 위시하여 고건 전 총리 등 관료 출신 인사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정치 총리는 기성 정치인 출신으로서 이해찬, 한명숙 등의 총리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정운찬 전 총장의 총리 기용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관리형은 물론 대선 주자형과 정치형 모두가 총 망라된 카드라는 점에서 일단 절묘한 인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전개될 정치판에서 정 총리의 영향력이 어떻게 미치는 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검토하는 이유는 정운찬 내정자의 지연, 학연을 포함한 광범위한 인맥이 총리라는 타이틀로 인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그가 이제껏 정치 변방에서 중심으로 감히 들어 올 수 없었던 조직과 자금의 약점을 일시에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가 개각의 명분으로 내세운 ‘통합과 화합, 개혁과 변화’에 가장 근접한 인사임에 분명하다. 지역적 차별을 넘어서 화합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정운찬 내정자가 충청권 출신 인사라는 점은 효과가 있다. 그리고 MB의 중도 실용주의라는 차원에서 이념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는 국민통합은 정 내정자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적임자라는 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개혁이란 측면에서 정 내정자는 과거 서울대 총장 재임시 보였던 입시방안을 포함한 정책이 개혁적이었던 점을 볼 때 타당한 내용이라 하겠다. 또한 변화라는 부분에서 정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임에도 자신의 케인즈 이론을 접목시키는 내용으로 진행될 수 있음에 향후 정책의 변화가 올 것이라는 의미에서 중요한 뜻으로 해석된다. 정운찬 내정자는 서울대 교수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폴리페서의 기질을 다분히 안고 있던 인물이다. 정치판의 한 축에서 항상 대선 후보로 거명되는 등 그의 지명도는 아직까지 크게 훼손된 적이 없었다. 이러한 측면이 정치판에 총리라는 타이틀을 업고 뉴페이스로 등장하면서 인물론에 갈증을 느껴 온 정치구도에 큰 활력을 일으킬 수 있음에 기대가 큰 부분이라 하겠다.

향후 실세 총리로 정운찬 카드 운용될 것
한국의 정치구도에서 정운찬 카드가 미치는 영향력은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입장에서는 지역 차별화를 제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차기 대선 후보로서의 인재 풀이 좁아졌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진보주의 학자라고 평할 수 있었던 정운찬 전 총장의 총리 임명은 민주당이 추구하려던 개혁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당내 대선 후보로서의 가능성이 점쳐진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박근혜 전 대표의 대중적 지지율에 버금가는 당내 인사가 전무한 상황에서 정운찬 총리 후보는 친이계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포스트 이명박 시대를 담당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운찬 전 총장의 총리 등장은 다목적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정치의 한 복판에서 정운찬 총리의 미래 행보는 득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실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관리형 총리에서 업그레이드 한 실세 총리로 정운찬 카드가 운용될 것이라는 사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 추종하는 MB맨으로 변신 할 경우 정운찬 총리는 조기에 국민의 기억 속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토목공사 뉴딜, 부자 감세정책 등 현 정부를 공격하던 정 총리 내정자. ‘교수잔혹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명망 높은 학자일수록 버텨내기 어렵다는 정치권에 발을 디딘 그는 어떠한 묘수로 충청도 총리가 아닌 대한민국 총리, 얼굴마담이 아닌 실세총리로 거듭날지 그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