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11.13 수 14:21 전체기사 l 기사쓰기 l 자유게시판 l 기사제보 l 구독신청 l 광고안내 l 회사소개
> 뉴스 > 피플·칼럼
     
[박성서 칼럼] 44년만에 ‘신곡 발표 기념 콘서트’ 갖는 ‘잘 있어요’의 가수 이현
2019년 10월 08일 (화) 11:27:38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전격 컴백 선언, ‘멋지게 살아갈 거야’

‘잘 있어요’의 원조 아이돌 스타, 가수 이현씨(69)가 무려 44년 만에 신곡을 발표한다. 제목은 ‘멋지게 살아갈 거야’. 빠른 템포의 트로트 곡으로 장욱조씨가 만든 노래다. 또한 이를 기념해 11월 2일 오후 5시부터 서울 광화문아트홀에서 신곡 발표 콘서트를 갖는다.

1970년, 데뷔곡인 ‘내 사랑 지금 어디’를 시작으로 ‘이별이 주고 간 슬픔’, ‘춤추는 첫사랑’, ‘잘 있어요’, ‘똑같애’, ‘잊지마’ 등으로 70년대 초중반, 10대가수상을 휩쓸었던 가수 이현. 특히 1974년도에는 KBS, MBC, TBC 등 3대 방송사 10대가수상을 모두 휩쓸어 가요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올드 팬들로부터 '원조 꽃미남 가수'로 일컬어지지만 가수 이현이 처음 등장하던 1970년대에는 '장군의 아들'이자 '귀공자풍의 유학파 가수'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당시 젊은이들로부터는 '선망의 대상'이자 '우상의 존재'였다.

무려 40여 년 만에 신곡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컴백을 선언한 가수, 이현이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

글 l 박성서(음악평론가·저널리스트), 사진 l 음상열, 장성하(사진작가)

▲ 팬들과 함께 한 콘서트, ‘이현, 40년만의 외출’ 공연 사진. 2014년 남이섬 노래박물관.

44년만에 신곡 발표 콘서트 ‘멋지게 살자’

지난 2014년, 무려 4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던 ‘잘 있어요’의 가수 이현씨(69)가 최근 갑자기 바빠졌다. 75년 발표한 음반 ‘누구일까/언약’ 이후 무려 44년 만에 신곡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기념해 콘서트를 연다. 오는 11월 2일 토요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아트홀에서다. 필자가 진행을 맡는 이 공연의 특별 게스트는 ‘여고시절’의 가수 이수미씨, 그리고 반주는 김성욱 악단이 맡는다.

노래 제목은 ‘멋지게 살아갈 거야’로 빠른 트로트 곡. 작곡가 장욱조씨가 만든 신곡이다.

“75년 11월에 마지막으로 냈던 음반에 수록된 노래 ‘나 그대를’이 바로 장욱조씨 곡이었지요. 오랜 친분이 그렇듯 작곡가 장욱조 선생은 무엇보다 저를 잘 알고 또 최근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어 그런지 제게 딱 어울리는 노래인 것 같아요. 부를수록 신나고 또 중독성도 강합니다.” 신곡에 대한 소감이다.

“이번에 신곡을 준비하면서 70년대 상황과 현재의 가요계 추세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제가 그동안 불러온 노래 장르는 다양했지만 본격적인 트로트를 해 본 적이 없어요. 곡이 들어와 취입한 정도였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점점 트로트가 좋아집니다. 장욱조씨 역시 제게 변화를 주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고, 맞춤형으로 만든 노래라 그런지 멜로디와 가사가 부를수록 와 닿아요.”라며 이 노래를 계기로 정말 ‘멋지게’ 가수 활동을 하고 싶어 이 콘서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컴백을 선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항상 풍부한 성량과 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히 건강관리에 신경 쓰고 있어요.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시간 날 때마다 수영장에 가고... 최근엔 제 주위 몇몇 분이 요가를 한 번 해보라고 해서 가보니 여성분들이 너무 많더군요. 허허. 어쨌든 많은 이들에게 노래로 감동을 전하는 게 가수로써 남은 꿈이자 바람이죠.”

그렇듯 하루 일과 대부분을 건강관리에 쏟는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투자한 때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몰두한다. 건강하게 팬들 앞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가 이렇게 용기를 낸 데는 팬들의 힘이 컸다. 지난 40여 년간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항상 곁에 있어준 팬들이 고맙고 동시에 미안했다는 그는, ‘이번 신곡 발표 콘서트가 바로 팬들에 대한 답례’라고 강조한다.

“사실 이런 날이 다시 올 거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가수 활동을 완전히 접은 지 40여년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도 날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맙고 또 미안하죠. 그동안 제가 너무 무심하게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

2012년 5월, '이현 팬클럽'이 생겼고 흩어져 있던 중장년 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팬클럽 규모도 점점 커져갔지만 노래를 다시 하겠다는 확신 같은 것은 없었어요. 마음의 부담만 커져갔죠. 그러던 중 기억도 안 나는 옛날 친구들도 찾아오기 시작하고... 어느 날 후배 하나가 KBS ‘콘서트 7080’에 한 번 출연하면 어떻겠냐고 집요하게 종용을 했어요. 심지어 집사람이 운영하던 업소로 조연출과 작가를 직접 데려와 계속 설득하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래, 한 번 쯤은 왕년의 팬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지.’ 마음먹고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죠.” -이때가 2014년 7월.

‘콘서트 7080’ 출연에 대한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전국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팬클럽 또한 더욱 활성화되고 있었다.

“그동안 팬클럽 회원들을 만나면서 깜짝 놀란 적이 많아요. 만날 때마다 음식이다, 뭐다 싸가지고 오는데 그동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을 받았어요. 또 예상치 못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저 자신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우리 집 주소, 전화번호... 그런 걸 아직도 기억하는 팬들도 있고 심지어 며칠 동안 집 앞까지 찾아와 기다렸는데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는 얘기, 제가 나오는 방송을 듣기 위해 조퇴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한편 미안하면서도 뭉클했죠.”라며 “심지어 어떤 지방 팬은 쌀을 팔아서 돈을 모아 서울까지 와 집 앞에서 며칠 기다렸는데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간 뒤 부모님께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팬까지 있었지요.”

40여년 만에 돌아온 가수 이현, 좀처럼 일반무대에는 서지 않는 그에게 이번 콘서트는 ‘남이섬 노래박물관 콘서트(2014년 12월)’와 ‘경주 대중음악박물관 콘서트(2015년 10월)’에 이어 세 번째다. 이 공연들은 모두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했다.

생일 파티 또한 매 해마다 팬들과 함께 하고 있다. 팬클럽 회원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팬과 함께 하는 여섯 번 째 생일 파티로 칠순잔치를 겸해 열렸다. 물론 팬들과 함께 하는 자리는 늘 즐겁지만 그에게 생일파티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그날이 바로 자신의 생일인 동시에 어머니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1950년 9월 7일, 그가 태어난 날이다.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이 무렵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인해 머나먼 부산 피난길에 오른 어머니가 끝내 몸을 이기지 못했던 것. 때문에 그에게 생일은 축복의 날인 동시에 가장 슬픈 날이다. 그렇듯 그는 한국전쟁 중에 태어난 6.25 세대다.

▲ 우리나라 군번 1번, 이형근 장군과 이현. 말 그대로 ‘붕어빵’이다.

이현,‘장군의 아들’ ‘귀공자풍의 유학파’에서 ‘원조 아이돌 스타’로 자리매김하다

본명 이헌(李憲). 그는 데뷔 때부터 남다른 집안 출신으로도 세간에 화제였다. 부친은 '우리나라 군번 1번(번호 : 10001)'으로 초대 합참의장·육군 참모총장을 지내고 1960년대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등 각국 대사를 역임한 고(故) 이형근 씨,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고(故) 이응준 씨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부친이 대사로 있던 필리핀, 영국 등 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때문에 귀국 후 학업을 계속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따랐다. 특히 대학 입시 때는 우리나라 첫 예비고사가 시행되었다. 예비고사 원년세대인 것이다. 예비고사 점수에 맞춰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69학번으로 입학했다. 그때 연극영화과가 28대 1이었다고 기억한다. 한마디로 경쟁률이 무척 셌다.

“그때까지 가수될 생각은 전혀 없었지요. 그러나 당시 같은 과에 가수 배성, 펄시스터즈의 배인순씨가 있었는데 이들처럼 음반을 내거나 연기를 하면 학과 실기 점수에 반영된다는 것을 알고는 무조건 음반을 내겠다고 마음먹었죠. 노래하겠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처음엔 반대하시다가 결국은 졸업할 때까지만 하라고 승낙하셨어요. 해서 지구레코드 임정수 사장을 통해 작곡가 박춘석 선생을 소개받고 2, 3개월 만에 음반이 만들어졌지요.” 이때가 1학년 2학기 가을이었다.

▲ 작곡가 박춘석과 가수 이현

“처음 박춘석 선생님께 테스트 받을 때 톰 존스의 ‘고향의 푸른 잔디(Green Green Grass of Home)’를 불렀어요.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지 멜로디를 그 비슷하게 해서 ‘내 사랑 지금 어디’를 만들어 주며 불러보라고 하시더군요. 한마디로 '낙하산 데뷔’였죠. 어쨌든 이 노래가 제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셨는지 이후 박선생이 직접 편곡, 번안까지 해서 ’고향의 푸른 잔디‘라는 제목으로 음반을 취입하기도 했어요. 이번 콘서트 때도 이 노래를 팬들 앞에서 부르려고 합니다. 제 운명을 바꾼 노래니까요.”

데뷔곡 '내 사랑 지금 어디'를 발표하던 첫 해, 그는 TBC 방송가요대상 남자신인상을 수상한다. 계속해서 이듬해인 1971년 2월에 발표하는 '이별이 주고 간 슬픔'으로 그 해 5월, 방송 인기 차트에서 연달아 1위를 차지하며 단숨에 스타 대열에 합류한다.

아울러 이 무렵 옴니버스 음반 '러브 스토리'를 통해 발표하는 '춤추는 첫사랑('Ten Guitars' 번안곡, 지명길 작사 홍현걸 편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이를 계기로 트로트 가수 이미지에서 벗어나 팝가수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71년 6월에 열린 '팝과 포크의 베스트 히트 플레이어쇼(시민회관)’에서 이현은 팝가수를 대표해 무대에 오르며 팬 층도 급격히 젊은 층 위주로 확산되자 작곡가 박춘석 역시 이어 발표하는 '슬픈 행복(1971년)'을 타이틀로 한 음반에서 이 노래들을 포함해 '마음은 집시', '고향의 푸른 잔디'까지 직접 편곡, 수록하기에 이른다.
 

▲ 전성기 시절의 이현 발표 음반들

‘오란씨’ CF 모델에 이어 그의 히트곡 제목을 딴 ‘잊지마 빵’까지 등장

때를 같이해 청소년들 사이에 불기 시작한 '이현 신드롬'은 영화로 까지 이어져 '아름다운 청춘(1971년, 김영걸 감독)'을 시작으로 출연하는 영화마다 10대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또한 당시 동아제약이 첫 선을 보인 음료수 '오란씨'의 광고 모델로도 2년간 활동했다. 당시 파트너는 배우 윤여정, 김미영 등이었다.

어느새 각 방송사의 주요 프로그램마다 빠지면 안 되는 스타로 부상함과 동시에 동아방송 개국 8돌 인기가수퍼레이드(1971년), MBC 개국 10주년 올스타쇼(1971년)에 이어 동아방송 개국 9주년 기념공연(1972년)까지 주요 행사무대에 올랐다.

1972년에 이어 1973년에 들어서면서 그의 거침없는 질주는 계속된다. 이 2년이라는 기간 동안 무려 7장의 독집음반을 발표한 것, 아울러 1973년에는 MBC 10대가수상을 수상한다.

이때 발표한 독집음반들을 살펴보자면, '모래집/인형의 사랑(1972년)', '먼 여로(1972년)', '임은 어디에/타향등(1972년)'을 비롯해 지구에서 오아시스로 전속을 옮겨 발표하는 '오아시스 전속기념음반/잊지마(1973년)', '잘 있어요/애원(1973년)', '내 너를 만나서(1973년)' 등이다. 심지어 10대들을 겨냥해 그의 히트곡 제목을 딴 ‘잊지마 빵(삼립식품)’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뿐 아니라 74년에는 '똑같애', '불타는 사랑', '불량소년', '라라라', '너를'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그해 3대 방송사인 KBS, MBC, TBC가 시상하는 10대가수상을 모조리 휩쓴다. 이를 보다 상세히 소개하자면, 1974년, 그 해 9월에 열린 '제10회 TBC 방송가요대상'을 시작으로 12월 2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MBC 10대가수상', 같은 달 28일 'TBC-TV 7대 가수상' 수상에 이어 12월 30일에 열린 '제3회 KBS 연예대상 남녀10대가수상'까지 모조리 거머쥔 것.

▲ ‘청춘교사(1972년)’와 ‘처녀시절(1973년)’ 영화 포스터.

‘이현 신드롬’은  세 편의 영화 겹치기 촬영으로 이어져

또한 영화배우로써, 하이틴 스타로써 그는 '겹치기 출연'까지 해야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세 편의 영화를 동시에 촬영하고 있다는 보도도 눈에 띌 정도.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살펴보면 데뷔작인 ‘아름다운 청춘(1971년, 김영걸 감독)’을 시작으로 '별난 장군(1972년, 변장호 감독)', '청춘교사(1972년, 김기덕 감독)', '뜨거운 영광(1973년, 편거영 감독)', '방년 18세(1973년, 이원세 감독)', '처녀시절(1973년, 이성구 감독)' 등 주로 하이틴 물. 각각의 상대역 또한 당시 인기정상의 하이틴 스타들인 임예진, 안인숙, 이영옥, 서미경, 주미 등과 호흡을 맞췄다.
 
아울러 당시 '문화영화'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었던 '강산에 노래 싣고 웃음 싣고(1972년)', '웃고 노래하는 팔도유람(1973년)', '노래 실은 금수강산(1974년)' 등등에 출연하는 등, 거리에는 온통 그의 사진이 들어간 영화포스터가 나붙었고 라디오와 TV에서는 연일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거침없이 인기가도를 질주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현의 인기는 무서웠다. 당시 한 신문 기사에선 '팬들이 이현의 머리카락을 뜯어가고 옷을 찢어갔다', '지방 공연 차 묵은 숙소의 신발과 옷을 가져갔다'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테이지와 스크린을 동시에 장악하던 1975년. '누구일까/언약' 음반을 마지막으로 모든 활동을 접었다.

▲ 1970년대 아이돌 스타 이현이 출연한 영화 장면들.


부친 반대로 결국 가수 활동 접어

“가수 생활은 대학 때까지만 하라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죠. 또 가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TBC와 KBS 신인가수상을 받았을 무렵 설날 때 외가를 갔는데 외할머니가 세배를 안 받으시고 돌아 앉으셔서 울고 계시더군요. ‘네가 가수라니 웬 말이냐...’ 하시면서. 그게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법관이 되길 바라셨던 아버지는 내내 탐탁지 않게 여기셨지만 그때 더 버틸 걸... 지금은 후회가 되죠." 그의 회고다.

“활동을 접은 후 1979년에 강남역 뉴욕제과 뒤에 디스코텍 '스튜디오 80'을 오픈했어요. 3백 평 규모로 꽤 크게 운영했죠. 코미디언 이주일씨 등이 무대에 섰고 손님을 밀어낼 정도로 번창했는데 이것도 1년 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죠. 아버지께 음악감상실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던 터라 이 사실을 안 아버지의 반대에 또 다시 부딪히게 되었죠.”

이후 그는 인테리어를 하다가 건축 일을 했고 통신회사(기산통신)를 운영하는 등 쉬지 않고 여러 사업을 했다.

"노래의 맛을 알아갈 즈음 활동을 접으면서 미련이 남아 일종의 반항심으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사업을 한 거죠. 그런데 얼굴이 알려진 게 사업에는 지장이 되더군요. 사람들이 뒤돌아서면 '쟤가 '잘 있어요'를 부른 사람'이라고 수군댔죠. 녹록치 않았어요."

그는 비로소 다시 노래할 수 있다는 게 더없이 기쁘지만 거창한 '컴백 선언' 보다 다시 음악 안에서 살게 된 것이 무엇보다 설렌다고 했다. 특히 팬클럽 회원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도 힘주어 강조했다. NM
.................................................................
[참고 자료] ▪ '잘 있어요'의 가수 이현에 관한 짧은 이야기, 그 프로파일/다음 카페 바람새친구, 2014년 6월, 오후의발견), ▪ 박성서 평론/40년 만에 컴백한 '잘 있어요'의 가수 이현을 말한다 (뉴스메이커 2016년 2월호)

박성서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메이커(http://www.newsmaker.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뉴스메이커About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999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오피시아빌딩 14층 뉴스메이커 | 전화 : 02-733-0006 | 팩스 : 02-733-0009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상호
뉴스메이커는 (주)뉴스메이커에서 발행하는 시사종합월간지로서 특정언론과는 전혀 무관한 완전한 자유 독립 언론입니다.
뉴스메이커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뉴스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mak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