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출간     
1980년대 대표적인 노동문학으로 꼽히는 시인 박노해(57)씨의 시집 ‘노동의 새벽’ 개정판이 나왔다. 1984년 출판사 풀빛의 판화시선으로 초판 출간된 지 30년 만이다. 시인의 얼굴도, 번듯한 출신 배경도 없이 노동자 신분만을 밝힌 채 세상에 나온 시집이 일으킨 반향은 컸다.

▲ 박노해

손목이 통째로 잘려나가거나(‘손 무덤’) 지문이 문드러져 없어지는 화공약품 공장(‘지문을 부른다’) 등 노동 현장의 모습을 고발한 시집은 무섭게 팔렸다. 당시 정권의 판매금지 조치에도 모두 100만 부 가량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시집은 1984년에 나왔지만 박노해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1982년이다. 황지우·김정환 등이 가담했던 시 동인 ‘시와 경제’의 두 번째 동인지에 ‘시다의 꿈’ 등 박씨의 시편들이 실렸다. <중앙일보 2014년 12월 25일>

시집 ‘노동의 새벽’의 출간은 문학사적으로나 사회?문화사적으로나 1980년대의 중대한 ‘사건’이었다. 1984년 9월 25일 풀빛출판사에서 출간된 시집에는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로 시작되는 시 '노동의 새벽'을 비롯 모두 42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노동의 새벽’에 먼저 충격을 받은 쪽은 정부도 기업가도 아닌 민중문학 진영이었다. ‘노동의 새벽’ 이전에 유동우, 석정남, 장명수 등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써낸 노동 수기류나 노동자의 삶을 다룬 시가 있긴 했지만 현장 노동자가 자신의 비극적인 삶을 그토록 절절하게 묘사한 시는 사실상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그 많은 지식인과 문인은 너나할 것 없이 위축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것은 체험의 직접성이 가져온 충격이자 위축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시를 쓴 주인공을 알지 못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시집에 쓰인 대로 ‘박노해’라는 이름 석 자와 기능공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1983년 채광석, 김정환, 황지우 등이 만든 동인지 ‘시와 경제’ 제2집(1983년 6월 20일 발행) ‘일하는 사람들의 미래’에 ‘시다의 꿈’ 등 6편의 시를 발표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알려지긴 했지만 박노해(1957~ )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고 ‘얼굴 없는 시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그런 훌륭한 노동시를 쓸 만한 시인은 존재하지 않고 노동시를 쓰는 창작집단이 편의상 내세운 공통의 필명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가톨릭대 학보에 ‘노동의 새벽’에 대한 평론을 게재한 박노해의 형조차도 시집이 동생의 작품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박노해는 철저히 익명에 숨어 있었다. 시집은 “노동자가 쓴 노동문학의 정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른바 ‘박노해 신드롬’이었다.
 

수년 후 밝혀지지만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을 가진 박노해의 원래 이름은 박기평이었다. 1957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고 벌교에서 자란 박노해는 일제 때는 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후에는 빨치산 투쟁을 한 아버지가 박기평의 나이 7살 때 암으로 숨져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가 행상을 하며 3남매를 키우는 현실에서 형과 여동생은 훗날 신부와 수녀의 길을 선택했다.
박노해는 벌교중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해 선린상고 야간부에 입학했다. 낮엔 공장에 다니는 주경야독의 생활을 하면서 경동교회와 향린교회에서 운동권 대학생들을 만나 사회의식에 눈을 떴다. 야학에서는 훗날 그와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될 김진주를 만났다. 당시 김진주는 이화여대 약학대에 재학 중인 야학 강사였고 박노해는 학생 신분이었다.
군에서 제대한 후 박노해는 성수동의 운수회사를 거쳐 1984년 6월 경기도 안양의 시내버스 정비공으로 입사해 노조활동을 펼쳤다. 박노해는 틈나는 대로 작업장의 한 귀퉁이에서 혹은 기숙사의 한 구석에서 열악한 노동의 현실을 시로 담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노동의 새벽’은 시라기보다는 차라리 짓눌린 노동자의 절규였으며 분노였다.

시라기보다는 짓눌린 노동자의 절규이자 분노
갑작스럽게 유명인사로 떠오른 박노해는 이후에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노동현실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수백 편의 시와 각종 논문 그리고 잡문 등을 1985년 8월 출범한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 기관지나 1989년 4월 창간된 격월간지 ‘노동해방문학’ 등에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박노해는 ‘노동해방문학’지에 잇달아 발표한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이론을 통해 점차 ‘얼굴 없는 시인’에서 ‘얼굴 없는 혁명이론가’로 자신의 이미지를 바꿔나갔다.
박노해가 노동운동가로 본격 변신한 것은 서노련에 가입하고부터였다. 박노해는 1986년 5?3 인천사태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급진적인 노동운동가’, ‘사회주의적 혁명가’로 경찰의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박노해가 박기평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1989년 11월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출범 선언문이 서울 일대에 뿌려졌다. 수사에 나선 안기부가 1990년 10월 “사노맹 핵심 40명을 구속했다”며 “사회주의 혁명 투쟁을 선동한 혐의로 사노맹의 중앙위원인 박노해를 공개 수배한다”고 발표했다. 결국 박노해는 1991년 3월 검거되었다. 검찰은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며 1991년 8월 사형을 구형했고 대법원은 1992년 4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박노해는 감옥에서 사상적 전환을 경험했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소련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한때 그가 노동운동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선택한 사회주의의 실패를 주저없이 인정한 것이다.

박노해는 1993년 6월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옥중시집 ‘참된 시작’을 통해 감옥에서 겪은 사상 갈등과 자기반성을 진솔하게 드러냈다. 7년 5개월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1998년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을 때, 박노해는 예전의 혁명투사가 아니었다. 이글거리던 반역의 눈빛, 성난 호랑이처럼 포효하던 혁명가의 얼굴을 온데간데없고 마치 세속을 떠난 수도자처럼 평온해 보였다.
그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강연과 집필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절대 진리라고 믿고 불같이 싸웠으나 그 사회주의 이념이 막상 현실로 나타날 때 숨막히는 절대주의와 관료사회를 낳았다”며 “사회주의에 환멸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또한 기회 때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치켜세우고 ‘디지털 시대’를 이야기하며 변화를 부르짖었다. 이런 그를 가리켜 진보진영은 “소영웅주의자”, “운동을 상품화하고 혼자만 튀는 스타가 되었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박노해는 “달라졌다면 시대가 달라진 것이고 이에 대한 자신의 대응방식이 달라진 것”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취했다.

■미국과 쿠바의 악연사(史)
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역사적인 국교정상화에 나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2월 17일 공식 성명을 통해 “미국은 대 쿠바 관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역사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며 존 케리 국무장관에게 즉각 쿠바와의 외교관계 정상화 협상을 개시하라고 지시했다.… 양국이 외교관계를 단절한 해는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통해 공산화를 선언한 뒤 자국 내 미국 기업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영화하자 미국은 1961년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이듬해부터는 금수조치를 취하며 맞섰다. 이후 정부 기조가 바뀔 때마다 금수조치의 수위에 조금씩 변화는 있었지만 근본 틀은 바뀌지 않았다. <한국일보 2014년 12월 19일>

▲ 피델 카스트로(왼쪽)와 체 게바라

1898년 2월 미국의 전함 메인호가 쿠바 아바나항에서 갑자기 폭발했다. 그러자 스페인의 소행이라며 쿠바 사태에 개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미국 내에 비등해졌다. 결국 쿠바를 둘러싼 전쟁이 미국과 스페인 간에 벌어졌다.

그때까지 쿠바는 4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스페인이 5개월 만에 항복하고 같은 해 12월 체결된 파리 평화조약에 따라 쿠바는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명목상의 독립국일 뿐 실제로는 미국의 보호령에 불과했다.

전쟁 발발 수년 전부터 미국에 가깝다는 지리적 이유로 미국의 기업들은 쿠바로부터 막대한 양의 설탕, 담배, 광산 소유권들을 사들여 1896년에는 쿠바 내 자산이 5,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 막대한 투자액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쿠바에 대한 군사점령을 끝내지 않았다.
미국은 1901년 ‘쿠바 국민의 자유와 쿠바 독립을 보장한다’는 구실 아래 내정간섭권, 국제조약 거부권, 경제감독권 등을 갖는다는 내용의 ‘플랫 수정안’을 쿠바 헌법 조항으로 삽입했다. 플랫 수정안에 따라 미국은 쿠바의 독립과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군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쿠바는 해군 보급기지에 필요한 토지를 미국에 팔거나 빌려주어야 했다. 이때 쿠바로부터 임차한 것이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관타나모 해군기지다.

 미군은 1902년 5월, 쿠바에 대한 4년간의 군사점령이 끝나 쿠바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내정이 불안하다 싶으면 언제든 군대를 파견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1898년부터 쿠바 혁명이 성공한 1959년까지 쿠바 국민은 여러 정부를 거쳤으나 대부분의 정부는 부패와 무능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미국에 끌려다녔다. 1934년 전직 상사이던 바티스타가 쿠데타를 일으켜 현직 대통령을 쫒아내고 1년 만에 대통령을 2명이나 갈아치워도 미국은 눈감아 주었다.

바티스타는 막후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4년 동안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944년에는 선거 패배로 대통령을 그만두었으나 1952년 3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쿠바의 독재자가 되었다. 바티스타 치하의 쿠바는 미국인의 투자 천국이었다. 1956년 미 상무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쿠바 전체 공공사업의 80%, 전화·전기 분야의 90%, 공공 철도사업의 50%, 사탕수수 생산의 약 40%를 미국이 차지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등장한 인물이 피델 카스트로(1926~ )다. 그는 스페인 이민자 출신의 부유한 농장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2년 아바나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어 반바티스타 운동을 펼쳤다. 동지들과 함께 1년 동안 비밀훈련을 하고 1953년 7월 26일 160명의 병력을 이끌고 1,000여 명의 수비대가 지키고 있는 산티아고 데 쿠바 부근의 몬카다 병영을 기습 공격했다. 그러나 공격은 실패했고 동지들 대부분은 사살되거나 체포되었다. 카스트로 역시 체포되었다.

1953년 9월 21일의 최후진술에서 카스트로는 판·검사와 100여 명의 무장 경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쿠바의 역사, 정치·사회적 상황, 탄압 사례 등을 열거하며 웅변을 토해냈다. “나는 내 형제 70명의 생명을 앗아간 독재자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에게 유죄판결을 내려라.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이다.” 연설은 감옥 밖의 친구들에게 비밀리에 전달되어 곧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소책자로 인쇄되었다.
카스트로는 1955년 5월 풀려나 몇몇 동지들과 함께 멕시코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동지들을 규합해 쿠바 본토 상륙을 준비했다. 1955년 10월에는 뉴욕의 한 호텔에 모인 미국 내 반정부단체들 앞에서 “1956년, 우리는 자유를 얻든지 순교자가 되든지 할 것”이라며 쿠바 상륙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카스트로와 체 게베라를 비롯해 모두 82명의 대원이 멕시코에서 낡은 요트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를 향해 출발한 것은 1956년 11월 25일 새벽이었다. 그러나 대원들의 상당수는 늪지대에 상륙하는 과정에서, 또 무장 거점으로 삼은 동부의 험준한 산악지대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으로 가는 도중에 정부군의 매복에 걸려 죽거나 체포되었다.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 그리고 체 게바라 등 겨우 12명만 살아남았다.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카스트로의 혁명군은 점차 농민들의 지지를 얻어 세를 불려나갔다.

“유죄판결을 내려라.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이다”
그들의 명성을 드높인 최초의 사건은 1957년 1월 17일의 라플라타 병영 습격이었다. 이 승리는 쿠바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카스트로는 미국의 기자들을 산속으로 불러들여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회견 내용이 보도되거나 방송될 때마다 그들의 세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1958년 초부터는 라디오 송신소를 설치해 밤마다 ‘시에라마에스트라에 있는 자유 쿠바의 영토로부터’라는 방송을 보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티스타가 1958년 5월, 1만 2,000명의 군대를 동원해 시에라마에스트라로 진격해 들어갔으나 지형이 험난하고 군대 사기도 엉망이어서 카스트로 혁명군에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1958년 8월 체 게바라는 148명의 반군 병사들을 이끌고 쿠바 섬의 3분의 2를 가로지르는 천신만고의 행군길에 올라 12월 29일 산타클라라에 입성했다.
바티스타는 1959년 1월 1일 새벽, 수억 달러의 재산을 챙겨 도미니카로 도주했다. 오랫동안 쿠바 국민을 질곡으로 빠뜨려온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종말이었다. 그날 오후 6시 카스트로는 동부의 산티아고를 함락하고 체 게바라는 1월 3일 수도 아바나에 입성했다. 카스트로는 2월 16일 총리에 취임, 혁명정부의 전면에 등장했다.

혁명 후 미국은 바티스타의 실권과 카스트로의 혁명정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카스트로 정부와의 밀착을 시도했다. 그러던 중 1960년 2월 쿠바가 사탕수수 500만t을 소련에 수출한 대가로 소련에서 수입한 석유를 쿠바 내 미국 기업에서 정제하려 하자 미국 기업이 이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카스트로는 보복으로 1960년 8월 미국인 소유의 제당공장과 정유소를 몰수하는 등 10억 달러에 달하는 쿠바 내 미국 자산을 동결했다. 미국은 1961년 1월 쿠바와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카스트로는 1961년 12월 쿠바 혁명의 성격을 마르크스·레닌주의로 공식 규정하고 미국과 확실히 선을 그었다. 결국 미국은 1962년 3월 쿠바산 설탕 수입을 금지하고 미국 농산물도 쿠바에 팔지 않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맞불작전을 펼쳤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피그만 침공 실패(1961.4)와 쿠바 미사일 위기(1962.10)까지 더해지면서 미국과 쿠바는 더 이상 화해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적대국이 되었다. 미 CIA는 눈엣가시 같은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해 암살 시도를 숱하게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중국 팽덕회 실각
6·25전쟁 당시 중공군 총사령관이던 펑더화이(彭德懷)는 중국에서 ‘비운의 원수(元帥)’로 불린다. 평생 마오쩌둥(毛澤東)을 따라 전쟁터를 누비며 숱한 전공(戰功)을 세웠지만, 1959년 마오의 무리한 ‘대약진운동’을 비판하다가 숙청돼 15년간 박해를 받았다. 마오는 1974년 펑더화이가 고문 후유증 등으로 사망할 때까지 복권하지 않았고, 덩샤오핑 등도 ‘반당 수괴’로 낙인 찍힌 펑더화이의 명예를 쉽게 회복시키지 못했다.

▲ 팽덕회(왼쪽)와 모택동

홍콩 신보(信報)는 12월 15일 “펑더화이의 일생을 다룬 40편짜리 드라마 ‘펑더화이 원수’가 조만간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며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결정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펑더화이에게 걸린 마오의 오랜 저주가 TV 드라마를 통해 풀리는 것이다. <조선일보 2014년 12월 16일>

1956년 2월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모택동은 혹시라도 중국 공산당과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도 도전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다. 모택동은 흐루시초프의 발언에 분개했지만 그렇다고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마냥 거부할 수도 없었다. 1956년 4월 중국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 구호의 ‘명방(鳴放)운동’이 일어난 것은 이런 시대 상황의 산물이었다. ‘백화제방’은 예술 분야의 발전을 위한 것이고, '백가쟁명'은 사회과학 분야의 발전을 위한 지식 개방운동이었다.

 1956년 9월의 제8차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는 당 규약에 명시된 ‘모택동 사상을 당의 최고 방침으로 한다’, ‘모택동 사상을 학습하는 것은 당원의 의무’라는 두 조항이 삭제되었다. 모택동의 묵인 하에 이뤄진 파격적인 조치였다. 모택동은 1957년 2월의 국무회의에서도 “알고 있는 것은 말하라. 남김없이 말하라. 말하는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해 지식인들을 들뜨게 했다.

모택동은 더 나아가 “모든 영역에서 백 가지의 꽃을 피게 해서 백 가지의 사상과 학파들이 서로 겨루게 하라…. 인민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말문이 트인 지식인들의 자유 발언이 자신을 위협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자 다시 칼을 빼든 것이다.
모택동은 반대세력에 전면적인 공격을 퍼부으며 ‘반우파 투쟁’으로 불리는 정풍운동을 전개했다.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독초와 독사로 불리며 숙청되었고, 공개석상에서 했던 하찮은 말도 ‘우경’으로 몰려 수난을 당했다. 1958년 7월까지 작가, 예술가 등 7,000여 명이 우파로 지목되어 노동개조 장소로 보내지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 때문에 오늘날 ‘명방 운동’을 모택동의 노련한 음모적 차원의 공작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모택동은 이렇게 모든 언로를 막아버린 뒤 1958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대약진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을 전개하는 농촌의 실상은 비참했다.

그러자 팽덕회 국방부장이 모택동에게 대약진운동의 노선 전환을 요구하기로 결심했다. 팽덕회는 항일전쟁, 국공 내전을 승리로 이끈 중공군의 대표적 사령관이었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 모택동은 “아무 준비 없이 치러야 할 전투를 승리로 이끌 사람은 전군에 팽덕회를 능가할 자가 없다”고 말했다. 팽덕회는 김일성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전쟁을 치렀고, 휴전 협정문에 중공군 대표로 서명했다. 무엇보다 모택동이 ‘삼국지’의 장비에 비유하고 흐루시초프가 “천재적인 전략가”라고 칭송할 만큼 직선적이고 전형적인 무장이었다. 그런 팽덕회의 눈에 일방적이고 독재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대약진운동이 옳게 비칠 리 없었다.

군사 분야에서도 모택동과 이견의 골이 깊었다. 팽덕회는 “모택동 사상으로 비행기가 뜨는 것이 아니며 현대전은 정치 싸움이 아니라 기술 싸움”이라고 공공연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무기와 전략의 현대화를 들고나온 팽덕회의 주장은 유소기, 주은래, 등소평 등으로부터 묵시적인 비호와 지지를 받았으나 이들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팽덕회의 편지는 모택동에게 더없이 좋은 먹잇감
팽덕회의 불만은 1959년 7월 2일 강서성의 여산에서 개막된, 이른바 ‘여산회의’라 불리는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폭발했다. 여산회의는 모택동의 노회한 술수에 따라 초반에는 부드러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모택동은 여산회의가 열리기 전, 회의 명칭을 “산 위에서 신선들처럼 노닐며 한바탕 쉬자”는 의미의 ‘신선회’로 불렀다. 회의 첫날부터 “향기로워도 방귀고 냄새가 고약해도 방귀다. 장 안에 쌓아두면 병만 생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라”며 당 간부들을 안심시켰다.
부드럽던 분위기는 팽덕회가 “작년에 무턱대고 하달한 모택동 주석의 의견에는 문제가 적지 않았다”고 입을 열면서 돌변했다. 그의 발언은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택동의 귀에 그대로 들어갔다. 팽덕회는 급기야 대약진운동을 비판하는 편지를 써 7월 14일 모택동에게 보냈다. “대약진의 성과는 의심의 여지없이 위대하다”면서도 “지나치게 빠른 경제 건설이 불러일으킨 혼란, 실태를 숨긴 물타기 보고 등이 좌익 편향의 과오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신랄한 편지였다.

지난 며칠 동안 계속되고 있는 팽덕회의 비판을 자신에 대한 도전이자 공산당 지도체제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모택동에게 팽덕회의 편지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모택동은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 되레 회의 기간 팽덕회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게 내버려두었다. 팽덕회는 모택동의 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온갖 말을 쏟아냈다. “인민공사 운동을 너무 일찍 시작했다”, “자연은 원래 모습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 “수천 년간 형성된 물줄기를 억지로 바꾸는 건 미련한 짓이다.”
침묵하던 모택동이 팽덕회의 편지에 ‘팽덕회 동지의 의견서’라는 표제를 달아 여산회의 참석자들에게 공개한 것은 7월 16일이었다. 팽덕회가 남들 모르게 은밀히 직간하는 형식을 취한 것에 공개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편지가 조별 토론의 중심 의제로 채택되었을 때 초반에는 팽덕회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았다.
회의에는 얼씬도 않던 모택동이 마침내 속내를 드러낸 것은 7월 23일이었다. 모택동은 “나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며 자아비판을 하더니 곧 “마르크스도 적지 않은 죄를 지었다. 죽는 날까지 혁명의 그날이 올 거라고 했지만 서구에 혁명다운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팽덕회의 우경화를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뭔가 심상치 않은 징조를 느끼며 안절부절 못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그날 밤부터 팽덕회와 마주치면 슬그머니 피했다. 이튿날 회의가 속개되자 소조마다 전날 있었던 모택동의 발언을 두둔하기 시작했다. 팽덕회의 의견을 지지했던 사람일수록 팽덕회의 비판에 더 열을 올렸다.

 결국 8월 16일의 마지막 회의에서 ‘군사 그룹을 만들고 외국과 내통한 팽덕화를 반당집단의 우두머리로 규정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북경으로 돌아온 팽덕회는 군과 관련된 모든 직무를 정지당하고 그동안 거주하고 있던 중남해에서 쫓겨났다. 이후 한동안 오지에서 하위직을 전전하다가 문화대혁명 때 다시 불려와 모진 고문을 받았다. 끝까지 반혁명의 누명을 부정하고 자살도 거부해 죽을 때까지 100여 차례의 신문을 받았고 허파에 구멍이 뚫리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결국 1974년 11월 눈을 감았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