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선물’ 흙과 물과 불, 신이 내린 그 선물로 인간은 긴 새벽을 깨고 삶을 찾았다. 그 삶은 문화가 됐고 문화는 다시 역사가 됐다. 흙과 물로 만든 형상을 불로 빛을 발하게 했으니, 그릇과 도자기로 태어나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하고 있다.

▲ 영남요 백산 김정옥 선생

도자기는 장인정신이 빚는 과학이자 예술이다. 우리의 조상은 남다른 손재주가 있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를 물려주었다. 영남요의 백산 김정옥 선생은 이러한 한국적 전통미를 가득 머금은 작품으로 전통 예술과 묵묵히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인물이다. 김정옥 선생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
경북 문경에 소재한 영남요는 대를 이어 장인의 예술혼을 이어가는 곳이다. 9대째 한국의 전통 도자기를 빚고 있는 이곳의 대표인 김정옥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이다. 1991년 정호다완을 재현해 도예부문 초대 명장이 된 그는 지난 1996년 국내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으로 지정됐다.

▲ 달항아리-백자대호

1999년 문경대학 초대명예교수에 이어 2000년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영예를 얻었다. 지난 2012년 6월에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통일 후 필요한 재원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통일 준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통일항아리’를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완성하기도 했다.

 총 6개로 만들어진 통일항아리는 청와대, 국회, 통일부, 민간단체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각각 한 개씩 전달되고 나머지 두 개는 통일부가 보관하고 있는데, 나머지 통일항아리는 통일 준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용된다.

도예가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김정옥 선생의 인생은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태토를 고르고 물레질을 연습했으며 큰 산 두 개를 넘나들며 장작을 구해 가마에 불을 지폈다. 두 달에 한번 불을 지피는 가마에는 다완 100여 점이 들어가지만 작품으로 남는 것은 고작 3~4점에 불과하다.

80~90%의 성공확률을 보장하고 97%의 실패가 눈에 보이는 망댕이 가마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김정옥 선생은 김정옥 선생은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면서 “가장 한국적인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법부터 전통적이어야 한다.

많은 작품보다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렇게 김정옥 선생이 쉼 없는 작업을 해온 지도 올해로 벌써 64년째. 그는 “우리 가문이 유일하게 조선 도예의 전통을 지켜나간다는 점이 늘 자랑스러웠다”며 자신의 도예인생의 버팀목은 ‘자긍심’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탄생한 ‘청화백자팔각병’과 ‘분청사기철화당초문계룡산호’, ‘정호다완’ 등 김정옥 선생의 작품은 자기 과시나 수사적인 기교 대신 투박하지만 고고한 자연의 멋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 선생은 200여년 전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기물레 대신 발물레로, 가스가마 대신 전통 장작 가마인 망댕이 가마를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그릇을 제작하고 있다.

▲ 차사발(井戶茶碗)-정호다완(이도다완)

그릇을 빚고, 문양을 새기고, 그림을 그리고, 뜨거운 불에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그 모든 과정을 손수 하고 있는 그에게서는 도자기 명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고집을 넘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함마저 느껴진다. 최근에는 미국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캐나다왕립박물관, 독일 베를린 동아시아 박물관,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 등에 작품을 전시하는 등 전 세계에서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도예가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김정옥 선생은 끊임없는 노력을 거듭하며 예술혼을 불살랐다.

9대로 이어지는 명문 도예가문의 명성 재확인
최근 김정옥 선생은 가업이 자신의 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갈 수 있다는 데에 큰 행복감을 느끼는 중이다. 그의 아들 김경식 씨 뿐만 아니라 손자 김지훈 군까지 가업을 이으며 9대 도예가문으로 이어지며 ‘명문 도예가문’으로 명성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게 된 것이다. 김경식 씨는 7년간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 지난 1995년 도예에 입문, 20년 가까이 영남요를 지키고 있으며, 전승공예대전이나 기능경진대회에서 수차례 입상,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에 작품이 영구 전시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경식 씨의 맏아들인 김지훈 군 역시 도예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개최된 문경전통찻사발축제 행사의 하나였던 발물레 경진대회 학생부에서 3등을 차지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같은 대회 학생부 대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지훈 군은 문경의 인문계고교 1학년을 마치고 지난 2012년 경기 이천에 있는 한국도예고교로 전학했으며 지난해 목원대에 입학해 도자기를 전공하고 있다. 김정옥 선생은 “문화재로 지정해 준 뜻은 내 기능을 후손 대대로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들과 손자가 잘하고 있으니 매우 흡족하다”며 “앞으로도 전통과 맥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