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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 향년 97세 숙환으로 별세
1세대 여성운동가로 여성의 권익 향상에 이바지
2019년 07월 04일 (목) 01:19:31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지난 6월10일 오후 11시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희호 여사는 지난 3월부터 병세가 악화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과 동교동계 등은 이 여사의 병세가 악화될 것을 염려해 지난 4월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의 별세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장정미 기자 haiyap@

지난 6월10일 향년 97세로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이기 전에 김 전 대통령과 함께 긴 고난의 세월을 지나온 민주화 투쟁 ‘동지’이자 ‘조언자’였다. 또한 ‘1세대 여성운동가’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여성의 권익 향상에 이바지한 삶을 살았다. 이 여사는 수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김 전 대통령의 뒷바라지뿐만 아니라 남편을 대신해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민주화 투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판기념회 당시 “사실 결혼 46년 동안 제대로 가사 일을 도와준 적이 없었다”며 “제가 수많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준 것도 아내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을 때 힘과 능력을 주고 내조를 잘해주었던 이도 아내”라고 말한 바 있다.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대·서울대를 거쳐 미국 스칼릿 대학원을 졸업했고, 귀국 후에는 이화여대에서 강의하는 등 당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인텔리였다. 이 여사는 유학 후 귀국해 이화여대 강사, 여성문제연구원 간사, 대한여자청년단(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간사 등 1세대 여성운동을 했다. 그러다 1962년 41세의 나이로 2살 연하이자 ‘정치 낭인’에 가까웠던 김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결혼을 통해 이 여사의 생애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결혼 다음 해인 1963년 11월 26일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이 여사는 의욕적으로 의정활동을 펼치는 김 전 대통령의 뒷바라지를 위해 신문을 샅샅이 읽고 정책 제안에 도움이 될 만한 기사를 스크랩하고 제안했다. 특히 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장점을 살려 <코리아타임즈>와 <뉴스위크> <포린 어페어스> 등 영어 신문과 잡지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국제정세에 뒤처지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김 전 대통령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국제사회에 구명을 요청하는 데 도움이 됐다. 1972년 유신 선포 당시 지병 치료차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김 전 대통령의 해외 반유신 활동을 인편으로 오가는 서신을 통해 지원하고 독려했다. 같은 해 12월 19일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첫 편지에는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정부에서는 당신이 외국에서 성명을 내는 것과 국제적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라며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고…”라며 독려했다. 유신정우회가 선출된 1973년에는 편지에 “이번 선거를 통해 당신은 더 깊이 국민의 가슴속에 심어졌다고 봅니다. 심지어 인쇄물에까지 당신의 이름을 기재했어요”라고 ‘유신정우회’ 선거에서 나타난 현상을 소개하며 김 전 대통령의 용기를 북돋우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계엄사령부에 의해 조작된 내란음모 사건으로 몰려 군사재판에 회부, 사형을 2년여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는 동안에도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면모를 보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 기간 600여권에 이르는 책을 읽었고,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 언어와 역사에서 경제,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지식과 상식을 두루 쌓았다. 결혼 후 평생을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또 다른 한 명의 민주화 투사로 살았던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를 두고는 의견을 달리했다. 이 여사는 자신의 평전 <고난의 길, 신념의 길>에서 “남편이 (제14대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 정말 많이 울었다. 대통령이 돼서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정말로 간절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야 하니까”라면서도 “그런데도 정치를 다시 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반대했다”고 했다. 이어 “(은퇴는) 국민과 한 약속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나는 남편의 간절한 소망을 결국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소개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에도 70대 후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결식아동을 돕는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을 발족하는 등 역대 어느 퍼스트레이디보다도 소외 계층의 복지 등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여성 권익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젊은 시절 초심을 잃지 않고 김 전 대통령의 정책공약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성을 위한 대책을 도왔으며, 이는 곧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여성부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이 여사는 2002년 5월 유엔 의장국이었던 대한민국의 대표로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이 총회에서 이 여사는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한 최초의 여성이다. 이 여사는 생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며 “남편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한길을 걸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고 소원했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야권이던 민주당 등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민주 진영의 대모이자 민주화 운동 세대의 큰 어른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1세대 여성 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의 투사, 김 전 대통령의 동지이자 가장 강력한 조력자였던 이 여사는 미국 교회여성연합외 ‘용감한 여성상’, 미국 캘리포니아주 ‘이 해의 탁월한 여성상’, 무궁화대훈장, 펄벅 인터내셔널 ‘올해의 여성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문 대통령, SNS 통해 고인 추모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가 별세한 것과 관련해 “부디 영면하시길 바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SNS에 올린 글에서 “저는 지금 헬싱키에 있다. (국내에) 계신 분들께서 정성을 다해 모셔주시기 바란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 여사님이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러 갔다. 조금만 더 미뤄도 좋았을 텐데, 그리움이 깊으셨나보다”라며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제 1세대 여성 운동가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했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했다”며 “민주화운동에 함께하셨을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평양 방문에 여사님 건강이 여의치 않아 모시고 가지 못해 안타까웠다”며 “평화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벌써 여사님의 빈자리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두 분(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 여사) 이 만나셔서 얘기를 나누고 계실 것”이라며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 두 분이 늘 응원해 주시리라 믿는다. 순방을 마치고 바로 뵙겠다”고 했다. 한편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6월11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께서 소천하셨다며 고별인사를 드렸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이희호 여사님께서 오늘 2019년 6월 10일 23시 37분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소천하셨다”며 “가족들의 찬송가를 따라 부르려고 입을 움직이시면서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저는 ‘사모님 편히 가십시요. 하늘나라에서 대통령님도 큰 아들 김홍일 의원도 만나셔서 많은 말씀을 나누세요.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큰아들 김홍일 의원 보내시고 국립 5·18민주묘지 안장까지 보시고 가셨네요’라고 고별인사를 드렸다”며 마지막 인사내용도 공개했다. 박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님은 이희호 여사님으로부터 탄생하셨다고 저는 자주 말씀했다”며 남편인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이 여사의 영향력을 간단히 평가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으며,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DJ계 핵심 인사 중 한 명이다.

여야, 일제히 애도 표하며 고인의 업적 기려
지난 6월11일 여야는 이희호 여사의 별세 소식에 일제히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민주화 운동 업적을 기렸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서면 논평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거목이었던 여성 지도자 이희호 여사의 삶을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추모한다”며 “김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가장 가까운 비판자로서 독재세력과 싸우는 민주화 투쟁의 동지로 매섭고 엄혹한 격정의 세월을 함께 헤쳐오셨다”고 회고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여성 지도자로서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서 끊임없이 더 좋은 세상의 등불을 밝혔던 이 여사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퍼스트레이디였다”고 평하면서 “이 여사를 김 전 대통령 곁으로 떠나보내며 이 여사께서 영면하시길 기도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이희호 여사는 민주주의를 위해 한 평생을 살아왔다”면서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여성문제연구회 회장 등을 맡았으며 가족법 개정 운동, 혼인신고 의무화 등 사회운동에도 헌신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이어 “영부인이 된 후에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명예대회 회장 등을 맡으며 장애인 인권운동에도 힘썼다”면서 “고인께서 민주주의, 여성 그리고 장애인 인권운동을 위해 평생 헌신했던 열정과 숭고한 뜻을 기리며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우리 모두는 여사님이 걸었던 여성, 민주주의, 인권, 사랑의 길을 따라 전진하겠다. ‘이희호’라는 이름은 항상 기억될 것”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희호 여사님의 여성 리더적인 면모는 김 전 대통령의 인생의 반려자를 넘어 독재 속에서 국민과 역사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켜낸 정치적 동지로 자리하셨다”며 “정치적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김 전 대통령님의 삶에 이희호 여사님이 계셨던 것을 국민들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꿈길에서 아스라이 손을 놓았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사무친 그리움을 풀고 헤어짐 없는 영원한 곳에서 변함없이 아름답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한다”면서 “김 전 대통령이라는 거목을 키우고 꽃피워낸 건 역사였지만 국제적 구명운동과 석방운동 등 그를 지켜낸 건 여사의 존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애도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정의당은 향후 장례 일정에서 고인의 높은 뜻을 기리고 위해 모든 예우를 다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의당은 고인의 위대한 삶을 계승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며 “고인의 필생의 신념이었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6·15 공동선언을 계승 실천하고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평화 협치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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