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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 우리나라 전통가요, 트로트의 재발견 & 재평가[1]
2019년 05월 08일 (수) 01:25:35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우리나라 트로트를 다시 생각한다
-올해로 ‘노래인생 60주년’을 맞는 이미자씨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유독 많은 시련을 겪었고 동시에 가장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노래, 트로트.
우리나라 대중가요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트로트야말로 한국 대중가요의 대표 장르라는 데에는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뿌리이자 근간을 이루고 있는 동시에 우리 대중가요의 미래라고도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해서 그동안 ‘전통가요’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늘 우리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음악, 트로트.
서민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흘러온 이 트로트 가락은 그동안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했을까. 우리나라 전통가요, 트로트의 재발견 & 재평가, 그 첫 번 째.

글l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트로트는 ‘흘러간 가요’가 아닌 ‘흘러온 가요’

▲ 이미자 ‘노래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 기념음반 재킷. 2019년

우리나라에서 트로트 리듬의 노래가 유행을 넘어, 시대를 건너 여전히 애창되고 있다. ‘노래방 애창곡 순위’나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창가요 베스트’ 집계에서도 나타나듯 여전히 강세다. 속칭 ‘유행가’요, ‘흘러간 가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옛 가요 전문 프로그램 ‘가요무대(KBS-1TV)’가 30여 년째 장수하고 있고 ‘전국노래자랑(KBS-1TV)’ 무대에서도 이미 유행 지난 수십 년 된 노래가 여전히 절반을 차지한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노래교실이나 축제현장은 또 어떤가.

불과 3분 내외의 유행가 가사를 시대별로 훑어가다 보면 거기에 대한민국 근대사가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다. 당대 시대상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흘러간 가요’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흘러온 가요‘라고 해야지.”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가요1세대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늘 하시던 주장이다. 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흘러온 노래, 그 큰 줄기가 바로 트로트다.

특히 어려울수록 함께 했던 이 ‘트로트 가락’은 우리네 삶의 동반자였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며 국민들의 희, 노, 애, 락을 대신해 크나큰 위안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주었다. 때때로 노래는 ‘지쳐있는 삶의 응원가’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 장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련을 겪었고, 그럼에도 가장 오랫동안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노래가 바로 트로트 노래다. 이 트로트를 비롯한 성인가요가 현재 우리나라 방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2019년 현재 성인가요가 방송에서 차지하는 비중

우리나라의 전국 방송을 모두 모니터링하는 ‘차트코리아(CHART KOREA, 대표 장민)’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방송국은 공중파 TV, 라디오와 케이블 TV, IPTV, 스카이라이프 TV 등 총 400여개로 이 채널에서 송출되는 프로그램 수는 약 8,000여개.

이 중에서 음악프로그램은 전국 라디오 1,800여개, 전국 TV 30개, 케이블 170여개 프로그램 등 총 2,000여개 음악 프로그램이 있다. 이중 라디오 1,800개 음악프로그램에서 성인가요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3% 정도. 특히 TV의 경우 성인가요 전문프로그램은 지방에 ‘MBC 가요베스트’와 9개 민방에서 공동으로 제작하는 ‘가요 TOP10’ 등 두 개가 있으며 전국 방송되는 성인가요 전문 프로그램은 ‘가요무대’가 유일하다.

또한 차트코리아가 매주 집계 발표하는 4월 마지막 주 차트에 따르면, 가장 많은 방송회수를 기록한 주간 1위곡은 ‘작은 것들을 위한 시(방탄소년단)’로 총 215회 방송된데 비해 성인가요 차트 1위곡인 ‘천태만상(윤수현)’은 64회였다. 한편 외국 POP 차트 1위곡, ‘QUEEN(Perfume Genius)’은 총 95회 방송되었다. 이처럼 성인가요는 외국의 POP보다도 방송 횟수가 적을 뿐 아니라 일반가요와 성인 가요의 비율은 3분의 1 수준에 머문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방송에서 차지하는 성인가요의 현주소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대중가요의 위상은 어떠했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수 이미자씨의 노래인생 60년을 통해 우리나라 트로트의 영광과 수난의 역사, 그 빛과 그림자를 따라 가본다.

‘이미자 노래인생 60년’을 통해본 대중가요의 빛과 그림자

1964년 ‘동백아가씨’를 통해 비로소 우리나라 트로트 시대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엘리지의 여왕’ 이미자씨, 기네스북에도 올랐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곡을 취입한가수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당시인 1990년까지 그가 발표한 음반은 총 560장, 곡수는 2,069곡이었다. 그는 노래를 ‘악보 그대로’ 부르는 ‘원곡주의자’이기도 하다. 우리 전통가요를 지켜온 가수 이미자씨의 활동기록은 이제 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의 기록, 그 자체다.

이미자씨가 올해 데뷔 6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지난 2월, '노래 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 음반을 발표했다. 이 쇼케이스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음악인생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동안 매우 힘들었다. 한창 바쁘게 활동할 당시 ‘이미자 노래는 질이 낮다‘, ‘천박하다’, ‘술집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라는 세간의 평 때문에 소외감이 컸었다,”며 “그래서 한때는 서구풍의 노래로 바꿔볼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잘 견디고 지탱해 왔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내가 그동안 정말 절제하면서 잘 견뎌왔구나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20년 전 ‘노래인생 40주년’ 때는 달랐다. 당시 발간한 자전 에세이 ‘인생 나의 40년(1999년, 황금가지 刊)’에서 한 첫 말은 ‘다시 하라면 두 번 다시 못한다.’였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니까 살았다.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동안 무던히도 참아왔다고도 했다. “끊임없이 도중하차에 대한 유혹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다. 온갖 설움과 고통을 꾹꾹 눌러가며 참고 또 참았다.”고 적었다.
 
가요1세대 작사가 겸 가수 반야월(가수명 : 진방남) 선생도 생전에 자신의 데뷔 7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본인의 노래인생을 돌아보니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훨씬 많았다”는 게 첫 소회였다. 그렇듯 우리나라 풍토에서 가수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실제 사례다.

무엇이 그토록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들의 가요활동을 힘들게 했을까. 반야월 선생의 경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친일논란’, 그리고 이미자씨의 경우는 ‘왜색’ 논란에 따른 금지곡 파동이다.

왜색, 비탄조라는 사유로 금지되었던 이미자 노래들

▲ 우리나라에서 트로트 시대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노래 ‘동백아가씨’ 음반 재킷. 1964년

그동안 이미자씨가 발표한 많은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특히 그의 3대히트곡인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에 이어 ‘기러기 아빠’까지 각각 왜색, 비탄조 등의 사유로 금지되면서 한때 가수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물론 이 노래들의 금지 배경에는 아직도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몇 가지 설이 나돈다. 그 중 하나는 정치적 희생양 설. 당시 한일국교를 맺을 즈음 치닫던 반일감정을 ‘왜색 근절’이라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민심달래기용’으로 이용되었다는 설과 또 하나는 당시 정책구호였던 ‘재건’에 대한 ‘의욕 저하 설’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다른 하나는 주위 음반사의 작용 설. 정작 당사자인 이미자씨는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는 1999년에 발간한 자전 에세이 ‘인생 나의 40년(1999년, 황금가지 刊)’에서 본인의 심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65년 한일국교 정상화에 따른 주체성 확립 차원에서 본보기로 규제한 시대적 희생물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정작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찬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불러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며 정말로 ‘동백아가씨’가 왜색이어서 정부가 금지시켰다면 일본에 대해 강경자세를 취했던 박대통령이 그 노래를 내게 부르게 했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권력층에서는 정작 이 노래의 금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오히려 연속되는 빅 히트로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타 음반사가 극에 달한 ‘반일감정’에 편승, 심의실과 결탁해 여론몰이를 통한 ‘마녀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겠냐는 주장을 제기했다.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 VS  ‘왜색’,‘비탄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수 ‘이미자 노래’에 한국인들의 정서가 잘 담겨 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이미자씨 노래 스타일을 ‘이미자 풍’이라고 말한다. ‘이미자씨만의 스타일’은 그동안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한 온전히 ‘본인만의 스타일’이다. ‘이미자 창법’이라고도 지칭한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며 사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로 평가받고 있는 이미자씨 노래에 ‘왜색’, ‘비탄조’ 등의 모호한 심의기준을 적용했던 사례는 분명 불행했던 사회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대중가요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했는지는 차치해 두고서라도 우리의 대중문화를 우리 스스로 폄하시키는, 비극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안타깝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우리나라 트로트가 걸어온 길이었다.

대중가요, 한 가락 한 가락은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소중한 끈

온몸으로 대중가요의 영욕을 부딪쳐온 이미자씨 관련 일화는 많다. 국내 대중가요가수로써는 처음 무대에 섰던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이미자 30주년 공연(1989년)’ 때의 일이다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상의 목소리’ 동시에 ‘촌스러움, 천박함’ 등의 상반된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던 이미자씨, 처음 이 공연은 ‘공연장의 품위’ 등의 이유로 세종문화회관 운영자문위원회의 논란을 야기 시킨 일화로도 유명하다. 클래식에 비해 ‘격이 낮다’, ‘이미자씨 공연엔 고무신짝들만 모일 것’이라는 노골적인 눈총과 멸시를 받으며 막이 오른 이 공연은, 그러나 첫날부터 세종문화회관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당시 민정당 박태준 대표, 평민당 김대중 총재,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 즉 당시 4당 총재부부가 나란히 관객석에 자리한 것이다.

어쩌면, 한국인만의 정서를 대변하고 달래주었던 이미자씨의 노래, 그 실타래 같은 노래 한 가닥 한 가닥은 서민의 밑바닥 정서부터 한국을 움직이는 최고 수뇌부까지 모두 하나로 묶는 소중한 ‘끈’ 아니었을까.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트로트, 즉 전통가요의 힘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간략하게 살펴보는 트로트 시대별 변천사

우리 곁에 늘 자리해온 노래, 너무 가깝고 친숙하여 그 소중함을 미처 몰랐던 음악, 우리나라에서 트로트가 언제,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우리나라 트로트의 역사는 우리 대중가요의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100년을 향해 가고 있다.

1930년대 작곡가 전수린, 손목인, 박시춘 등의 등장은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민요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대중가요가 자리하게 되는 신문화의 장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트로트 시대의 개막을 알린 작품은 1934년에 발표된  ‘처녀총각(강홍식)’이다. 이어 이듬해 발표된 ‘목포의 눈물(이난영)’에 이어 ‘애수의 소야곡(남인수)’, ‘번지 없는 주막(백년설)’, ‘나그네 설움(백년설)’, ‘눈물 젖은 두만강(김정구)’ 등으로 이어진다. (필자 註 : ‘처녀총각’과 ‘알뜰한 당신’ 등은 발표 당시 ‘신민요’라고 표기되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트로트로 분류된다. 이보다 먼저 발표된 3박자 왈츠 리듬의 '낙화유수(강남달, 이정숙)', '황성옛터'(이애리수)와 ‘타향살이(고복수, 원제 : 타향)’ 등이 있다. 이는 악보집 『연주인을 위한 우리노래전집 1~4권』(1981년, 김점도 편저, 후반기출판사), 『韓國音樂大全集』(1986년, 손목인 총 감수, 日本 竹書房), 『KBS 가요무대 60년』(1987년, 현대출판사) 등을 참고했다.)

▲ 이난영 ‘목포의 눈물’ 악보

이 트로트 가요들이 한국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작용하는가. 한 예로 ‘목포의 눈물’을 보자.
일제 하 1935년에 발표된 ‘목포의 눈물(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망향가’이자 ‘저항가’였고 해방 후에는 설움 받는 호남인들의 ‘시름가’였다. 그리고 민주투쟁의 연대에는 장렬히 산화한 열사들에 대한 남도인들의 ‘진혼가’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목포의 눈물’은 호남인들의 입에 마치 세발낙지처럼 착 달라붙은 채, 프로야구장에서 응원가로까지 불려진다. 이 것이 트로트가 발휘하는 힘인 것이다.

일제 하 망국의 설움을 노래한 ‘애수의 소야곡’과 ‘오늘도 걷는다마는...’으로 시작되는 ‘나그네 설움’, 지도상에서 사라져버린 나라를 탄한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의 ‘번지 없는 주막’과 되찾은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귀국선’, 6.25의 참상을 생생하게 고발한 ‘단장의 미아리고개’와 전쟁의 잿더미에서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굳세어라 금순아’, 부패된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귀거래사를 읊은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의 ‘물방아 도는 내력’... 등등.

우리 가요는 트로트 리듬을 타고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국민들과 함께 해왔으나 그 스스로의 운명은 순탄치 못했다. 1920~30년대의 ‘유행가’, 50년대 보릿고개 시절 ‘도롯도’시대를 거쳐 60년대 ‘트로트’는 정치인들에 의해 재갈이 물려져 금지되는 희생양이 되기도 했고 그 반대로 홍보의 최전방에서 첨병 역할을 맡기도 했다.

1960년대 저속, 왜색 등의 이유로 무더기 금지 시켜

트로트를 중심으로 한 가요의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또 정책적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박정희 전 대통령시대’다. 그는 5.16 이후 '저속' '왜색' 등의 이유로 가요를 무더기로 금지시키며 ‘한일정상회담’의 국민여론 무마용 카드로 삼았고 '퇴폐'를 이유로 기존의 노래들도 모두 2절까지만 방송케 했다.

그러나 '동백아가씨' 등을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시킨 뒤 개인적으로는 가수 이미자씨를 영빈관으로 불러 이 노래를 직접 육성으로 감상했던 것 또한 유명한 일화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스스로 가요 '금오산아 잘 있거라'의 노랫말을 지어 가수 박재홍에게 취입시키기도 했다.

초창기 트로트는 대부분 3절로 구성되어 ‘기승전결’의 이야기 흐름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발표된 대중가요는 2절까지만 방송케 했고 심지어 기존의 노래들을 재취입할 때도 2절까지밖에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때문에 최근 가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당시 나온 노래 중에서 오리지널 곡과 재취입곡을 가장 손쉽게 구별하는 방법으로 노래가 2절까지인지 3절까지인지로 구별하기도 한다. 이렇게 기형이 된 트로트는 이후 1970년대 들어서면서 또 한 번의 변신을 한다.

70년대 ‘트로트 고고’시대 거쳐 80년대 메들리 붐으로

초창기 트로트는 대부분 3절로 구성되어 ‘기승전결’의 이야기 흐름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에 의해 본 모습이 잘려져 기형이 된 트로트는 1970년대 들어 ‘트로트 고고’, '록 트로트' 등 속칭 ‘세미 트로트’라고 불리는 다양한 리듬으로 세분화되며 지금의 '댄스 트로트', ‘네오 트로트’, ‘뉴 트로트’ 등으로 변신, 호칭도 다양해졌다. 우리나라 트로트 변천사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현상은 80년대 메들리 붐이다.

▲ 주현미 김준규 ‘쌍쌍파티’ 1집 음반(1984년)과 이보다 먼저 중학생 시절에 발표한 주현미 데뷔 음반 (1976년).

80년대 들어 ‘트로트 메들리 붐’이 우리나라를 강타한다. 당시 미국에서 ‘스타스 온 45(Star's On 45)’라는 타이틀로, 특정 가수의 히트곡 45곡을 모아 한 장의 음반에 수록하는 이 세계적인 조류가 우리나라에 상륙, 메들리 붐으로 점화된 것.

노래를 1절 씩만으로 엮어 대부분 템포가 빠른 댄스곡으로 편곡되어 보급된 ‘트로트 메들리 붐’은 ‘뽕짝’이라는 비속어를 탄생시켰다. 기본적으로 2박자와 4박자 패턴인 ‘쿵/짝(강/약)’리듬이 열악한 녹음시설과 재생기기로 인해 사람들 귀에 ‘뽕짝’으로 들렸던 것이다. 메들리 붐과 함께 일부 ‘트로트가요’는 급격히 ‘관광버스용’으로 치부되며 ‘뽕짝’으로 둔갑했지만 이 우리말 의성어 ‘뽕짝’은 ‘트로트’를 대신한 용어로 빠르게 회자되며 급기야 영국에서 발행되는 ‘러프 가이드(Rough Guide)’ 월드뮤직 편에 한국의 대표적 대중음악을 '뽕짝록(Pongchak Rock)'이라 소개되기도 했다.

끊임없이 세분화되며 진화하는 트로트

언젠가 한 모임에서 이렇게 불리어지는 노래를 들었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저 바다가 없었다면/누가 울어 이 한밤/한 많은 사연/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며/내가 왜 왔나/울어라 열풍아/갈대의 순정’

기존 노래들의 부분 부분을 제멋대로 조합해 하나의 노래로 연결시킨 이 노래는 뒤죽박죽, 앞뒤 맞지 않는 가사지만 멜로디의 연결성만큼은 꽤나 그럴 듯해 한두 번만 들어도 이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필자가 2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단 한 차례 들었을 뿐인데도 지금도 선명히 떠올릴 만큼.

이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천천히 뜯어보면 ‘비 나리는 호남선(손인호)/가슴 아프게(남진)/누가 울어(배호)/추풍령(남상규)/울려고 내가 왔나(남진)/울어라 열풍아(이미자)/갈대의 순정(박일남)’까지의 노래들을 조각조각 이어붙인 것이다. 1957년부터 68년까지, 10여 년 동안 제각각 발표된 노래들이다. 그럼에도 마치 장인이 꿰맞춘 목조건물인양 조합이 척척 들어맞는다. 만일 1930년대의 ‘애수의 소야곡’에서 2000년대 ‘남자라는 이유로’까지의 노래들을 꿰어 조합해도 흡사한 상황이 재현될 것이다.

그만큼 트로트 가요의 멜로디 전개는 서로 흡사하다. 때문에 트로트는 처음 듣는 순간부터 마치 ‘이미 알고 있던 노래‘인 듯한 친근함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노래가 그 노래’라는 지탄을 면키 어렵다. 때문에 트로트는 스스로 변신하고 진화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네오 트로트’시대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노래에는 만든 이와 부르는 이의 혼이 담겨 있어야

“요즘 노래는 템포가 지나치게 빠르고 창법이나 노랫말이 가벼워 감정을 이입할 여지가 없어요. 노래가 그저 소모품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1980년대 메들리, 90년대 테크노 시대를 거치면서 어느덧 ‘리듬이 노래보다 앞선 시대’로 바뀌어져 있다고 분석하는 작사가 지명길씨는 전통적인 한국 트로트에는 ‘여백의 미’가 있어서 그 ‘빈 곳’에 대중들이 감정을 이입시키고 노래의 맛을 음미할 ‘여지’가 있었는데 요즘 주류를 이루는 가요에는 대부분 음악에 몰입할, ‘듣는 이의 몫’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미자씨 또한 요즘 트로트에 대해 몇 가지 우려스러운 점을 지적한다.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는 리듬이 빠르고 장난스럽기까지 합니다. 너무 뒤집고 굴리는 등 감각이 전혀 다른 트로트가 성행해 점차 진정한 의미의 전통가요가 소멸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노래에는 만든 이와 부르는 이의 혼이 담겨야 한다.’며 그 것이 곧 한국 전통가요의 멋과 정서라고 강조한다. 그녀는 해외공연 시 경비 문제로 전속악단이 모두 동행할 수 없으면 현지에서라도 드럼, 기타, 베이스주자만큼은 반드시 한국인연주자로 구해달라고 주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악기를 다뤄도 외국인들은 ‘쿵짝 쿵짝’하는 우리 트로트만의 맛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요. 역시 트로트에 갖고 있는 한국인들만의 정서, 즉 ’핏줄’의 힘은 무서운 것 같습니다.”

일제시대 ‘저항가요’로 출발해 때로 서민들의 젓가락 장단에 실려 기쁨과 슬픔을 대신하며 ‘영욕의 세월’을 건너온 트로트. 특히 어려울 때일수록 국민들과 함께 했던 이 ‘트로트 가락’은 음악적인 평가, 그 이전에 우리네 삶의 동반자였다. (계속) NM

[참고]주간조선 1900호 특집 ‘트로트는 영원하다(박성서, 2006년 4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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