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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틈으로 거대한 뿌리를 내리다
2019년 03월 14일 (목) 12:59:50 신선영 전문기자 ssy@newsmaker.or.kr

김태연 작가에게 대지는 틈이다. 손이 쑥쑥 들어가는 적막한 틈이다. 거기서 그녀가 건져 올린 것은 폐허의 무너진 돌담과 그것에 이겨진 잡초들이다. 그보다 더 깊이 있는 무덤의 벽화이기도 하고 그보다 더 오래된 동굴의 문자이기도 하다. 가장 가까운 죽음에서부터 가장 먼 탄생에 이르기까지 태초의 대지를 향해 뻗어 가는 것이다.

신선영 기자 ssy@

대지의 근원
김태연 작가의 개인전을 찾은 관람객들은 흡사 순례자들을 연상케 했다. 엄숙하리만치 진지한 걸음으로 그의 작품을 배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요한 탄성과 떠들썩한 침묵이 마침내 기도(祈禱)로 터져 나오는 것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는 “충격적인 아침이었다”며 “오감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고 말한 관람객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한다. “형태를 그리는 게 아니라 사유를 표현한다”는 그이기에 이러한 교감이 최고의 찬사였던 것이다. 바로 비언어적 교감이다.

   
▲ 김태연 작가

이것은 “글 이전에 그림으로 소통하던 방식”을 일컫는다. “그림이 글로 발전했기 때문에 글은 이미 그림이지만, 그림이 글로 보여선 안된다”고 단언하는 그는 “그림이 오롯이 그림답기 위해서는 태초의 그림처럼 원시성을 일깨워야 한다”며 회화의 근원으로 진입했다.

이는 직관과 본능에 의존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시멘트벽에서 어떤 형상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꿈틀거리기까지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시작은 샤머니즘이었다. 비 물질을 물질로서 이해하듯이 억압을 통해 초월적인 것에 도달하는 거였다.

   
▲ 김태연, 날개짓이었다, 2018, Acrylic on canvas, 116.7 x90.9cm

그는 대학 시절부터 샤머니즘을 추상화 하는 작업에 심취해 있었다. “스스로 느끼고 찾아야 할 것들이 많은데 종교나 신에 의해 억압당하는 게 싫었다” 그는 샤머니즘의 절대적인 영역을 건설하는 동시에 붕괴하기도 하며 그만의 작품 세계를 진척시켰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지금의 작품까지 영향을 끼쳤다. 애써 만든 여러 겹의 레이어에 긁거나 부서트린 것 같은 균열을 내는가 하면, 탈색한 섬유를 얼기설기 붙이거나 거친 질감의 흙을 듬성듬성 칠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상상력의 본모습이자 근원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 김태연, 오래된 지도, 2018, Acrylic on canvas, 116.7 x90.9cm(3ea)

“작은 돌에도 역사가 담겨 있듯이 내가 선 땅에도 바다와 땅이 뒤바뀌었던 역사가 담겨 있다”는 그는 “맘모스의 뼛조각과 바닷가의 암모나이트가 뒤섞인 것이 이 땅의 역사이기에 지층적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것의 단초가 되어준 것이 허만하 시인의 <틈>이라는 시다.

‘틈을 주무른다. (중략) 지층 속에 원유처럼 일렁이고 있는 쓰러진 나자식물 시체들의 해맑은 고함소리. 바위의 단단한 틈. 뼈와 살의 틈. 영혼과 육신의 틈. 낯선 도시에서 마시는 우울한 원둣빛 향내와 정액빛 밀크 사이의 틈. 외로운 액체를 젓는 스푼. 존재는 틈이다. 손이 쑥쑥 들어가는 적막한 틈이다.‘

   
▲ 김태연, 겹겹의 풍경, 2018, Acrylic on canvas, 145.5 x 112.1cm

틈의 단상
어찌 보면 틈은 하나의 현상이다.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너무 많이 고려하거나 과도하게 집착하면 도리어 억지스러운 것이 된다. 더군다나 화폭을 대지 삼아 존재에 대한 근원, 회화에 대한 근원, 자연에 대한 근원을 뿌리 내리는 그로서는 더욱 숙고해야 하는 사항이었다.

하지만 대지는 변화로부터 이뤄졌다. 코스모스 같은 폭발력으로 과거로부터 지금이 형성됐고, 미래가 생성된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갈라지고 있는 틈으로부터 말이다. 그의 틈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 김태연, (좌) 변형의 미, 2018, Acrylic on canvas, 116.7 x90.9cm (우) 변형의 미, 2018, Acrylic on canvas, 162.2 x 130.3cm

실제로 무엇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호기심과 그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부추기는 동시에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일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그의 작품이다. 대작이기도 하거니와, 그만이 고안해 낸 기법들이 굉장히 감촉적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넋을 놓거나 손을 뻗은 사람들은 그가 부린 “주술”에 걸려든 사람들이다.

그는 <자아> 시리즈를 통해, 집단 지성에 길들여진 사람들과 집단 감성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 주술을 걸었다. 배터리 케이지에서 생산된 달걀이나 화훼 농장에서 길러진 꽃과 같은 사고방식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식과의 조응이 그가 무대로 하는 세계 시장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길 기대한다. NM

   
▲ 김태연, 자아, 2018, Acrylic on canvas, 91 x 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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