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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빛을 찾아 강화도로 들어가다
2019년 01월 17일 (목) 14:57:37 신선영 전문기자 ssy@newsmaker.or.kr
지난 십이월 백광숙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임진강이 서해로 빠져나가는 한강하구에 위치해 북한과 강화도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까뭇하게 젖은 대지 위로 희끗한 비안개가 서려 있고 이따금 총화 같은 새떼가 시선을 어지럽혔다. 핸들을 좌우로 꺾는 것이 드물어질 때쯤 반가운 한옥 하나가 나타났으니 바로, 백광숙이었다.
 
신선영 기자 ssy@
 
섬 속의 섬
   
▲ 백광숙 작가
백광숙 작가의 작업실은 백년 즈음 된 한옥이다. 민둥산의 조선 소나무를 일일이 끌로 다듬으며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집을 구입했던 89년에는 이미 대부분이 훼손돼서 수리비만 집값만큼 들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돈을 배로 들여가며 올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서까래가 달린 한옥인데다 넓은 창으로 앞마당과 뒷마당을 감상할 수 있고, 마을 초입에 위치해 자기 사이클대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화도였다.
 
백광숙 작가가 많이 쓴 말 중에 하나가 “주소는 김포이지만”이다. 몸은 김포에 있지만 마음은 강화도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언제 어디서나 가볼 수 있고 볼 수 있으니 불리한 조건임에도 계약을 한 것이다.
 
강화도는 백광숙 작가가 마음의 적을 두고 있는 곳이다. 실향민이었던 아버지가 늘 그곳에서 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는 학업 때문에 내려왔다가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비극을 지금도 체화하고 있다.
 
바로 작품을 통해서다. 틈이 날 때마다 강화도로 들어가 스케치를 한다고 한다. 그곳은 섬 속의 섬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여전히 슬픔에 눌리어 있었다. 누구 하나 쉬이 들어오지 않고 나가지 않는 갈지자의 길목에서 말이다.
 
그 척박한 정서를 백광숙 작가는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었다. 아버지가 맏이인 그에게 유독 많은 이야기를 해준 탓이다. 그래서 명절 때면 홀로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며 저도 같이 코끝이 시큰해졌다고 한다. 그 방을 꽉꽉 채운 슬픔의 빛깔을 보았기 때문이다.
 
   
▲ 백광숙, 강화도 설경, 2018, Oil on Canvas, 80.3x80.3
 
그 빛깔은 담청색부터 남청색까지의 색이다. 담녹색부터 진녹색까지의 색이기도 하다. 슬픔, 우울, 고독, 회환, 연민과 같은 감정들을 바짝 조려 놓은 것이다. 그 응집력만큼이나 파급력도 커서 96년도에 연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백광숙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색체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작업실에 찾아와서 다시 보고 가기도 하고 전시회도 다시 찾아와서 또 보고 간다고 한다. 형태는 머리를 쓰게 하지만 색채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 백광숙, 봄마중, 2013, Oil on Canvas, 33.4x45.5cm
 
꽃으로부터의 발아
작업실은 아이들도 전학 와서 살만큼 온 가족의 사랑을 받은 공간이다. 그만큼 작업실 안팎으로 꽃도 많이 폈는데 진달래부터 모란, 장미, 국화에 이르기까지... 정성스럽게 가꿔서 그린 꽃 그림들이 그곳의 훈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꽃 그림은 스케치 없이 재빠른 감각으로 그린 것이다. 느닷없이 핀 꽃 한 송이에 감명을 받아 그리기도 하고 불현 듯 떠오른 심상을 꽃으로 치환하기도 한다. 이때 발휘되는 즉흥성이 추상성을 요하는데, 바로 이것이 마을 그림과 꽃 그림의 현격한 차이다.
 
   
▲ 백광숙, 노란 장미, 2010, Oil on Canvas, 45.5x33cm
 
예술가 기질을 물려 준 아버지는 그가 화가가 되는 것을 한사코 말렸다. 자신처럼 공무원이나 선생님이 돼서 안정적인 삶을 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생전 그의 그림에 칭찬 한번 해주지 않았는데 이것이 그의 작품력을 높이는 자극제가 됐다.
 
강한 억압은 도리어 색채를 뚫고 강한 결핍으로 드러났다. 억눌린 감정이 팽팽한 대기 속에 정체되어 있는 마을처럼 말이다. 그것이 전해주는 에너지는 실로 크지만 엄격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로움도 실로 크기에, 꽃으로부터 발아되는 모종의 감성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백광숙, 봄날은 간다, 2011, Oil on Canvas, 80.3x53cm
 
백광숙 작가는 열두 번의 개인전과 초대개인전을 열고 백여 회의 국내외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미술문화위원회 부위원장이며, 한국미술협회와 상형전 회원이자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NM
 
   
▲ 백광숙, 초대, 2008, Oil on Canvas, 72.7x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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