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 그리고 울돌목’ 우리는 올해 두 사건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진도 북단의 협수로 팽목과 남단의 협수로 울돌목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영화 <명량>을 통해 아픈 몸을 이끌고 13척의 배로 일본 수군에 맞서 조선을 지켜야 했던 이순신의 고뇌에 울었고, 명량 다음으로 조류가 센 팽목 맹골수로에서 304명이 사망 및 실종된 세월호 쇼크로 울어야 했다.

▲ 박준성 해군사관학교 기계조선공학과 교수

‘프로펠러, 타, 배 밑바닥...’ 우리는 지난 수개월 동안 뒤집힌 선체 밑바닥을 보는데 익숙해 져왔다. 흔히 선박의 몸체라 알고 있는 ‘선체(hull)’는 실제로는 선박이 물에 잠긴 부분만을 말하는데, 선박기술자가 아니라면 그 선체를 평생에 한 번 볼까말까 하다.

‘선박’은 지시대명사로 ‘Her’ 즉 여성명사이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자에 비유되었으며, 그 중 물밑에 잠긴 부분인 ‘선체’는 여자의 은밀한 곳에 비유된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는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성폭행을 당한 끔찍한 사건인 것이다.

해군해양연구소 거북선복원 연구책임자로 황포돛배 만들어
왜 세월호는 하반신이 벗겨진 채 내팽겨쳐져야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수장되어야 했는가. 그 해답을 해군사관학교 박준성 교수는 ‘전통’과 ‘미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명량>에서 보듯 500여년 전에 제작된 한선들은 전투를 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현대 선박이 거의 같은 장소 ‘진도’해상의 비전투 상황에서 왜 침몰해야 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 교수의 전공은 원래 잠수정설계이다. 학부 4학년 때 한국과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 3천5백여만원을 지원받아 홋카이도대학 부체역학실험실에 소속된 이후, 일 년 중 6개월이 눈에 잠긴 은세계, 홋카이도에서 석사, 박사를 보냈다. “그때는 감전되어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요.”  요코스카에 있는 일본해양연구소(JAMSTEC)에서 열린 국제잠수정대회에 출전해 본인이 제작한 ‘워터제트추진 잠수정’ 내부로 물이 침수해 감전사할 뻔한 웃지 못할 경험도 있었다. 그런 그가 왜 최첨단 잠수정 설계에서 올해 황포돛배라는 전통선박을 건조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박 교수는 ‘잠수정’과 ‘돛단배’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2년에 걸쳐 단독으로 1,000여 페이지를 번역해 ‘유인잠수정공학개론’을 출판하는 그는 최첨단 기술적 용어들로 뒤덮인 책 속에 ‘돛단배’라는 단어를 한 페이지에 일부러 집어넣었다. 번역서에는 원전에 충실해야지 역자의 개성이 삽입되어도 되는 걸까?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 세계가 하나의 나라처럼 엮어지는 데에는 선박 즉 범선(돛단배)의 역할이 컸습니다. 가마니를 타고 해류에 몸을 맡겨 이동했던 원시시대 배에서부터 노라는 추진기를 단 선박이 등장하여 가까운 항구까지 정확하게 갈 수 있게 되었어요.

▲ 박 교수는 ‘잠수정’과 ‘돛단배’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그 후 돛(Sail)의 등장으로 전 세계의 바다는 범선(돛단배)이 남기고 간 항적으로 푸른 바다라는 캔버스를 색칠해 버렸습니다. 마치 엉킨 실타래가 방바닥 전부를 뒤덮어 방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항적이라는 크레파스로 푸른 바다를 전부 뒤덮었습니다. 에너지 없이도 지구상의 모든 바다를 탐구할 수 있게 만든 이동수단인 범선은 수천 년 동안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었죠. 그러나 우리는 이를 통해 바다 표면을 아는 데 그쳤습니다. 잠수정이 개발되어 우리는 바다 표면에서 실타래에 잠수정이라는 현대판 ‘돛단배’를 묶어 물속으로 내려, 바다 속을 탐구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그 실타래가 3차원 바다 속 공간 극히 일부만 매우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청진기로 의사가 환자의 몸 몇 군데를 데어보고 환자의 상태를 모두 알 수 없는 것처럼 아직 심해는 우리에게 신비로운 베일에 싸인 존재입니다. 우리들이 개발한 수많은 잠수정들의 항적이 바다 속을 모조리 매워 버릴 때 우리는 바다, 지구의 신비를 벗길 수 있으리라 저는 기대했었습니다.”  그런 그가 잠수정의 할아버지격인 돛단배로 연구테마를 돌린 이유는 알고보니 단순했다.

“원래 계속 잠수정 연구를 하려고 연구비 지원을 했는데, 자꾸 탈락했어요. 그런데 이순신의 거북선 연구를 신청했는데, 합격하고 말았죠(웃음). 그때 이 연구야말로 내 ‘숙명’이라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최첨단 선박만 개발하지만 오래된 역사적 기술 연구도 중요합니다. 만약 밝혀낸 거북선 기술을 과거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현대 선박에 응용하면 충분히 오래된 기술에도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미래, ‘전통’에 있다
 박준성 교수가 말하는 선박의 발전과정은 프로세스형이 아닌 순환형이다. ‘노 젓는 배->범선->FRP선박 ->철선->강선’ 이렇게 선박이 발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과거의 기술로 돌아오기도 한단다. 지금은 전국 해안가에 모조리 사라진 ‘황포돛배’가 FRP선박을 몰아내고 다시 현대로 귀환할 날이 올 거라며 미소를 머금는다. “이미 유럽 및 일본에서는 썩지도 않고, 태울 수도 없고 재활용도 안 되는 FRP선박을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양산업으로 몰려 사라져가고 있는 목선기술은 앞으로 ‘유망기술’이 될 거에요. 저희 학자들이 그 기술을 기록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해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박 교수와 함께 황포돛배를 제작한 장인은 같은 곳에서 4대째 배를 짓는 김창명(79)옹이다. 그와 같은 장인정신을 가지고 배를 만들고 관리한다면 세월호와 같은 끔찍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박 교수,  우리의 ‘미래’는 ‘전통’에 있는지 모른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