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든, 학문이든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절정기에 있다 해도 반드시 처음 혹은 초창기가 있기 마련이다. 무엇인가의 시작은 그 이전에 선례가 되거나 참고가 될 만한 모델이 없다면 ‘최초’의 출발선을 끊은 이들은 평탄치 않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 임신일 서경대 전자공학과 교수

‘시초’라는 수행에 나선 선구자들이 그들의 열정과 사명감으로 기반을 닦아 놓는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발전의 단계를 밟아갈 수 있다. 임신일 서경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 역시 그러한 선구자들 중 한 사람이다. 임신일 교수는 30여 년 전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전자·반도체 시장이 채 갖추어지지 않았을 당시부터 아날로그 IC회로 기술 분야에서 처음이라 할 만한 연구와 기술개발을 이루어낸 인물이다. 임신일 교수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순수 국내파로 IC개발에 탁월한 업적 이루다
지난 10월 임신일 교수는 ‘반도체의 날’에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표창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전자·반도체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IT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나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지기 30여 년 전에는 우리나라 역시 불모지였다.

임신일 교수는 순수 국내파로 아날로그 회로분야의 1세대 개발자이자 공헌자다. 2-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없었던 기술이 많았고, 그것을 처음 개발해서 성공하고 상용화되는 과정에 그가 참여한 것들이 많다. 전자통신연구원(ETRI) 재직 시 VTR IC개발, 8-bit 마이콤 개발, ISDN 칩셋 개발 등에 참여하며 기업체에 기술 전수했던 임 교수는 전자부품연구원(KETI)재직 시 HDTV용 고속 ADC 개발을 위시하여 마그네틱 카드리더기용 IC, Cache snooper용 ASIC 개발 등 수많은 중소기업용 IC를 개발하여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중소기업 지원 칩을 개발하여 중소기업 도약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아날로그 회로 설계 기술 분야 국내 초창기 전문가로서 전문적인 아날로그 회로 설계 기술을 이용하여 센서 접속회로인 초단 아날로그 신호처리부 기술개발에 크게 이바지했다. 전자부품연구원 재직 시 J사와 함께 마그네틱 카드리더기용 칩을 개발하여 지하철 티켓 리더기, 신용카드리더기 등에 사용하던 핵심 수입 칩을 전량 수입 대체하게 되고, 이후 국내 업체로 기술 이전되어 국내에서 제조하고 양산되기 시작했다.

B사의 체성분 분석기 초창기 개발 당시 생체 바이오센서 접속부 회로 설계를 주도적으로 도와 현재 코스닥 상장한 상태이며 세계 으뜸 회사로 성장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S사의 초창기 리모콘 칩 개발에 참여하여 적외선 센서 접속부회로 설계에 도움을 주고 양산하여 지금까지 수출 중이다. 현재 바이오센서 신호를 측정하는 아날로그 초단 접속회로를 개발하여 실용단계에 있다.

특히 생화학 센서 접속회로, 심전도·근전도·뇌파 등 생체신호 측정을 위한 접속회로 설계기술을 개발하여 기술을 보유 중이다. 최근 태양광 센서에서 나오는 전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서울산업진흥원 주최 우수녹색기술 대상을 수상한 R사와 분산형 최대 전력점 추적을 위한 SoC (system-on-chip)회로를 개발 중이다.

▲ 다음 세대에게 지식과 경험을 전수해주고, 밀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 임교수가 가지고 있는 사명감이다

국가 반도체 회로 설계 분야의 발전 선도
임신일 교수는 한국반도체연구조합에서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의 전문위원 및 기획위원으로 수년간 봉사했으며 대한전자공학회 SoC설계위원회 위원장, ISOCC, ISCAS등 국제 SoC 관련 학술대회 위원장 및 재정담당의장을 거치면서 반도체 설계 및 SoC분야의 많은 봉사를 하며 국가 반도체 회로 설계 분야의 발전을 선도해왔다.

임 교수는 특히 대학에서 수많은 반도체 회로 설계 기술 인력을 양성하여 중소기업에 공급해왔다. 80,90년대만 하더라도 아날로그 IC설계 분야에서 임신일 교수처럼 이론과 실무를 모두 겸비한 전공자는 많지 않았다. 이에 임 교수는 전자통신연구원이나 공공기관에서 수행하는 설계 교육과정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많이 진행해왔다. 또한 많은 반도체 설계 기업체와 전자통신연구원, 전자부품연구원,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 등에서 반도체 회로 설계 전문가를 위한 전문기술을 강의하면서 중소기업들의 인력양성을 지원했다.

임 교수는 “당시에는 제한된 사람들만이 기술을 습득하고 있어, 기업체의 초보 입문자들에게 전문 분야의 기술을 되도록 많이 전파해주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반도체 회로 설계 전공 지원자는 다른 시스템 분야에 비해 많지 않다. 회로 및 시스템 지식을 습득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고 시간에 쫓기고 밤새고 일해야 하는 분위기, 아주 작은 실수 하나가 엄청난 투자비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스트레스 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 반도체 회로 설계 기술은 부가가치가 상당히 많다. 임 교수는 “요즘 반도체 제조 공장 자체가 화공약품을 많이 사용하는 공해 유발 산업이라 해서 반도체 생산 라인이 점차 동양 쪽으로 넘어오지만 부가가치가 많은 시스템 회로 설계는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 시장 주도권을 잡고 계속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그동안 일괄적인 반도체 생산, 제조 공정 기술을 선도하고 이에 기초한 메모리 칩 생산에서 세계를 선도해왔지만, 이제는 시스템 기술을 모두 아울러 하나의 칩에 내장하는 시스템 반도체 (SoC) 설계 기술을 하루속히 확보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세대에게 지식과 경험을 전수해주고, 후배 전문가들을 밀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도 임교수가 가지고 있는 사명감이다. 이에 임 교수는 수업시간에는 학생들을 적당히 가르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실무지식 전달과 함께 학생에게 깐깐하게 가르치고 있다. 특히 융합시대에 역할을 하려면 자신의 전문 분야를 확실히 정립하고 난 후, 다른 여러 분야를 이해, 흡수할 수 있도록 인문, 물리, 화학, 수학, 의학 등의 기초 지식도 같이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신일 교수는 “앞으로 제가 물러나도 이후 업계나 학계를 잘 성장시킬 수 있는 애 제자들을 많이 키우고자 한다”며 “또한 은퇴 후에는 후진국에서 제 역량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