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백석
‘천재 시인’ 백석의 유일한 시집 ‘사슴’ 초판본이 11월 19일 7000만원에 팔렸다. 경매회사 코베이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6층 코베이 전시장에서 진행한 경매에서 ‘사슴’ 초판본은 5500만원으로 입찰이 시작돼 7000만원에 낙찰됐다. 국내 문학서적 경매 사상 최고가인 것으로 전해졌다. 코베이 관계자는 “전문 소장가가 7000만원에 낙찰을 받았다”면서 “3년 전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이 1700만원에 낙찰된 적이 있는데 문학 서적으로는 최고가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4년 11월 20일>

▲ 백석

백석(1912~1995)은 1945년 남북이 분단된 후부터 1987년 해금될 때까지 남쪽에서는 잊혀진 시인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문학의 북극성”(김윤식), “소월 이후 평북이 낳은 천재 시인”(백철), “평생 백석 수준의 시를 한편도 써보지 못했다”(구상)라는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으로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했다. 1930년 1월 단편소설 ‘그 모와 아들’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1930년 4월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의 장학금을 받아 일본 청산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했다. 백석은 수석을 놓치지 않는 출중한 실력에 영어, 불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외국어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1934년 졸업 후에는 조선일보 ‘여성’지의 편집을 맡고 외국의 문학작품을 조선일보에 번역·소개했다. 1935년 8월 30일자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문단에 등장한 후에는 ‘모던 보이’라는 애칭과 함께 문단 최고의 미남이자 멋쟁이라는 소리를 들으려 광화문을 휘젓고 다녔다. 김기림이 1936년 1월 29일자 조선일보에 “그가 지나가는 광화문은 잠시 식민지의 우울한 네거리에서 예술과 지적 교양이 넘쳐나는 낭만의 거리, 파리의 몽파르나스로 변하는 듯하다”라고 썼을 정도였다.
백석은 1936년 1월 ‘여우난골족’ ‘노루’ ‘가즈랑 집’ ‘절간의 소 이야기’ 등 모두 33편의 시가 수록된 첫 시집 ‘사슴’을 100부 한정판 자비로 간행했다. 훗날 신경림은 ‘사슴’을 읽고 “10권의 장편소설을 읽은 것보다 감동이 더 컸다”고 술회했다. 지금도 다수 시인들은 ‘사슴’을 한국 현대시 100년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집으로 꼽는다.
백석의 시는 아름다운 북방 언어의 보고였다. 그는 식민지 사람들의 자의식을 표현하는 방편으로 모국어와 관서지방의 방언에 집착했다. 일부러 맞춤법을 어긴 듯한 표현도 예사로 나온다. 이에 대해 한 시인은 “전반적으로 침식 받고 있는 한국어에 대한 일제의 강제혼혈 작용에 대해서 그 민족적 순수를 지키려는 의식적 반발의 표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분단시대에 금지되고 매몰돼
백석의 시 가운데는 고향의 서정이 흠씬 묻어나오는 시들도 적지 않다. 백석은 자신의 고향마을과 그가 여행한 지역에 파묻힌 오랜 풍속을 맛깔스럽고도 구수하며 투박한 고향의 언어로 그려냈다. ‘사슴’ 역시 고향마을에 전승되는 민속 등을 소재로 주민들의 소박한 생활과 철학의 단면을 그 지방의 토착어로 제시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백석은 1936년 4월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남 함흥의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했다. 그리고 그 해 늦가을 영생고보 교사들과 기방의 회식 자리에 참석했다가 한 기생을 만났다. 그녀는 일본까지 유학한 인텔리 여성 김영한으로, ‘진향’이라는 예명으로 불렸다.
김영한은 열여섯 나이에 집안이 망해 기생이 되었으나 기방 생활을 하면서도 ‘삼천리문학’ 등에 수필을 발표하는 신여성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던 중 1935년 한글학자 신윤국을 만났고 그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도쿄에서 공부하던 중 신윤국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가 투옥된 함흥으로 달려갔으나 바로 면회가 되지 않자 함흥에 눌러앉아 기방 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그 무렵에 백석과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이후 백석은 퇴근하면 으레 진향의 하숙집으로 가 밤을 지새곤 했고, 이백의 시 ‘자야오가’에서 딴 ‘자야’를 아호로 지어주었다.
자야를 만나기 전, 백석의 가슴 속에는 또 다른 연인이 있었다. 1935년 6월 만난 이화여고생으로, 백석은 당시 19세의 그녀를 ‘란’이라 부르며 연정을 품었다. 백석은 당시의 감정을 1935년 12월 ‘조광’지와 1936년 1월 23일자, 3월 6일자 조선일보에 ‘통영’이라는 같은 제목의 시로 드러냈다. 1936년 12월에는 결혼을 담판 짓기 위해 란의 고향인 경남 통영까지 찾아갔다가 란 집안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자 자야에 몰입했다. 그러나 1937년 4월 란이 조선일보 동료 기자인 신현중과 결혼한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평생 백석 수준의 시를 한 편도 써보지 못했다
1937년 백석은 고향 부모의 독촉에 고향에서 혼례식을 치렀으나 백석의 결혼 사실을 알고 서울로 거처를 옮긴 자야 곁으로 돌아가 첫 결혼은 흐지부지 되었다. 백석은 1938년 12월 학교를 사직하고 1939년 1월 조선일보 출판부에 재입사한 뒤 서울 청진동에서 자야와 살림을 차렸다. 혼례만 치르지 않았을 뿐 부부와 똑같은 생활이었다. 1939년 5월 백석은 고향 부모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고향에서 두 번째 혼례식을 치렀다가 이번에도 바로 서울의 자야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 1939년 겨울 조선일보에 사표를 내고 “넓은 벌판에 가서 시 한 100편을 얻어가지고 오리라”는 각오로 만주로 떠났다. 자야에게 만주 동행을 설득했지만 자야는 거절했다. 백석은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 근무하는 등 생업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시를 쓰거나 토마스 하디의 대표 소설 ‘테스’를 번역(1940.9)했다. 1941년 2월에는 제자 강소천의 시집 ‘호박꽃 초롱’ 서문을 써 주었다. 백석은 1941년 2월 평양에서 세 번째 결혼을 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갔다.
해방을 평양에서 맞은 백석은 조만식의 통역비서로 일하면서 틈틈이 러시아 작가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푸시킨 시집’ 등의 번역서를 냈다. 1948년 10월 서울의 ‘학풍’지에 “백석 최고의 절창”으로 꼽히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를 발표했는데 이 시를 마지막으로 남쪽에서는 더 이상 그의 시를 볼 수 없었다.
월북작가가 아니라 재북작가였는데도 그는 분단시대에 금지되고 매몰되었다. 그의 시를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1987년 해금 후였다. 백석과 헤어진 자야는 이후 성북동의 유명 요정 대원각의 여주인이 되었다. 1989년 백석과의 관계를 고백한 회고록 발간과 함께 1997년 백석문학상을 제정했다. 1999년 눈을 감기 전 1,000억 원대의 대원각 부지와 건물을 아무 조건 없이 법정스님에게 시주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길상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순위에서 2년 연속 1위에 뽑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2위로 밀렸다. 포브스는 11월 5일 각국 지도자와 국제단체 수장, 기업인 등 72명으로 구성된 명단을 발표하며 “아무도 푸틴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지만 누구도 이 핵을 가진 에너지 부국의 수장을 약하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2014년 11월 7일>

▲ 블라디미르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1952~ )은 러시아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키가 작아 운동을 콤플렉스 극복의 수단으로 삼았다. 유도에 심취하고 러시아 격투기로 유명한 삼보도 익혔다. 17살이던 1969년 어느 날 푸틴은 KGB 레닌그라드 지부를 찾아가 첩보 요원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법학을 전공하고 스포츠로 몸을 단련하라”였다.
푸틴은 1975년 국립 레닌그라드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KGB에 들어갔다. 1984년 구 동독으로 파견되어 활동했으나 1989년 독일의 통일로 KGB 입지가 크게 약화하자 1990년 고향으로 돌아와 레닌그라드대 총장의 대외관계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1991년 6월 대학 은사가 레닌그라드에서 이름이 바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장에 뽑히자 시 대외관계위원장으로 은사를 도왔다. 1994년 부시장으로 승격했지만 1995년 은사가 재선에 실패하자 활동 무대를 수도인 모스크바로 옮겨 1996년 6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근무하는 크렘린궁에 들어갔다. 출발은 부국장이었지만 KGB 시절 익혔던 강한 추진력을 발휘해 출세 가도를 달렸다. 1998년 7월, 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국장으로 임명되면서 전 세계 정치권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1999년 8월 옐친은 47세의 푸틴을 총리로 임명하면서 2000년에 실시될 대통령선거에 나설 자신의 후계자라고 밝혔다. 당시 옐친은 1996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경제난으로 지지율이 바닥이었다. 사회는 낯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동시에 겪어 혼란이 극심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경제지표는 계속 악화하고 국제적 지위는 하락했다. 온갖 범죄가 창궐하고 체첸 전쟁 등 내전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말싸움뿐이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옐친이 푸틴에게 국정을 맡기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푸틴은 하루아침에 국정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눈부신 고속 성장 덕에 ‘러시아를 위기에서 구한 구세주’ 칭송 들어
푸틴이 총리로 임명된 후 1~2개월 동안 체첸 반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의문의 폭탄 테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민심이 동요했다. 푸틴은 체첸 공화국을 공습했다. 옐친 대통령이 1994~1996년 벌인 1차 체첸 전쟁에서 러시아가 사실상 패배하면서 민족적 자긍심에 상처를 입었던 러시아인들은 푸틴의 대 체첸 강경 노선에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푸틴은 대중적 스타가 되었다.
옐친은 건강이 더 나빠져 1999년 12월 31일 전격 사퇴하면서 푸틴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했다. 푸틴의 인기는 ‘정치적 메시아’의 출현을 원하는 러시아 국민의 염원에 힘입어 급상승했다. 싸늘한 이미지를 지닌 KGB 첩보원 출신에, 화려한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꼭 필요한 말만 군대식으로 간략하게 내뱉었다. 알려진 것도 별로 없고 정치·부패 스캔들도 없었다. 신비감이 들 정도였다. 젊고 건강하고 일류 대학을 나온 엘리트라는 것도 인기 상승의 비결이었다.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것은 2000년 3월 26일이었다. 대통령선거에는 12명이 입후보했다. 결과는 싱거웠다. 푸틴이 과반을 넘는 52.6%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경쟁자인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는 29.34%를 얻는 데 그쳤다. 그의 나이 불과 48세였다. 집권 후 푸틴은 소련 붕괴 후 거부가 된 신흥 재벌(올리가르히)을 표적으로 삼았다. 상당수 올리가르히가 망명하거나 감옥에 갇혔다. 푸틴은 경제 재건을 탄압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정적 제거에 가까웠다. 극심한 빈부 격차에 지친 러시아 국민은 이를 지지했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오일달러 유입 덕에 1998년 디폴트(채무불이행)까지 몰렸던 경제도 위험에서 한 발짝 벗어났다. 국내 생산이 회복되고 수입이 확대되면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텅 비다시피 한 상점 앞에 긴 줄을 서던 일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갔다. 러시아 경제가 연 6%대의 눈부신 고속 성장을 계속하자 푸틴에 대한 지지율이 70%대로 치솟고 그를 러시아를 위기에서 구한 ‘구세주’로 칭송하는 여론이 번져갔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2024년까지 대통령직 수행할 수 있어
푸틴은 2004년 3월 실시된 두 번째 대선에서 71%의 지지를 얻어 쉽게 재선에 성공했다. 푸틴은 쇼맨십으로 국민의 시선을 끌었다. 상의를 벗은 채 말을 타고 총을 들었으며 유단자답게 유도를 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전투기를 조종하고 레이스카를 운전했다. 이런 그의 쇼맨십은 TV와 신문을 통해 영웅적으로 보도되었다. 집무실에는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차르(황제)로 꼽히는 17세기 표트르 대제의 커다란 초상화를 걸어놓고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국민에게 홍보했다. 이후 언론에는 푸틴 이름 앞에 ‘전투기 모는’, ‘근육질’, ‘호랑이 잡는’, ‘기업가에게 호통치는’, ‘바이크를 모는’ 등의 온갖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푸틴은 3선 금지 헌법 때문에 2008년 3월 대선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대신 고향과 대학 후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총리로 물러났다. 그러나 막후에서는 여전히 권력을 독점하며 사실상 대통령으로 지냈다. 그런 가운데 2008년 국제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반푸틴 여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장기 집권, 고질적 부정부패,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딘 경제 회복, 반정부 인사들의 잇따른 의문사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이 늘어났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와 푸틴 퇴진을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반푸틴 목소리는 푸틴의 공적에 가려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푸틴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푸틴은 2008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며 복귀를 준비했다. 2012년 3월에는 3선에 성공했다. 산술적인 계산으로 연임한다면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민세 안재홍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 사장을 지내고 민족운동가·언론인·역사학자로 헌신한 민세 안재홍 선생을 기리는 민세상 제5회 수상자로 박상증(8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문학평론가 김윤식(78) 서울대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박 이사장은 1960~1980년대 해외에서 기독교교회협의회 활동을 통해 한국 민주화운동 단체를 지원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부패방지와 투명성 제고에 앞장섰다. 김윤식 교수는 250여권의 방대한 저술 활동과 근현대 작가 심층연구를 통해 한국 현대문학사를 역동적으로 재해석한 원로 문학평론가이다.  제5회 민세상 시상식은 11월 28일 오후 6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조선일보 2014년 11월 10일>

▲ 안재홍

안재홍(1891~1965)은 일제하 민족지사이자 학자였으며 언론인이었다. 광복 후에는 이상이 아닌 현실에 받을 딛고 좌우합작을 도모한 정치지도자였다. 안재홍은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1910년 황성기독교청년회 중학부를 거쳐 1911년 와세다대 정경학부에 입학했다. 유학시절 조국의 독립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중국으로 건너가 신규식 등 독립운동가들을 만났다. 그러나 경제적 토대가 없는 해외운동보다는 국내투쟁에 주력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다시 도쿄로 돌아와 학업을 마쳤다.
1914년 귀국 후 중앙학교 학감, 중앙기독교청년회 교육부 간사 등으로 활동하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다. 안재홍은 그해 6월 독립운동 비밀조직인 대한민국 청년외교단 총무를 맡아 상해 임정의 연통부 임무를 수행하다가 일제에 발각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른 후 1922 6월 9일 만기 출옥했다. 일제하 9차례에 걸친 7년 3개월 옥고의 시작이었다.
안재홍은 1924년 5월 최남선이 주도하는 시대일보에 논설기자로 입사해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24년 9월에는 조선일보의 주필로 입사해 본격적으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조선일보의 대표 논객으로 1932년 조선일보를 떠날 때까지 8년 동안 사설 980여 편, 시평 470여 편 등 모두 1,450편에 이르는 방대한 글을 썼다. 문체가 워낙 독특해 ‘민세체’로 불렸다.
동서고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그의 글은 독자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압수와 게재금지가 끊이지 않았다. 벌금형을 받거나 구속되는 때도 많았다. 대표적인 글이 조선일보 1928년 5월 9일자 사설 ‘제남사변의 벽상관’이다. 그는 사설에서 외국의 사례를 인용해 일본의 산동 출병을 비판했다. ‘제남사변’은 일본이 중국 장개석의 국민군을 견제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 산동성 제남에서 벌인 전투를 말하고 ‘벽상관’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로 ‘형세를 중립적으로 관망한다’는 뜻이다.

일제하 9차례, 7년 3개월 옥고 치러
당시 안재홍은 일제하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 총무간사, 조선일보는 신간회의 사실상 본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제에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던 안재홍은 결국 이 사설로 세 번째 구속되어 금고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선일보는 무기정간 처분을 받아 133일간 신문을 내지 못했다.
안재홍은 1929년 1월 만기 출소해 조선일보 부사장으로 복귀했다가 1931년 5월 조선일보 사주 신석우가 상해로 망명해 그해 7월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했다. 안재홍이 조선일보 사장으로 재임하며 근대 민족문화사에 끼친 가장 큰 공로는 1930년대 ‘조선학 운동’의 중추 역할을 한 것이다.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신채호, 문일평, 장도빈, 최남선 등 당대 최고의 민족주의 지식인들을 필진으로 영입, 조선일보를 조선학 운동의 산실로 발전시켰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신채호가 중국 여순의 감옥에 있으면서 조선일보에 연재한 ‘조선상고사’와 ‘조선상고문화사’였다.
일제는 안재홍을 조선일보에서 쫓아낼 구실을 찾는데 혈안이었다. 결국 일제는 1932년 3월 안재홍이 만주 동포 구호의연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를 씌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결국 안재홍은 그해 4월 옥중에서 사장직을 내놓았다. 안재홍은 출옥 후 국학 연구에 매진하고 문화운동을 전개했다. 1937년 제6차 투옥에서 풀려난 후에는 고향에 칩거하며 ‘조선상고사감’, ‘조선통사’를 집필했다. 그러던 중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또다시 연루되어 9번째 옥고를 치르고 1943년 3월 출감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면 공산주의와 민족주의가 협동하는 ‘초계급적 협동전선’이 시급한 과제라고 인식해 여운형이 주도하는 건국준비위원회(건준) 부위원장을 맡았다. 일제하에서 신간회 운동에 앞장섰던 그에게 좌우협동은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연히 요청되는 ‘시대정신’이었다. 하지만 건준이 좌경화하자 20일 만에 탈퇴하고 좌익 노선과 선을 그었다.

미 군정과 미소공동위의 현실을 인정
건준 탈퇴 후에는 곧바로 국민당을 결성해 중앙집행위원장(당수)에 취임하고 저서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1945년)를 출간했다. 책에서 그는 “기존의 어느 한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말고 민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정신 아래 초계급적인 통합민족국가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그 후 자신의 국민당을 김구의 한국독립당에 통합시켜 중앙상무위원이 되고 1946년 2월 한성일보를 창간했다.
안재홍은 좌우합작으로 정치세력을 통합하고 이 힘을 기반으로 삼아 미 군정으로부터 점차 군정을 이양받고 자주행정권을 얻어내고자 했기 때문에 미 군정과 미소공동위의 현실을 인정했다. 1946년 12월 미 군정의 남조선 과도입법위원에 참여하고 1947년 2월 미 군정 하 한국인 최고책임자인 민정장관직을 받아들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당시 안재홍이 속해 있는 한독당이 ‘모스크바 3상회의’를 관철하려는 미 군정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그는 반탁 동지들로부터 ‘독립운동의 방해자’라는 비난을 받아야했고 결국 한독당으로부터 제명되는 수모를 겪었다.
안재홍의 좌우합작노선은 이승만·한민당 계열, 중경 임시정부 계열과 크게 달랐다. 안재홍은 이 두 계열의 우익과 구별하여 자신과 중도우파를 ‘순정(純正) 우익’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그가 기대한 제2차 미소공동위마저 1947년 10월 결렬되자 미·소 협조에 따른 통일정부 수립이 무망하다고 판단해 유엔 참관 하의 단독정부 수립을 수용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 선거가 무난히 치러지도록 민정장관직을 수행하고 6월에 퇴임한 후에는 1950년 5월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때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6·25 발발 후 자택에서 납북되어 1965년 3월 1일 북한에서 사망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