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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평론] 20년만에 고향 찾은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의 가수 오기택[6]
2019년 01월 08일 (화) 00:28:51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처음으로 ‘오기택 전국가요제’에 참석한 주인공, 그 2박3일 동행 취재
‘고향무정’의 가수 오기택, 20년 만에 고향 ‘땅끝 해남’을 가다 3

매혹의 저음가수 오기택씨가 20년 만에 고향, 해남을 찾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오기택 전국가요제’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그는 그동안 건강을 이유로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이 가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22년 전 바다낚시를 갔다가 당한 불의의 사고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늦추면 직접 참석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 강행한 고향길이었다. (뉴스메이커 2017년 12월호~2018년 2월호, 오기택[1][2][3]편. 2018년 11월,12월호 오기택[4][5]편 참조) 또한 이 날은 ‘오기택 노래비-고향무정’ 제막식도 함께 성대하게 펼쳐졌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오기택 전국가요제’ 방문길에 둘러본 해남은 축제, 그 자체였다.

모처럼의 고향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갖가지 추억이 서려 있는 유년시절의 흔적들과 친구들. 그가 유년시절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지금 그를 어떻게 기억하는지도 함께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여행길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오기택 전국가요제, 그 눈물과 감동의 현장을 2박3일에 걸쳐 동행 취재했다. 그 세 번 째, 마지막 편.

글l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사진l장성하(사진작가)

오기택 전국가요제에서 보여준 ‘오기택 정신’

▲ ‘고향무정’을 열창하고 있는 오기택과 그의 팬 유재범씨.
노래가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삶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가요제 무대에 올라 ‘아빠의 청춘’을 열창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지난날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연신 “오기택!”을 연호하는 관객들의 함성 속에 계속 이어진 곡은 ‘고향무정’이었다. 앙코르를 대비해 미리 준비한 노래였다. 그는 이 노래를 자신의 팬과 함께 부르겠다고 했다. 그 주인공은 유재범씨(59, 서울 수서).

“처음 오선생님께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제의 받았을 땐 난감했었어요. 사실 그동안 ‘KBS 전국노래자랑’에 몇 차례 도전해보긴 했지만 매번 예선통과조차 못하고 탈락했거든요. 이러한 얘기를 전해들은 오선생님이 오히려 제게 노래 부를 기회를 주시겠다고 해서 서게 된 무대”라며 “행여 노래실력이 부족해 누가 되지 않을까 싶어 그동안 이 노래를 백번도 넘게 연습하고 선 무대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앙코르곡인 이 ‘고향무정‘은 특히 그날 노래비까지 세워진 터라 마치 행사의 주제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래는 1절만 불려졌다. 오기택씨가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 오기택 전국가요제’의 현장
곧바로 무대에서 기념품 전달식이 진행되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선물은 훈민정음체로 쓴 ‘고향무정’ 노랫말. 앞서 제막된 ‘오기택 노래비-고향무정’에 새겨진 글씨의 원본으로 미술지부 박윤희 회원의 작품이다. 행사를 주관한 한국예총 해남지회의 김완규 지회장이 기념품을 전달했다. 

관객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주인공이 직접 가요제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방송에서 접하고 광주에서부터 한 걸음에 달려왔다는 조구희(65)씨는 ‘투병 중임에도 우렁차게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며 역시 우리 해병대 선배구나, 싶어 뿌듯했다.’며 ‘이것이 바로 ‘해병대 정신’이자 ‘오기택 정신’’이라며 엄지손을 치켜보였다.

보는 내내 사뭇 가슴이 뭉클했다는 해남중학교 동창 김선자(79, 광주)씨는. “학창시절에는 기택이를 잘 몰랐어요. 남녀공학이었지만 그때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도 있었잖아요. 한 번도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었지만 기택이가 동창이라는 사실만큼은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우리 여자동창들 모두의 로망이었을 거예요. 오늘 이 감동은 평생 잊지 못 할 것입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렇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오기택 전국가요제’ 무대에 직접 올라 고향사람들과 하나 되어 열창하던 오기택 선생의 모습, 앞으로도 이 장면은 영원히 기억되고 사람들로부터 회자될 것이다.

깜짝 이벤트의 주인공, 애드리브의 천재 조영남 등장

▲ 가수 조영남
주인공 오기택씨까지 무대에 오른 가요제의 분위기는 점차 달아올라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또 하나의 백미는 예고 없이 깜짝 등장한 가수 조영남의 무대였다. 포스터에도 이름이 없었던 가수. 그의 등장은 현장에서 특별 MC로 지목된 명현관 해남군수가 직접 무대에 올라와 소개할 정도로 가요제가 숨겨놓은 깜짝 이벤트였다.

“예정에 없던 특별가수를 지금 이 무대로 모십니다, 가수 조-영-남!!”

호명과 동시에 조영남이 부를 노래 전주가 무대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작 무대에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조영남이 온 게 사실일까?’, 관객들의 술렁거림이 시작되었을 쯤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정답던 얘기 가슴에 가득하고...”

조영남이 부르는 ‘제비’, 그러나 역시 어디에서든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한 사내가 컴컴한 객석으로부터 천천히 관중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한손엔 마이크, 한손은 뒷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어슬렁어슬렁...

애드리브의 천재,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자유분방함의 대명사, 조영남. 깜짝 이벤트의 주인공답게 그의 등장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깜짝 스타의 등장만큼이나 돌발 상황도 잇달았다. 갑자기 뛰쳐나와 부둥켜안는 아주머니 팬이 있는가 하면, 다짜고짜 노래 부르는 그에게 다가가 사인해달라고 조르는 아주머니까지. 순식간에 공연장은 장터를 방불케 했다. 한 여성 팬이 노래를 부르는 조영남을 계속 따라다니며 껴안으려 하자 노래 부르던 조영남씨가 결국 외친 한마디, “누가 이 여자 좀 데리고 살아주세요.”

돌발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그가 관객 앞으로 다가서며 노래를 부르자 객석 앞줄의 20대 남성이 갑자기 일어나 다짜고짜 사인해달라며 종이와 펜을 들이댔다. 진행요원이 뛰어와 만류하려 했지만 이미 조영남씨가 사인펜을 받아 쥔 뒤였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정리하면 혹 현장 분위기가 조금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먹구름 울고 찬 서리 진다해도... (이름까지 적어 달라구?)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이름이?) 고운 눈망울 깊이 간직한 채... (이름, 김대태? 제?) 당신의 사랑 품으렵니다... (김대제?) 아아 그리워라 잊지 못 할 내님이여... (임마, 인사하고 가야지) 나 지금 어이 방황하고 있나♪... (악수, 악수, 관객에 둘러싸여 노래 부르며, 계속 사진, 사진...)’

글로 정리해도 이렇게 산만한데 실제 현장분위기는 어떠했겠는가. 갑자기 나타나 조영남이 쥔 마이크를 뺏으며 창을 부르는 할아버지가 없나, 그야말로 괴짜가수의 괴짜관중들이었다. 조영남씨의 즉흥 애드리브 또한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관객석의 의자에 올라서서 해남군수를 소개하며 박수를 유도하더니 이어지는 조영남의 너스레,

“제가 가요계에 처음 나왔을 때 기택이형이 가요계에서 주먹을 가장 잘 쓴다고 소문이 나 있더군요.  그래서 ‘언젠간 저 형만 때려눕히면 내가 일등이 되는 거겠지’ 싶어 잔뜩 벼루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형이 병이 나는 바람에 기회를 잃었어. 내가 지금 이기면 나만 치사하게 되잖아...”

과연 조영남씨 다운 조영남식 조크. 그러나 정작 관객들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날만큼은 오기택씨가 마스크를 쓴 채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에 관객들이 사뭇 안타까워하는 분위기였다) 이내 머쓱해진 조영남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실 이 얘기는 굉장히 웃기는 이야기인데 아무도 안 웃어 주네.” 그때서야 비로소 터지는 관객들의 폭소...

노래와 무대를 자유자재로 쥐락펴락하는 그의 화려한 애드리브는 계속되었다. 이윽고 무대로 올라간 그는 “믿거나 말거나 저는 사실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라며 “오늘 이 가요제를 축하하기 위해 역시 성악을 전공한 제 후배를 불러 함께 노래하겠다.”며 부를 노래 제목은 모차르트인지 슈베르트가 작곡한 ‘사랑의 테마’를 라고 했다.

동시에 두 사람은 각자 하이톤의 음색으로 발성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사, 사... 사...랑, 사랑...(음 조절 중 갑자기 멈추며)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다시 객석으로 내려가 관객들과 합창하며 부르는 ‘홍도야 우지마라’, 이하 생략)...”

한마디로 좌중을 뒤흔들어놓은 유쾌한 무대였다. 오기택씨도 조영남씨의 등장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행사 며칠 전 ‘너무 바빠 행사에 못 내려간다.’는 사과전화까지 받았다는 것, 오기택씨까지 깜빡 속인 특별 게스트, ‘조영남’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함성과 더불어 그의 우렁찬 노래 소리가 해남의 밤하늘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해남의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관중들에게 매우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인 조영남씨는 오기택씨와 젊은 시절, 명동에서 자주 어울리며 각별하게 지냈던 절친 선후배. 특히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전화를 받자마자 즉각 달려와 병원에서 즉석 콘서트를 열었을 정도로 둘은 막역한 사이다.

더구나 오기택씨 모르게 병원 측에 장기간의 입원 치료비를 모두 지원하겠다고 제의했는데 워낙 치료비가 비싸 오히려 동서한방병원 측에서 치료비 전액을 무료로 해준, 훈훈한 후일담도 전해진다.

 또 하나의 백미 ‘해남 고구마’, 신나는 트로트의 열기 속으로

‘해남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열기는 계속 되었다. 장장 세 시간 반 동안 이어진 이 축제에는 해남 출신 가수들도 대거 참가했다.

자신을 ‘해남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진국이를 비롯해 삼산면 구현 출신인 ‘바람막이’의 정문, 그리고 민지, 걸 그룹 ‘힌트’의 무대도 관객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또한 해남의 명산물을 소재로 한 ‘해남고구마’ 역시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신나는 트로트 리듬의 이 노래는 이미 해남에서 어느 정도 알려진 노래인 탓인지 여기저기서 관중들이 따라 부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 박동인 해남약초박물관장
‘해남고구마’의 주인공은 해남군 의원 출신으로 ‘함초 박사’로도 불리는 박동인 약초박물관장(65).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해 부른 노래다. 스스로 ‘농민의 대변인’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함초 연구로 신지식인에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노래를 만들게 된 동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에게서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 허기와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것은 물론 무엇보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년시절, 홀어머니가 밭일을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나가실 때마다 어머니가 없는 동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일일이 일러주셨죠, 초가지붕 그림자가 이만큼 되면 아기 젖 주러 오실 것이고, 그림자가 이만큼 되면 불을 때고 어디어디쯤 그림자가 걸리면 솥에 물을 붓고.. 그러신 후 밭일을 나가시는 어머니의 허리춤에는 항상 고구마가 매달려 있었죠.” 그의 추억담이다. 이제금 그에게 고구마는 단순히 먹을거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이자 그리움이라고 말한다.

3~4년 전부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 소절씩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편곡자 길현철씨에게 전화기를 통해 육성으로 전해지며 지금의 신나는 트로트풍으로 편곡, 악보가 완성되었다. 또한 직접 노래까지 취입, 음반으로도 제작했다.

노래에 관련된 일화도 많다. “제가 군의원 시절, 지금의 명현관 군수와 함께 해남 곳곳의 516개 부락으로 유세를 다니곤 했는데 가는 곳마다 이 노래를 불렀어요. ‘해남 고구마’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함과 유대감 때문인지 반응도 매우 좋았죠.”

이를테면 선거송으로도 활용했던 셈인데 그 결과, 당시 명현관 후보는 지금의 해남군수가 되고 그는 군 의원에 떨어져서 결국 가수가 되었다며 껄껄 웃는다.

1. 눈보라 치던 밤 가마솥에 불을 지펴/사랑방에 둘러앉아 고구마를 먹어 봤나요/세상에 이런 맛을 잊을 수가 없네요/생각하니 꿀맛이더라/그리워라 그 추억을 그 어디서 볼 수 있을까/먹고 싶다 보고 싶다 해남고구마.

2. 눈보라 치던 밤 가마솥에 불을 지펴/사랑하는 우리 님과 고구마를 먹어 봤나요/세상에 그런 밤을 잊을 수가 있을까/생각하니 꿀맛이더라/그리워요 그 사랑을 그 어디서 볼 수 있을까/찾고 싶다 보고 싶다 해남고구마. -해남 고구마(박동인 작사, 작곡, 노래).

전형적인 트로트풍의 이 노래를 열창한 박동인 관장은 해남 군민들이 가득 모인 가요제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매우 기쁘고 행복했다는 소감과 함께 “가수로써 해남의 큰 어른이신 오기택 선생님의 얼과 정신을 이어받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깜짝 반전, 예상치 못한 수상의 주인공...

▲ ‘오기택 전국가요제'의 금상 수상자 정종채씨
‘제2의 오기택’을 발굴하기 위한 ‘제12회 오기택 전국가요제’가 피날레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린 참가자들 중 1차 예심을 거쳐 12명이 본선에 올랐다. 해남을 비롯해 가까운 목포, 순천, 고흥, 완도 그리고 전북 군산과 경남 통영에서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세 시간 반 동안의 열띤 경연을 펼친 끝에 영광의 수상자들이 가려졌다. 금상 수상자는 예상을 뒤엎고 당일 현장에서 직접 참가를 신청해 1차 예심을 통과한 정종채씨(61, 해남 콜택시 기사)였다.

앞에서도 잠깐 거론했지만 정종채씨는 오기택씨 고향 방문길에 장애인 콜택시를 운전하다가 참가를 권유 받고 그 길로 곧바로 접수, 결선까지 오른 깜짝 스타.

“일하던 중에 갑자기 결정한 일이라 집에 조차 미처 알리지 못하고 무대에 올랐어요. 참가자들 실력이 워낙 쟁쟁해 제가 받을 상이 아닌 것 같았는데, 1등상(금상)을 받게 돼 정말 기쁩니다.” 그의 소감이다. ‘어쩌다’가 우연찮게 도전해 차지한 영광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만약 내년에도 전년대회 수상자로써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그땐 가족들을 모두 초대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때까지 더욱 연습해서 지금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각오를 밝힌다.

해남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3년 째 몰고 있다는 그는 올해 가요제가 예산 부족으로 인해 대상을 시상하지 못하고 금상부터 시상하게 되었다는 사정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상금을 선뜻 기부하는 미담을 남기기도 했다.

20년만의 고향 방문, 이제 더욱 자신감 생겨

이 가요제를 통해 누구보다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다는 주인공 오기택씨는 “정말 참석하길 잘 했다. 삶에 자신감도 생긴다. 그동안 진작 고향에 못 온 게 후회되는 만큼 미약하나마 앞으로라도 고향 발전에 힘쓰겠다.”는 소감과 함께 “가요제를 통해 실력 있는 많은 신인들이 발굴되고 배출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해남을 다녀온 후 며칠 동안 ‘해남 앓이’를 해야 했던 필자에게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매우 뜻 깊은  여행길이었다. 그 행복했던 시간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오기택씨에게 계속해서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모 영화사로부터 오기택씨의 삶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왔고, 또한 (사)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가 주최하는 ‘2018 제52회 가수의 날’ 행사에서는 오기택씨가 ‘평생공로대상’을, 그리고 모교인 서울 성동공고로 부터는 ‘2018년 모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어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장에서의 오기택씨 모습은 평소보다 한결 밝아보였다. “제가 말이 잘 안되어서 수상 소감을 노래로 대신하겠다.”며 부르는 그의 노래 ‘아빠의 청춘’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이 넘쳤다.

2박3일간의 오기택 전국가요제 현장에서 만난 옛 가요 애호가, 대구의 김여천씨(54.국어교사). 그에게  평소 생각하는 오기택씨는 어떤 인물인지 물어보았다. 대답 대신 나중에 생각을 정리해 문자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의 눈에 비친 오기택 선생의 어떤 모습일까. 그가 보내온 문자를 그대로 옮기며 이 글을 마친다.

“20년 전, 전성기의 오기택님 모습은 해남 바다와 닮았다. 해남 바다가 매일 밤 출렁이는 푸른 파도로, 흰 포말로, 해일과 풍랑으로 휘몰아졌다면, 노래와 스포츠로 빛나던 그의 삶 또한 이와 같이 역동적이었다. 사고 이후의 모습은 더욱더 해남 바다와 닮아있다. 파도 밑 저 아래 고요히 드리운 바다, 그의 삶은 절망과 희망, 도전과 회한, 일상과 특별함 사이의 현실을 견디며 노래만을 생각하고 노래만을 꿈꾸며 안으로 다지는 숙성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오기택 선생의 빠른 쾌유를 빌며 그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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