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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에 걸친 고즈넉한 장인의 정신
옹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막사발 옹기장인 박민수
2008년 12월 15일 (월) 14:11:52 함용남 기자 today240@newsmaker.or.kr

그는 말이 없다. 다만 빙빙 도는 물레에 몸을 맡길 뿐이다. 장인 박민수가 옹기에 거는 기대, 그건 숙명이다. 이제 5대로 이어져 오는 물레질에 세월의 쓰라림과 견딤이 함께 돌아가고 있다. 그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자신의 육중 또는 날렵한 분신이 익어간다. 5대에 걸친 지토가 만든 공간에 뿌리내린 그가 옹기를 보며 살고 있다.

황인상 전문기자 his@

사람이 태어나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인생을 마감하며 그 일을 놓는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매진하여 가업으로 계승되면 과연 얼마나 이어질까? 1대, 2대, 3대…. 대략 3대를 계승한다면 세간의 사람들은 놀라움을 표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한 가지 일, 우리 민족 전통의 막사발, 옹기를 5대째 이어온 전통의 장인이 있다. 막사발 옹기장인 박민수 장인이 그 주인공이다.
   
▲ 선조의 지혜가 담겨있는 전통옹기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는 박민수 장인
 
흔히 항아리라고 불리는 옹기는 우리 민족 오천년 역사의 음식 맛을 지켜온 가장 자연에 가까운 그릇이다. 생활이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지면서 아주 다양한 형태와 특별한 용도로 쓰이며 우리 민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그릇으로 발전하였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옹기를 음식의 저장용구, 주류 발효 도구 등으로 사용하였다.
옹기는 도자기와는 달리 겉이 매끈하지 않다. 만져 보거나 눈으로만 봐도 옹기의 거친 질감이 느껴진다. 별도의 유약을 바르지 않는 한 적갈색과 황토색의 색감은 그대로 남는다. 옹기는 곰팡이, 나무 가루, 벌레 등 이물질을 걸러내지 않은 흙으로 만든다. 이런 흙으로 옹기를 만들어야 옹기에 미세한 구멍이 생겨 이 구멍으로 옹기가 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선조들의 넋을 엿볼 수 있는 옹기
현대인의 기억 저편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옹기토와 백토를 혼합하여 전통 색을 보존하고, 직접 고안한 유약을 발라 관상용으로서 멋스러움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청자, 백자의 빛깔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옹기만큼 소박한 서민상과 자연의 색을 닮은 문화유산이 또 있을까? 
박 민수 장인이 45년여 걸쳐 옹기를 빗는 이유도 이러한 까닭이 강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그는 전통옹기를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 감각이 묻어 있는 창작활동도 겸하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관이 돋보였던 등잔 도예전은 사람의 마음을 홀릴 정도로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그의 작품들은 중국 칭화대학에서도 전시될 만큼 우수하지만, 국내에서는 개인전 외에는 그의 작품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이름난 공모전이라 하더라도 “허울뿐인 명예는 필요없다”는 진정한 옹기장이로서의 성품 때문이다.
국내 전통옹기제작기법을 이어가고 있는 장인인 점에 특별히 초청까지 받아가면서 전시를 할 정도이지만, 제 살아온 뜻과 맞지 않으면 두 말 않고 뒤돌아서는 그런 성품을 지녔다.

거칠고 투박하고 숨 쉬는 게 매력
“영예는커녕, 명맥이나 이었으면…” 

지금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차츰 모습을 감추고 있는 우리의 전통 옹기를 5대째 가업으로 이어온다면 가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옹기선조 1대 충청북도에서 1826년에 태어난 박노기 옹, 이 분은 천주교 배척 당시 천주교를 집안에 몰래 들였다 추방되어 혈혈단신 경기도 안성에 정착, 옹기 제작을 했다고 한다. 현재 2008년, 대략 160년 전이다.
이런 사연이지라 천주교와 깊은 관련이 있어 그런지 그가 옹기로 만드는 작품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성물(성당에서 사용하는 각종 예배용 물건)이다. 지난 2000년과 2003년에는 십자가와 미사에 사용되는 등잔을 옹기로 만들어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옹기장이 집안의 내력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가까이 자리 해 그 삶을 함께했던 수많은 도기 중에서 옹기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면 박민수 장인의 가족사 그것이 곧 우리 공예의 역사일 것이다.

“전통 옹기를 보존하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품고 있는 박민수 장인. 그의 가마는 선조의 지혜가 묻어 있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옹기 불이 타오른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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