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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시그널, 중화의 소리를 그려내다
2018년 11월 20일 (화) 09:51:49 신선영 전문기자 ssy@newsmaker.or.kr
한명욱 작가는 배경을 만드는 데 작업량의 팔 할을 할애한다. 그 배경은 성실성을 담보로 했을 때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쾌거이기 때문이다.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물을 뿌리는 수고를 오롯이 감당했을 때 뿌리내려지는 있는 자연, 바로 이것이 한명욱이 그리는 회화이다.
 
신선영 기자 ssy@
 
중화(中和)의 미(美)
   
▲ 한명욱 한국화가
한명욱 작가의 작품을 본 관객들은 하나같이 “인쇄된 종이가 아니냐”는 오인을 하곤 한다. 물리적인 힘이 가해진 종이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 과정에서 생긴 균열들이 한국화에서는 생경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균열은 균열대로 가해지고 밀도는 밀도대로 높아졌으니 인쇄한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것이다.
 
한국화가에게는 이례적인 오인이긴 하나 그의 작품을 각인시키는 요인으로 유리하게 작용한 이 기법은 ‘모미가미’라는 전통기법이라고 한다. 구김 종이를 일컫는 말로도 통용되는 이 기법은 그 제작 과정이 번거롭고 까다로워 잘 쓰이지 않지만, 한명욱 작가는 이 기법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예술 지평을 넓히고 있었다.
 
이 기법의 포인트는 아교반수에 있다. 묽기차를 둔 아교물을 시간차를 두고 바르는 것인데 이 차이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서 구기고 난 뒤의 성공 여부가 달라진다. 균열되는 정도뿐만 아니라 떨어져나가는 색과 붙어 있는 색에 따라 배경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노하우를 늘릴 작업량을 필수로 하는 것이 이 작업이다.
 
이후 물을 뿌려 주름을 펴고 배접을 해서 판에 붙이면 배경 작업이 끝나게 되는데, 워낙 지난한 작업이라 100호나 200호 작품을 할 때에는 시간 안에 바르고 구기는 것만으로도 진을 뺐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명욱 작가가 이 기법을 고수하는 이유는 그 나름의 실천적 의지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 한명욱, 잉어, 2018, 순지에 채색, 162x130cm
 
작가는 이 일련들을 ‘중화(中和)의 미(美)’를 실천하는 것이라 표현했다. 가운데 중(中)자에 화할 화(和)자를 쓴 중화(中和)의 미(美)는 공자의 중용사상에서 따온 말이다. 공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중(中)의 풍부한 정서가 화(和)의 조화로운 예술작품으로 얻게 되었을 때 모든 인간이 바람직하게 공감할 수 있는 미(美)를 도출할 수 있다’고 설파했는데, 작가는 이 중화(中和)를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으로 통칭하고 연구함으로써 현대적인 회화의 미(中)를 도출해야 한다고 치환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치중화(致中和)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치(致)자를 더한 이유는, 자신만의 정서를 반드시 반영해서 독자적인 중화(中和)의 미(美)로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특징을 잘 살려내는 집중(集中)의 과정을 터득한 뒤 자신이 사유하는 소재를 현대적으로 가미해 나간 치중화(致中和)의 미(美)”라고 할 수 있다.
 
   
▲ 한명욱, 밤의 왈츠, 2018, 순지에 채색, 194x130cm

 

자연의 시그널
색소폰은 한명욱 작가가 첫 번째 개인전부터 일관되게 그리고 있는 소재다. 으레 그림을 그릴 때 듣는 음악이 작품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한명욱 작가에게는 그게 색소폰이었던 것이다. 넓은 음역대를 다양한 텍스처로 소화하는 음색에 매료되어 그렸던 것이 이제는 없어선 안 될 작가의 분신이 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자화상>에 색소폰과 색소폰을 닮은 꽃인 브루그만시아를 함께 그려 넣었다. 색소폰은 ‘소리’로 브루그만시아는 ‘자연’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소리로부터 받은 시그널과 자연으로부터 받은 시그널을 교신하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자신의 미감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그래서 지난 팔월에 연 개인전의 제목도 <자연의 시그널, 중화의 소리>였다. 
 
   
▲ 한명욱, 蓮-蛙, 2018, 순지에 채색, 117x91cm
 
<자연의 시그널, 중화의 소리> 전에는 꽃, 나비, 개구리, 잉어와 같은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린 자녀에게 자연과 대화하고 자연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주다 보니 자연이 절로 그려졌다고 한다. 그렇게 늘 어둡기만 하던 색채도 밝아지고 무거웠던 그림채도  가벼워지며 자신의 작품이 중화의 미에 가닿게 됐음을 시사했다. 
 
“자연을 그리게 되면서 어느 한쪽의 치우침도 없는 중화적 아름다움을 구축하게 됐습니다. 자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하며 생성되고 있기에, 오늘의 작가들은 오늘 날에 어울리는 자연정감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중화의 미는 앞으로도 계속될 연구 과제가 될 것입니다.”
 
   
▲ 한명욱, 자연의 소리, 2018, 비단에 채색, 80x100cm
 
한명욱 작가는 숙명여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일반대학원 회화학과 한국화전공 석사, 동경예술대학원 문화재보존수록 일본화 전공 석사, 숙명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한국화전공 박사를 수료했다. 세 번의 개인전과 일본과 호주 등에서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가했다.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 특선, 대한민국회화대전 특선, 용산국제미술제 특선, 숙명여자대학교 우수강사 표창을 수상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회화과 초빙 교수이자 춘추회, 숙원회, 동서미술문화학회 회원이다. NM
 
   
▲ 한명욱, 자연의 소리, 2018, 종이에 채색, 80x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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