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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산야의 현대적인 변형을 이뤄내다
2018년 11월 20일 (화) 06:21:40 신선영 전문기자 ssy@newsmaker.or.kr
민병훈 작가의 작품에는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 그래서 한국적인 것으로 통용되는 완만한 곡선미와 청, 백, 적, 흑, 황의 오방색을 바탕으로 우리 산야의 고격을 나타내는 데 주력해 왔다. 차차 서양의 입체파와 야수파를 차용한 듯한 대담한 화면 운용으로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 그는 ‘어떻게 한국적인 것을 현대적인 것의 반열에 올려놓을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타개해 나가며 민병훈식의 화풍을 한국 화단에 알리기 시작했다. 
 
신선영 기자 ssy@
 
민병훈의 산
   
▲ 민병훈 화가
지난 9월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민병훈 작가의 여섯 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마치 용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포물선의 능선으로 우리나라의 산야를 기세 높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가 이 능선으로 말미암아 ‘민병훈식’의 화풍을 선보이게 된 이유는 “곡선이야말로 한국적인 미의 정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곡선미는 우리의 삶과 얼과 멋을 나타내는 가장 민족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일테면 저고리에서부터 버선의 콧등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맵시를 곡선으로 살려낸 한복, 우리나라 식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입이 둥근 숟가락, 우리나라 예술품 중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달항아리 등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민병훈 작가가 가장 매료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한옥의 지붕이다. 그래서 기왓장과 처마선 같은 포물선으로 산등성이는 물론이거니와 바위, 계곡, 구름까지 그려내서 일체감 있는 산야풍광을 완성해 냈다. 여기에 길상을 의미하는 민화의 요소(해, 달, 학, 소나무 등)와 음양오행설로 풀어낸 다섯 가지 색채(청, 백, 적, 흑, 황)를 가미해서 한국적인 미감을 최대한 발휘해 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전시장에서 보았을 때 종합적으로 완성된다. 하나의 작품보다 여러 개의 작품을 병렬해 놓고 봤을 때 그 맥이 유장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 흐름을 의식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민족성을 수천 년에 걸쳐 지켜준 산의 모습에서 신앙 같은 굳건한 믿음이 생겨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그의 작품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으레 신앙이 그러하듯이, 인생의 고락(苦樂)을 포용하는 구도자적인 자세로 그는 매일같이 등산길에 오른다고 한다. 서너 시간씩 산길을 오르내리며 그날의 자연과 조응하고 그때 받은 감명을 그려내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다. 이러한 생활로 지금의 화풍을 고안한지 올해로 십 년이 되어 가는데, 그때가 그의 나이 일흔에 이르러서였다.
 
   
▲ (위) 설악산에 해가뜨고 해가지네 모든것 자연의 섭리, 2015, mixed media, 65x145cm (아래) 북한산 4계 일월도, 2014, mixed media, 40x120cm
 
수월한 삶은 없듯이 그도 그때를 회상하며 힘겨웠던 시간을 토로했다.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나와 미국 워싱턴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미국에서 20년, 한국에서 20년을 건축가로 살았다. 미국에서는 제너럴푸드 본사 사옥 신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증축을 설계하고 국내에서는 동아일보 신 사옥, 대한보증보험 본사 사옥, 대한투자신탁 본사 사옥 등을 건축하며 실력 있는 건축가이자 사업가로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떠돌이’에 비유하는 그는 화려한 이력 뒤에 감춰진 쓸쓸함과 공허함을 강조하며 은퇴 뒤 소싯적부터 꿈꿨던 미술가의 삶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그의 작품은 타향에 이주했던 삶과 건축가로 정주했던 삶, 그리고 미술가로 회귀한 삶을 한 편의 드라마로 인식하고 펼쳐놓는 파노라마 인지도 모른다. 그 파노라마를 좀 더 확대해서 들어간 작품이 <harmony in sharing>이라는 제목의 소나무 시리즈다.
 
   
▲ (위) 비봉능선 가을 풍경, 2018, mixed media, 72.5x200cm (아래) 북한산 도봉산 풍경, 2018, mixed media, 72.5x200cm
 
콤포지션
민병훈 작가가 소나무를 즐겨 그리는 이유는 자라나는 형세가 인간의 몸체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휘어지고 구부러지게 자라나는 굽이들을 하체와 상체로 구분해서 인간과 같은 유사함을 잡아내는 데 주력했다. 특히 열손가락을 쫙 편 듯한 나뭇가지들이 서로 다른 나무들을 향해 뻗어 있는데, 이 제스처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붉은색이 감도는 소나무는 동양인이고 푸른색이 감도는 소나무는 서양인”이라며 “나뭇가지들이 서로 맞닿기 직전에 멈춰서 있지만 언젠가는 두 실재가 만나 손을 잡고 포옹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간직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는 작가의 설명대로 국가들 간의 화합과 번영을 염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해석에 따라서는 종교적 화합 또는 예술적 화합으로 연결 지을 수 있다.
 
   
▲ 명당 경복궁 서울의 일출, 2017, acrylic on canvas, 50x72.5cm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작품은 한국화의 관념과 서양화의 기법을 결합한 현대화”라고 소개하며 “지금의 화풍은 정신성이 강조되는 한국적인 소재를 묘사력을 추구하는 서양화의 기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기자들이 ‘구조적이고 분석적인 구성미가 돋보이는 입체파와 강렬한 원색미가 두드러지는 야수파’를 거론하며 그의 작품을 분석해낸 것이다.
 
40여 년을 건축가로 살아온 만큼 모양, 크기, 색채, 방향 등의 요소를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설계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한 그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부제를 붙인다면 콤포지션(composition)이 될 것이다. 십여 년을 발전시켜온 그만의 콤포지션이 중흥모색에 나선 한국화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되길 그의 작가 정신에 기대해 본다.
 
   
▲ (위 왼쪽) 어울림, 2015, mixed media, 53x72.5cm (위 오른쪽) 석양의 소나무숲, 2017, acrylic on canvas, 50x65cm (아래 왼쪽) 군무, 2017, acrylic on canvas, 50x72.5cm (아래 오른쪽) 생명의힘, 2017, acrylic on canvas, 45.5x65cm
 
민병훈 작가는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나와 미국 워싱턴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상명대학교 평생교육원 한국화 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건축사 자격증을 획득하고 미국과 한국에서 40여 년간 건축가로 활동했다.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민 디자인 오피스를 운영한 그는 지금까지 여섯 번의 개인전을 열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 하고 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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