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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언어를 미술의 일부로써 드러내는 방식
2018년 11월 20일 (화) 06:05:06 신선영 전문기자 ssy@newsmaker.or.kr
전종분 작가의 키워드는 여성이다. 여성이라는 화자를 빌어 어머니이자 며느리이자 여류화가인 자신의 삶을 독백하고 있다. 극적인 전개 방식을 거쳐야 하는 소설이나 뚜렷한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지침서가 아닌, 일상의 한 순간을 간출하게 잡아내는 시 같은 작품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미감을 선사하고자 했다.
 
신선영 기자 ssy@
 
여인을 그리다
   
▲ 전종분 작가
전종분 작가는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팔구십 년대에 평생교육의 장이라고 불렸던 동아문화센터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 화백인 김호걸 선생에게 인체 소묘를 사사했고, 전시 경력이 없는 여기(餘技) 화가에게는 심사 기준이 높았던 서울갤러리에서 오랜 숙원이었던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람객으로 왔던 기자에게 발탁돼서 뉴스 보도까지 됐으니 안 그래도 자평에 인색한 그로서는 그저 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운은 겸양일 뿐, 그는 인체로 이해되는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남다르다는 평을 받았었다. 그래서 기술은 흉내 내도 감각은 흉내 낼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사실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현실적인 감각이 그가 그린 여인에게 눅진하게 배어 있다. 궂은살이 고루 배어 있는 아담한 체구에 고무줄로 아금박하게 묶은 머리카락에서는 억척스럽고 다부진 생활상이 엿보이지만 측면을 응시하거나 뒤로 돌아선 모습에서는 인간적인 소외와 고독이 새어나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조로 볼 때 그의 인물화는 자화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작품마다 인물의 생김새는 다르지만 분위기가 같다는 점에서 작가의 내면이 반영된 자화상으로 봐도 무방한 것이다. 그 분위기로 보아 그의 내면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건 십대 때 폐결핵을 앓으면서 삼년간 요양원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그의 삶의 명도를 낮췄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하는 첫 번째 개인전에서 나타내게 됐고 그것이 독특한 뉘앙스를 풍기며 예상외의 호평을 이끌어낸 것이다.
 
   
▲ 전종분, (좌) 하모니, 2018, 테라코타, 30x70cm, (우) 아가야 자니?, 2018, 테라코타, 30x67cm
 
이렇게 첫 번째 개인전이 자신의 삶의 무게를 연민으로 다스리는 전시였다면, 두 번째 개인전은 다스려진 삶의 무게를 미덕으로 끌어안은 전시였다고 할 수 있다. 십년만의 개인전이었던 만큼 여인에게도 변화 양상이 뚜렷하게 두드러졌는데, 우선 입가에 미소를 띤 곰살맞은 표정과 나잇살이 붙은 풍만한 몸체에서 부드러운 형태 변화가 엿보였고, 혼자가 아닌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유기적인 관계 변화가 돋보였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회화가 아닌 테라코타라는 것이었다.
 
테라코타는 흙으로 형을 만들어서 가마에 구운 조각품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모든 생명의 터전이자 정착의 토대인 흙을 모성과 결부시키고는 하는데, 그만큼 흙의 색감과 질감을 가장 잘 살려주는 테라코타로 만든 모자상(母子像)은 어머니의 살내음을 단박에 떠올려주는 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렇게 회화에서 조각으로의 일탈과 개인에서 집단으로의 일탈이 그의 삶에 기분 좋은 변화로 자리 잡게 됐는데, 또 하나의 일탈을 시도한 게 있었으니 바로 그 다음에 선보인 시(詩)로의 일탈이었다.
 
   
▲ 전종분, (좌) 노을 속으로, 2018, oil on canvas, 65x115cm, (우) 길고양이의 꿈, 2018, oil on canvas, 52x65cm

시를 그리다
지난 오월 인사동 갤러리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그의 세 번째 개인전인 <시를 그리다> 전이 열렸다. 여인의 일상을 유쾌하고 다채롭게 표현한 테라코타 작품과 시의 요소를 추상으로 표현한 회화 작품을 동시에 선보인 전시였다.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교류하게 된 한 시인의 시집을 보고는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겠다는 충동에 휩싸여 붓대를 쥐게 됐고, 그 이후에도 시를 모티브로 계속 그려나간 것이 하나둘 쌓여 칠년 만에 선보이게 됐다”고 전시 배경을 설명했다.
 
작업에 대해서는 “대상이 가지는 구체적인 형태를 재현하기보다는 그 대상이 가지는 감성적인 메시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건져 올리기 위해서는 그리고 싶은 열망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대상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서정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시사했다. 여기서 서정은 순수의 발현이고 그것은 단순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작가는 선보다 색에 먼저 감응했다. 바로 색채로 나타낸 색면 분할이다. 이는 인물화를 할 때부터 고수했던 방식으로 스케치 없이 바로 배경색부터 칠해나가는 것이 특징인데 그 속도감 있는 전개 방식이 즉흥성을 요하는 이번 작업에서 긴요하게 작용했다.
 
   
▲ 전종분, 시를 그리다, 2018, oil on canvas, 152x115cm
 
그의 작품을 평론한 한성대학교 전종찬 교수로는 색면 분할에 대해 “때로는 계절과 시간 같은 시간적 변화를, 때로는 따뜻함과 차가움 같은 온도적 변화를, 때로는 산과 바다와 하늘 같은 지형적 변화를, 때로는 고독과 환희 같은 심리적 변화를 한 화면에 다른 색채로 분할해서, 그 위에 그려질 대상의 다중적인 특성을 시각화하고, 다른 차원으로의 의미를 부여했다”고 평가하며 이것이 시그림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화면에 드러난 색채와 색채가 행과 행으로 구분되고 연과 연으로 나뉘어 그 위에 그려질 대상을 시정(詩情) 있게 잡아주는 것이다.
 
여기서 대상은 주로 시의 소재이지만 시심으로 촉발되는 사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아파트 단지 밑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는 길고양이나 노을빛이 유난히 들지 않는 그늘에 선 나무 같은 것이다. 특히 <지워지는 사람들>은 시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가 대운(大運)이라고 하는 시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은 아들의 얼굴은 잊어버려도 며느리는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로 애틋하기 때문에 여남아 있는 기억을 붙들 듯 안간힘으로 그린 거라고 한다. 마치 테라코타가 속을 비워내지 않으면 가마에서 갈라져버리는 것처럼, 어머니가 체력과 감정을 다 소진하지 않으면 자식이 크지 않는 것처럼 기억의 저변까지 온기의 손을 뻗은 것이다. 그 온기가 가무러지는 사람들을 밝혀줄 등화가 되어 줄 수 있길 기도한다. NM
 
   
▲ 전종분, 지워지는 사람들, 2018, oil on canvas, 152x1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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