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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도자기 사랑하는 일을 하겠다”
2018년 08월 03일 (금) 15:41:21 황태일 기자 hti@newsmaker.or.kr

분청사기는 회색 도는 회흑색 태토(胎土) 위에 백토니(白土泥)를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기로, 14세기 후반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조선왕조의 기반이 닦이는 세종연간(1419~1450)을 전후하여 그릇의 질(質)이나 형태 및 무늬의 종류, 무늬를 넣는 기법[施文技法] 등이 크게 발전·세련되어 절정을 이루었다.

황태일 기자 hti@

분청사기는 청자나 백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활력에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다양한 분장기법(粉粧技法), 그리고 의미와 특성을 살리면서도 때로는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켜 재구성한 무늬가 특징이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 청자로부터 변모, 발전하여 조선 태종 때 그 특색이 현저해져 15, 6세기 약 200여 년간 제작되었다. 16세기에 들어오면 무늬보다 백토분장이 주가 되어, 차츰 태토와 표면분장이 백자화되어 갔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제도상의 문제로 분청사기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소멸되었다.

깊고 담담한 멋 뿜어내는 분청사기로 주목 받아
▲ 김두선 선생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서라벌요의 우향 김두선 선생은 반세기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도공’의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다. 제10회 현대미술대상전 대상, 전통미술대전 대상, ‘한국의 혼’ 경진대회 금상,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한 바 있는 김두선 선생은 작품을 통해 그윽한 고향의 향수를 일으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득하고 포근한 맛으로 옛 서민들이 주로 사용했던 것으로 외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순수한 우리 전통자기’라는 이유로 청자나 백자에 비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괄시만 받아온 분청사기에 김두선 선생은 특별한 애착을 보인다. 그 이유에 대해 김두선 선생은 “분청사기는 신비의 비색으로 통하는 고려청자에 비해 남성적이고 대범하면서도 무척이나 서민적이고 한국적인 멋이 깃들어 있다”고 답한다.

지난 1968년 일본 오사카도예협회 초대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김두선 선생은 이후 1972년 뉴욕과 LA초대전, 198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1990년 하와이 상공회의소 초대전, 대통령초청 모스크바 전시회, 1992년 영국 한국대사관 초대전, 1994년 브라질 상파울로 개인전 등 해외 유수의 전시회를 통해 도예가로서의 명성을 공고히 했다. 남성적인 멋과 힘을 보여주며 화려하지 않고, 질박한 서민들의 삶을 나타내는 분청사기를 고집해온 김두선 선생의 작품은 칼로 조각하고 산수화를 그리며 가족들의 얼굴과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는 그림과 상감기법이 특징으로 외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동양의 백자와 청자에만 익숙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그의 분청사기가 뿜어내는 깊고 담담한 멋은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단순히 옛 선인들의 작품을 모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수 창작품인 김두선 선생의 작품들은 전부 세상에 오직 단 하나 뿐인 것들이다. 최근에는 전통자기의 맥을 이으면서도 현대인의 기호에도 맞추어 가고 있다. 하지만 도자기를 구워내는 과정은 여전히 전통의 맥을 잇는다. ‘정성과 흙과 불이 조화를 이루어 도공이 아닌 자연이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작품’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손수 점토를 반죽하고 요의 불도 직접 지핀다. 불도 지피기 편하고 도자기의 색깔도 고르게 나는 가스요를 마다하고 장작가마를 고집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서라벌요 설립 후 독창적인 분청사기 개발
김두선 선생의 부친인 故김석규 옹은 일제 강점기에 빼어난 솜씨의 도예공이었으며, 그를 눈여겨 본 일본인들에 의해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가 터를 잡았다. 김석규 옹의 장녀로 어릴 때부터 부친의 일손을 도우며 도자기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게 된 김두선 선생은 1945년 해방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부친의 죽음에 이어 어머니마저 떠나면서 17세의 어린 나이에 5남매를 책임지는 소녀가장이 되어야 했다. 이에 부친으로부터 배운 기술과 재능으로 옹기를 구우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후 그의 뛰어난 손재주에 도자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20대에 ‘부라자종합기술학원’, ‘경남종합기술학원’ 설립에 이어 서른 살에는 서라벌요를 설립, 독특한 분청사기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종심(從心), 세 번의 국내 개인전을 통해 전시된 ‘십장생문호’, ‘분청민화문호’, ‘분청포도문병’, ‘밤풍경통병’, ‘소나기문병’ 등의 연작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그다.

이제 서라벌요의 후계자로 수련 중인 아들 윤형철 씨와 함께 우리 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서양화가로 활동 중인 딸 윤수영씨에게 도자기 기술을 전시하며 자신만의 도예인생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김두선 선생. 넘어지지 않고 평생을 도자기 굽는 일과 사람 사랑하는 일을 희망의 등불로 살아왔다고 말하는 그는 “죽는 날까지 도자기 사랑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주어진 일을 하며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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