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일정한 직업에 전념하거나 한 가지 기술을 전공하여 그 일에 정통한 사람을 ‘장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철저한 장인 정신과 직업윤리의 한 표현이다.

‘장이’는 순수한 우리말로 전문가를 뜻하는데, 사람이 전력을 다하여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철저한 장인 정신의 소유자를 말한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우향 김두선 선생은 올해로 44년째 경주에서 ‘서라벌요’를 운영하며, 후학 양성을 비롯해 작품 및 생활도자기를 구워내고 있는 ‘옹기장이’다.

높은 예술성과 함께 고향의 향수 일으키는 작품 선보여

▲ 서라벌요 우향 김두선 선생

‘제10회 현대미술대상전’ 대상, ‘전통미술대전’ 대상, ‘한국의 혼’ 경진대회 금상, 대통령표창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진 김두선 선생의 작품은 뛰어난 작품성과 함께 그의 어린 시절 삶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윽한 고향의 향수를 일으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친의 대를 이어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김두선 선생. 부친이었던 故 김석규 옹은 일제시대 빼어난 솜씨를 가진 도예공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에 그를 눈여겨 본 일본인들에 의해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가 터를 잡게 되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김석규 옹의 장녀였던 김두선 선생은 어릴 때부터 부친의 일손을 도우며 도자기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집을 떠나버려, 순식간에 5남매의 소녀 가장이 된 17세의 김두선은 살기 위해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손재주로 옹기를 구우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 도자기를 구웠지만,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의 도자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후 도자기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도 많아져 <부라자종합기술학원>과 <경남종합기술학원>학원을 세웠는데, 그때가 20대 중반이었다.

이후 도자기 연구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으며 서른 살에 서라벌요를 설립하고 독특한 분청사기 개발에 성공했다. 김두선 선생은 분청사기에 그림을 음양각하는 상감기법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문양 이외에 십장생과 민화, 사람 사는 풍경과 자연 등의 소재를 다양하고 독창적으로 구현하는 그는 작품을 통해 대중과 격의 없이 소통을 하고 있다. 특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종심(從心), 세 번의 국내 개인전을 통해 전시된 ‘십장생문호’, ‘분청민화문호’, ‘분청포도문병’, ‘밤풍경통병’, ‘소나기문병’ 등의 연작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예술혼으로 흙과 불 그리고 기예미의 진수를 빚다

▲ 김두선 선생은‘제10회 현대미술대상전’ 대상, ‘전통미술대전’ 대상, ‘한국의 혼’ 경진대회 금상, 대통령표창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의 인물이다

“도자기 하나에 내 삶과 혼이 들어 있다. 수업이 실패를 거듭하면 어느 순간 내 마음에 스승이 나타났다. 네가 하는데 내가 못할 게 뭐 있나 다짐하며 40여 년을 도자기만 구웠다. 실패가 내 스승이다.” 김두선 선생은 많은 전통자기 중에서도 활달하면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분청사기 재현에 몰두하고 있다. 분청사기는 아득하고 포근한 맛으로 옛 서민들이 주로 사용했던 것으로 외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순수한 우리 전통자기’라는 이유로 청자나 백자에 비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괄시만 받아왔다. 이러한 분청사기에 김두선 선생이 특별히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분청사기는 신비의 비색으로 통하는 고려청자에 비해 남성적이고 대범하면서도 무척이나 서민적이고 한국적인 멋이 깃들어 있다”고 답한다. 다양한 음양각 색채기법을 구사한, 크고 시원한 필치의 그의 작품들은 옛 선인들의 작품을 모방한 것이 아닌, 그만의 순수 창작품이다. 최근에는 전통자기의 맥을 이으면서도 현대인의 기호에도 맞추어 가고 있다. 하지만 도자기를 구워내는 과정은 여전히 전통의 맥을 잇는다. ‘정성과 흙과 불이 조화를 이루어 도공이 아닌 자연이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작품’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손수 점토를 반죽하고 요의 불도 직접 지핀다. 불도 지피기 편하고 도자기의 색깔도 고르게 나는 가스요를 마다하고 장작가마를 고집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이렇게 탄생한 그의 작품들은 우리의 감정을 흠씬 젖어들게 하는 독특함과 신비스러운 도자기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특히 한국의 고전적 생활상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한 폭의 민화 속에는 문화의 차이를 뛰어 넘어 흙과 불 그리고 기예미의 진수를 맛보게 하여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김두선 선생의 작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영국, 미국 LA·샌프란시스코·뉴욕·하와이 등에서 개최했던 전시에서도 극찬을 받았으며 특히 도자기의 꽃을 피우고 있다고 자랑하는 일본 도예계에도 널리 알려져 일본의 여러 가정에서 집안의 가보로 소장되고 있을 정도다. 77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예술혼을 불태우며 도자기를 빚고 있는 김두선 선생. 이익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전통 도자기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