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예술가의 창작활동, 그 자체가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장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악기장이란 악기장인을 뜻하는 말로, 전통적인 기법을 통해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에 쓰이는 악기를 만드는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 전통수명국악기연구원 공명 최태귀 악기장

악기장은 전통악기의 주재료인 나무와 가죽, 명주실, 대나무, 쇠, 돌, 흙 등을 이용해 악기를 설계하고 각 악기가 지니는 고유의 소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기능인이라는 점에서 일반 공예 영역의 장인과 구분된다. 실제로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악기조성청'이라는 독립된 기관을 설치해 국가에서 필요한 악기를 제작해 사용했다. 이처럼, 악기장의 기술은 국가의 주요 기술로 전승되어 왔지만 아쉽게도 그 존재와 기능 전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다.

전통 현악기 제작 부문 국내 최고의 명인
오늘날 악기장의 기능을 새롭게 인식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악기를 만드는 공예기술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악기들은 연주자들의 뛰어난 연주력을 통해 최고의 전통공연예술 양식으로 향유되고 있으며, 이들 예인들이 빚어내는 전통예술은 농익은 빛깔로 수놓아져, 한국의 전통음악을 올곧게 이어가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이수자인 전통수명국악기연구원의 최태귀 악귀장. ‘그랑프리 미술대상’ 문화관광부 장관상,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악장부문 대상, ‘한국문화예술대상’, ‘충효문화예술 국악기 제작부문 대상, 경기도 으뜸이 전통악기부문 선정 등을 모두 휩쓸 정도로 전통 현악기 제작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명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지난 2006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KBS 드라마 <황진이>의 가야금과 거문고, SBS의 화제작 <바람의 화원>의 가야금을 협찬하기도 했던 그의 작품은 수천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최태귀 악기장에게 있어 악기를 만드는 일은 수도의 과정과 같다. 특히 가야금 하나를 만드는 데에만 300여 회의 제작공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를 고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최 악기장은 “전통악기의 주재료로 쓰이는 오동나무와 밤나무는 물론 벚나무, 배나무, 호두나무, 장미목 등 부가적으로 쓰이는 나무들은 반드시 우리나라에서 자란 것을 고집하며, 특별히 주산지인 전라도에서 구입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좋은 소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제재 건조가 중요하기 때문에 보통 5년 이상의 바람과 눈, 비를 맞추며 자연건조 과정을 거친다.

이때 판의 두께나 건조 조직 등에 의해 음색 하나하나가 달라지기 때문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후에는 수공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마친다. 그는 “같은 종류의 나무라도 천차만별이다”며 “저마다 다른 나무의 결과 성질을 파악해 가면서 작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그의 악기는 정악 가야금, 산조가야금, 25현 가야금, 거문고, 아쟁, 양금, 해금에 이르기까지 악기마다 우리 고유의 한과 기품이 서려 있는 음색을 자랑한다.

장인 정신으로 아름다운 소리 내는 현악기 제작
천부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청력으로 소리를 듣고 감각만으로 악기를 만든다는 최태귀 악기장은 국내의 권위 있는 소리박사로부터 확률 100%의 소리라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1974년 고모부이자 스승인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인 故 김광주 선생의 문하에 입문해 본격적으로 전통악기 제작기법을 이수했던 그가 전통악기의 외길을 걸어온 지도 올해로 벌써 41년째다. 그 긴 세월동안 최 악기장은 손끝에 예술혼의 기를 불어 넣어 온갖 정성과 연구하는 자세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적이고 독보적인 명품악기를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쏟아왔다.

오랜 시간동안 전통을 잇는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그의 큰딸은 국악을 전공했고, 아들도 아쟁을 연주하다 얼마 전부터 아버지의 대를 잇겠다고 나섰다. 최 악기장으로서는 뿌듯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하는 국악인들을 볼 때 전율을 느낀다는 최 악기장. 그는 “악기를 만드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속일 수가 없다”며 “오랜 체험으로 정성을 들이지 않은 악기는 한 번의 연주만으로도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장인의 혼을 가지고 만들 때만이 연주자에게 생명력이 있는 음악으로 연주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때문에 전통 현악기 제작 수십 년의 경력에도 악기를 만들 때만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어 “사라져가는 전통예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전통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육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우리의 소리에 대한 자부심으로 더욱 더 나은 소리를 구현하는데 심혈을 쏟겠다. 나아가 세계시장에 가장 한국적인 전통 현악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며 세계적인 브랜드 마스터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