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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2014년 11월 04일 (화) 10:17:59 신세영 기자 ssy@newsmaker.or.kr

# 1961년 11월 1일 - 조선호텔 개관
조선호텔은 1914년 10월 일제 강점기에 조선철도국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호텔이다. 1910년 우리나라를 통치하던 일본 조선총독부가 일본이나 외국에서 귀빈객을 맞기 위해 숙박시설을 건립한 것이 조선호텔. 당시 동양호텔 중 일류 시설을 갖춘 호텔로 꼽혔으며, 일본에 의해 많은 서양 문물이 들어왔다. 각 방에는 대부분 욕실과 탁상전화가 비치되었고, 큰 식당과 회의실, 난방과 소방 시설, 주차장도 갖추었다. 요리는 프랑스식을 주로 했는데, 재료의 선택과 조리법이 매우 뛰어나 서양인들도 찬탄했으며, 식당은 항상 붐볐던 것으로 전해진다. 1945년 광복이 찾아오자 조선총독부가 해체되면서, 호텔의 운영은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나 마땅한 호텔이 없던 당시, 외국인 방문객의 숙소로 사용되었고, 한때는 유엔군이 사용하는 등 1950년대 중반 이후까지 서울을 대표하는 호텔로 운영되었다.
   
▲ 조선호텔 개관식

# 1992년 11월 2일 -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 한국 방문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1889년 11월 2일 노태우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 방문은 1883년 한영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한지 1백9년만에 영국 왕실 가족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했다는 점에서 양국의 우호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1월 2~5일의 방한기간동안 찰스는 경영환경관계회의, 소장 기업인들과의 간담회, 경제4단체장 주최 오찬 모임 등에 참석했다. 다이애나는 서울 봉천동의 중앙대 부설 사회복지관 방문, 과천시에 신축중인 구세군 과천양로원 시찰, 영국인 학교 시찰 등의 일정을 보냈다.
   
▲ 국립 현충원에서 참배를 드리고 있는 찰스와 다이애나의 모습(1992년 11월 2일)

# 1969년 11월 3일 - 세계 최초의 달 착륙 우주인, 한국 땅 밟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마이클 콜린스, 닐 암스트롱, 에드윈 알드린 등 우주인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공개된 사진은 이들이 KBS에 출연했을 당시 모습이다. 닐 암스트롱은 1969년 달 착륙 후 4개월 뒤인 그해 11월 올드린 등 동료들과 함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암스트롱은 달에 착륙한 후 남긴 위대한 말이 있다. “이것은 한 인간에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약진(躍進)이다.”
   
▲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우주인들. 왼쪽부터 마이클 콜린스, 닐 암스트롱, 에드윈 알드린

# 1961년 11월 7일 - 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 개관
일제 강점기에는 종합예술시설이 별도로 없어서 서울시의회로 사용되는 건물이 그 역할로 사용됐다. 그러다 광복 후 1961년 11월에 시민회관을 준공, 개관하였으나 1972년에 화재사고로 소실되었다. 화재사고 후 서울시에서는 대규모 종합 공연장을 세울 계획을 마련하고 1974년에 시민회관 착공에 들어갔다. 약 4년만인 1978년 4월에 준공과 동시에 개관됐으며, 명칭은 세종문화회관으로 변경되었다. 훗날 남북이 통일이 될 것을 염두에 두고 3800석 이상의 대극장과 532석의 소극장을 지어 당시 최대 규모의 시설을 갖춘 공연장으로 화제를 모았다.
   
▲ 시민회관 기공식

# 1980년 11월 8일 - 경제활성화대책 발표
경제활성화대책이란 국면에서 침체된 생산 활동을 진작시키기 위해 정부가 시행하는 다양한 경제정책을 말한다. 1930년대에는 세계적인 공황과 불황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조절기능이 마비되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개입해 경제활동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체계적으로 모색되었다. 당시 취약한 경제적 기반 속에서도 국가주도적인 경제개발 정책으로 산업화의 추진력을 얻었던 한국은 경제성장의 침체기 때마다 정부가 앞장서서 불황타개와 경제활성화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경제개발계획을 실시했다. 1970년대에 다시 경기 불황이 닥치면서 정부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1980년 11월 경제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
   
▲ 경제활성화대책 발표

# 1954년 11월 10일 - 교통정리 경기대회
1954년 11월 10일에는 교통정리 경기대회가 열렸다. 을지로입구에서 제2회 전국교통정리 경기대회 거행했다. 전국 각 시도에서 선발된 남녀 30여명의 교통순경들 참여했다. 각각 출신지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수만 관중의 갈채 속에 호각을 울리며 양손의 신속한 동작으로 교통정리하는 교통순경들 수신호에 따라서 움직이는 차들에 시민들의 환호와 격찬이 이어졌다. 1950년 3월 정부는 자동차업계의 자구적 노력을 지원하고 자동차 부품공업의 육성을 위하여 상공부, 교통부, 국방부등 3부 공동으로 13개 품목을 국산 장려품으로 지정해 군납하도록 하는 자동차부품공업 육성대책을 시도했다.
   
▲ 교통정리 경기대회

# 1967년 11월 11일 - 발명품 및 등록상표 포스터 전람회
1967년에는 발명품과 등록상표 포스터에 대한 전람회가 있었다. 대한발명협회주최로 덕수궁에서 박충훈 상공부장관, 김성진의원, 조경구발명협회장 및 정진기 본사사장등이 테이프를 끊음으로써 개막되었다. 과학기술의 진흥, 계발의 광장과 계기를 마련하고 발명가의 권익을 응로하는 선도적 구실을 하며, 한국을 발명과학의 나라로 비약시켜 세계발명사에 도약할 수 있는 조명등이 될 것을 목적으로 열렸다. 전람회는 한 달 동안 계속된 이 전람회는 발명품이 74점, 등록상표가 70점 총1백44점이 전시되었다. 특허상담실과 아이디어 교환실 및 직접 판매를 할 수 있는 직매장이 설치되고 발명품에 대하여는 대통령상을 비롯한 각종시상도 있었다.
   
▲ 발명품 및 등록상표 포스터 전람회

# 1996년 11월 13일 - 조선총독부 완전철거
1996년 11월 13일, 요란한 굉음과 함께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전 철거되었다. 1996년 역사의 기억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중앙청 건물. 23개의 전시실을 갖춘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1986년부터 1995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곳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인 1916년부터 일제 식민통치의 정당성과 위엄을 내세우고자 경복궁 근정전 앞에 건립을 추진, 1926년 완공되어 일제 식민통치의 본거지인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했고 8·15광복 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의 주한미군사령부에 의해 군정청으로 사용되면서 처음으로 중앙청 ‘Capitol hall’이라 불리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 1948년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중앙행정관청으로 쓰이다 제3공화국 시절 중앙행정부서가 서울 세종로의 종합청사와 과천청사 등으로 이전하면서 정부청사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일제 침략과 식민통치의 상징적 건물이기 때문에 주요 정부기관의 집무실로 사용할 수 없다는 여론에 따라 1986년 6월, 23개 전시실을 갖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조해 사용했다. 오랫동안 지속되던 철거 찬반논쟁 속에서 1993년 완전해체 및 철거가 결정됐다. ‘8·15 광복 50주년’을 맞이하던 1995년부터 철거된 중앙청 건물은 제 역사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 조선총독부 완전철거

 # 1959년 11월 18일 - 서울 남산 우남정 낙성식
지금은 팔각정이라 부르는 우남정은 서울의 남산 꼭대기에 서울N타워와 함께 위치해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서울의 명소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원래 남산 꼭대기에는 고종 때까지 제사를 지내던 목면신사라는 국사당이 있었다. 1925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국사당이 헐리고 말았다. 1945년 광복 후 국사당이 헐린 그 자리에 팔각 정자가 세워졌다, 정자의 이름은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정’이라 지었다. 우남정 옆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도 함께 세워졌지만, 1960년 4.19 의거를 계기로 이승만 동상과 우남정이 철거되었으며, 이후 1968년 11월 다시 건립된 것이 현재의 남산 팔각정이다.
   
▲ 우남정 낙성식 축하 연설

# 1897년 11월 20일 - 독립문 준공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안에 위치한 독립문은 1896년 독립운동가 서재필에 의해서 세워졌다. 당시 미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에서는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뜻있는 많은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광범위한 호응을 받아 전 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펼쳐 독립문을 건립했다. 독립문이 세워진 자리는 중국사신을 영접하던 사대외교의 표상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워졌으며, 총공사비는 당시 화폐로 3,825원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독립문은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서 서재필이 직접 스케치한 것을 근거로 독일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했고, 노역은 주로 중국인 노무자들을 고용했으며, 1897년 11월 20일에 준공되었다. 독립문의 구조는 화강석 쌓기로서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내부 왼쪽에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으며,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다. 홍예문 위의 앞뒤 현판석에는 각기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글씨와 그 좌우에 태극기가 새겨졌다.
   
▲ 독립문 준공 기념식

# 1949년 11월 24일 - 한국 세계식량농업기구 가입
세계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약칭 FAO)는 국제연합 소속으로 인류의 영양상태 및 생활수준의 향상, 식량(농산물)의 생산 및 분배 능률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세계 식량안보 및 농촌개발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국제 기구. 대한민국은 1949년 11월 24일에 가입했다. 가입 이후에는 매년 농업·수산·산림 위원회, 식량안보위원회 등 다수 회의에 참가해 국제농업 현황 및 각국의 농업정책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는 WHO(세계보건기구), WFP(세계식량계획),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아프리카, 아시아 농촌개발기구(AARDO)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 세계식량농업기구 총회에 참석한 대한민국 관계자

# 1967년 11월 27일 - 집배원의 날 제정
집배원의 날은 1964년 5월 충청남도 금산군내 관민이 집배원의 노고를 격려한 것을 전국 각지방에서 호응함에 따라 체신부에서 연중행사로 제정하면서 탄생한 날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 7월 1일부터 우편번호 제도를 실시했다. 이로 인해 동네의 많은 우체국을 거치는 불편함을 없애고 신속, 정확하게 우편물을 배달하게 되었다. 이후 해마다 약 11퍼센트 가량 늘어가는 우편물의 신속한 송달을 위해 기계화 작업과 규격 봉투의 사용을 권장했다. 1960년 70대 밖에 없던 우편 자동차가 150대로 늘어나고 1960년 전혀 없던 이륜차는 200대가, 자전거는 1900대가 운송 작업에 동원되었다. 1995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체신부의 명칭이 정보통신부로 변경됨에 따라 기념일도 ‘정보통신의 날’로 변경됐으며, 정보통신의 모든 분야에 걸쳐 그동안 이룩한 성과와 앞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일들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데 목적을 두고 기념식을 진행한다.
   
▲ 제1회 집배원의 날 기념식

# 1963년 11월 30일 - 제1회 청룡영화상 시상
청룡영화상 시상식은 한국영화의 진흥과 대중문화 발전을 위해 1963년 조선일보가 마련한 시상식이다.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영화 산업의 진흥발전을 위한다는 취지 아래 만든 이 축제는 1963년 11월 30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렸다. 이후 매년 개최돼 오다 1973년 영화법 개정과 쿼터제 도입 등의 영향을 받아 한국영화가 침체되면서 제12회 시상을 끝으로 중단했다. 1990년 12월 스포츠조선의 주최와 조선일보의 후원으로 재개됐다. NM
   
▲ 주연남우상의 최무룡과 주연여우상의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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