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깊은 정적속에 잠길 저녘 태양의 마지막 몸부림
찬란한 붉음으로 자신을 태우는 황혼의 장엄함
여기 삶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 정재홍(74세)씨를 만나 보았다.
 
 집 앞 연못의 가장자리를 따라 노란 창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2백평 남짓 연못에는 연(蓮)잎 순들이 막 수면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연못 가운데 있는 작은 인공 섬(Island)에는 자주색 으아리꽃이 한창이다.

황태일 기자 hti@

 안내를 받아 방안으로 들어서니 다기(茶器)세트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전통차집 방이었다. 자연풍경을 품은 커다란 창은 아름다운 4계절액자였다. 이곳은  방문객들이 스스로 차를 끓여 마시고 자연을 즐기며 마음의 치유(힐링)를 얻고 가는 휴식공간으로, 옛날 시골  사랑방 같은 곳이라고 설명한다.

 연못에서 채취한 연잎과 터밭에서 재배한 박하잎을 말려서 만든 재료로  손수 끓여주시는 연잎박하차 맛은 신비롭도록 그윽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기자를 대하는 정재홍 선생.  그의 얼굴엔 고요한 인자함과 깊은 평화로움이 풍겼다. 이 각박한 세상에 이런 분도 있구나하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은퇴 후의 생활을  가장 행복하게 보내시는 분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뵈었습니다.  선생님의 행복의 비결을 알아보고자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행복관에 대하여 한 말씀 해 주세요.

▲ 정재홍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철학자도 종교가도 아닙니다. 깊히 생각한 논리적 대답을 드릴수 없어요. 단지 시골에 사는 촌로의 소견을 드려보겠습니다. 우선 제가 지금 행복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았어요.  우선 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어요. 가진 것에 감사하며 생활합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옷, 더 좋은 음식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어요. 기본적인 의식주에 만족합니다. 제가 돌아가기 전에 해야 할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저 자신도 큰 병이 없어요.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세 번째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혼자만 잘먹고 잘사는 것은 언뜻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남과 나누는 생활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제가 재능 기부를 하면서 그 점을 절실히 배우며 감사하고 있어요. 받는 행복보다 주는 행복이 훨씬 커요.

건강하고 욕심을 버려 스트레스를 줄이고 작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과 나누며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살수 있다면  행복이 아닐까요.

 건강은 어떻게 유지 하시나요. 
 궂이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돈을 써가며  운동하지도 않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것이 돈도 안들고 또 생산적이라 생각하여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여컨대 남새는 이것 저것 직접 키워서 먹지요. 고추도 재배하여 고춧가루를 내서 고추장도 담아먹고요. 뜰 앞 연못을 예쁘게 가꾸는 일도 손이 많이 가요. 부들과 심한 전쟁을 하고 있어요. 부들의 생활력이 아주 강해서 연을 못자라게 해요. 게다가 작년부턴 억새가 자라기 시작해서 이것하고도 싸우고 있어요. 연못에 미꾸라지를 넣었더니 요즘에는 백로와 재두루미 그리고 저녘에는 청둥오리도 날아들어요. 그런데 개구리도 많아서 뱀도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잡초를 매주는 것도, 산에서 화목보일러용 땔감 구하는 것도  큰일 이지요. 이 모든 일을 일이라 생각지 않고 건강을 유지키 위한 운동이라 생각하면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어요. 이런 일들이 저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 산새노래 들어가며 꽃들과 나무와 대화하며 집안을 한 바퀴 돌면 마음이 깨끗해 져요. 오늘하루 24시간 선물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본론으로 재능 기부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서울에서 전반기 삶을 마치고 2000년경 고향인 대전으로 여생을 살러 왔습니다. 생활에 보탬을 얻고자 몇가지 시도도 해 보았지만 순조롭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일본어 재능기부를 하자고 맘먹고 대전시청부터 시작했지요. 쉽게 잘 가르친다는 평도 있었고 저도 재미가 나서 본격적으로 나섰지요. 이곳 저곳 기관을 찾아 다니며 일본어를 가르쳤어요. 어언 20년 가까이 되는 군요. 요즈음은 제가 직접 에이스아카데미라 이름지은 공부 교실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어요. 일본어 외에 중국어도 시작했어요. 솔직히 중국어는 실력이 부족합니다. 집에서 제가 선수학습을 해 가서 가르치고 있어요. 그렇지만 중국어를 소개하는 단계는 제가 쉽게 잘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을 좀 더 알기 위해 작년에는 두 달간 중국 대련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지요. 
6 개월마다 새 수강생을 맞는데 매번 매번 가슴이 설렙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분들과 인연을 짓게 되는가 하고 말이지요. 1만명 제자를 만드는 것이 제 후반기 생의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거쳐가신 분은 이천명은 월씬 넘을 것입니다. 선생님되는게 꿈이었는데 지금 행복한 선생님이 되었어요.

애로사항 같은 것이 있나요?
무료로 일본어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가 쉽지 않아요. 수강생 모집이 어렵다는 이야기 이지요. 개인정보에 엄격한 시대이다 보내 쉽게 문자도 보낼 수 없고, 빠듯한 생활에  돈을 들여 신문광고를 낼 수도 없구요.  또 시작인원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어 막판에는 반밖에 안 남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물론 외국어 공부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수강생들이 좀더 열정을 가지고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무료다보니 귀하지 않게 느끼시는 분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렇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분도 많이 계셔서 위로를 받습니다.

정재홍선생은 대학에서 식품을 공부하고 해태그룹에 입사하려 음료와 유제품을 연구 개발하면서 우리나라 식생활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기여 했다. 해태유업 기술연구소장을 끝으로 해태에서 나온 후 서울 신촌에 있는 중앙정보처리학원 원장이 되어 컴퓨터 인재를 양성했다. 2000년에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왔다. 2008년부터 7년간 구봉신협이사장으로 선출되어 금융을 경영했다. 슬하엔 결혼하여 각기 독립된 생활을 하는 두아들이 있다. 현재는 대전시 서구 흑석동 안물안동네에 둥지를 틀고 초등교사로 정년을 마친  부인 김순진여사(69세)와 오순도순 살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안물안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