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족이나 연인과 늘 함께하기를 바라고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다. 지금은 누구나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쉽게 사람의 모습을 보관하고 꺼내 볼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강한 애정, 즉 자기 현시욕을 갖고 있다. 여러 가지 형태로 자신이 살았던 증거를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개인의 초상화는 그런 욕망을 채워주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 오동희 화백

“인물 초상을 그리며 사진이 못 잡아내는 느낌, 상대방의 성격까지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진 한 장은 열 마디 말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진이 없던 과거에는 초상화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넬슨 만델라, 엘리자베스 영국여왕, 리비아 카다피 대통령, 프란치스코 교황, 김수환 추기경, 대우증권 역대 CEO…. 오동희 화백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인물 초상 전문 작가로 정·재계와 문화예술계 등의 수많은 인사를 그렸다. 화폭에 깊게 배인 조형의 언어, 수천 번의 터치로 완성되는 오롯한 삶의 초상, 매끈한 표면 대신 셀 수 없는 덧댐이 만들어낸 투박한 질감으로 대상의 감정과 느낌, 인생을 담아내고 있다. 오 화백은 “초상화는 사실적인 표현 속에서 인물의 특징을 강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붓을 들 수 있는 한 혼신의 힘을 다해 감동을 줄 수 있는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서대 박물관에 역대 대통령 초상화 작품 소장

▲ 김수환 추기경

오동희 화백은 까루젤 뒤 루브르를 비롯한 해외의 아트페어에 참여했으며, 천주교 어농성지 순교자 8인의 초상화에 이어 올해에도 새로운 작품 작업에 한창이다. 2011년 개관한 한서대학교 역대 대통령자료실에는 1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19대 문재인 대통령까지 연보, 휘호, 앨범, 사진을 비롯한 수 천여 가지의 기록물들과 세계 7개국 정상들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초상화는 동서양인의 서로 다른 피부 상태와 골격을 연구하며, 수많은 표정으로 완성되는 미세한 주름에 이르기까지 실존했던 사람의 삶을 단 한 장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오 화백은 “명망 있는 분의 초상을 그릴 때는 매우 신중하다. 역대 대통령 초상화 작업에서 과거의 어진을 다루듯이 깊은 연륜과 관찰, 표현의 극치를 생동감 넘치게 표현할 예정이다.

‘오동희 스타일’의 화풍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물화에 대해 ‘끈기, 연륜, 생동감’이라는 3가지 요소를 강조한다. 이에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릴 때 표정과 인상, 걸어온 길과 치적을 얼굴 표현에서 중요하게 여긴다. “지금까지의 대통령 초상화들과는 다른 감각을 보이고자 붓을 들었는데, 봄이 찾아온 것도 까맣게 잊을 정도이다. 한 장을 완성하는데 적어도 3주 이상을 잡고 진행한다. 올 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갤러리 전시를 예정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맡은 오 화백은 서울대교구의 승인을 받아 故 김수환 추기경의 공식 초상화를 완성시킨 주인공이다. 2012년 바보의 나눔에 전달한 김 추기경의 초상화는 선종 당시 사용된 영정사진을 그린 초상화 1점과 자신의 작품전에 전시했던 생전 추기경의 따뜻한 모습을 그린 초상화 2점등 총 3점이다.

“최고의 초상화가로 기억되고 싶어”

▲ 프란치스코 교황

그림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예술도 없다. 미술만큼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예술도 없다. 태어나면서 글씨보다 먼저 만나는 것이 그림이고, 먼저 해보는 것이 그림이다. 어쩌면 그림이야말로 삶의 시작이고, 삶 그 자체이며, 삶의 다양한 표현인지 모른다. 오 화백의 화폭에 담겨있는 얼굴들은 금방이라도 말을 건넬 것 같은 사실적인 묘사와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사실을 따라 그리는 것을 넘어 그의 작품은 사려 깊고 따뜻한 깊이가 있다. 22세에 초상화로 전향한 오 화백은 초상화작가를 꿈꾸는 각계각층의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신세계백화점에 처음으로 초상화전문연구소를 열었다.

지난 2016년 4월에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오동희 초상화 갤러리’를 오픈하며 국내 초상화 전문작가의 품격을 높였다. 총 30여 평 규모의 4층 건물에 자리한 이곳에는 김수환 추기경, 프란체스코 교황, 이병철 삼성 창업자 등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 그는 “3층은 갤러리로, 4층은 저의 작품세계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한 강의교실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화백은 80% 이상이 초상화 작업이라 정통 고전 서양화의 기법을 따르지만, 캔버스에 두껍게 밑칠을 한 후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극사실주의 기법을 바탕으로 하되 인상적이면서도 사람의 손맛, 감정이 들어가 있다. 대중이 인식하는 사회적 마스크를 그대로 차용하지만 그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표정과 주름, 눈동자 등에서 대상의 성격과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오 화백은 “우리 미술 시장과 화단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래의 화가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한국의 루시엔 프로이드(Lucian Michael Freud)로 인정받으며, 최고의 초상화가로 남고 싶다”고 전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