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순 작가의 작품 제목은 모두 <프로세스>다. 십여 년 전 구상작가에서 추상작가로 전향하면서부터 실행시키고 있는 자신만의 회화적 프로세스들을 한 단어로 정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들은 완성 단계에 도달해가는 실행 단계로서의 미완(未完)이자, 미완(未完)으로써 완성되는 또 하나의 미완(美完)이다.
신선영 기자 ssy@
<프로세스>
지난 사월에 방문한 김석순 작가의 작업실은 그 자체로 그의 작품과 같았다. 거친 질감이 살아있는 콘크리트 벽면과 기본 골조를 그대로 노출시킨 오픈된 천장,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는 철재 기둥들이 완강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요소들을 걷어냄으로써 자신의 내부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과 일치해 있었다.
“작품에는 작가의 성격이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작업실처럼 작품도 끊임없이 개조해 나갔습니다. 작업실이나 캔버스나 모두 규격화된 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 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저의 강한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본능적으로 이탈되어진 표현들이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의 제목도 모두 <프로세스>라고 짓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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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순 작가. |
김석순 작가는 사회의 통념에 의해, 제도의 권력에 의해, 타인의 이기에 의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지나간 시간들을 <프로세스>를 통해 복기해 나갔다. 그가 “관람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술 전문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한만큼, 자기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존재의 원형을 파악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부식된 철망이나 철판 프레임을 사용해서 표현의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모든 작업은 사각이라는 규격된 프레임에서 이뤄집니다. 이 프레임을 극복하는 것이 결국 저의 몫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추상으로 전향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의미로서의 추상을 되새기며 십년 넘게 매진했고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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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cess, 113.5x73cm, Acrylic on panel, 2018. |
추상 너머
김석순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 열린 인사동 경인미술관에는 삼월의 봄기운이 만연해 있었다. 꽃잎을 에워싸고 있었던 겉껍질이 하나둘 탈피되면서 새로운 사유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도 그의 지각을 뚫고 나온 작품들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굳이 작품의 상징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전해지는 시대적 교감을 위해서다.
“추상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제 작품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숫자와 문자의 나열이 도리어 가벼운 유희로 느껴졌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화두가 긍정적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그럼으로 제 작업에 대한 소명은 다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구태여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감각적으로 전해지는 그림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여운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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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cess, 113.5x73cm, Acrylic on panel, 2018. |
비 의도된 표현에서 직관적인 사고가 예리하게 스쳐가듯이,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마크 로스코(Mark Rothko)나 사이 톰블리(Cy Twombly) 같은 작품으로 남겨지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래서 물감이 흘러내리거나 번지는 비 의도성을 전면에 내세워 감상의 여운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지를 남겨둔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이 미완(未完)으로 완성되는 또 하나의 미완(美完)인 것이다.
“나의 작업은 대부분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놓여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들어진 생각에 충실하려고 한다. 의도된 작업은 그 안에 갇혀서 자유롭지 못하고 틀 안에 경직되어 있는 듯하다. 생각하지 못했던 이미지들이 나오기도 하고 기대했던 것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림은 보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작업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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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cess, 73x113.5cm(x2), Acrylic on panel, 2018. |
김석순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한국, 중국, 싱가폴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서울여성미술대전, 나혜석미술대전, 대한민국환경수채화공모전, 세계평화미술대전, 환경미술대전, 서울여성미술대전, 겸재진경공모대전, 구상전 등에서 다수 수상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한국추상수채화작가회, (사)구상전,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회원이다. 오는 6월 베이징 1503전시장에서 한국중국프랑스 3개국전시회, 7월 한국추상수채화작가회 정기전, 10월 런던어포더블아트페어, 12월 예술의전당에서 구상전 회원전에 참가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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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cess, 162.2x130.3cm(x2), Acrylic on panel,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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