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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존엄사’ 첫 시행, 뜨거운 논란 예고
김 할머니 호흡기 뗀 뒤에도 상태 양호… 세부 기준 마련 시급
2009년 07월 11일 (토) 14:50:14 신세영 기자 ssy@

지난 6월 23일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국내 첫 존엄사를 시행했다. 그러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이후에도 환자가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자 김모 할머니가 존엄사 대상으로 합당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향후 존엄사 적용 기준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 박창일 연세의료원장(가운데)이 6월 24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기자회견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5월 21일 대법원으로부터 회복 불가능한 사망 임박 단계인 것으로 판명 받았다. 이에 따라 병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 결정된 김모 할머니의 호흡기를 6월 23일 오전 10시 22분께 가족들과 담당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제거했다. 이는 김모 할머니가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지 1년 4개월, 대법원의 연명치료 중단 판결이 내려진지 약 1개월 만의 일이다. 그러나 호흡기 제거 후 2~3시간 이면 임종할 것이라는 의료진의 당초 예상과 달리 김모 할머니는 혈압 110~700mmHg, 산소포화도 96%, 호흡18~21을 유지하며 비교적 안정된 자가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병원 측에 따르면 김모 할머니는 현재 폐렴과 욕창, 그리고 별다른 염증 없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존엄사 vs 안락사, 어떻게 다른가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존엄사’를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 즉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무의미한 치료가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의미에서다.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대표적인 연명치료다. 존엄사와 달리 ‘안락사’는 대개 의사가 적극적으로 환자의 죽음을 유도하는 것을 말독극물 등을 투여하기 때문에 즉시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안락사’나 ‘존엄사’ 모두 법적인 용어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종교계에서는 여전히 존엄사를 안락사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의사가 직접 나서 환자에게 약물 등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아니지만 치료를 중단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으므로 ‘소극적 안락사’라는 것이다.
‘존엄사’라는 개념은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자연사법(自然死法)을 제정하고 ‘생전 유언(living will)’을 법제화함으로써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이 임박했다고 진단받은 환자가 인공적인 생명 연장 시술을 보류하거나 중단하도록 사전 유언장을 작성할 경우 이를 인정하는 법으로 죽음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준 것이다. 생전 유언은 글자 그대로 ‘살아 있을 때 효력이 발생하는 유언’이다. 국내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한 것은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 때부터다. 1997년 말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의 부인은 경제적 이유를 들어 퇴원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의사들은 “퇴원을 하면 호흡이 어려워져 사망할 것”이라고 극구 말렸지만 부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결국 집으로 돌아간 환자는 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한 뒤 사망했다. 법원은 “의료행위 중지가 환자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우선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은 2004년 살인방조죄를 인정했다.
   
▲ 5월21일 존엄사 허용 판결을 내린 대법원

세계 주요 국가들의 ‘존엄사 법제화 수준’
세계 주요 국가들은 대부분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법제화 수준은 조금씩 다르다. 미국에서 자발적 존엄사를 법적으로 인정한 것은 지난 1994년 오리건주가 최초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존엄사 정당성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이에 미 연방대법원은 2006년 “존엄사에 대한 결정은 각 주별로 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현재 미국에서 법률로 존엄사를 인정하는 곳은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2곳뿐이다. 하지만 인공호흡기 제거행위 등은 40개 주에서 용인되고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소생가망이 없는 환자들이 ‘공격적인 치료’를 거부할 수 있으며, 생명이 위태로워지거나 자기 의사를 말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대비해 치료 거부 의사를 밝히는 ‘사망 유언’도 있다. 지난 1993년 “3년 이상 식물인간 상태로 있는 경우 영양공급장치를 제거해도 좋다”는 판결이 나온 후 존엄사가 폭넓게 인정되는 추세다. 프랑스에서는 말기 환자에게 존엄사 권리를 인정한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안’이 지난 2004년과 2005년 각각 하원과 상원을 통과했다. 단, 환자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조건은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일본은 생명을 의도적으로 단축시키는 적극적 안락사는 형법상 살인죄로 다루되, 인공호흡기 등 생명연장 수단을 제거하는 존엄사는 대체로 용인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06년 4월 회복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에 대해 사실상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말기 환자 치료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한편, 독일의 경우 판례상으로는 10여 년 전부터 존엄사가 인정되고 있지만 법제화는 아직 되지 않았다. 독일은 존엄사를 “죽음에 있어서의 도움”이라고 부르는데, 독일 연방법원은 이와 관련해 “환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며, 환자의 의지는 신체불가침권의 표현으로 제한 없이 인정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존엄사’ 판결, 너무 성급했다?
대법원이 김모(77·여) 할머니에게 적용한 존엄사 기준이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김씨의 상태를 인공호흡기 없이는 생명이 유지되지 않는 회복 불가능한 단계로 보았다. 따라서 대법원은 호흡기를 제거하면 사망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 보호자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김모씨가 인공호흡기 제거 후에도 24시간 넘게 정상적 호흡을 유지하자 김씨 몸 상태를 ‘회복이 불가능한 사망 단계’로 여겨 ‘존엄사’를 허용한 대법원 판결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6월 24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5월 21일 김씨의 인공호흡기 제거와 연명치료 중단을 승인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만장일치’가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해 판결에 관여한 총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안대희, 양창수, 이홍훈, 김능환 등 4명이 반대의견을 냈다. 안·양 대법관은 “존엄사 취지엔 공감한다. 하지만 김씨가 과연 존엄사 대상인 ‘회복이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접어든 환자인가?”라고 반문했다. 반대 의견을 낸 4명의 대법관들은 “김씨가 의식 회복 가능성이 없다거나 짧은 시간 안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느냐”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김 대법관은 연명치료 중단 결정은 결코 섣불리 내릴 수 없는 것이란 전제 아래 소수의견을 냈다. 이들은 “소송을 제기할 당시 김씨의 남은 수명은 1∼2년으로 추정됐고, 지금도 4개월 이상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돌이킬 수 없는 사망의 과정에 진입하였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세브란스병원 측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지만 판결 근거가 된 ‘사망임박 단계’에 대해서는 항상 반대했다. 환자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사망임박 단계가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다수의견에 대한 불만이 살짝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세브란스병원 측은 대법원의 판결에 수용한다면서도 환자의 존엄사 적용 기준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할머니 가족, 병원에 ‘과잉 진료’ 위자료 추가 청구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방식의 존엄사가 시행된 김모 할머니의 가족은 “병원 측의 과잉진료로 피해를 봤다”며 위자료를 추가로 청구하기로 하고 이미 낸 소송 내용을 변경하기로 했다고 6월 24일 밝혔다. 환자 가족의 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계속 생존하는 걸 보면 병원이 분명 과잉진료를 한 것”이라며 “처음에야 호흡이 없었으니까 인공호흡기 사용이 불가피했지만, 1주일이나 한 달이 지나서는 자발호흡할 수 있었는데도 1년 넘게 씌워 놓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히려 무리한 진료로 환자의 치아가 빠지는 등 신체만 훼손시켰고, 할머니를 돌보며 가족들도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지난해 병원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 이런 피해 사실을 추가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가족들은 김 할머니가 지난해 2월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직검사를 받다 과다 출혈에 따른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자 곧바로 “병원 측의 의료과오 때문”이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기독교계 “식물인간도 영혼 있는 의식적 존재”
국내 처음 존엄사가 시행된 후 기독교계가 존엄사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보수적 교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는 스스로 죽을 권리와 의무가 없으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교회의 분명한 입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이시오니”(욥 1:21)라는 욥의 고백처럼 인간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만이 취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장신대 기독교윤리학 노영상 교수는 “안락사를 시행한 가족과 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보라매병원 사태부터 이번 판결까지 근 10년간 우리 사회에 큰 변화가 있었다”며 “이런 식으로 소극적 안락사가 점차 인정되면 점점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상원 총신대 교수 또한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생물학적 생명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영혼도 살아있기 때문에 의식적인 존재와 활동을 계속하는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전했다. 한국기독교협의회 황필규 사무국장은 “존엄사가 의사들만 얘기할 대상이 아닌데 의학적 관점에만 치중하다 보니 호흡기 제거 여부에만 매몰됐다”고 지적하면서 “존엄사의 정확한 개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존엄사 기준 논란…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 시급
일반적으로 존엄사의 대상이 되는 환자는 ‘회복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한 경우’로 말기 암환자가 대표적이다. 대법원이 김씨의 존엄사를 허용한 것도 의학적으로 의식의 회복 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뇌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빗나갔다. 환자상태에 따른 단계별 가이드라인을 만든 세브란스병원도 김 할머니가 2단계(인공호흡 식물인간)에서 3단계(자발호흡 식물인간)환자로 되자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혼란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법률적 잣대와 한국적 정서를 반영하는 존엄사 가이드라인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애초부터 대법원이 제시한 존엄사 허용 기준은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일 뿐으로 개별적인 사안들과 관련해 보다 세부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존엄사를 시행한 것은 성급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김 할머니가 인공호흡기를 뗀 6월 23일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국립암센터 등 10개 의료기관 및 의료단체 인사가 참여하는 ‘연명치료 중지 관련 지침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 교수)를 구성, 첫 모임을 갖고 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했다. 무엇보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의료와 법조계, 인권 단체 등이 참여 기준을 만들고 공청회 등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것. ‘사망임박단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히 설정하고 연명치료를 중단할 경우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할지의 준거(準據)가 마련된다면 최소한의 부작용은 없앨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환자 본인의 존엄사 의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매우 중요하다. 의식이 분명한 상태에서 유언장이나 사전의료지시서 등을 작성, 자연스런 죽음을 맞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시하는 것이다.

존엄사는 생명의 존중과 생명의 경시라는 양면성을 지닌 매우 예민한 문제다. 잘못 접근할 경우 존엄사가 곧 안락사라거나 ‘합법적 고려장’이라는 윤리적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 웰다잉(well-dying), 즉 품위 있는 죽음은 이제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다. 급속하게 고령화로 치닫는 사회에서는 갈수록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품위 있는 죽음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에 따른 임종 환자 관리지침을 만들어서 의료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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