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로 대종상영화제 감독상, 최우수작품상 등 역대 최다인 15개 부문을 휩쓸며 1231만여 명의 관객을 사로잡은 추창민 감독. 유려하고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독보적인 감성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사랑을 놓치다>, <마파도> 등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연출력을 보여준 그가 2018년 <7년의 밤>을 통해 자신의 스펙트럼을 또 한 번 확장한다.

신세영 기자 syshin@

추창민 감독의 차기작 <7년의 밤>(3월 28일 개봉)이 지난 3월 21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언론시사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7년의 밤>은 한 순간의 우발적 살인으로 모든 걸 잃게 된 남자 ‘최현수’(류승룡)와 그로 인해 딸을 잃고 복수를 계획한 남자 ‘오영제’(장동건)의 7년 전의 진실과 그 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류승룡은 “인생을 살면서 ‘소중한 것을 잃을 때 인간은 어떤 반응을 할까’,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의 끝이 어딜까’ 를 깊이 있게 탐구했다. 촬영 내내 그 감정에 완전히 몰입하여서 촬영이 끝난 6개월간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장동건은 “배우로서 여한이 없는 작품이었다. 액션 장면 촬영 중 귀를 다쳤고 40바늘 정도 꿰맸는데, 영화 촬영 전후로 귀 모양이 조금 달라졌다. 훈장처럼 느껴진다”라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송새벽은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딴 지 얼마 안 돼 영화를 제안 받았다.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비극적인데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싶었다”고 밝혔다. 복수의 희생양이 된 살인자의 아들 ‘최서원’ 역의 고경표는 “아역을 맡은 ‘서원’(탕준상)과 7년 후 내가 표현한 눈이 너무 닮아있어서 굉장히 신기했다. 이렇게 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는 처음이라서 놀랍다. 선배님들과 함께하게 돼서 영광이었다”며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소감을 전했다.

정유정 작가 소설 원작, 스크린으로 재탄생

정유정 작가의 소설 ‘7년의 밤’은 2011년 출간 2주 만에 베스트셀러 등극, 2011년 주요 미디어 및 도서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것은 물론, 누적 판매 부수 50만 부를 돌파, 독일, 프랑스, 중국, 태국, 대만, 일본, 베트남 등 세계 각국에 번역 출간됐다.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탄탄하고 흡입력 있는 서사와 생생한 리얼리티, 힘 있는 문체로 그려낸 원작 소설은 문단과 독자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우발적 살인으로 인해 파멸해가는 한 인간과 선악의 교묘한 경계라는 무거운 소재를 인간 내면에 대한 치밀한 분석으로 담아낸 이 소설은 정유정 작가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또, 출간 직후 15개 영화사의 러브콜을 받는가 하면 스크린으로 보고 싶은 원작 1위에 선정될 만큼 영화화에 대한 열망이 뜨거웠다. 2018년 스크린에 새롭게 재탄생한 <7년의 밤>에 대해 정유정 작가는 “영화화 소식을 들었을 때, 허구였던 내 소설 속 공간과 인물들이 실제 물리적인 공간, 호흡하는 인물로 탄생한다고 생각하니 설렜다. 원작 속 캐릭터를 감독이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성했을 지에 대해서는 열려있는 부분이고 달라질 수 있는 지점이라서 이 또한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최현수’ 역에 류승룡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딱 맞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워낙 그의 팬이었고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영제’는 지저분한 악당이 아니라 말끔하면서 무섭고 섹시한 악당이었기에 누가 그 배역을 연기할 지가 제일 궁금했었다. 장동건 배우는 내가 생각하는 악당을 구현하기에 딱 맞는 모습을 가졌고, 그 선한 이미지에서 표현해 낼 악함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덧붙였다.

완벽한 한 컷을 위한 제작진 노력부터 배우들 투혼까지
‘오영제’의 대저택, 짙은 안개가 깔린 숲, 수몰된 마을을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호수, 거대한 스케일의 댐 등 영화 <7년의 밤> 속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은 바로 세령마을이다. 원작 소설 속 정교한 묘사로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세령마을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7년의 밤> 제작진은 약 10개월 동안 대대적인 장소 섭외 과정을 거쳤다. 제주를 제외한 전국 팔도에서 원하는 장소들을 찾아낸 미술팀은 이곳들을 하나의 공간처럼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제작진은 전국의 수목원과 저수지를 다니며 세령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숲들을 찾아냈고 그 안에 실제 마을을 조성했다. 그중 하나인 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상관 저수지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장소다. 빽빽이 우거진 침엽수림이 자아내는 음산한 분위기에 배우들까지 놀랐다는 후문이다. 숲 속 ‘오영제’의 대저택은 버려진 저택을 찾아내 뼈대만 살리고 새로 제작한 것이다. 이재성 미술감독은 “대저택이 세령마을의 주인인 ‘오영제’의 권력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라며 “그 압도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강조했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살인자가 된 ‘최현수’로 분한 류승룡은 사건 이후 수감된 7년 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흰 머리와 잔 주름, 한껏 여윈 모습 등 그간의 고단한 세월을 짐작하게 하는 모습으로 변신했다. 그는 “성인이 된 아들 ‘최서원’ 역의 고경표와 각자 분장을 하고 처음 마주했을 때 울음이 절로 터졌다”며 영화 속 리얼한 노인 분장이 몰입감을 더했음을 전했다. 장동건은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섬뜩하면서도 완고한 중년의 ‘오영제’ 그 자체가 되기 위해 촬영을 준비하는 기간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특수분장 없이 매일 같이 면도칼로 머리를 밀며 깊은 M자 탈모 머리까지 만들어냈다. 그는 “관객이 기대하지 않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종의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며 “외양적인 모습에서도 뻔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모든 것을 목격한 남자 ‘안승환’ 역의 송새벽은 잠수부 역할을 위해 근육을 키웠으며, 복합적인 감정 변화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체중 감량을 통해 얼굴의 각을 살려냈다. 고경표 또한 ‘서원’이 미숙한 잠수부 생활을 암시하기 위한 디테일로 이마에 흉터를 만들었으며, ‘서원’이 살아온 힘겨운 생활을 대변하기 위해 무려 16kg이나 체중 감량을 감행했다.

Q. <7년의 밤>을 연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정유정 작가의 후기 중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그러나’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글이 있었다. 이 부분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저의 전작들을 보면 거의 성선설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성악설을 주제로 시작을 했던 이유는 ‘과연 그 악이 진짜 악일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악의 행동들, 그 이면에 깔린 이 이야기 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또 다른 ‘그러나’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을 영화 속에 표현해보고 싶었다. ‘최현수’라는 인물이 아이를 죽이고 그것을 유기했을 때 그 이면의 ‘그러나’는 무엇일까? ‘오영제’라는 인물이 그렇게 포악하고 무자비한 아버지가 된 그 이면에는 또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사실과 진실 사이, 이야기 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숨겨진 이야기. 그게 이 영화의 출발이 됐던 것 같다.

Q.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세령마을이다. 세령마을이라는 공간을 관객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구현해 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가 담길 공간이나 분위기, 그 상황들을 사실감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안개가 자욱한 세령마을의 분위기부터, 댐을 현실감 있게 구현하는 문제, 수문이 열리고 물이 쏟아질 때의 모습 등에 많은 신경을 썼다. 다만, 세상에 세령마을이라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전국 팔도를 돌았고 전국 각지 이미지에 맞는 곳들을 섭외했다. 이때 댐과 호수, 오영제의 저택 등이 있는 세령마을을 하나의 공간처럼 느끼게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Q. 충북 음성군의 최대 저수지 중 하나인 원남 저수지를 포함해 전국 각지의 호수에서 촬영했는데, 비화가 궁금하다.
- 전화도 터지지 않고 차가 들어갈 수 없는 험한 곳이어서 배를 타고 다니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촬영했다. 미술팀은 호수 안에 잠긴 마을을 실제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물 속에 세트를 제작해가며 비밀을 간직한 호수와 수몰된 마을의 모습을 완벽한 비주얼로 구현해냈다. ‘현수’와 ‘영제’의 몰입감 넘치는 액션 장면을 위해 대청댐 위에 세트를 제작했다. 이것이 <7년의 밤> 작업 중 가장 어려웠던 작업이었다.

Q. 배우들의 캐스팅 과정은 어땠는지?
- 류승룡 배우는 연기력이나 테크니컬한 부분에서는 전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전작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함께 했는데 ‘연기를 저렇게 잘 할 수 있구나’라는 감탄을 했다. 상대 배우와의 연기 합을 잘 맞추고 살려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배우가 생각이 나지 않았고, 제안을 했을 때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오영제’ 캐릭터에 대해서는 악한 이미지의 배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선을 가진 배우가 악을 표현했으면 하는 것이 가장 중점이 되는 부분이었기에 장동건 배우에게 제안을 했고 그가 가진 세련된 느낌 또한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졌다. 송새벽 배우는 그 연기의 결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 그가 선보이지 않은 다른 부분을 다른 감독들이 먼저 쓰기 전에 마음껏 활용하고 싶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사랑할 이유가 바로 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경표 배우는 머리를 짧게 깎은 사진을 처음 보았는데 어린 ‘서원’ 역과 굉장히 닮아있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미지가 잘 맞아 떨어졌고 연기 또한 워낙 잘하는 배우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Q. <7년의 밤>만의 관람 포인트는?
- 소설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운명의 폭력성과 맞선 인간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날 실수로 교통사고를 내면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남자가 목숨까지 바쳐서 지키고자 했던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다. 아들을 지키려고 하는 ‘최현수’의 사투에 방점을 찍고 보았으면 한다. 원작을 토양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을지, 감독의 상상력, 이야기를 끌어가는 서사의 힘에 집중해서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Q. 영화를 한 마디로 소개한다면?
- <7년의 밤>은 피의 대물림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 고통을 줬던 '현수'의 아버지, 현재 고통을 받고 있는 남자 '현수'. 앞으로 고통을 줘야 할 '현수'의 아들 '서원'. 이 3대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기존 스릴러적인 요소도 있지만, 그 세 사람의 이야기가 관객들로 하여금 또 다른 스릴러를 보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