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신철의 행보가 화제다. ‘달항아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예가 신철은 달항아리의 넉넉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표면 이면에 숨겨져 있는 올곧은 힘을 표현하고자 심혈을 기울여온 작가다.

윤담 기자 hyd@

달항아리는 하얀색에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처럼 하얀 색깔과 유려한 곡선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예술품의 하나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우아한 자기 중 한국의 미감을 고스란히 담아낸 달항아리는 불필요한 장식과 색채 없이 오로지 하나의 형태로 완성된다.

그 특별하고도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위하여

▲ 도예가 신철

“달항아리는 두 개의 그릇을 합쳐 만든다. 접착면인 허리 부분이 불속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생동감 있는 조형성을 만들어 낸다. 그릇이 포개지면서 물레방향이 어긋나서 벌어지는 양상이다. 불속에서 그릇의 흙은 물레방향으로 운동을 하게 마련이다. 보름달 직전의 이지러진 모습이 생겨나는 이유다.” 겉모습만 보면 달항아리는 비대칭이다. 매끈한 균형과 흠잡을 데 없는 좌우 비례를 갖춘 게 아니라 좌우가 엇박자다. 그래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달항아리를 두고 ‘천의 얼굴을 지녔다’고도 말하는 이유다. 이는 달항아리를 한 번에 가마에서 구워낸 것이 아니라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 둘을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제아무리 노련한 도공도 당시의 기술로는 한 번에 구워낼 수 없었던 것이다. 도예가 신철은 “달항아리는 자연주의 동양미학의 정수다”면서 “인본주의 서양미술에선 선과 면을 통해 주로 인물위주의 그림을 그렸다면 자연주의 동양미술에선 선 위주로, 그러나 면과 분명한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산수화를 주로 그렸다. 달 항아리는 면을 통해 선이 유추되는 조형물의 정수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런 그림도 없이, 오로지 유백색의 빛깔만 가진 달항아리는 소박하지만 또한 흔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달항아리는 조선 후기에 등장했다가 갑작스레 자취를 감춰버렸다. 현존하는 달항아리는 국내외에 20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깨지기 쉬운 데다 일상생활 속에서 손과 손을 거쳐 전해져온 전세품이다보니 귀할 수밖에 없다. ‘고려 불화’도 세계적으로 160여점 존재하는 것에 비하면 그 희귀성이 두드러진다. 대를 이어 전해진 달항아리는 그만큼 소중한 문화재다. 하지만 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다채롭게 변주되면서 특별하고도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도예가 신철이 달항아리에 매달리는 것 또한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항아리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도예가 신철이 “허여멀건한 것이 속없이 순한 마음씨 같아 보이는 데도 정작 만들어지기까지 달항아리 만큼 까칠하고 까다롭게 구는 녀석도 없다. 만들기 편하겠다고 가스 가마를 쓰면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싫고, 돈 아끼려고 기름바른 나무판자를 쓰면 푸르스름하니 값싸 보여서 싫었다”면서 “참나무를 써보니 성질이 괴팍하여 불 조절이 쉽지 않아 당연히 이리 만들어진 것은 빛깔이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은 소나무를 택하고 보니 일일이 껍질을 벗겨내지 않으면 마치 떠꺼머리 여드름 총각 마냥 잡티 그득해져 망치게 되어 고생스러워도 옛 방식이 답이겠거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달항아리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
우리나라,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등에서 지금까지 총 18회의 개인전을 가진 도예가 신철은 자신만의 달항아리로 세계 각국에서 극찬을 받고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2005년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의 달항아리 명품>전을 보고 ‘달항아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달항아리 제작에 매달려 왔다. “부드럽고 넉넉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것이 나에겐 첫 도전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것도 욕심이란 걸 알았다. 그동안 소박함, 준수함, 당당함, 넉넉한, 너그러움, 풍성함 등등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자 했던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30여년을 도예가로 살아왔던 그에게도 달항아리의 품성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 1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그가 찾고자 했던 자신만의 달항아리 조형은 넉넉하고 힘 있는 건강함이다. 이제 임금의 성품을 가진 달항아리를 만들고 싶다는 그다. 도예가 신철은 “달항아리는 기본적으로 소박하고 시원하며 풍만하고 준수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나는 그 위에 임금처럼 힘 있는 건강함을 더하고자 한다. 솔직하고 당당한 형을 통해 마음을 울리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겠다”고 전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