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 오래 사는 게 재앙이라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정답이다. 그러나 전자가 정답이 되려면 여기엔 전제가 따른다. 남에게 꿈질을 안 할 만큼의 돈, 다른사람의 부축을 받지 않을 만큼의 몸, 그리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만큼의 자존감이 받혀주어야 한다. 정재홍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황태일 기자 hti@

▲ 정재홍

대전시 서구, 도시권을 벗어난 한적한 시골 흑석동에 <물안리>란 마을이 있다. 갑천 상류물이 마을을 품고 휘감아 흘러 이 마을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물안리를 둘로 나누어 좀 더 안쪽 산아래에 자리잡은 세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을 <안물안> 동네라 부른다. 정재홍씨는 삼십년 가까이 살았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후반기 삶을 살기위해 2000년 초에 이곳 안물안으로 들어왔다. 어느덧 자연에 묻혀 원시생활(?)을 하며 살고 있은지 근 20년이 되어 간다. 아직까지 연탄을 갈며 개를 키우고 사랑채에 놓여진 화목보일러용 땔감으로 산에서 고사목을 잘라 지게로 지어 나른다. 텃밭에 남새를 심어 유기농으로 가꾸어 뜯어 먹고, 집을 지켜주는 개들에게 밥을 주고, 집 주변에 심어놓은 꽃나무을 가꾸고 그리고 틈틈이 공부 가르칠 자료를 준비하고, 그러면서 가끔은 하늘을 처다보며 그 푸르름에 감탄하기도 하며, 그래서 그는 지금이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1. 선생님께서 행복하다고 스스로 말씀하시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지요.
젊었을 때는 욕심도 부려보고 경쟁에서 이기고도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하여튼 이런 욕망들로 인하여 행복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일흔 중반에 들어서니 돈도 많이 있으면 짐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가도 깨닫게 되고 그리고 사후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되니 서서히 행복이 찾아드는 것 같습니다. 내 몸을 쉬게 할 비 새지 않는 집이 있고, 삼시세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고, 추위를 견딜 흉하지 않은 옷이 있고, 나를 포함한 가족들 모두 건강하며 각자 건전하게 자기 생활들을 해가고 있고 게다가 나는 매일 나에게 행복을 주는 어른 학생들을 맞아 일본말과 중국말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얻었으니 이것이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행복을 얻는 기술인 것 같습니다.

2. 오래동안 재능기부로 일본어를 가르쳐 오셨다는데 그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2000년부터 일본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고 중국어는 2016년부터 가르쳤습니다. 제가 행복을 찾는 방법으로 이 일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거든요. 둘째는 내 생명을 반납하는 날 그동안 이 아름다운 지구별을 디디며 살아온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무엇인가는 선물을 마련하여 생며과 함께 반납을 해야겠는데 눈 없는 사람에게 눈을 달아주는 일을 열심히 하면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제가 이 시점에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에 대전시청에서 일본어재능기부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여러 곳을 다니며 재능기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금년 1월 에이스아카데미 개강에도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울 새 학생이 50 여분이 오셔서 저를 행복하게 해 주셨습니다.

3. 중국어도 가르치고 계시다는데 중국어는 어떻게 배우셨나요.
오래 동안 일본어를 가르치는 중에 점차 일본어 인기가 줄고 중국어가 뜨기 시작하는 것 같았어요. 항상 중국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지속적인 공부를 못 헸어요. 어느 날 결심을 했지요. 중국어를 가르쳐야 저의 재능기부활동이 연장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일본어 기초를 가르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에서 공부 해다가 중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제 스스로 공부를 아니 할 수가 없더군요. 이렇게 중국어 가르치기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공부하는 거지요. 집에서 열 시간 공부해간 것을 한 시간 가르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의외로 잘 이해가 된다는 거예요. 지난해 여름엔 두 달간 중국 대련에 가서 어학 연수겸 중국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중국은 일본과 함께 우리의 이웃국가 이고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할 지구가족 입니다.

4. 선생님의 지난날 삶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그 시대 대부분의 다른 친구들처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몇 안 되는 중학생이 되어 대전이라는 도시 아이들과 친구를 맺게 되었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 부모님의 힘을 덜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고등학교는 실업계를 택해 전기를 공부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대학에서는 식품을 공부했습니다. 학훈단 7기로 전방에서 초급장교로 군 생활을 마치고 나서 다시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를 끝냈습니다. 삼립식품을 거쳐 해태제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해태에선 음료연구실에서 써니텐 등 과실음료를 개발하였고 유업으로 옮겨 유제품을 공부했습니다. 기술연구소장직을 끝으로 해태와 인연을 마쳤습니다. 다음 직장으로 중앙전자 대표이사, 중앙정보처리학원 원장직을 끝으로 전반기 삶을 마감하고 영어공부를 한다는 명분으로 캐나다로 건너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귀국 후 서울을 떠나 고향인 대전으로 혼자 내려왔고 이듬해인 2001년 와이프도 대전으로 내려와 함께 안물안마을에 둥지를 틀어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대전에 와서부터 바로 일본어 재능기부를 시작헸고 그 사이에 구봉신협 이사장에 선출되어 두 임기를 지냈습니다. 2017년 5월에 한중일친선교류협회 산하에 에이스아카데미라는 예술문화교육원을 설립, 원장으로 위촉되여 지금 활동 중입니다.

5. 에이스아카데미에 대해 좀더 설명해 주세요.
Art, Culture & Education Academy 의 이니셜을 따서 ACE Academy 라 했습니다. 현재는 일본어와 중국어 위주로 교육하고 있지만 점차 활동 범위를 넓힐 계획입니다. 2월부터 격주로 인문학교양강좌를 개설할 예정입니다. 본인이 속해있는 <한다발> 모임 회원 중에서 대학교수위주로 재능기부를 받아 강사로 모시려 하고 있습니다. 6개월 12개 강좌를 한 주기로, 1년에 2개 텀을 운영하려 합니다. 또한 중학 3학년생중 생각이 올바른 학생들을 선발하여 학교에서나 부모님이 가르치지 못하는 부분을 경험케 하여 사회의 리더로 키울 계획입니다.

6. 한다발 모임이 궁금해 집니다. 어떤 모임입니까?
사회가 어지러웠던 시절 1962년 대전의 몇몇 고등학생들이 나라사랑모임을 만들었어요. 고등학생들이 만든 모임으로 60년 가까이 이어 매려오는 모임은 대한민국에는 없지 않나 싶네요. 처음 창립에 참여했던 회원은 이제 칠십 중반에 이르렀지요. 중간에 연락이 끊긴 회원도 많지만 아직도 많은 회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각자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정정한 모습으로 담담히 말을 이어가는 정재홍 선생의 눈에서는 아직도 열정의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이런 분이 있어 우리사회는 아름다워진다는 생각을 하며 안물안을 떠나왔다. 어느덧 장평보에 담긴 갑천냇물에 황혼의 붉은 빛이 잠기고 있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