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뿌리인 서예는 선비정신의 발로이자 성찰 도구로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해온 생활예술이었다. 옛 선비들은 자신의 마음을 닦는 수양의 일환으로 글씨를 써왔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붓과 펜 대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은, 마음을 닦는 행위라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또는 생각을 풀어내는 정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윤담 기자 hyd@

풍헌 고하윤 선생의 행보가 화제다. 선비 정신으로 평생을 전통 서도에 매진해온 고하윤 선생은 서예계의 원로 작가이자 병풍서의 대가다. 유려한 흐름으로 펼쳐진 품위 있는 글씨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담아내고 있는 풍헌 선생은 규당 오상순 선생과 혜정 박태준 선생을 사사하며 필력을 키웠다. 풍헌 고하윤 선생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서체별로 동양의 경서 담긴 병풍서 제작
병풍서를 통해 한국의 예술성을 널리 알리고 있는 풍헌 고하윤 선생은 행서, 초서, 전서, 예서, 해서 등 서예의 오체를 섭렵한 인물이다. 병풍은 표현되는 주제에 따라서 ▲일월병(日月屛)▲고정동수병(古鼎董繡屛) ▲장생병(長生屛) ▲백동자병풍(百童子屛風) ▲신선도병풍 ▲글씨병풍 ▲화조병풍 ▲도장병풍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글씨병풍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가훈이나 계서(戒書)를 적은 병풍을 1구씩 비치하여 좌우명으로 삼게 한 데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백수백복이라 하여 수·복자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만들기도 했다.

▲ 고하윤 선생

병풍서의 대가인 풍헌 선생은 지난 1994년부터 2014년까지 21년에 걸쳐 전서 900폭, 예서 1,698폭, 해서 258폭, 행서 6,411폭, 초서 2,238폭, 한글 204폭 등 총 길이 1만6,275m, 1만1,709폭, 1,335질의 병풍서를 제작해 2015년 대한민국 최다 병풍서 기록을 공식 인증받은데 이어 지난해 2월에는 세계 최다 병풍서로 EU(유럽연합) 오피셜 월드 레코드로부터 세계 최고 공식기록인증도 획득했다. 풍헌 고하윤 선생은 “세계기록은 개인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큰 의미다”면서 “병풍서 세계기록을 인증 받은 만큼 이를 문화재로 만들고 싶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끊임없는 정진과 도전으로 일구어내는 희열과 감동이야말로 서예가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이자 기쁨이다”고 말했다. 그간 풍헌 선생이 제작해온 작품들은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한글 등 서체별로 분류해 집대성한 엄청난 규모다. 뿐만 아니라 대학, 중용, 예기, 명심보감, 반야심경, 제갈량의 전출사표, 소동파의 적벽부, 굴원의 이소경, 주자의 권학문 등 주옥같은 동양의 훌륭한 경서들이 모두 담겨 있으며, 해석을 달아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는 더욱 크다. 이러한 풍헌 선생의 대표 작품으로는 서체별 명시 병풍서, 20유형별 명시 병풍서 등이 있다.

조용하고 진한 묵향으로 울림 전하다
대한민국정수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 전국공무원서예대전 대상, 강원서예대전 대상 등 110여 회 이상 수상한 풍헌 선생의 작품은 강원대 중앙박물관, 대전대 박물관, 춘천박물관, 한국미술관, 한국서예미술관, 서원미술관 등에 전시돼있다. 한국서예가협회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호남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역임한 풍헌 선생은 현재 호남미술대전 고문, 정수 서화 미술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도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서예문인화 원로총연합회전 이사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최근 해외에서도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풍헌 선생은 중국 계림시에서 세운 계림국제화평우호비림에 그의 작품이 선정되어 석각(石刻)되는 영예를 누렸다. 지난해 한문성경보감 1천928폭을 왕희지 필체로 완성한 풍헌 선생은 최근 불교사상을 설한 경전 ‘묘법연화경’을 왕희지체로 교본을 따라 2,292폭으로 완성했으며, 그가 보관하고 있는 1957년 정유년 정선아리랑 8폭 병풍서와 함께 한국기록원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종교와 사상을 넘어 예술작품으로 모든 것을 품어내는 높은 경지의 예술혼을 발휘하며, 세상을 향해 조용하고도 진한 향기로 울림을 전하고 있는 풍헌 고하윤 선생. 그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