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과 루 게릭
국내외 톱스타들과 스포츠 스타 등 유명 셀럽들이 자신의 머리 위에 가차없이 얼음물을 붓고 있다. 이들 모두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는 것.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미국 루게릭병협회가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일깨우고 루게릭 환자를 돕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한 모금 운동의 일환이다. 이 모금운동에 참가한 참가자는 얼음물이 담긴 물통을 자신에게 붓고 다음 참가자 3명을 지목한다. 지목을 받은 참가자는 24시간 내에 얼음물을 뒤집어 쓰거나 루게릭병 재단에 100달러를 기부해야 한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이벤트에 동참한 셀럽은 개그맨 김준호와 가수 팀이다. 김준호는 페이스북 코리아 조용범 대표에게 추천을 받아 임무를 완수하고 야구선수 류현진과 배우 박한별, 가수 정준영을 지목했다. <일간스포츠 2014년 8월 21일>

▲ 루 게릭(왼쪽)과 베이브 루스

1925년 6월 2일, 낯선 이름의 한 야구선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2년 전 뉴욕양키스에 입단해 주로 대타로 나서다가 1루수가 두통으로 결장한 틈을 타 그 자리를 꿰찬 루 게릭(본명 헨리 루이 게릭)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타석이 이후 14년간 이어질 대기록의 신고식이고, ‘20세기 최고 타자’가 탄생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대기록은 1995년 칼 립켄 주니어에 의해 깨질 때까지 56년 동안 난공불락이었다.
루 게릭의 등장과 함께 뉴욕양키스는 홈런왕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을 3번, 4번으로 내세워 양키스의 신화를 쌓아갔다. 1927년은 그 정점이었다. 베이브 루스가 60개 홈런을 치고 루 게릭이 0.373의 타율에 47홈런, 175타점을 올린 덕에 양키스가 110승 44패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1999년, 스포츠 전문체널 ESPN은 ‘1927년의 뉴욕양키스’팀을 미국의 모든 스포츠 중 ‘20세기 최고의 팀’에 꼽았다.
루스와 게릭은 쌍두마차를 이루며 팀의 최전성기를 견인했으나 성격은 정반대였다. 오만하고 자신감에 찬 성격으로 항상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개인 플레이에 치중한 루스와 달리 게릭은 매너있는 신사적인 풍모와 성격으로 요란하지 않은 플레이를 펼쳤다. 항상 가정을 중시하고 부인과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며 자신보다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연봉 중 일부를 사회재단에 기부했다.
‘철마’로 불리며 통산 타율 0.340에 23개의 만루홈런을 포함해 493개의 홈런을 치며 승승장구하던 게릭에게 1938년 어느날 갑자기 몸에 이상이 찾아왔다. 근육이 위축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문에 1938년은 1925년 이후 처음으로 타율이 2할대(0.295)로 떨어지고 홈런도 29개밖에 치지 못했다. 1939년 시즌을 맞아서도 4월 30일까지 2130게임의 연속출장기록을 힘들게 이어갔으나 8경기 타율이 0.143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
결국 루 게릭은 5월 2일 자진해서 경기를 포기하고 6월 13일 비밀리에 검사를 받았다. 36번째 생일인 6월 19일 발표된 진단결과에 따르면, 훗날 ‘루 게릭병’으로 명명된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이 원인이었다.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되어 발병 후 2~5년 사이에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병이었다.
은퇴식이 열린 1939년 7월 4일, 양키스타디움의 6만여 명 관중 앞에 루 게릭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타났다. 16년간의 선수생활에 도움을 준 주변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라고 고별사를 하자 관중석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양키스 구단은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그의 배번인 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매사에 성실했던 이 남자는 곧 뉴욕시 가석방위원회에서 새 인생을 시작해 매일같이 수감자들을 만나 대화하고 결과를 꼬박꼬박 시에 보고했다. 그러나 전신이 마비되는 등 병세가 더욱 악화하자 외부와 접촉을 끊고 병마와 외로운 투쟁을 전개하다 결국 1941년 6월 2일 3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아 전 미국을 슬픔 속으로 몰아넣었다.
1999년 미국에서 ‘20세기 올스타’ 투표를 실시했을 때 20세기 메이저리그 최고스타로 꼽힌 것은 베이브 루스가 아니라 루 게릭이었다. 한국의 박찬호 선수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2004년부터 1승을 달성할 때마다 100만 원을 루 게릭병 환자들에게 기부하는 선행을 베풀었다.

■임영웅과 ‘고도를 기다리며’
임영웅 대표는 ‘한국 연극계의 대부’, ‘소극장 운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산울림 소극장’을 만든 이후 사무엘 베케트 희곡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40여년째 올리고 있다. 80~90년대에는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통해 여성의 삶을 집중조명해 여성연극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연출 60년을 맞아 ‘임영웅 사단’이 헌정 연극을 올린다. 임 감독을 중심으로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손숙·한명구 등이 모두 모였다. 작품은 잉마르 베리만 원작의 ‘가을소나타’로, 8월 22일부터 9월 6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한겨레 2014년 8월 21일>

▲ 임영웅

주간한국이 주최한 자작시 낭송회 ‘시인 만세’를 임영웅(1936~ )이 연출한 것은 1969년 봄이었다.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그러자 주간한국 측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한국일보 소극장 무대에 올릴 것을 권유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8년 전인 1961년 12월 8일 현대연기학원이 서울 충무로 소극장에서 처음 공연한 후 한동안 무대에 올려지지 않고 있었다.
임영웅은 10여년 전 읽어본 적이 있으나 그 후 잊고 있던 베케트의 ‘고도’를 사흘에 걸쳐 숙독하고서 난적임을 깨달았다. 당시 연극계와 언론계는 ‘고도’를 부조리극, 전위극, 반(反) 연극 등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영웅은 이런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해석과 방식대로 1969년 8월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김성옥, 함현진, 김무생, 김인태 등 출연진도 쟁쟁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그해 10월 말 베케트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천우신조였고 하늘의 축복이었다. 신문마다 수상 기사를 쏟아내자 관객이 몰려들었다. 덕분에 1969년 12월 17일부터 23일까지 공연된 ‘임영웅의 고도’는 막을 올리기 일주일 전 공연 전회가 매진되었다. 임영웅은 이후 50년 넘게 연극을 했지만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고도’와 임영웅의 인연은 2013년 말까지 44년 동안 이어지면서 임영웅의 전유물이자 트레이드 마크로 굳어졌다.
임영웅은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 재즈 연주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과 중국을 떠돌아다녔다. 1920년대 말 국내는 물론 일본에까지 명성을 날린 재즈 뮤지션 임태식이 부친이고 유명 작곡가 임원식이 숙부다. 임영웅의 예술적 끼는 휘문고 시절부터 발휘되었다. 부산 피란 시절이던 휘문고 2학년 때 임영웅은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끌어모아 학생예술제를 열었다.
1954년 고교 졸업 후 원하던 대학에 떨어진 뒤 잠시 방황했으나 1955년 서라벌예대에 진학하고 그해 그가 연출한 ‘사육신’(유치진 작)이 전국대회에 입상하면서 연극계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연극 연출을 하면서도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옛 세계일보, 조선일보, 대한일보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임영웅의 트레이드 마크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이던 1959년 임영웅은 도대체 베케트의 ‘고도’가 어떤 작품이길래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키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해 일본어로 된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다. 호기심의 끝은 충격이었다. 재래식 연극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충돌하고,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지니고 있는데 ‘고도’에는 그런 통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어렵다”, “별로다”였다. 그후 ‘고도’는 잊혔다.
임영웅은 연극 연출을 계속하면서도 신문사 기자를 거쳐 동아방송(1963년~ )과 KBS(1973년~ )에서 드라마를 만들었다. 1966년 10월에는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했다. 임영웅은 ‘고도’의 매진에 힘입어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다. 창립단원들은 김용림, 사미자, 윤여정, 윤소정, 최선자, 손숙, 김성옥, 김인태, 김무생 등이었다.
임영웅은 1970년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창단 첫 회 공연에도 ‘고도’를 무대에 올려 ‘고도’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임영웅이 불문학자이자 서울여대 교수인 아내 오증자와 함께 사재를 털고 빚을 얻어 1985년 3월 3일 서울 홍익대 근처에 개관한 산울림 소극장의 개관 작품도 ‘고도’(1985.3.9.~4.20)였다.
극단 산울림은 1985년 소극장 산울림의 개관을 전후로 해서 질적인 변화를 맞았다. 산울림 극장 개관 이전 15년이 시대를 앞선 창작극으로 관객을 만난 기간이었다면 소극장 개관 후에는 새로운 여성 관객층을 찾아 나선 시기였다.
임영웅은 소극장 개관 후 문화 소비층에서 제외되어 있던 중장년층 여성 관객을 극장으로 오게 하는 데 골몰했다.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였다. 이후 장 콕토의 ‘목소리’, 드니즈 살렘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아널드 웨스커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샤 노먼의 ‘엄마, 안녕…’ 등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연극들을 집중적으로 공연하면서 여성의 삶과 정체성을 부각했다. 그 결과 ‘산울림 소극장’은 여성 연극의 진원지이자 메카 대접을 받았다.

산울림 소극장은 여성 연극의 메카
‘임영웅의 고도’는 1988년 서울올림픽 기념 서울국제연극제에 초대되었다. 마침 부조리극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의 마틴 에슬린이 서울국제연극제포럼에 참석했다가 9월 6일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려진 ‘임영웅의 고도’를 보고 찬사를 보냈다. 베케트 전문가인 그의 찬탄은 곧 ‘보증수표’가 되었고 그 후 해외 연극제의 초대를 받았다.
1989년 7월 프랑스 아비뇽에서 펼친 첫 해외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임영웅은 이듬해 아비뇽에서 열릴 더블린 페스티벌에도 초대를 받았다. 그러나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베케트의 고향인 더블린에서 한국어로 된 ‘고도’를 올린다는 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아직 베케트가 생존해 있었다. 그러나 참가를 결정하고 국내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던 1989년 12월 베케트가 눈을 감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베케트가 내 공연을 볼 수도 있겠구나”라며 기대하고 있던 그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임영웅의 고도’는 1990년 10월 1일 마침내 더블린의 무대에 올려졌다. 첫 공연의 막이 내리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튿날 더블린의 최대 일간지는 ‘고도’ 공연 사진과 함께 “한국의 고도는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라는 타이틀로 호평했다. 다른 현지 신문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994년 5월에는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1999년 11월에는 도쿄에서도 성공적인 공연을 꾸몄다.
‘고도’는 1970년대에 산울림 극단 말고도 몇몇 극단에서 공연했으나 언젠가부터 ‘임영웅의 고도’만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임영웅은 43년 동안 ‘고도’를 연출하면서 베케트의 작품에 단 한 자도 단 한 줄도 첨삭하지 않았다. 베케트의 작품은 마치 레고 처럼 정확히 잘 짜여 있어 하나만 빠져도 무너져 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임영웅의 고도’에 변화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한국인의 언어 속도가 빨라지면서 공연 시간이 10분 정도 짧아지고 유일한 무대 세트인 한 그루의 나무 형태가 변한 점이다. 원래는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길쭉한 나무였는데 1989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공연 때부터 소나무 분재에서 힌트를 얻어 S자로 구부러진 모양을 쓰고 있다.

■장개석과 북벌
중국이 1980년대까지 ‘토비(土匪·도적)’라고 불렀던 장제스(1887~1975) 전 국민당 총통을 복권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관영 광명망은 8월 17일 ‘마오쩌둥과 장제스’란 제목의 책을 소개하면서 “장제스는 세 가지 잘한 일이 있다”며 “첫째 북벌(北伐)을 단행한 것, 둘째 항일(抗日) 전쟁을 주도한 것, 셋째 대만으로 쫓겨가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킨 것”이라고 말했다. 책 소개 형식을 빌렸지만, 관영 매체가 대표적 ‘반공(反共)주의자’인 장제스의 공적을 높이 평가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경일보도 8월 8일 “항일 전쟁 당시 장제스의 역할은 대체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베이징 시내에는 ‘장제스 테마 식당’까지 등장했다. <조선일보 2014년 8월 19일>

▲ 장개석

손문이 오랜 숙원이던 북벌(北伐)을 단행한 것은 1920년 6월이었다. 마침 북방의 군벌(軍閥) 간에 내분이 일어나 북벌을 감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북벌로 후방이 텅 빈 틈을 타 손문의 국민당 정부 각료 가운데 한 명인 진형명이 쿠데타(1922.6)를 일으켜 북벌은커녕 쿠데타를 진압하는 데 힘을 소진했다. 쿠데타는 1923년 1월 진압되었다. 손문은 그 때의 경험을 교훈삼아 강력한 정부와 직할군의 필요성을 통감했다. 그 결과가 1924년 1월 제1차 국공합작과 1924년 6월 황포군관학교 설립이다. 이로써 손문은 미약하긴 하지만 비로소 자신의 군사력을 갖게 되었다.
손문은 1924년 9월 다시 북벌을 시작했으나 1925년 3월 갑자기 북경에서 죽어 조심스럽게 유지되던 국민당은 좌우 분열의 위기를 맞았다. 손문의 사후 광동에서 열린 국민당 전체회의에서 새로운 ‘국민정부’가 수립된 것은 1925년 7월이었다. 정부 주석에 왕조명, 재정부장에 요중개가 취임해 손문의 유지를 관철하려는 좌파가 우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해 8월 요중개가 우파에게 암살당해 좌우파 간의 대립과 결별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925년 11월 국민당 우파가 북경 교외에서 중앙위 전체회의를 열어 공산당원의 국민당원 자격 박탈, 공산당적을 가진 중앙위원 9명에 대해 제명을 결의했다. 그러자 광동의 국민당 좌파는 그 대회의 모든 결의가 무효라며 1926년 1월 국민당 전체대회를 별도로 열어 좌파인 이대소를 중앙위원, 모택동을 중앙위원 후보로 선출함으로써 당에서 좌파가 우위를 차지하는 형국이 되었다. 공교롭게 우파인 장개석(1887~1975)이 중앙위원에 선출된 것도 이 대회였다.
장개석은 절강성 봉화현에서 태어났다. 1906년 보정군관학교에서 군사수업을 받고 일본 육군사관학교(1907~1909)를 졸업했다. 1911년 신해혁명이 터지자 중국으로 돌아와 혁명군을 이끌었다. 1918년 손문의 휘하에서 군사부문을 담당하고 1923년 손문과 그의 아내 송경령을 암살범의 기관총 공격에서 구해내 손문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1923년 군사자문단으로 소련을 방문해 소비에트군을 연구하고 돌아와 1924년 6월 개교한 황포군관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 이후 황포군관학교는 장개석의 정치?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1926년 2월에는 국민당혁명군 총감에 임명되었다.
장개석이 반공 체질을 외부로 드러낸 최초의 사건은 이른바 ‘중산함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926년 3월 중산함 함장 이지룡(황포군관학교 1기 졸업생으로 공산단원)이 상부의 명령 없이 군함을 광동에서 황포로 회항한 것을 장개석이 반란 음모로 규정, 이지룡을 체포?취조해 공산당원의 음모를 밝혀낸 사건이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이지룡은 장개석을 붙잡아 중산함에 싣고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끌고가 억류시킬 계획이었다. 국민당 내에서 이뤄진 이 최초의 반공사건으로 장개석은 우파 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굳히게 되었다.

1928년 6월 마침내 북벌에 성공하다
중산함 사건이 매듭지어진 후 국민정부의 최대 관심사는 손문의 뜻을 이어받아 북벌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1916년 원세개 사후 군벌들이 중?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중국의 통합은 사실상 요원해 보였다. 장개석은 1926년 4월 국민정부에 북벌을 건의했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장개석을 군사위원회 주석과 국민혁명군 총사령으로 임명했다. 장개석이 북벌을 시작한 것은 1926년 7월 9일이었다. 10만 명의 북벌군은 장사(8월), 무창(10월), 남창(11월)을 점령하며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1927년 3월에는 상해와 남경까지 점령, 양자강 이남을 국민당의 지배 지역으로 만들었다.
한편 북벌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양자강 이남의 노동자?농민들은 공산당의 강력한 지도하에 치밀한 조직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공산당은 국민당 내 좌파와 함께 반우파 투쟁을 전개해 장개석이 중심이 된 우파와 대립각을 세웠다. 좌우 양파의 대립은 국민정부 이전 문제를 놓고 더욱 격렬해졌다. 장개석이 남창 이전을 주장한 것과 달리 국민당 좌파는 무한에 정부를 두자고 고집했다. 결국 국민당의 좌우 양파는 무한과 남창으로 분열되었다.
북벌 기간 동안 노동자?농민의 힘을 결집한 공산당은 1927년 3월 80만 명 노동자의 파업과 무장봉기로 상해를 공산당 천지로 만들었다. 이른바 상해 3월 혁명이었다. 북벌 중이던 장개석이 상해에 입성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아직 국공합작이 유효한 때라 입성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장개석은 4월 12일 새벽을 기해 파업 중인 노동자를 무장해제시키고 폭동으로 맞서는 공산당원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이른바 ‘상해 반공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위태롭게 이어가던 제1차 국공합작에 종지부를 찍었다. 소련의 코민테른 고문관들은 모스크바로 도주했고 목숨을 건진 공산주의자들은 대부분 농촌의 외진 은신처로 도피했다. 300여 명이 죽고 5000여 명이 실종된 이 ‘상해 쿠데타’를 계기로 장개석은 명실상부한 국민당 내 최고 지도자로 부상했다.
장개석이 4월 18일 남경에 국민정부를 조직함으로써 중국에는 국민당 좌파 및 공산당의 연합 정부인 무한정부, 장개석이 주도하는 국민당 우파의 남경정부, 그리고 북경의 군벌정부, 이렇게 세 정권이 대립하게 되었다.
장개석은 1928년 2월 국민혁명군위원회 주석에 오르고 3월 중앙정치회의 주석에 취임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군?정의 실력자가 되었다. 이렇게 당내 결속이 이뤄지자 장개석은 1928년 4월 다시 북벌에 나서, 1928년 6월 8일 북경을 무혈점령했다. 국민혁명군이 광주를 출발한지 거의 2년만에 수없이 많은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군벌을 몰아내고 마침내 국민당의 오랜 소망인 북벌에 성공한 것이다. 실로 장개석 최고의 날이었다.

군벌, 이해관계에 따라 적과 동지 넘나들어
‘군벌’은 20세기 초 중국의 혼란기 속에서 자체 군사력을 보유한 지방 세력을 말한다. 본격적으로 세력을 키운 것은 원세개가 대총통으로 군림할 때였다. 원세개 집권시 북경의 중앙정부는 광대한 중국 전역에 군대를 파견하고 유지할 능력이 없었다. 군벌은 이런 토양 속에서 태어나 혼란기를 이용해 세력을 키웠다. 군벌은 세력을 확대는 것이라면 열강과의 결탁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도 이해관계에 따라 적과 동지를 넘나들었다.
원세개가 죽은 1916년 6월, 군벌은 크게 북양군벌과 서남군벌로 대별되었다. 북양군벌은 원세개 생존시 중국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한 원세개의 신식 군대 북양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원세개 사후 북양군벌을 대표하는 군벌로는 원세개 밑에서 육군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단기서와 하북성(직례) 지역의 맹주인 직례도독 풍국장을 들 수 있다. 풍국장은 미국?영국의 지원을 받는 직례파를, 단기서는 일본의 지원을 받는 안휘파를 이끌며 군웅할거 시대를 열었다. 북방 지역에는 안휘파와 직례파 말고도 지금의 동북3성을 근거지로 하는 장작림의 봉천파가 신흥군벌을 형성했다. 남쪽의 서남군벌은 운남성의 당계요, 광서의 육영정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들은 광동을 기반으로 한 국민당 정부의 손문과 때로는 동맹관계를 때로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력을 확대했다.
원세개 사후 부총통인 여원홍이 총통직을 계승하고 풍국장은 부총통, 단기서는 국무총리 겸 육군총장을 차지했으나 실권은 단기서가 쥐고 있었다. 여원홍은 자체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아 사실상 단기서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1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에 대해 1917년 중국이 선전포고를 할 것이냐 중립을 지킬 것이냐의 문제로 정국이 시끄러울 때, 여원홍과 풍국장은 참전에 반대한 반면 단기서는 참전을 지지했다. 단기서는 참전을 미끼로 일본에서 차관과 무기를 들여와 그것으로 자파 세력을 강화하여 전국을 장악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단기서가 참전을 위해 20여 명의 국회의원에게 뭇매를 가하는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단기서는 여원홍 총통에 의해 국무총리직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자 단기서는 자신의 세력을 결집시켜 여원홍 타도 기치를 세웠고 곤경에 빠진 여원홍은 안휘도독 장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장훈은 1917년 6월 북경에 진입한 뒤, 7월 1일 폐위된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옹립하고 청조의 부활(복벽)을 시도했다. 그러나 복벽은 단기서의 북경 탈환으로 불과 12일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단기서는 경쟁자인 부총통 풍국장을 총통서리로 추대하고 자신은 총리를 맡았으나 실권은 여전히 자신이 쥐고 있었다.

동북3성도 사실상 장개석의 통제 받아
1919년 풍국장이 죽자 조곤이 직례파의 영수가 되었다. 조곤이 다시 단기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1920년 7월 이른바 ‘안직 전쟁’이 벌어졌다. 장작림의 봉천군벌이 직례파의 조곤을 도와준 이 전쟁에서 안휘파는 패배하고 단기서는 총사령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안휘군벌은 붕괴되었다. 북경은 한동안 직례파와 봉천파로 구성된 연합군벌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곧 두 파벌도 대립해 1922년 4월 제1차 ‘봉직전쟁’이 전개되었다. 이 전쟁에서 봉천파가 직례파의 총사령관 오패부에게 패하자 장작림은 본거지인 동북 지역으로 철병했다가 1924년 9월 병력을 이끌고 또다시 북경을 향해 진군했다.
조곤은 오패부에게 산해관 근처에서 장작림군을 토벌케 했다. 이른바 제2차 ‘봉직전쟁’이었다. 그러나 전투는 조곤 휘하에 있는 풍옥상이 배신하는 바람에 조곤은 연금되고 직례군벌의 천하는 무너졌다. 뒤이어 실각해 있던 단기서가 장작림과 풍옥상의 지지를 얻어 1924년 북경에서 임시집정에 취임했다. 단기서는 풍옥상을 제거해 우환을 없애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사전에 누설되는 바람에 도피생활을 하다가 1936년 상해에서 병사했다. 한편 봉천군 휘하의 곽송령은 풍옥상과 밀약을 맺고, 1925년 11월 장작림의 하야를 요구하며 봉천으로 진군했다.
장작림은 직속 부하의 반란으로 한때 곤경에 처했으나, 봉천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관동군의 지원을 받아 곽송령을 패퇴시켰다. 곧 북경을 장악하고 세력을 양자강 주변까지 넓힌 장작림은 1926년 12월 북경에서 대원수에 취임, 북경의 유일한 권력자로 군림했다. 장작림은 일본의 협력을 받아 세력을 급속히 확대했다. 그러나 1928년 4월 장개석이 국민혁명군을 기반으로 북벌을 단행하자 패전을 거듭했다. 그러자 일본의 공사가 1928년 5월 북경의 장작림에게 동3성으로 후퇴하라는 일본 정부의 의사를 전달했다. 장작림은 분통이 터졌지만 6월 3일 밤 북경발 봉천행 열차를 탔다. 그런데 열차는 6월 4일 새벽 선양 부근 황고둔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폭발했다. 장작림은 병원에 실려 갔다가 곧 숨을 거뒀다.
폭발은 일본 관동군의 소행이었다. 관동군은 장작림의 폭살로 만주의 치안이 악화되면 그것을 명분삼아 만주를 중국 본토에서 분리시킬 계획이었다. 장작림이 북경을 빠져나간 후 장개석의 국민혁명군이 북경에 무혈입성함으로써 북방의 군벌들은 동북3성의 봉천파를 제외하고 모두 소멸되었다. 뒤이어 봉천군벌을 계승한 장작림의 아들 장학량도 일본의 행위에 치를 떨며 장개석에 충성하기로 약속하면서 동북3성도 사실상 장개석의 통제를 받았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