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전항섭을 떠올리면 사람에 대한 생각이 새삼스러워진다. 존재의 비의를 탐구하는 작가의 내면을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형상과 형태는 분명히 다른 것이건만 작가는 그것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지속적인 의지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 나무조각가 전항섭

“내가 무엇이냐”고 묻는 자신에 대한 반복적인 질문, 그리고 “나는 역시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끊임없이 자문자답하는 작가 전항섭은 삶이 진실성에 가 닿는 길 찾기의 고뇌를 작품으로 드러낸다.

‘나무’를 버리며 ‘형상’을 획득하다
작가 전항섭은 나무와 악수하며 나무와 호흡하며 산다. 그의 조각들은 나무가 낳은 아이이고 나무를 낳은 어머니다. 그 나무속에 물고기가 살고 있다. 인간이 살고 있다. 바람이 있고, 하늘이 있고, 구름이 떠다닌다. 그리움과 사랑이 출렁거리는 한 채의 집이 있다. 그 집에 정적을 불러들이는 문이 있다. 문을 열면 개기일식의 허공이 펼쳐져 있다. 누군가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다. 소리와 빛마저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소용돌이의 정적은 나이테의 결을 따라 한없는 깊이로 깊어져 있다. 작가 전항섭은 말한다. 나무가 자신과 잘 맞는다고.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나무에 손을 대면 나무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나무는 인간을 닮아 있다고.

이렇게 말하는 조각가 전항섭의 주요 작품 소재는 당연히 나무다. 그의 나무 작품들은 나무를 버리면서 형상을 획득해 간다. 작가의 영감(靈感)은 드로잉으로 이어지고, 드로잉이 나무의 내부에 온전히 스며들면 나무를 버리기 시작한다. 그는 마치 영매와 같다. 나무의 숨결을 형상으로 바꾸어 보여준다. 나무가 생전에 품고 있던 무늬와 형상을 꺼내어 이게 바로 나무의 실체였다는 걸 증명한다. 이 재주 많은 영매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저마다의 빛깔을 나무에게도 그대로 투영해 이름은 지우고 본질만을 드러낸다. 물고기를 품고 있던 나무에게서는 물고기를, 사랑을 품고 있던 나무에게서는 사랑을, 우주를 품고 있던 나무에게서는 우주를 꺼낸다.

나무를 수없이 쓰다듬은 그의 손은 나무를 닮아 마디 굵고 거칠지만 나무에게 베푼 친절만큼 섬세하기만 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쉬운 노릇은 아니었다. 작가 자신의 감정과 바람을 나무가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의 의도에 순응하기까지 20년이 더 걸렸다. 20여 년 전부터 작가 전항섭은 몇 세대 이전의 나무와 줄기차게 만나오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 산턱의 돈사를 개조한 그의 작업실에는 다시 태어나기를 고대하는 나무들의 기다림으로 빼곡하다.

그는 이 나무들의 부활을 돕는 사제이며 이들의 부활을 세상에 배달해주는 전달자이다. 그에게 있어 나무는 자신의 신념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고, 나무의 몸을 닦고 다듬어 영원으로 인도하는 염습쟁이기도 하다. 작가는 나무와의 만남의 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행복의 근원은 타자가 간여할 수도 없고 이유를 따져 물을 수도 없다. 무작정이고, 일방적이다. 이 무작정과 일방적이야말로 만남에서 소중한 것이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이든 사람과 사물 사이이든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밀착시키다

▲ 작가 전항섭은 나무와 악수하며 나무와 호흡하며 산다. 그의 조각들은 나무가 낳은 아이이고 나무를 낳은 어머니다

작가 전항섭은 부조와 환조의 조화를 꿈꾼다. 부조의 배면을 열어두어 환조로 바꿔 놓는다. 나무 물고기 등 뒤의 허공, 허공에 떠 있는 달. 관객은 거기에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달에서 태어난 물고기가 허공을 헤엄쳐 온 시간을 엿본다. 그가 고밀도로 간결하게 축약해 놓은 시공에서 무한을 읽는다.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 전항섭의 시선은 긍정성과 연민으로 따스하다. 삶에서나 작품에서나 반목이 아닌 화합을 도모한다. 작가와 작품이 그처럼 잘 어울리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작품들은 가공이 아니라 송진처럼 자신의 내부에서 배어나온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의 시선은 아주 길고 먼 곳을 향해 있다. 아득한 거기를 바라보며 고른 숨결의 보폭으로 나아간다. 성급한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 일관과 지속이다. 그와 함께 있다 보면 인생이 참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하겠다는 조급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시간의 물결과 더불어 다만 고요해진다. 작가 전항섭은 일상생활과 예술행위가 밀착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절실하게 의식하려는 편이다. 그런데 이 생활일상으로서의 예술활동은 그에게 현실관의 치열한 갈등이 아니라 유연하고 건강한 순응과 조회를 통해서만 성취되는 것으로 파악되는 듯하다. 그의 목각들은 모가 나지 않았으며 각진 것일수록 열린 구석이 있다. 여기서 나무는 전적으로 작가 자신과 동일한 체질이 되고, 예술행위는 그것을 가능케 만드는 끊임없는 자기 수련의 과정이 된다. 부연하자면 여기서 나무의 체질과 조각가의 접촉지점은 손만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촉각적이고 피상적 관측이다. 아마도 그 부위는 단전으로 집약될 것이다. 조각가의 호흡과 뱃심은 언제나 그들의 침묵을 정당하게 만든다.

작가 전항섭은 1960년에 태어나 79년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3년까지 수학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후 97년에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인사동 제3갤러리에서 김종헌과 이인전을 가진 이래로 금호갤러리와 공평아트센타, 아라아트센타 등에서 여덟번의 개인전과 박희선과의 이인전을 가지면서 나무와 교감하는 목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에 우성김종영조각상을, 2009년에는 경기예술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국새모형심사, 미술인명록 발간심사 등에 참여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의 94젊은 모색전, 한국성-그 변용과 가늠전, 낙우조각회전, 국제조각페스타, 이태리 PIETEA SANTA 한국작가전 등 크고 작은 작업전에 작품을 선보이며 현재 한국조각가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