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도 없이 넓적한 나무에 조각칼과 끌을 손에 쥔 장인이 수만 번 두드리고, 깎아내면 상상도 못한 작품으로 변신한다. 가정의 평안을 바라는 간단한 글부터 오래전 선현들의 한자시구, 불경(佛經) 해설이 담기기도 하고, 호랑이와 고래, 꽃 등이 새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글씨나 그림을 나무 등에 새기는 예술장르를 서각(書刻)이라 한다.

윤담 기자 hyd@

나무에 혼을 불어 넣는 서각은 오래전부터 현판이나 주련, 암각화 또는 경판으로 사찰이나 서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서각은 문자전달 역할과 공예적인 면에서 독특한 문화예술의 매개체로 인식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섬세함을 요하면서도 오랜 시간을 작업에 몰두해야 해 고도의 인내심까지 필요한 서각은 보통 손재주가 아니면 습득하기가 쉽지 않다.

‘나태주시 풀꽃’으로 대통령상 수상

▲ 서각 작가 최종윤

원정 최종윤 작가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한민국 서예대전등에서 수차례의 입상경력과, 제물포서예문인화대전 대상, 경북미술대전, 대한민국서각대전, 대한민국각자대전 등의 큼직한 공모전에 초대작가 경력을 보유한, 주목받는 작가로, 지난해 통일부가 주최한 제20회 통일미술대전에서 ‘나태주시 풀꽃’이라는 명제로 영예의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어린 시절 서예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서각을 접했다는 작가. 작가 최종윤은 “어린 시절부터 한자에 관심이 많았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서예를 배웠다”면서 “습자지에 서툴게 써내려가던 글씨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평생의 스승님을 만나 더욱 발전하게 됐다”고 말한다. 동네 서예학원에서 꾸준히 서예를 배우던 어느 날 신문에 난 서각 작가를 보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서각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작가 최종윤. 그가 연락했던 이는 바로 미목 이주강 선생으로 서각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저녁 시간을 쪼개 미목 선생으로부터 사사받은 그는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로 밤낮없이 서각작업에 매달리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그는 국내 최고의 서각작가로 인정받으면서 최종윤은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한민국서각대전, 인천서각대전, 대한민국각자대전, 제물포서예문인화대전, 경북서예문인화대전, 대한민국서예문인화대전, 아카데미미술대전 등 각종공모전에 운영·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국내 최고의 서각작가로 인정받는 그도 지난해 통일미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잊을 수 없는 영예다. 작가는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을 받은 것에 대해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30여 년간 서예와 서각을 해오면서 바라던 목표를 이루었지만 이제 그 영광을 안고 평상심을 유지하며 계속 정진해 나아갈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서각의 아름다움을 대중에 알리다
어떤 작품을 만들더라도 모든 순간을 소중히 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작가 최종윤. 작가로 활동하던 초창기부터 육군3사관학교와 대경대학평생교육원에 출강했던 그는 현재 대구카톨릭대학에 주 1회 수업을, 대구 효목동에 자리한 서실에서 주 2회 수업을 진행하며 서각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최근 들어 다양한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예술가들의 위상도 과거에 비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국내 예술계는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작가 최종윤도 경북 영천시 완산동에서 동물약품((주)한일약품)을 취급하는 사업체를 운영하며, 작업 활동과 병행하는 중이다.

현재 (사)한국미술협회전통공예분과 서각분과위원장, (사)대한민국서각협회감사, (사)한국각자협회 이사, 평화미술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도 서각 작업은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그는 “낮에 업무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스트레스를 밤에 제가 좋아하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잊고 있다”면서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 100% 몰입하다 보니 잡념도 잊게 되고 보람도 느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다가 밤을 샌 적도 많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앞만 보고 집중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슬럼프나 회의를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간 수상한 작품만도 100여 점을 훌쩍 넘는다.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생업을 하는 것이 소망이라는 작가 최종윤.
현재 고향 영천에서 갤러리 초대전을 열어 지역민에게 생소한 새로운 장르의 예술 세계를 전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국내 서각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