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선비의 가까이에서 한평생을 함께 할 벗으로 ‘문방사우’를 꼽았다. 붓·먹·벼루·종이가 서로 다정하게 이마를 맞대고 있는데, 책을 읽지 않고서야 어찌 그 글을 잘하며 글을 잘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룰 수 있겠느냐는 의미에서다.

윤담 기자 hyd@

과거 우리 조상들은 붓으로 쓰인 글씨에서는 생명의 흐름을 읽을 수 있고 생각했다. 때문에 서예는 한 시대를 선도하는 높은 사상과 뛰어난 형식으로 시대정신을 왕성히 담아냄으로써 동양 예술의 씨앗이요, 꽃으로 평가돼왔다.

각고의 시린 아픔 끝에 일필휘지의 결실 드러나다

▲ 양선덕 서예가

습정 양선덕 서예가의 행보가 화제다. 올해로 서예를 시작한 지 37년째에 접어든 양선득 서예가는 국내 서예문화의 발전과 보급, 전통의 맥을 잇는 여성 서예가로 한국을 대표하는 금문서예가다.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한 습정은 세계 서예 전북비엔날레 특선 및 특별전, 한국 서예협회 초대작가전, 한국 서예박물관 개관 기념 초대전, 한국 서예 대표작가 초대전을 비롯하여 한·중 초대작가 한·중·일 문화협력 미술제, 중국 제남시 초대전, 중국 무한 시립미술관 초대전, 세계 서법문화예술교류전, 독일·한국 묵향마중물전, 한국·뉴질랜드 교류전 등 국내외 유수의 초대전 및 전시회에 참가하여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습정은 “서예는 내 삶의 황금물결이다”면서 “어느덧 서예를 시작한 지 어언 37년이 되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던 내 삶의 감춰진 이면에는 마치 조선시대의 삶을 넘나드는 것 같은 버거운 시간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전남 고흥군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마을에서 1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습정은 주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라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는 유교 가풍이 엄격한 집안에 5남매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인자하시고 덕이 많은 시부모로부터 더 없는 사랑을 받았지만, 녹록치 않은 살림살이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맏며느리로서의 소임과 책임감이 컸던 그다. 습정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삶 속에서 나는 인내하는 지혜와 강인함을 보고 자랐기에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이토록 힘들고 버거운 삶을 인내하며 헤쳐갈 수 있었다”면서 “어머니의 ‘가문은 세우기 나름이고 가풍은 가꾸기 나름이다’는 말씀을 되새길 때마다, 새벽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영혼이 맑은 불씨 하나 가슴에 묻고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소임을 다해 가정을 바로 세워야겠다는 당찬 생각으로 불씨를 지펴왔다”고 회고했다. 그 당시 아이들의 인성 교육과 도덕성 그리고 자신의 뜻을 바로 세우기 위해 습정이 선택한 것이 서예였다.

그는 “먹을 갈아 마음을 가다듬고 해 뜨고 달 기우는 각고의 시린 아픔 끝에 비로소 일필휘지의 결실이 드러나는 심오한 서예술은 우리나라 여인네들의 한 서린 희로애락과 참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이후 서예에 정진하며 끊임없이 수양을 거듭해온 그의 서체에는 곧고 정직한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울러 그의 문인화는 내면의 세계를 조화롭게 만드는 정신예술의 산물로,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을 오랫동안 곱씹을 수 있는 여백을 통해 여운을 남긴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련하면서도 담담한, 있는 그대로의 시골 풍경이나 호박, 장독대 새벽을 여는 청수기 등을 주요 소재로 삼는 습정의 작품은 또한 생의 흔적과 삶의 애환이 서린 단아한 여인을 모티브로 우리 어머니 세대의 희생과 추억을 소박하고 잔잔하게 담아낸다.

한국 대표하는 여성 금문서예가로 자리매김
정직한 삶의 길잡이가 되는 서예에 매료되어 숨 가쁘게 달려온 습정 양선덕 서예가. 세월은 무심히 흘러 그가 걸어온 발자국마다 결실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 대한민국 서예대전(서협)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한국현대 미술대전 현대 미술상 수상, 2015년 대한민국 문화예술 대상(서예부문) 수상, 2016년 자랑스런 한국인 일본 오사카 갤러리 초청 한국대표 우수작가상 수상 등은 그동안 습정이 서예에 매진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5월에는 제49대 2017년 신사임당상을 수상하는 쾌거도 거두었다. 습정은 “지난 오월의 어느 날 아카시아 향기를 머금고 날아온 제49대 2017년 신사임당상 수상으로 추대 되었다는 꿈같은 기쁜 소식에 한편으로는 숙연함과 걱정이 앞서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면서 “더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현모양처의 덕목을 갖추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미를 실천하며 한국 여인상을 잘 가꾸어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해본다”고 전했다. 이어 “숱한 삶의 역경 속에서 서예와 함께 걸어온 반평생 내 삶의 궤적이 아깝지 않도록 품격 있고 아름다운 우리 문화인 서예를 널리 알리고 세계화 하는 계기와 기틀을 다지는 데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