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십일월 인사동 인사아트스페이스에서 민윤홍 작가의 개인전 <표면의 결, 내면의 간극> 전이 열렸다.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얼굴의 주름처럼 바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바다의 물결을 숙명적인 것으로 보듬어 낸 전시였다. 뭉쳐졌다가 퍼지고 겹쳐졌다가 풀어지고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물결의 다양한 형상을 통해 인생은 고난과 역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해주고자 했다.
 
신선영 기자 ssy@
 

▲ 민윤홍 작가.

표면의 결
민윤홍 작가가 본격적으로 물결을 찍기 시작한 것은 동해안 7번 국도변의 고성군에 있는 백도항에 들어서면서 부터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손가락처럼 음률 있게 일렁이는 물결의 움직임에 넋이 나가 그대로 발이 묶이게 됐다고 한다. 수면 위에 반짝이는 물결의 산란과 반사를 바라보며 이곳에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섬을 찍으러 삼면을 다 다녀 봤지만 백도항의 바다는 뭔가 다른 전율이 있었습니다.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만들어지는 물결의 움직임이 부질없는 인생의 욕망으로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시시각각 형태를 바꿔가는 물결들의 움직임이 저의 심적 상태를 깨닫게 한 순간이었습니다. 가슴속 찔림으로 다가온 그 날의 바다는 바다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민윤홍 작가가 물결을 ‘부질없는 인생의 욕망’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사진을 찍게 된 계기와 관련 있다. 51세라는 늦은 나이에 공학 박사 학위를 딴 그는 변압기 분야의 전도유망한 연구자가 됐지만 목표를 달성한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정년퇴직을 앞두고 엄습해오는 헛헛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중앙대 평생교육원, 한양대 사회교육원, 단국대 사진아카데미에서 사진을 배우며 삶의 활력을 되찾고 제 2의 인생을 준비한 것이다.

“100세 사는 시대에서 평생 직업을 가져야 한다면 정년퇴직 후 갖는 직업은 적성에 맞는 일을 하겠다고 8년 전부터 다짐했습니다. 그때부터 지인의 추천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사진기라는 기계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업이 전기 분야를 연구해온 저와 맞아 떨어졌습니다. 파괴와 창조를 반복해야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같은 바다지만 남들과 다른 바다를 찍기 위해 기존 바다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것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 Sea waves new age #01, Inkjet Metal Print, 127x85cm, 2017.

민윤홍 작가는 물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미의 원형을 건져 올리기라도 하려는 듯 무작위한 물결 속에 하나의 이미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이는 육체에서 정신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거시에서 가시로 파고드는 숙련된 집중을 요했다. 파고든다는 것은 수많은 번뇌 속에서 하나의 의식을 잡아내는 것이자, 채워진 이미지 속에서 비워진 이미지를 잡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의 물결과 자신의 마음결을 동일한 지평 위에 올려놓고 함께 움직이며 합일을 맞춰갔던 것이다.

“물결 작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메디타티오(med itatio), 즉 명상입니다. 명상과도 같은 이 작업을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얻으며 물결의 섬세함을 담아냅니다. 그래서 작업에 몰입하는 시간은 제 마음의 안식을 얻고 제 영혼의 자유를 얻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늘 음악이 함께 있었습니다. 침묵하는 고요의 진중함을 아는 물결 같은 친구이자 내 마음을 닮은 도플갱어, 바로 뉴에이지 음악입니다.”

▲ Sea waves Abstraction #16, Inkjet Pigment Print, 120x68cm, 2017.

내면의 간극
민윤홍 작가는 음악과 자신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소개했다. 학창 시절에는 고등부 성가대를 지휘했고, 대학 시절에는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그 이후부터 즐겨 듣던 뉴에이지 음악은 지금의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물론 찍지 않을 때도 늘 뉴에이지 음악과 함께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뉴에이지 음악과 같은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사진이 됐는지도 모른다.

“최초 2년간 70-200mm렌즈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면 그 이후부터는 150-600mm의 영역대를 갖춘 망원 렌즈로 내면의 감성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음악과 함께 몰입한 음악적 움직임으로 형형색색 비추는 추상의 물결에 더욱 더 빠져드는 것입니다. 수 백 수천 개의 선율로 아름답게 퍼져가는 오방색의 추상 위에서 실상인지 허상인지 모를 환상적 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습니다.”

▲ Sea waves symphony #12, Inkjet Metal Print, 102x68cm, 2017.

자연 그대로의 촬영을 원칙으로 하는 민윤홍 작가는 이 작업을 위해 스카이 차량 2.5톤과 고가 2.5톤 바켓 트럭을 임대했다. 바다 위에서 수직과 수평으로 이동하며 수면 위 3~20m에서 조명과 함께 촬영하는 것이다. 조명으로는 자연광과 함께 고광도 플래시 4000루멘 2대, 레이저 고광도 플래시, 스마트리 미러볼을 사용해 라이팅 작업을 병행했다. 주변의 가로등과 간판을 이용해서 빛을 혼합하는 작업도 했다. 빛이 개입되고 교차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동영상으로도 동시 촬영됐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받은 또 다른 하나가 영상 작업입니다. 작업을 하면서 들었던 뉴에이지 음악과 직접 촬영한 동영상을 조합해서 영상으로 제작, 전시장에서 상영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음악과 함께 배가되는 감상의 여운이 새로운 미적 체험을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회를 마치고 많은 제안을 받았습니다. 히딩크 넥타이를 디자인한 누브티스 박물관(이경순 관장)의 카페에 제 작품을 넣을 테이블 제작을 요청 받았고, 세라믹에 색인화를 하는 세라믹 포토 제작도 제의 받았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서 많은 분들이 부담 없이 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생활 속의 예술을 실천하겠습니다.”

▲ Sea waves Abstraction #01, Inkjet Pigment Print, 127x85cm, 2017.

민윤홍 작가는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전기공학과 졸 업했다.Zig-Zag 권선에 의한 내철형 주상변압기, 국 내최초 배전용 변압기 단락강도 실 험설비, 저손실형 복합절연 주상변 압기를 개발한 공학박사로 현재 한 국전력공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중 앙대와 한양대 사회교육원 사진예술 과정 수료하고 단국대 사진아카데미 수료했다. 단원미술제 추천작가이 자 한국현대사진가협회 회원과 (사)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 고 있다. 2018년 2월 6일부터 3월 4일까지 Photo Gallery A-One에 서 초대전, 2018년 5월 성북동 넥타 이 박물관 누브티스 갤러리에서 초 대전을 열 계획이다.

▲ Sea waves symphony #21, Inkjet Metal Print, 102x68cm,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