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중음악은 지금까지 우리 대중음악사가 조명해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재조명되어야 할 장르이자 가치를 지닌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올해는 이 땅에 미8군쇼가 시작된 지 60주년, 그리고 미8군 무대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그룹사운드의 첫 음반이 발표된 지 5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우리나라 대중음악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앞당겼던 미8군쇼,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한 미8군쇼는 ‘한국 속의 이방지대’였지만 우리 대중음악사의 거대한 흐름을 바꿔놓은 진원지이자 분수령이었다. 때문에 혹자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를 미8군쇼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6.25 한국전쟁과 함께 이 땅에 30여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던 1953년부터 베트남전쟁으로 미군 병력이 5만 여 명으로 급격히 감축되던 1960년대 중반까지가 미8군쇼의 전성기이자 클라이막스.

남이섬에 있는 노래박물관에서는 올 4월26일부터 8월31일까지 ‘기록으로 보는 미8군쇼 60년사 & 대한민국 그룹사운드 50년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구성 및 진행은 필자가 맡았다. 대한민국 그룹사운드 50년의 시대별 변천사, ‘기록으로 보는 그룹사운드 50년사 특별전’을 통해 그 의미를 되돌아본다. 미리 가보는 특별전 현장, 그 기록과 생생한 증언.

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4년은 대한민국 그룹사운드의 첫 독집음반이 등장한 해다. 키보이스는 ‘한국의 비틀즈’로, 에드포는 ‘한국의 벤처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각 악기 숫자만큼의 멤버가 직접 연주하고 노래한다고 해서 ‘보컬그룹’이라고도 했다. 이후 록그룹, 밴드 등 시대마다 불리어진 용어가 조금씩 달랐지만 여기서는 ‘그룹사운드’로 통칭한다.
이들의 등장은 당시 대중음악 수용 층의 마이너리티였던 팝송세대, 즉 젊은 층을 메이저리티로 부상시킨다. 이후 우리 대중음악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룹사운드의 거센 물결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톱  스타 대열에 합류하며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1960년대 트위스트, 소울 붐을 거쳐 70년대 고고시대를 질주했던 이들은 70년대 중반, 이른바 ‘대마초파동’을 전후로 급격히 속도를 멈춘다. 이 틈을 타 그룹 리드보컬들이 대거 솔로로 등장, 대중음악을 리드하는 가운데 이어 등장한 대학가요제 등에서 배출된 캠퍼스 그룹사운드들과 합류하며 80년대 헤비메탈, 포크락, 언더그라운드 등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된다. 90년대 테크노사운드와 댄스그룹시대, 2000년대 아이돌 그룹에서 홍대 인디밴드까지... 다양한 형태로 록의 시대를 구가하며 젊음을 소리 높여 외쳤던 그룹사운드, 1964년부터 2014년까지의 씬(scene). 대한민국 그룹사운드 50년사. 그 시대별 흐름과 변천사.

미8군쇼 무대에서 탄생한 우리나라 그룹사운드
‘미8군쇼’는 우리나라에 그룹사운드를 탄생시킨다. 1963년 1집 앨범 ‘Please Please Me’ 발표와 동시에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비틀즈의 등장이 각국의 록그룹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50년대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를 거쳐 풍요로운 60년대, 여유와 놀거리를 찾던 틴에이저들에 의해 비틀즈는 열광적 지지를 받는다. 이 세계적 조류는 한국에 온 젊은 미군들에게도 예외일 수 없었다.
‘노래는 가수, 연주는 악단’이라는 공식이 당연했던 시절, 비틀즈는 세계 그룹사운드의 형태를 순식간에 바꾸어놓는다. 기타 세 대와 드럼만으로도 노래와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획기적으로 제시해주었고 이것은 곧 15명 내외의 쇼단이 아닌, 7~8명의 패키지쇼(Package Show)라는 또 다른 형태의 공연을 탄생시켰다.

▲ 현재 남이섬 노래박물관 '대한민국 그룹사운드 50년사 특별전'에 전시되고 있는 드러머 김대환 유품과 전시장 내부

비틀즈의 노래와 연주가 미8군 밴드의 연습 테마였고 곧 무대에서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바로 이들이 1964년, 일반무대로 뛰쳐나와 ‘젊은이들만의 또 다른 문화’의 고고한 탄성을 알린다. 키보이스의 첫 독집 음반 ‘그녀 입술은 달콤해’, 에드포의 ‘빗속의 여인’이 그것.
이후 화려하게 펼쳐지는 한국 록 그룹의 황금기를 일구어낼 초기 자양분, 그 에너지와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이 음반을 시작으로 한국적인 감성을 접목해 거듭나며 이후 대한민국 그룹사운드 50년사를 이끌었다.

1960년대 대한민국 문화를 바꾼 또 하나의 키워드, 그룹사운드
60년대 대중문화를 바꾼 키워드는?

▲ 신중현이 이끌던 에드포의 '빗속의 여인' 1964년 12월

음악감상실 DJ, AFKN, 통기타, 리크레이션, 미니스커트, 트랜지스터, 바캉스 그리고 그룹사운드...
이 그룹사운드 첫 독집음반이 등장하는 1964년은 10인치 LP(레코드)가 12인치 크기로 바뀌는 등 대중음악계에 여러 가지 변화가 동시에 나타난 시점이다.
‘동백아가씨’가 히트, 트로트로 회귀하는가 하면 ‘워싱턴 광장’과 ‘세드 무비’로 번안곡 열풍 또한 거셌다. 한일정상회담 개최, 월남전 등 사회적 변화와 함께 FM방송 첫 출현, 스테레오 시대 개막 등 소리의 변화가 예고된 시점에서 향후 그룹사운드의 전망과 분석이 교차한다.
연일 계속되는 한일정상회담 반대시위로 인해 휴강, 휴교령이 잇단 가운데 쎄시봉, 디쉐네 등 음악감상실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뉴월드, 르네상스, 미도파 살롱, 시보네, 심지. 아카데미 뮤직홀, 은하수 등 음악감상실들이 속속 젊은이들의 명소로 자리하는 가운데 DJ는 최고 인기인으로 부상했다.

65년 월남전으로 인한 미군 대이동과 맞물려 미8군쇼 그룹들이 일반무대로 대거 쏟아져 나왔다. 이들의 첫 주 활동무대가 음악감상실이었다. MBC, DBS, TBC 등 상업방송에 이어 65년 6월, ‘제3의 전파'라는 음악전문방송 ’서울FM방송‘이 개국, 음악감상실을 겨냥한 시험방송을 거쳐 라이브 공연 등을 중계했다.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대안이 요구되던 시대적 변화는 결국 그룹사운드 붐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1960년대 후반 그룹사운드, 글로벌과 로컬의 혼합
60년대 후반은 미8군쇼무대와 일반무대가 공존하며 그룹사운드가 대거 재편되는 시기이다.
오디션 등을 거치면서 ‘헤쳐 모여’를 반복했던 미8군 그룹들은 미군부대 주변의 속칭 ‘기지촌클럽’과 음악감상실 등을 동시에 오가며 ‘헤쳐모여’를 가속화, 거미줄 계보를 형성했다. ‘재산목록 1호’였던 악기는 점차 좋은 소리를 추구하게 되고 성능 좋은 악기가 곧 인기와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기타와 드럼 위주의 편성도 점차 건반이 합류하고 탬버린, 색소폰, 트럼펫 등이 더해지며 성격도 차별화, 락&롤을 비롯해 소울과 사이키델릭, 하드록, 브라스 형태로 확산되며 다시 비틀즈 이전 캄보밴드 형태로 회귀했다. 음반 취입도 활기를 띠었다. 당시 원 테이크(One Take) 방식에 투 채널 녹음은 폭발적으로 증폭된 사운드로 인해 녹음 시 드럼 일부를 제지당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고 생생한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연주와 노래를 동시녹음, 하루 한 곡 녹음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그룹사운드용 창작곡들이 속속 등장, 히트했고 캐럴 음반도 러시를 이뤘다. 펩분 류의 캐럴은 그룹사운드에 의해 점차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바뀌어갔고 이러한 추세는 70년대로 이어졌다.

1966년 6월, 국내 중창단과 그룹사운드가 함께 출전한 보컬그룹경연대회 전후로 그룹사운드의 열기는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흉내의 대상이 되었다. 기타교본과 악기학원이 붐을 이룬 가운데 아마추어 팀들이 속속 탄생, ‘제2회 보컬그룹경연대회’라는 타이틀로 개최된 ‘68 재즈페스티발’에는 대학생 팀들의 참가가 러시를 이뤘다.
특히 1969년, 제1회 ‘플레이보이컵 쟁탈 그룹사운드경연대회’가 개최되며 그룹사운드 열기는 절정에 달한다. 60년대 지그재그식 트위스트 열풍은 70년대 고고시대를 향해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