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훈숙의 ‘유니버설 발레단’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
유니버설 발레단이 창단 30주년을 맞아 2월 2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친 스페셜 갈라는 축제의 장이었다. 첫 민간 발레단으로 30년 간 성장하는데 성원을 보내준 관객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공연이다. 우아하게 봐야 한다는 인상이 짙은 발레 관람문화 대신, 무용수와 관객이 격의 없이 한데 어우러지는 자리였다.… 모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문훈숙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을 비롯해 연출을 맡은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유니버설발레단 전 예술감독과 유병헌 현 예술감독,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미하일 그라노프스키 전 볼쇼이극장 지휘자 등 스태프들도 모두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뉴시스 2014년 2월 22일>

▲ 문훈숙

발레는 태생적으로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고 머리가 큰 한국인에게는 적합한 예술이 아니다. 그러나 문훈숙(1963~ )은 이런 통념을 보기 좋게 깨고 세계 발레계에 당당히 명함을 내민 한국 발레계의 맏언니다. 우리나라 발레계가 처음 배출한 월드 스타였고, 전성기 때는 “춤추는 동양의 진주”, “황색 요정”으로도 불렸다.
문훈숙은 서양인에 비해 체격 조건이 불리한데도 끝없는 연습을 통해 동양인으로는 넘보기 힘든 고난도의 피루엣(제자리돌기) 36회전을 거뜬히 소화함으로써 열정은 물론 테크닉 면에서도 결코 서양인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훈숙은 미국 워싱턴에서 박훈숙으로 태어났다.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에 이어 통일교의 2인자 실세인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창설 이사장 겸 총재가 부친이다. 미국에서 6살 때부터 한국무용과 발레를 배우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으로 건너와 1976년 선화예술학교에 입학, 발레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스승은 1976년 내한해 선화예술학교에서 발레를 가르친 미국의 발레리나 애드리언 델라스였다.
박훈숙은 1979년 선화예고 진학을 포기하고 영국의 로열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1980년부터 1981년까지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서 세계적인 발레리나 마리카 베소브라소바를 사사하고 1981년 2월 1일에는 스위스 로잔 국제발레 콩쿠르에서 5위에 입상했다. 한국인의 국제 콩쿠르 입상은 한국 발레 역사상 처음이었다.
1982～1983년 미국 워싱턴발레단의 단원으로 활동하던 박훈숙은 1984년 문선명 총재의 차남과 미국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약혼자가 결혼 몇 달을 앞두고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런데도 박훈숙은 사자(死者)와 영혼 결혼을 하고 미국법에 따라 박훈숙에서 문훈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문훈숙은 나중에 각각 시동생과 시숙으로부터 아들과 딸을 입양해 키웠다.
1984년 7월 부친이 단장으로 있는 한국문화재단이 국내 최초로 민간 프로 발레단인 ‘유니버설 발레단’을 창단했을 때 문훈숙은 창단 멤버로 참여해 곧 수석 무용수가 되었다. 창단 당시에는 문훈숙의 선화예술학교 스승 애드리언 델라스가 초대 예술감독을 맡고 문훈숙을 비롯 11명의 선화예술학교 출신이 단원으로 활동했다.

우리 발레계가 처음 배출한 월드 스타
유니버설 발레단은 창단하자마자 7월 13일부터 16일까지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에서 ‘신데렐라’를 첫 공연작품으로 올렸다. 미국의 남자 무용수가 왕자 역을 맡았으며 문훈숙과 김인회는 신데렐라로 등장했다. 이후 유니버설 발레단은 문훈숙을 주역으로 한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을 국내외 무대에 올렸고 그때마다 문훈숙은 뉴욕타임스를 비롯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언론과 비평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1986년 9월 서울아시안게임 특별초청작으로 선보인, 델라스가 안무하고 문훈숙이 심청 역을 맡은 창작 발레 ‘심청’은 국내 평론가들로부터 “광복 이후 50년간 무용 부문 베스트 10”에 선정되었다. ‘심청’은 이후 세계 40여개 도시에서 100회 이상 공연되어 현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989년 12월 문훈숙은 발레리나로서 한 번 서 보기도 힘들다는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마린스키 극장에서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과 함께 클래식 발레의 최고봉으로 평가되는 ‘지젤’의 주역으로 공연했다. 250년의 키로프 발레단 역사상 동양인이 주인공이 된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문훈숙은 1995년 7월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으로 취임했다. 1998년에는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의 예술감독 출신인 올레그 비노그라도프를 5대 예술감독으로 초빙해 유니버설 발레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문훈숙은 단장 취임 후에도 발레와 경영을 병행했으나 2001년 발가락을 다친 뒤부터는 더 이상 무대에 서지 못하고 단장직에만 전념했다.
그는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다는 게 서러울 것 같다”며 은퇴 선언도 은퇴 공연도 하지 않고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왔으나 결국 미련을 떨치지 못해 9년 후인 2010년 5월 ‘심청’ 공연 때 카메오로 2분 동안 깜짝 출연해 관객을 놀라게 했다.
문훈숙은 2000년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예술대에서 무용예술학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같은 해 러시아 내 200여 민족 대표로 구성된 ‘모스크바 민족회의'로부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 벨기에 대통령에 이어 네번째 명예 친선대사로 위촉되었다. 이렇듯 문훈숙은 국제적으로 영역을 넓혀 한국의 발레를 세계에 알리는 친선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엘리너 루스벨트, 미 역대 최고 퍼스트레이디로 꼽혀
미국 역사상 최고의 ‘퍼스트레이디’로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가 꼽혔다.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힐러리 클린턴, 최초의 흑인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는 각각 6위와 5위에 머물렀다. 시에나 대학은 역사학자 24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여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2월 15일 CNN이 전했다. 엘리너 여사는 지난 1982년부터 이번까지 5차례 진행된 조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시에나대 연구소는 출신 배경, 국가에 미친 영향, 용기 등 10가지 항목을 평가해 퍼스트레이디를 평가했다. 2위는 2대 존 애덤스 대통령의 부인 애비게일 여사, 3위는 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4위는 4대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의 부인 돌리였다. 미셸 오바마는 전체 5위를 차지했다. <조선일보 2014년 2월 16일>

▲ 엘리너 루스벨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의 이상적인 모델”이라 했고,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부인 베티 포드는 “귀감으로 삼았다”고 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1998년 넬슨 만델라, 마하트마 간디,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과 함께 그를 ‘20세기의 위대한 지도자 20명’에 포함시켰다. 그는 강인하고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미국 여성들의 화신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였다. 엘리너는 미국 여성들에게 자의식을 부여하고 흑인의 인권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외교적으로도 적지 않은 업적을 쌓은 미 최초의 ‘현실참여형 퍼스트 레이디’였다.
엘리너는 뉴욕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수줍음을 잘 타고 뻐드렁니에 못생긴 얼굴 때문에 늘 어머니로부터 놀림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더욱이 8살 때 어머니가, 10살 때 알콜 중독자였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고아로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15살 때인 1899년 영국으로 건너가 여성주의자가 운영하는 여자기숙학교에 입학, 단호하게 말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방식을 배웠다. 독립적인 여성의 생활방식까지 터득한 3년의 기간에 대해 훗날 그는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간이었다”고 회고했다.
18살인 1902년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엘리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신체적으로는 키가 크고 날씬하고 세련된 모습이었으며 성격적으로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활동적이었다. 그녀가 사교계에 데뷔했을 때 그녀에게 눈길을 준 사람 중에는 그녀의 먼 친척인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도 있었다. 두 사람은 1905년 그녀의 삼촌이자 현직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주례로 결혼했다. 남편 루스벨트는 시어도어 대통령의 먼 친척 동생(12촌)이기도 했다.

강인하고 독립적인 미국 여성들의 화신
남편 루스벨트가 상원의원, 해군성 차관보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그녀는 다섯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시어머니와 불화에 시달리면서도 내조에 충실했다. 그러던 중 1918년 남편이 비서 루시 머서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양처’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껍데기만 부부였다. 의례적인 자리 외에는 별거했고 공식행사가 아니면 식사도 따로 했다. 나중에 루스벨트가 또 다른 비서와 사랑을 속삭일 때는 그녀 역시 AP통신 여기자와 동성애에 빠졌다.
그녀가 사랑과 결혼이라는 비현실적인 악몽에서 깨어나는 순간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그녀가 홀로서기에 힘쓰고 해방의 날개짓을 위해 비상을 준비하고 있을 때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1921년 남편이 소아마비에 걸려 휠체어 신세가 된 것이다. 루스벨트에게는 좌절과 낙담의 순간이었지만 그의 그늘에 있던 엘리너에게는 기회였다. 남편과의 정치적인 동반자를 꿈꾼 그녀는 정치를 포기하려는 남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도록 독려했다.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1933년 취임하자 엘리너는 백악관 생활 첫 해에만 6,500km를 돌아다니며 남편을 보좌했다. 뉴딜정책의 진척상황을 남편에게 보고하고 의회에 나가 증언을 했으며 전국 당대회에서 연설을 했다. 1936년부터 시작된 ‘나의 나날들’ 칼럼에서는 때로는 남편의 정책을 지지하고 때로는 반대의사를 표명하며 정치적으로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루스벨트의 외도 후 두 사람은 껍데기만 부부
사회 문제에도 깊숙이 개입해 아동 노동을 없애고 최저 임금제와 노동자 보호권 도입을 주장하는 여성단체에 가입했다. “공적인 활동에 나선 여성들은 모두 피부를 코뿔소의 가죽처럼 튼튼하게 단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했으며 백인여성 보수단체의 반대로 음악회가 무산된 오페라 가수 메리언 앤더슨이 1939년 4월 9일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야외에서 음악회를 열도록 도와주었다. 여기자가 아주 드물 때 여성 기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기자회견을 매주 한 차례씩 연 것은 신문사마다 적어도 한명의 여기자를 뽑도록 한 조치였다.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은 엘리너의 활동이 공산주의들과 연관이 있다고 믿고 내밀한 조사를 벌였다. 그렇게 축적된 엘리너에 대한 파일은 449쪽이나 되었다. 1945년 4월 루스벨트가 죽었을 때 엘리너는 한 여기자에게 “역사는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루스벨트의 죽음은 그녀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남편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유엔 미국 대표로 활약했으며 유엔 인권위 의장으로 소련을 끈질기게 설득해 1948년 12월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세계인권선언을 발의했다.
이후에도 ‘세계의 퍼스트 레이디’는 쉬지 않고 세계를 두루 돌아다녔다. 초대받지 않았어도 어디서나 환영받는 비공식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62년 11월 7일 숨을 거두었을 때 그녀의 침대 곁에는 버지니아 무어의 시 ‘프시케’가 놓여있었고 시에는 ‘1918’이 씌어있었다. 그녀가 남편의 외도를 알았던 해였다.

■日 가미카제와 제로센 전투기
일본의 지방자치단체가 가미카제(神風) 자살 특공대원들의 유서와 편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한국인 수천 명이 강제 노역한 하시마 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한 데 이은 것으로 일본의 과거사 무시 태도에 비판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규슈의 가고시마현 미나미큐슈시는 ‘지란 특공평화회관’이 소장한 자살 특공대원들의 유서와 편지 등 1만4000여 점 중 본인 이름이 확인된 333점을 2015년 ‘지란으로부터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겠다고 2월 4일 공식 발표했다. 지란은 태평양전쟁 당시 육군 소년비행단 훈련학교 등이 있던 곳으로 당시 일본군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이곳에서 자살 특공대원들을 태운 전투기를 대거 출격시켰다. 대부분은 17∼20세 전후의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병들이었다. <동아일보 2014년 2월 5일>

▲ 가미카제 전투기(왼쪽 위)가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국의 전함 미주리호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1945.4.11)

1944년 7월과 8월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남태평양의 사이판과 괌을 미군이 함락함으로써 미군은 B-29 폭격기로 일본의 본토까지 직접 폭격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군은 내친김에 일본 본토 공격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필리핀 중동부의 군사 요충지 레이테섬 탈환을 시도했다. 전투는 더글러스 맥아더가 지휘했다.
레이테만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1944년 10월 20일부터 7일간이었다. 해전은 양국의 항공모함 등 100척 이상의 함정과 2,000기에 달하는 전투기가 투입되어 사상 최대 규모로 전개되었다. 일본은 필리핀을 잃으면 석유를 공급받는 남방 보급망을 상실하는 것이어서 방어에 필사적이었다.
전투는 특히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레이테만의 하늘과 바다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어 섬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일본은 레이테만 전투에서 3척의 전함과 4척의 항공모함 등 28척을 잃었다. 미군도 항공모함 1척, 호위함 2척, 구축함 3척 등이 침몰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군에 비해서는 피해 규모가 작았다. 해전에서 승리한 미군이 레이테섬에 상륙하면서 일본은 육상에서만 8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 이로써 태평양전쟁의 전세도 역전되었다.
레이테만 전투는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로도 유명했다. 가미카제는 1274년과 1281년 몽골·고려 연합함대가 일본을 침공했을 때 이 연합함대를 침몰시킨 계절풍을 일본인들이 ‘신의 바람(神風)’이라고 붙인 데서 연유한다. 일본 해군이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가미카제 편성에 착수한 것은 1944년 7월이었다. 주력 전투기는 제로센이었다. 가미카제는 8월 20일 일본의 기타큐슈 상공을 비행하던 미국의 B-29 폭격기와 충돌하면서 첫 전사자를 냈다.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는 제1항공함대 사령관 오니시 다키지로 중장이 ‘가미카제 특공대’ 편성을 명령한 것은 1944년 10월 17일이었다. 폭탄을 실은 전투기를 그대로 적함에 부딪치게 하는 옥쇄작전이었다. 첫 특공대원은 24명이었다. 4개조 공격대로 나뉜 특공대는 각각 시키시마(敷島)대, 야마토(大和)대, 아사히(朝日)대, 야마자쿠라(山櫻)대로 명명되었다. 이는 일본의 유명한 화가(和歌) ‘야마토 다마시(大和魂)’에서 딴 이름이다.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18세기에 쓴 ‘야마토 다마시’는 “일본의 마음(敷島의 大和心)을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것은 아침(朝日) 햇살에 빛나는 벚꽃(山櫻花)”이라는 내용의 시다.
가미카제는 10월 21일 처음 출격했으나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10월 25일 각각 250kg의 폭탄을 적재한 6기의 '제로센 전투기'가 또다시 출격했다. 제로센은 3,000m 이상의 높은 고도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구름 속을 뚫고 나와 최고 시속 600km로 미 항공모함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히듯 급강하했다. 가미카제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日 천황 “정말 장하다” 격려 메시지 보내
미군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했다. 수직 하강으로 돌진하는 전투기 몇 기를 대공 포화로 격추했지만 일부 전투기는 대공 포화를 피해 그대로 미군 함정에 내리꽂혔다. 이 무지막지한 공격으로 미 호위항모 세인트로호는 격납 갑판의 폭탄과 어뢰가 연쇄 폭발해 끝내 침몰했다. 다른 함선도 큰 피해를 보았다. 일본은 해군에 이어 육군도 가미카제 특공대를 편성해 11월 7일 첫 번째 부대를 출격했다.
군부는 가미카제 대원들을 '피어 있는 사쿠라 꽃'에 비유하며 죽음을 독려했다. 이들이 타는 비행기에 사쿠라 꽃을 새기거나 또 출격 때는 여학생들이 사쿠라 가지를 들고 나와 전송하기도 했다. 이들의 전사를 ‘산화(散華)'라고 한 것도 ‘사쿠라 꽃(華)이 지(散)듯'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의미였다. 오니시는 일제 패망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 가미카제 영령들에 대한 사죄를 담은 유서를 쓰고 자살했다.
초기의 가미카제 공격은 상당한 전과를 거뒀다. 그러나 곧 미군 전함의 방공 능력이 개선되고, 폭탄을 너무 많이 탑재해 속도가 느려진 일본의 전투기를 미 전투기들이 쉽게 격추하면서 점차 위력을 잃었다. 성공 확률도 6%밖에 안 되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1945년 4월부터 전개된 오키나와 전투에 가미카제 전투기를 대거 출전시켰다. 물론 대부분의 가미카제는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대공포나 미군 전투기의 기총소사로 목표물에 접근도 못한 채 허무하게 바다로 침몰했다. 패망 때까지 이렇게 죽어간 일본의 청춘은 모두 1만 4,000여 명이나 되었다.
일본은 전투기를 이용한 가미카제 말고도 인간어뢰 ‘가이텐(回天)’, 자폭용 고속정 ‘신요(震洋)’, 인간폭탄 ‘사쿠라바나(櫻花)’ 등의 변종 가미카제로 자살 공격대를 만들어 끊임없이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천황은 초기에 가미카제 공격의 소식을 접하고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그러나 정말 장하다”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군부에 내려보냈다.
가미카제 특공대에는 조선인도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필리핀 전투에서 5명, 오키나와 전투에서 12명, 후지산 근처에서 B-29를 향해 자살 공격을 감행한 수를 포함하면 18명이나 된다. 그 중에는 강제로 끌려갔다가 이륙 후 편대 편성을 거부한 채 비행기에 장착되어 있던 폭탄을 터뜨려 자폭한 조선인도 있었다. “출격은 하되 미군은 공격하지 않겠다"는 통렬한 항거였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한동안 ‘무적의 신화’로 군림

▲ 제로센 전투기

‘제로센(零戰)’은 일본이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태양처럼 떠오르고 다시 그 태양이 가마카제와 함께 태평양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칠 때까지 일본과 명운을 함께 한 일본의 대표적인 함상 전투기였다. 독일의 메서슈미트 BF109, 영국의 스핏파이어와 함께 2차대전 때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꼽힐 만큼 성능이 뛰어나 태평양전쟁 발발 초기에는 미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일본 해군이 신개념의 함상 전투기 ‘A6M1'을 개발해 첫 시험비행에 들어간 것은 1939년 4월이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않아 실전에는 투입하지 않고 곧 중단했다. 그후 기능을 보완하고 새로운 엔진을 장착한 ‘A6M2’를 1940년 1월 생산했다.
‘A6M2’ 전투기는 시속 535km에 세 날 프로펠러를 달고 7.7mm 기관총과 20mm 기관포를 장착했다. 지상 공격도 가능하도록 60kg 폭탄 2개를 날개 밑에 달았다. 전투기는 1940년에 해당하는 일본의 기원이 2,600년인 것에 착안해 ‘영식(零式) 함상 전투기' 즉 ‘제로센((零戰)’으로 명명되어 1940년 7월 24일 일본 해군의 함상 전투기로 정식 채택되었다.
제로센이 비로소 소련제 중국기와 중경 하늘에서 처음 조우한 것은 1940년 9월 13일이었다. 제로센은 고속의 선회 기능을 적절히 활용해 수적으로 우세한 소련제 중국기 대부분을 격추해 중경 상공의 제공권을 장악했다.
제로센이 중국 하늘에 자주 등장하자 관련 보고서가 미 정보부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미 정부가 황색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보고를 무시하거나 묵살해 이듬해 12월 진주만 기습 때 피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제 전투기를 어린애들 장난감에 기관총을 얹은 정도의 유치하고 조잡한 물건 정도로 여겼다.
그렇다고 미국의 전투기가 수준이 높았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지리적인 이유로 전투기 부문에서는 후진국이었다. 미 본토가 유럽이나 일본 등 적국으로부터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적의 전투기가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 미국을 공격한다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군은 긴 항속거리가 보장되는 폭격기만으로도 적의 공격을 원거리에서 차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1만여 기 생산
베일에 가려 있던 제로센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발발 후였다. 개전 초기 제로센 앞에서 미 전투기들은 사냥감에 불과했다. 속도, 상승력, 회전성에 조종사들의 풍부한 실전 경험까지 더해져 제로센은 무적의 신화가 되었다. 무게를 최대한 줄인 제로센은 한 번의 연료공급으로 미 전투기보다 3배 이상 긴 거리인 최대 3,000km까지 비행했다. 1대 1로 공중전이 벌어져도 미국의 P-40기가 몸놀림이 민첩한 제로센을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제로센에도 약점은 있었다. 기체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 조종사를 보호할 장갑판이 없고 연료통 피격시에 누출을 막아주는 장치가 없다는 게 약점이었다. 이후 ‘A6M3'가 제로센의 후속모델로 개발되는 등 개량이 거듭되긴 했지만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하고 태평양전쟁이 중반으로 넘어서면서 제로센에도 강력한 적들이 등장했다. 결정적으로는 1942년 6월 제로센의 연료 탱크가 망가져 어느 섬에 불시착했다가 멀쩡한 채로 미군의 손에 넘어가면서 약점이 드러났다.
미군은 제로센을 손쉽게 격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 결과 주력 전투기인 F4F 와일드캣의 튼튼한 내구성과 뛰어난 급강하 능력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와일드캣은 조종석과 엔진에 장갑판을 설치해 제로센의 공격으로 격추되더라도 조종사는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반면 제로센은 피격 때는 기체가 추락하기도 전에 조종사가 전사하는 경우가 많아 우수한 조종사의 피해가 컸다.
태평양전쟁이 중반기로 접어들 무렵 헬캣이나 코르세어와 같은 뛰어난 성능을 지닌 연합군의 전투기들이 등장하면서 제로센은 더 이상 무적의 전투기가 아니었다. 1942년에는 와일드캣 1기가 격추되는 동안 제로센은 5.9기가 격추되었다. 그래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1만여 기가 생산되어 미군에게는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