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대법원은 1월 13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 50주기를 맞아 추념식을 가졌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양승태 대법원장과 황찬현 감사원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진태 검찰총장, 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김병로 선생 유족 등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양 대법원장은 추념식에서 “사법부는 이 나라 전체를 수호하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던 가인 선생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면서 “사법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인 선생이 바라는 추모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2014년 1월 14일>

▲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일제하에서 나라 없이 방황하는 ‘거리의 사람’이란 뜻으로 자신을 가리켜 ‘가인(街人)’이라고 불렀던 김병로(1887~1964). 그는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을사조약 체결 후인 1906년, 19세의 나이로 최익현의 의병에 가담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일제의 ‘호남 대토벌 작전’에 가로막혀 더 이상 의병 투쟁을 할 수 없게 되자 실력 배양 운동으로 눈을 돌려 1910년 4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13년 메이지대 법과를 졸업하고 메이지대와 주오대가 공동운영하는 법률고등연구과에서도 법률을 계속 공부했으나 조선인은 일본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1915년 7월 귀국해 경성전수학교와 보성법률상업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1919년 3·1 운동 후 일제의 문화정치 표방에 따라 총독부가 조선인이라도 일정한 자격이 있으면 판사 자격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방침을 바꾼 덕에 1919년 4월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원 판사가 되었다. 1920년 4월 변호사로 개업한 뒤에는 변호사와 사회운동가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사 운동을 비롯해 소작쟁의, 노동쟁의, 동맹휴학 등 각종 사건들을 변호하는 데 동분서주했으며 1920년대의 항일운동 변호에도 늘 변호인석을 지켰다.

해방 후 법조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
안창호·여운형 등 민족지도자에 대한 치안유지법 위반 사건, 김상옥 의사 사건, 광주학생운동, 6·10 만세운동, 흥사단 사건, 조선공산당과 간도공산당 사건 등 무려 100여 건에 달하는 사건을 맡아 민족변호사로 성가를 높였다. 1923년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발기인으로도 이름을 올렸으며 1930년 신간회의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출되어 좌우합작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해방 후 김병로는 임시정부 봉대 입장을 취하면서도 1945년 9월의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좌우합작도 지지해 중도우파 김규식과 중도좌파 여운형을 상대로 좌우합작의 성사를 위한 협상을 중재했다. 당시 미 군정은 좌우합작 운동을 적극 지원했기 때문에 1946년 7월 김병로를 미 군정청의 사법부장으로 기용했다. 1947년 6월 미 군정청이 남조선과도정부로 바뀌면서 김병로는 남조선과도정부의 사법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후 1년여 동안 대한민국의 법을 기초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김병로는 사법부 안에 기초법전의 초안을 작성할 법전 기초위원회를 조직했다. 일제 말기에 바뀐 2심제를 1948년 4월 3심제로 부활하고 법원조직법, 변호사법, 검찰청법 등을 제정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처럼 미군정청과 남조선과도정부의 사법부장으로 모두 2년 1개월 동안 봉직하면서 김병로는 해방된 조국의 실정에 맞게 법 체계를 갖추는 일에 전념했다.
당시 법조계에서 차지하는 김병로의 위치는 거의 독보적이었다. 이 때문에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김병로를 초대 대법원장에 임명하는 것을 꺼려했다. 자신과 노선이 다른 김규식과 김병로의 좌우합작 노선이 같다는 것, 그리고 김병로의 고집을 꺾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 법무장관으로 발표된 이인이 “김병로가 대법원장이 되지 않으면 나도 법무장관을 할 수 없다”며 강력히 추천해 1948년 8월 5일 김병로를 대법원장에 임명했다. 의회는 재석 157명 가운데 가 117표, 부 31표, 기권 3표, 무효 6표라는 압도적 다수로 동의했다.

이승만과 처음 부딪친 것은 친일파 처벌 문제
예상대로 김병로는 이승만에게 껄끄러운 존재였다. 두 지도자가 먼저 부딪친 것은 친일파 처벌 문제였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재판장을 맡아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할 때 신속·공정한 재판을 강조하는 김병로와 달리 이승만은 친일파 처벌에 미온적이었다. 이 때문에 이승만이 반민특위법 개정을 요청해도 거부했고 반민특위 활동을 이승만이 비판하면 반박하며 맞받아쳤다. 이승만은 눈엣가시 같은 김병로를 해임하고 싶었으나 탄핵이나 형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70세 정년 혹은 10년의 임기가 보장되어 있어 마음대로 해임할 수도 없었다.
부산 피란 시절 김병로는 “온 천하가 일자리는커녕 먹을 것 입을 것이 없다”며 자주 점심을 굶거나 밀가루 죽으로 때웠다. 대법원장 공관 화장실엔 손바닥보다 작게 자른 신문지 묶음이 화장지 대신 매달렸다. 9·28 서울 수복 며칠 뒤 전남 담양의 친정으로 피난 가 있던 부인이 공비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었을 때도 가정일은 사적인 일이라며 일체 내색하지 않는 초연함을 보였다.
휴전 후 자유당 정권이 수시로 사법부에 압력을 가할 때는 정면으로 맞섰고, 이승만이 공개적으로 사법부를 비난할 때는 반박 담화로 사법부의 권위를 지켰다. 이렇듯 이승만과 사사건건 맞붙다가 1957년 12월, 70세 정년이 되어 9년 8개월 만에 대법원장에서 물러났다. 정년 퇴임식에서는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는 말을 하고 떠났다.
퇴임 후에도 김병로의 기개는 꺾이지 않았다. 1958년 12월 이른바 ‘2·4 보안법 파동’ 때는 국회의장의 경위권 발동을 격렬하게 비난했으며 국가보안법 개정에도 명백하게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한동안 조용히 지내던 김병로가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은 쿠데타 발발과 함께 금지되었던 민간인의 정치 활동이 재개된 1963년이었다. 김병로는 윤보선을 비롯해 민주정치의 회복을 바라는 야당 지도자들과 함께 민정당을 창당해 1963년 5월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뒤이어 4·19 직후 과도정부를 이끌었던 허정의 신정당,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의 민우당 등과 민정당을 통합한 ‘국민의당’을 창당해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1964년 1월 13일 7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오노다 히로 구 일본군 소위 28년만에 항복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패배한 뒤 투항하지 않고 29년간 필리핀 정글에서 살아남아 1970년대 세계적 화제가 됐던 전 일본군 소위 오노다 히로씨가 1월 16일 지병으로 숨졌다. 1942년 20세 나이로 일본 육군에 입대한 오노다씨는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정보 장교였다. 1944년 말 필리핀 루방섬으로 파견된 그는 이듬해 2월 연합군 공격으로 현지 일본군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힌 가운데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오노다씨는 이후 일본의 패전을 믿지 않고 투항을 거부한 채 29년간 필리핀 정글에서 버텼다. 그는 1974년 2월 일본의 한 청년 탐험가에게 발견될 때까지 필리핀 경찰과 미군 등 30명 이상을 살상했다. 오노다씨는 전쟁 당시 직속상관이 직접 찾아와 “임무 종료, 무장 해제”를 명령하자 결국 투항했다. <조선일보 2014년 1월 18일>

▲ 투항 후 거수경례하는 오노다 히로 소위

오노다 히로(1922~2014) 일본군 소위가 멀리 필리핀 루방섬에 배치된 것은 일본의 패색이 짙던 1944년 9월이었다.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미군의 진격에 대비한 전략정보 수집과 후방 교란이었다. 루방섬에 도착해서는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투항하지 말라”는 지시를 직속 상관 다니구치 소령으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다.
1945년 2월 미군이 루방섬에 상륙하고 그의 부대가 전투에서 패퇴하자 그는 40여 명과 함께 밀림 속으로 도주했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대부분은 투항했으나 오노다와 3명의 사병만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더 깊은 정글로 숨어들었다. 1950년 1명이 투항하고 1954년과 1972년 2명이 필리핀군에 사살되어 혼자가 되었으나 그는 천황에 대한 충성심과 임무수행에 대한 강한 의지로 바나나와 코코넛 열매를 먹으며 정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여전히 필리핀을 대일본 제국의 적국으로 여기고 필리핀의 민간인을 살해하는 등 후방교란의 임무를 수행했다.

日 우익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굳게 지킨 영웅” 호들갑 떨어
그의 생존 사실이 일본에 알려진 것은 1972년 무렵이었다. 미군이 일본의 항복 사실을 알리는 전단을 산속에 뿌리고 일본 정부와 가족도 수차례 현지를 방문해 확성기로 “전쟁이 끝났으니 돌아오라”고 투항을 권고해도 오노다는 일본의 패전 사실을 믿지 않았다. 훗날 그는 기자회견과 자신의 자서전에서 당시 가족의 귀환 호소를 무시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군이 나를 투항시키기 위해 형과 가족을 데려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 옆에 무장한 필리핀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4년 그의 실종을 안타깝게 생각한 한 젊은 탐험가가 루방섬에서 그의 자취를 더듬다가 2월 20일 오노다와 조우했다. 탐험가 역시 귀환을 권했지만 오노다는 “상관의 명령 없이는 산에서 내려갈 수 없다”며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오노다의 요구대로 과거 직속상관인 다니구치가 구 일본군의 투항명령문을 갖고 필리핀으로 건너와 오노다에게 복귀명령을 내리고서야 투항을 결심했다.
오노다는 3월 10일 루방섬 필리핀 공군기지에서 필리핀 공군사령관에게 일본도를 넘겨주며 정식으로 항복 절차를 밟았다. 일본 패망 후 28년 5개월만이었다. 발견 당시 머리는 일본군 규칙에 따라 짧게 깎여 있었고 복장은 단정했으며 소총은 반짝반짝 손질되어 있었다. 항복한 그날 밤 오노다는 30년 동안 매일 기록한 루방섬 정찰·전투일지를 과거 상관에게 보고했다.
22세 청년에서 52세 중년으로 변해버린 오노다의 투항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그가 수많은 세월을 정글에서 허비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일본 군인정신의 부활”이라며 3월 12일 귀국한 그에게 열광했다. 공항에는 7000여 명이나 몰려와 일장기를 흔들며 개선장군을 맞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오노다는 공항 기자회견에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나의 신념에 바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노다는 곧 패전 후 경제성장으로 경제대국으로 도약했지만 전쟁 패배의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일본인들에게 정신적 자존감을 세워준 영웅으로 떠올랐다. 우익 단체는 “일본의 정신인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굳게 지킨 영웅”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 초췌한 모습으로 발견된 요코이 쇼이치 하사

“총검을 녹슬게 한 자와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오노다는 괌의 정글에서 숨어 지내다 2년 전 발견된 요코이 쇼이치 하사와 비교되었다. 요코이는 1943년 괌에 배치되었다가 이듬해 미국이 괌을 재점령하자 10명의 병사와 함께 정글 깊숙이 퇴각했었다. 7명은 일찌감치 어디론가 흩어지고 나머지 3명은 서로의 은신처를 오가며 교류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1964년 두 병사가 굶주림으로 사망해 요코이 혼자 남았다.
요코이는 놀라운 생존력으로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게와 새우를 잡아먹고 망고와 코코넛을 따먹었으며 비둘기, 야생 돼지, 쥐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그러던 중 1952년 정글에서 일본의 패전을 알리는 전단을 보았으나 그 역시 “산 채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라”는 일본군의 훈령이 두려워 정글에서 야인으로 사는 쪽을 택했다. 그러다가 그가 밀림에서 동네 주민에게 생포된 것은 1972년 1월 24일이었다. 요코이는 귀국 후 “전쟁 중이나 후에도 목숨을 끊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해 일본군의 옥쇄 강요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보여주었다.
오노다가 귀국 후 두 사람의 대담이 추진되었을 때 요코이는 승낙한 반면 오노다는 거부했다. “천황이 하사한 총검을 녹슬게 한 자와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오노다는 “전후 일본에서 과거의 일본적 가치들이 사라졌다”며 1975년 10월 브라질로 이주했다. 10여년 뒤 일본에 돌아와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일본군에 의한 남경대학살을 중국측에 의한 조작이라고 외치는 등 우익 활동가로 여생을 보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