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는 요즘 들어 하나의 시대정신과도 같아 보인다. 세계적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수가 크게 늘었을 뿐 아니라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채식주의자를 나타내는 말만 해도 예전에는 단순히 배지테리언(Vegetarian)이라는 한 마디로 통용이 되던 것이 이제는 채식의 형태나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표현으로 세분된다. 배지테리언은 이미 잘 알려진 보통명사가 왰지만, 아직 영어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신조어들이 많다.

▲ 대화당한의원 이은주 원장

배지테리언은 채식주의자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말이다. 그러나 채식주의자 가운데도 철저하게 식물성만 취하는 사람과 일정정도 육류나 유제품을 섭취하는 사람 등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이러한 분류가 생겨나게 된 것 같다.
철저한 채식주의자는 비건(Vegan)으로 불린다. 다른 동물에게서 생산된 것이라면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철저한 채식주의자다. 계란이나 우유, 또는 그것이 들어간 가공식품도 먹지 않는다.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가 얼마나 부도덕한 방법으로 사육되는지를 알리는 캠페인도 이들 열정적인 비건들에 의해 확산되고 있다. 비건의 채식주의는 단순히 영양이나 건강에 대한 관심에 머물지 않고 동물보호나 환경윤리 같은 철학적 담론, 또는 캠페인들과 연계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채식을 취하되 다소 유연성을 지닌 채식주의자도 있다. 어쩌면 더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이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 주로 계란이나 우유 정도를 허용한다. 지난 세기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냈던 마트마 간디도 원칙적으로 배지테리언이었으나, 그가 배를 타고 영국을 방문할 때 젖이 나는 염소를 싣고 갔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채식만으로는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우유나 계란을 섭취하는 유연한 채식주의자였던 것이다. 이런 수준의 채식주의자는 세미 배지테리언(Semi Vegetarian), 또는 유연성이 있다는 의미에서 플렉서테리안(Flexitarian)으로 부른다.

사실 대다수 채식주의자들은 세미 베지테리언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유연성을 지닌 채식주의자들이 채식 외에 취하는 동물성 식품이란 주로 계란(Ovo)과 우유 유제품(Lacto) 어류(Pesco) 등이기 때문에 이러한 접두어를 사용해서 자신들이 허용하는 동물성 식품의 범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락토 베지테리언이라 하면 유제품은 먹는 채식주의자, 오보 베치테리언이라 하면 계란을 먹는 채식주의자를 의미한다. 계란과 우유를 먹으면 락토-오보-베지태리언이다. 생선류를 먹는 채식주의자는 페스카테리언(Pesceterian). 대개는 생선도 잘 먹지 않지만, 해안지역을 여행할 때나 건강상 영양분의 필요 때문에 한정적으로 어패류를 섭취한다.
동물성 식품은 철저히 배제하는 비건의 경우라도 다 같은 형태의 채식을 하는 건 아니다. 우선 그들은 동물에게서 생산된 것은 어떤 것도 먹지 않는다. 우유가 재료로 사용되는 버터나 아이스크림까지도 먹지 않는 것이 비건들의 원칙이다. 이런 연구자들에 의하면 우유는 고기만큼이나(혹은 고기보다 더 한층)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이라고 한다.

철저한 채식이라는 점에서 모든 비건들은 마찬가지지만, 그 가운데서도 어떤 채식을 주로 하는가, 혹은 불에 익혀먹는가 생식을 주로 하는가에 따라 이들은 또 분류가 된다. 불에 삶거나 익히지 않고 날것만을 먹는 채식주의자들은 로우비건(Row Vegan)으로 불린다. 과일과 야채 중에서도 주로 과일을 위주로 먹는 사람을 프루테리안(Fruitarian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과일 조차도 나무에서 직접 따기보다 되도록이면 푹 익어 절로 떨어지는 정도의 과일 곡물 견과류를 먹는데, 종교적 신념에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식단에서 동물성 식품을 제하고 채식의 비중을 높일수록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잡식성이나 육식동물들이 본래는 채식을 하는 동물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일체의 육식을 중단하고 채식으로 돌아가도 영양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다’고 동의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동물성 식품의 비중이 0%에 가깝도록 절대적 채식을 한다면 과연 완벽한 식단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 현대의 영양학 교과서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불완전하다(물론 앞으로 영양학의 기준이 바뀔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 채소나 과일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필수적인 영양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채식 문제를 역사 문화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도 있다. 고기 없이 야채 과일을, 그것도 날 것으로 매일 먹는 일은 현실적으로 열대지방에서는 가능하고 한대지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운 지역에서는 고기가 쉽게 부패되어 자주 갖춰두고 먹기 어려운 반면 싱싱하고 다양한 과일과 채소는 언제든지 쉽게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선도적인 채식 레스토랑들은 인도네시아 발리 등 열대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반면 야채나 과일이 잘 자라기 어려운 한대지방 같으면, 채식보다는 육식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채식이냐 육식이냐 문제에 있어서 무엇이 ‘절대로 좋다 또는 옳다’는 단정을 내리기 보다는 다양한 생존환경이나 식문화에 대한 고려가 유연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식물과 동물에서 다 같이 건강유지에 필요한 영양소를 얻을 수가 있는데, 엄밀하게 보면 동식물성 식품 뿐 아니라 미네랄로 표현되는 광물질의 섭취도 필요로 한다. 인체성분 중에는 철분이나 구리 석회성분도 들어있고 이 밖에도 다양한 미량원소 미네랄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미네랄 성분은 마시는 물이나 채식을 통해 흡수된다. 다양한 식품을 고루 섭취함으로써 이들 미네랄은 자연 흡수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남성 기능에 특히 영향을 주는 금속원소는 아연(Zn)이다. 아연 성분이 부족하면 정액이 줄어들고 전립선의 기능도 위축될 수 있다. 그렇다고 금속 아연을 먹을 수는 없는 일. 아연이 많이 포함된 신선한 굴과 조개류, 계란, 콩, 시금치 등이 자연스런 섭취를 도울 수 있다. 특히 토마토는 미네랄 공급과 함께 전립선암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암 예방에 좋다는 셀레늄도 다양한 야채를 통해 공급될 수 있다. 
철두철미한 채식을 권하지는 않겠지만, 현대인의 식단에서 육식을 줄이고 채식의 비중을 높이는 게 좋다는 것은 상식이다. 채식은, 단지 식물성 영양소를 섭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수적인 미네랄 원소를 섭취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립선암이 늘어나고 있고, 암이 아니더라도 전립선 질환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전립선 질환이 늘어나는 원인의 일부는 지나치게 높은 동물성 콜레스테롤에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매일의 식단을 통해 섭취하는 영양의 균형을 생각한다면, 현대인들은 채식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할 것이다. NM
   (대화당한의원 원장. 한국밝은성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