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아가씨’ ‘님 계신 전선’ ‘소녀의 꿈’의 원로가수 금사향씨는 우리나라 최고 원로급 여가수 중 한분이지만 최근에도 여전히 바쁘다.
한국전쟁 당시 발표된 ‘님 계신 전선’은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해 있던 육군 제1훈련소 군예대 활동 당시 53년에 취입한 노래로 흔히 ‘먹물도장’을 찍었다는 당시 연예인 중 한 명. 이 ‘먹물도장’이라는 것은 ‘위문공연 도중 죽더라도 국가에게 보상을 받지 않겠다’라는 일종의 각서로 이를테면 그녀의 당시 활동은 곧 목숨을 건 것이었다. 이 비장함은 현재의 무대에서도 느껴진다.

▲ ‘홍콩아가씨’의 가수 금사향

특히 ‘태극기 흔들며...’로 시작하는 ‘님 계신 전선’을 부를 때면 실제로 태극기를 들고 나와 손으로 흔들며 부르는 장면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금사향씨는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태극기를 구입했고 또 실제로 금사향씨 방에는 태극기가 가득 걸려 있다. 86세의 우리나라 최고령 원로여가수 금사향씨가 살아가는 이야기.

글 l 박성서(대중음악 평론가, 저널리스트)
사진 l 최광호(사진작가)

한국여인들의 삶이 담긴 구전가요, 육성으로 재현해 총 집대성한다

‘홍콩아가씨’ ‘님 계신 전선’ ‘소녀의 꿈’의 원로가수 금사향(86세)씨는 우리나라 최고 원로급 여가수 중 한명이지만 최근에도 여전히 바쁘다.
한 달에 네, 다섯 차례 씩 전국 곳곳의 공연무대에 서는 동시에 최근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구전가요들을 직접 육성으로 재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동영상 녹음작업을 하고 있다.
어릴 때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따라 불렀던 노래에서부터 제목조차 알 수 없는 작자 미상의 노래들까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60년대 궁핍했던 시절까지 우리 한국여인네들의 삶과 함께 해온 노래들을 집대성하고 있는 것.
“노래가 지니고 있는 힘이라는 게 있잖아요. 힘들 때일수록 더욱더 위안이 되어주던 노래들은 그 의미를 알수록 더욱 값집니다. 그저 한국여인네들의 입에서 입으로 흘러 다니던 구전가요들은 사실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문화유산이죠. 악보조차 남아있지 않은 노래들이 대부분인 이러한 노래들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 세대마저 점차 사라지고 나면 노래도 함께 묻혀 질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에 이러한 작업을 시작했지요.”
비록 반주 없이 부르는 노래지만 마치 어머니가 딸에게 소중한 패물 건네는 심정으로 틈틈이 마이크 앞에 선다는 그의 노래에는 마디마디 시대의 생활상과 정서가 절절이 묻어난다.

‘궂은비는 이렇게도 쏟아지는데/붙잡아도 뿌리치고 배웅도 싫다시니/칠십 리 구비고개 떠나가는 님이시여/치마를 벗어주니 우산 대신 받고 가소/가다가 젖거들랑 우--- 짜서 받고 가세요’
 

▲ 금사향 ‘님계신 전선’ 취입 장면(좌측), 1952년.

제목도 모르는 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노래 중 한 곡으로 임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심정이 잘 표현된 듯싶어 임시로 붙여놓은 제목이 ‘여심’이다.
이렇듯 구전가요를 집대성하는 작업은 금사향씨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채록 작업에 필자 또한 돕고 있고 스틸사진은 사진작가 최광호, 동영상 촬영은 갤러리 빔의 조수연 관장이 맡아 진행 중이다. 아울러 그가 직접 몸으로 겪어온 시절의 연예계 비사들도 생생한 증언을 통해 함께 기록하고 있다.

8.15 광복 이후 등장한 가수 1호
본명 최영필(崔英弼). ‘금사향(琴絲響)’이란 이름의 뜻은 ‘거문고를 울려서 나는 교향악’이라는 뜻으로 작사가 고려성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첫사랑’이란 곡으로 데뷔하여 ‘홍콩아가씨’ ‘님 계신 전선’ ‘소녀의 꿈’ 등을 발표한 가수 금사향씨는 1929년 평양 출생이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상공부 섬유국에서 영문타이피스트로 근무하던 중 주위의 권유로 콩쿠르에 참가, 당시 조선 13도 대표들과 겨뤄 가수로 데뷔한다. 이어 48년, 당시 중앙방송국(현 KBS) 전속가수 모집에 합격, 전속가수 1기생으로 활동했다.
젊은 시절부터 화려하고 재치 있는 언어구사에 외모가 귀여워 주위에서 영화배우나 만담 같은 것을 권유했어도 오직 가수이기만을 고집했던 금사향씨의 대표곡, ‘님 계신 전선’은 한국전쟁 당시 군예대 시절 발표된 노래. 52년 제주 모슬포에 위치해 있던 육군제1훈련소에 배치되었을 당시 취입한 곡이다.
한국전쟁 당시 최전방 209GP까지 위문 공연활동을 펼쳤던 그는 흔히 ‘먹물도장’을 찍었다는 당시 참전연예인 중 한 명이다. 이 ‘먹물 도장’이라는 것은 ‘위문공연 도중 죽더라도 국가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는 일종의 각서로 이를테면 그녀의 당시 활동은 곧 목숨을 건 것이었다.
이러한 비장함은 최근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태극기 흔들며...’로 시작되는 이 ‘님 계신 전선’을 부를 때마다 실제로 태극기를 흔들며 부르는 장면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금사향씨는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태극기를 구입했고 또 실제로 금사향씨 방에는 태극기가 가득 걸려 있다.

‘먹물도장’ 찍고 난 뒤 제주육군제일훈련소에서 최전방 209GP까지

이 ‘님 계신 전선’은 한국전쟁 당시 가족들을 전장에 떠나보내야 하는 국민들의 절실함과 염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 한국전쟁 당시 제주 모슬포에 위치한 제1육군훈련소 군예대 시절. 고화성 금사향 남인수 아수동 구봉서 등의 모습이 보인다

태극기를 흔들며 님이 떠날 새벽 정거장/기적이 울었소/만세소리 하늘 높이 들려오던 날/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시나/님이여 건강하소서.
두 손을 붙잡고 님의 축복 빌던 정거장/햇빛도 밝았소/파도치는 깃발 아래 헤어지던 날/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시나/님이여 건강하소서.
-‘님 계신 전선’(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금사향 노래)

“전쟁 때는 모두 부산으로 피난 갔잖아요. 저는 국방부 정훈국에 소속되어 제주도 육군제일훈련소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당시 박시춘, 유호, 신카나리아, 남인수, 김봉명 선생, 또 아수동, 구봉서... 특히 구봉서씨는 당시 아코디언을 연주했어요. 이때 ‘님 계신 전선’을 취입하기 위해 10시간 정도 걸려 제주도에서 부산까지 배를 탔죠. 대구 오리엔트에서 ‘님 계신 전선’을, 그리고 부산 아미동에 있던 도미도레코드사를 통해 ‘홍콩아가씨’ 등을 취입했어요. 또한 북방 한계선인 209 GP까지 위문을 다녔어요. 이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생명을 보국하는데 저는 노래로서 보답한 거죠.” 이 ‘님 계신 전선’ 노래비는 50여 년 뒤인 2007년 8월, 강화도 선원사(주지 성원스님)에 제막되었다.

“이 ‘님 계신 전선’이 최근 들어서는 일부 가사가 틀린 채로 불리어지기도 하던데요. 1절은 ‘님이 떠날 새벽 정거장’이에요. 아직 안 떠난 거죠. ‘님이 떠날 새벽 정거장’이니까 깃발을 흔들어 환송하는 거죠. 또 ‘파도치는 깃발 아래’ 부분을 ‘파도소리 깃발 아래’라고도 많이 부르더군요. 군인들을 환송하느라 파도치는 것처럼 깃발이 막 휘날리는 건데 ‘파도소리 깃발 아래’면 물에 다 빠져서 다 죽게? 안 되죠.”

아울러 그는 전투가 벌어지는 곳곳을 다니며 위문 활동을 펼쳤다. 당시 먼 길을 달려 하루 종일 차로 이동하느라 머리가 온통 먼지투성이로 변해 빗질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심지어 얼굴이 흙투성이가 된 채로 공연장에 도착해 부랴부랴 무대에 서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얼굴로 무대에 나서야 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에 갔을 적엔 된장찌개 해주니까 아무도 안 먹어. 그러다가 한 3일쯤 지나니까 소금국도 이젠 없어 못 먹어. 먹을 게 건빵밖에 없을 때에도 화기애애하게 둘러앉아 ‘건빵 먹기대회’같은 거 하면 난 늘 1등을 하곤 했죠. 전쟁 때라 일순간, 일순간이 아주 소중하고 귀해요. 또 모두들 극한까지 넘나들었죠.” 전쟁 중 ‘별의 별’일을 다 겪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죽음에 대한 공포조차 없어지기도 하더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북방 한계선 공연을 마치고 대구로 이동하느라 청량리역에서 화물기차를 탔어요. 사람이 워낙 몰려들다보니 아수라장이죠. 그나마 부지런한 사람들은 기차 안, 밑에 타고 늦게 온 사람들은 기차 꼭대기, 그 위에 매달려야 해요. 기차가 굴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잠자다가 떨어져서 죽는 사람도 있었고 다치는 사람도 부지기수였죠. 또 이런 얘기, 해도 되나? 당시 기관사들이 굴에 들어가면 일부러 한참을 머물곤 했어요. 그러면 기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여기저기 돈을 걷어 기관사 아저씨에게 건네줘야 그제서 ‘칙칙폭폭~’하고 굴에서 빠져 나가곤 했죠...”

그는 이 시절, 고생만 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축복받은 결혼식을 부산에서 올렸다. 상대는 김광수밴드에서 테너 섹서폰을 불던 연주인이자 편곡자, 박호일씨.
“당시 우리 신랑은 4년 동안이나 저를 짝사랑 해왔는데 그때마다 저는 좀 뻐겼어요.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면 배 아파서 안 된다고 하고... 제가 좀 웃겼죠. 그러자 부산 바다에 ‘투신자살 한다’고 협박까지 해오면서 결국 결혼하게 되었죠. 그 당시에는 연예인끼리 결혼하는 것이 아주 드물었던 때에요. 우리는 부산의 해군함정, 즉 LST 안에서 당시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비교적 호화판 결혼식을 올렸죠.”
또한 부산 피난시절, 고생이 극심하던 시절이라 모두들 의지해 살았다.
“사람을 귀하게 여겼고 또 아는 분들끼리 한 집에 살았어요. ‘노란샤쓰의 사나이’의 작곡가 손석우 선생님을 비롯해 모두들 부산 대청동 한 집에 모여 살았죠. ‘사십 계단 층층대에..’로 시작하는 ‘경상도아가씨’를 부른 가수 박재홍씨는 그때 전기기술자였기 때문에 전기 소켓하고 전기 줄 같은 거 파는 장사를 했고 또 남인수 선생 부인인 은하언니는 국제시장에서 우유장사를 하셨고... 다들 어려웠던 시절이라 있는 대로 나눠 먹고 나눠 쓰곤 했죠.”

또 다른 대표곡 ‘홍콩아가씨’ 또한 피난시절 부산에 설립된 도미도레코드사를 통해 54년도에 취입되었다. 이 노래는 당시 미국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사교춤이 보급되기 시작될 즈음 히트했던 우리나라 사교춤 노래 1호이기도 하다. 이어 나온 노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과 더불어 당시 사교춤 붐을 주도했다.

‘홍콩아가씨’의 주인공, 드디어 발표 60년만에 홍콩 땅을 밟다

젊은 시절 금사향씨의 별명은 ‘양파’, 그리고 ‘생쥐’였다고 한다. 얼굴이 동그랗고 뽀얗다고 ‘양파’, 그리고 또 부지런하다고 ‘생쥐’였는데 그 많은 공연을 다니면서도 그날 빨래를 절대 미루지 않았을 정도로 부지런했다.

▲ 1박2일 일정으로 서해안 무창포에서 촬영 중인 금사향 여사. 2011년.

스무 세 살 되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해군함정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금사향씨는 부군 박호일씨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두었다. 워낙 낙천적이고 또 쾌활한 성격으로 어느덧 생존해있는 최고원로급 여가수가 된 금사향씨는 어느 자리에서나 위트가 대단하기도 소문나 있다.
원로들의 모임이나 여행 때 쉴 새 없는 재담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데 꽤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 까지 또렷이 들릴 정도로 언어구사 또한 분명하다.
지난 2012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서훈받은 금사향씨는 ‘홍콩아가씨’의 주인공이지만 정작 그동안 홍콩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2013년 12월, 공연을 겸해 홍콩을 방문, 노래 발표 60년만에 꿈을 이뤘다.

저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무슨 꽃잎이 피어있을까/달이 뜨며는 해가 지며는 꽃은 외로워 울지 않을까/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나비와 같이 훨훨 날아서 나는 가고파 에이야 호.
저산 저 멀리 저 언덕에는 산새 정답게 지저귀겠지/피리 불면서 노래 부르며 나도 즐겁게 같이 놀고파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푸른 하늘에 날개를 펴고/나는 가고파 에이야 호.
저산 저멀리 저 언덕에는 누가 사는지 찾아가고파/그림책 속에 왕자님같이 젊고 씩씩한 님이 살겠지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에야호 금빛 찬란한 마차를 타고/나는 가고파 에이야 호.
-‘소녀의 꿈’(손석우 작사 작곡, 금사향 노래)

몇 년 전, 금사향씨가 행사장에 신고 갈 고무신을 사기 위해 한복집에 들렀다. 옆에서 귀동냥으로 듣고 있자니 그동안 신어왔던 신발 문수가 220. 주인은 신이 꽉 끼면 발이 아프다며 보다 큰 것을 권했다. 금사향은 이제 발에 감각이 없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니 그냥 220을 달라고 했지만 주인은 막무가내, 신발은 넉넉해야 한다며 재차 강변하자 결국 주인이 권하는 대로 신을 집어 들었다. 이러한 모습에서 금사향씨가 평소 살아가는 단면을 보는 듯했다.
‘늘 조금씩 양보하고 심지어 적당히 속아주기도 하면서 약간씩 손해 보고 사는 것이 모두 어울려  사는 방법’이라는 평소 생활신조를.
그런 탓일까,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전속가수 1기 동기생이기도 한 ‘60년 지기’ 송민도 여사는 지금까지도 금사향씨가 남 앞에서 화를 내거나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쩌면 이것이 작은 신을 신는 우리나라 가수 중 가장 키가 작다는 금사향 여사지만 결코 작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