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오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김경지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제목은 <타자적 불안에 대한 회고> 전이었다. 작품은 모든 형상이 생성되기 전 어둠 속에서 건져 올린 연기 이미지로, 불안에 내재된 모든 필연과 우연을 추적해 나간다. 작품을 통해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차단하는 것들로부터 스스로의 본래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신선영 기자 ssy@

꽃의 인과성

▲ 김경지 작가.

김경지 작가는 그가 보고 느끼는 삶의 특수한 사건 속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는 방법으로 예술적 범주를 형성하고 있다. 일테면 숭례문 화재 사건, 세월호 사건, 탄핵 촛불 집회와 같은 우리 사회에 충격적 경험을 주었던 사건들이다. 마치 현실로부터 증발해버린 듯한 선이 없는 이미지들을 통해 혼란한 사회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껴야 했던 우리 정서를 기록했다. 

“사회 질서가 흔들리는 외부적 공격 속에서 느낀 소외와 부조리함을 어떤 식으로 해소하고 치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그 중심에 꽃이라는 소재가 있더라고요. 보다 나은 차원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마음으로써 모든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있었어요.”

꽃은 세월호 사건에서는 애도의 상징으로, 탄핵 촛불집회 때 경찰 차벽에 붙어진 꽃 스티커에서는 희망의 상징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탱해주었던 소재였다. 작가는 이 꽃이라는 소재가 외관상 연약해 보일지라도 공격적인 거대한 힘을 무의미하게 하는 소재로써 결국 울림과 감동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시각적 아름다움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위로와 치유를 넘어 희망으로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인과 결과의 인과성, 내부와 외부의 인과성, 실체와 비 실체의 인과성을 꽃의 이미지로 연결시키고자 노력했어요.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보다 나은 희망과 보다 나은 열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꽃 피우다 2, 35.5×50.5cm, oil on paper, 2017.

스푸마토 기법
김경지 작가가 그린 꽃은 밝음과 어둠의 두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그 영역을 구분할 경계는 모호하다. 경계가 될 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은 밝음과 어둠의 두 영역에 부유해 있다. 오히려 부유한 이미지가 우리의 심미관을 건드리는 듯하다.

“빈 화면인 밝음이 순수한 본래성의 상징이라면, 채워진 화면인 어둠은 사회적 욕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밝음이 안정된 질서를 지향하는 로고스적 성향이라면, 어둠은 불안한 감정이 드러나는 파토스적 성향이에요. 이렇게 상반된 두 영역을 스푸마토 기법으로 경계를 없애는 거예요. 타자적 관계를 상호필연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거죠.”

▲ 꽃 피우다 1, 87×54cm, oil on paper, 2017.

스푸마토 기법은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으로, 사물간의 경계선을 희미하게 그리는 명암법을 말한다. 붓을 이용해서 유화 물감으로 작업했으며, 손놀림을 빠르면서도 균일하게 움직여서 어느 한 곳으로도 물감이 뭉치거나 갈라짐 없이 그리는 게 특징이다.  작은 마음의 동요에도 손의 리듬이 깨지기 때문에 호흡까지 신경 써야 하는 고된 수련과도 같은 작업이다. 그래서 이 스푸마토 기법이 자유로이 표출되어 전시되기까지는 10년의 기간이 필요했다.

“스푸마토는 모든 걸 어우러지게 하는 기법이에요. 이 기법으로 음과 양, 선과 악, 드러남과 감추어짐이라는 상반된 인식을 깨고 하나라는 본래성으로 어우르고 싶었어요. 나누어진다는 건 갈등이 되어 현실에서 모든 아픔의 원인이 되니까요.”

▲ 나무2 - 양태, 62×65cm, oil on paper, 2012.

그래서 작가는 부단히 붓을 움직였다. 논문에서 밝혔듯이, 그림에 드러나는 유기적 양상은 아픔이지만 결국 그 뒤에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긍정화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무한한 질서 속에 위안을 가지게 되고 작가는 그러한 세계를 발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렇게 서정적인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김경지 작가는 지난 개인전에서 관람객과의 소통으로 보여주었다.

▲ 폭발하다, 70×119 cm, oil on paper, 2013.

김경지 작가는(mone801@hanmail.net) 대구대학교에서 회화과 박사 과정 중이다. 경인미술관, 울산홍강갤러리,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세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중국 북경아트스페이스, 세종문화회관, H갤러리 등에서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NM

▲ 천상의 꽃, 74×83cm, oil on paper,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