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림 화백의 행보가 화제다. 김구림 화백은 ‘한국 전위예술의 선구자’, ‘영원한 아방가르드’ 등으로 일컬어지는 원로 화백이다. 또한, 스스로 독자적인 창작의 길을 개척하여 회화68, A.G.그룹, 제4집단 등 한국전위예술의 흐름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그룹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 김구림 화백

김구림 화백은 해프닝, 설치미술, 메일아트, 바디페인팅, 대지미술, 실험영화 등 회화와 조각에만 집중되어있던 한국의 60-70년대 미술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활동을 지속해 왔다.

시대를 앞선 창작활동으로 한국의 전위예술 선도
올해 77세의 원로작가 김구림 화백은 타 장르와의 접점에서 다양한 도전을 시도해왔다. 1960∼1970년대 그는 회화, 조각, 판화 등 전통적인 미술장르를 넘어 퍼포먼스, 보디페인팅, 대지미술, 일렉트릭아트부터 단편영화, 무대미술과 의상까지 방대하고 다양하게 각종 장르를 실험하고 도전했다. 그러나 다양한 실험적 창작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김구림 화백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인색했다. 잘 팔리는 그림이 최고의 작품이라는 국내 미술계 풍토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 4월 경복궁 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에피소드가 이 같은 사정을 잘 보여준다. 당시 김화백은 초대작가로서 미술관에 5m 높이의 얼음덩어리를 설치해 녹아 없어지는 과정을 전시하려 했다. 전시 제목이 ‘현상에서 흔적으로’였다. 그러나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녹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현상에서 흔적으로’는 1970년 얼음 작업을 허락하지 않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방침에 따라 결국 개막 전날 설치가 취소됐다.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선, 초전위에서 시대와 조화하지 못한 채 비주류로 외롭게 작품 활동을 해온 김구림 화백은 최근 재평가되고 있다. 지난 7월 16일부터 10월 1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잘 알지도 못하면서>전은 그 시발점이다. 전시회의 제목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홍상수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차용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술사에서 심도 있게 조명 받지 못한 김구림 화백이 건네는 해학과 풍자의 메시지다.

이번 전시회에서 김 화백은 1960∼1970년대 실험작품을 중심으로 작품 40여 점을 공개한다. 얼음 소재의 ‘현상에서 흔적으로’는 1970년 이후 43년 만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설치가 실현됐다. 이 외에도 전시장에는 유실됐거나 소재와 기술상의 문제로 재공개되지 못한 작품도 원안의 스케치를 토대로 다시 제작돼 선보였다. 1969년작 ‘24분의 1초의 의미’는 이번에 16㎜ 필름으로 복원됐다. 또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한국작가 11인전’ 이후 분실됐던 1968년작 일렉트릭아트 ‘공간구조’도 기록을 토대로 새로 만들었다.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작업의 중심에 서다
50년대 말 앵포르멜과 60년대 서정추상, 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회화의 전통적인 방법을 전복하며 오브제와 매체를 이용한 조형적 실험과 장르의 해체를 보여주었던 김구림 화백. 그의 작업세계는 한마디로 말하기엔 너무나 광범위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미술 뿐 아니라 한국 최초의 전위영화를 만드는가 하면 전위연극 연출을 하기도 하고, 무용안무부터 무용의상, 무대미술로는 대한민국 무용제에서 무대미술상까지 받은바 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평면과 입체작품, 오브제 작품, 판화, 도자, 자수, 바디페인팅, 사진, 비디오, 설치, 대지미술, 퍼포먼스, 메일아트 등 현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작업량과 다양한 방식은 한국 미술사에서 아무도 따라오지 못한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그의 작업은 여전히 변화무쌍하다. 김구림 화백은 자신의 작업을 규정화시키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항상 나에게 거론되는 ‘실험성’이란 말은 실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다. 나는 이런 말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며 “일부 화랑들은 60~70년대 작품을 하면 시장에서 인기가 있을 텐데 왜 변모해가냐고 묻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인간의 사고도 변하게 되고, 그러므로 해서 작품도 당연히 변해야 한다. 작가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현실 속에서 작품에 대한, 부딪혀서 사회가 요구한 바를 반영하며 내가 해야 할 것을 찾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 경향을 되풀이하는 것은 혼이 없고, 정신이 깃들지 않은 것이다”며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작가란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평가 역시 역사가 내릴 것이다”고 강조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