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며 유전적 요인이 유사하므로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승계될 경우 강한 장인 정신으로 연결될 수 있다. 즉, 가족 간의 강한 신뢰와 공통의 직업적 관심사는 매우 강력한 기업적·직업적 경쟁력이 될 수 있다.

▲ 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인 백산 김정옥 선생

한 업종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몸담으며 외길인생을 걷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장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문화가 세계에 이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인하면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는 장인에서부터 자신의 가업을 이어서 맛을 전하는 맛의 장인까지 다양한 분야가 있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
경북 문경에 소재한 영남요는 대를 이어 장인의 예술혼을 이어가는 곳이다. 9대째 한국의 전통 도자기를 빚고 있는 이곳의 대표인 백산 김정옥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이다. 1991년 정호다완을 재현해 도예부문 초대 명장이 된 그는 지난 1996년 국내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으로 지정됐다. 1999년 문경대학 초대명예교수에 이어 2000년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영예를 얻었다. 도공으로서의 명성은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캐나다왕립박물관, 독이 베를린 동아시아 박물관,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 등에 작품을 전시하는 등 전 세계에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통일 후 필요한 재원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통일 준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통일항아리’를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완성하기도 했다. 총 6개로 만들어진 통일항아리는 청와대, 국회, 통일부, 민간단체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각각 한 개씩 전달되고 나머지 두 개는 통일부가 보관하고 있는데, 나머지 통일항아리는 통일 준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용된다. ‘청화백자팔각병’과 ‘분청사기철화당초문계룡산호’, ‘정호다완’ 등 김정옥 선생의 작품은 자기 과시나 수사적인 기교 대신 투박하지만 고고한 자연의 멋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 선생은 200여 년전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기물레 대신 발물레로, 가스가마 대신 전통 장작 가마인 망댕이 가마를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그릇을 제작하고 있다. 그릇을 빚고, 문양을 새기고, 그림을 그리고, 뜨거운 불에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그 모든 과정을 손수 하고 있는 그에게서는 도자기 명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고집을 넘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함마저 느껴진다.

▲ 청화백자팔각소병(靑華白磁八角小甁)

도예가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태토를 고르고 물레질을 연습했으며 큰 산 두 개를 넘나들며 장작을 구해 가마에 불을 지폈다. 두 달에 한번 불을 지피는 가마에는 다완 100여 점이 들어가지만 작품으로 남는 것은 고작 3~4점에 불과하다. 80~90%의 성공확률을 보장하고 97%의 실패가 눈에 보이는 망댕이 가마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김정옥 선생은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면서 “가장 한국적인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법부터 전통적이어야 한다. 많은 작품보다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렇게 김정옥 선생이 쉼 없는 작업을 해온 지도 올해로 벌써 62년째. 그는 “우리 가문이 유일하게 조선 도예의 전통을 지켜나간다는 점이 늘 자랑스러웠다”며 자신의 도예인생의 버팀목은 ‘자긍심’이었다고 강조했다.

9대로 이어지는 ‘명문 도예가문’의 명성 재확인
최근 김정옥 선생은 가업이 자신의 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라는 데에 행복감을 느끼는 중이다. 아들 경식씨 뿐만 아니라 손자 지훈 군까지 가업에 동참하며, ‘9대 도예가문’으로 이어져 ‘명문 도예가문’의 명성을 재확인하게 된 것. 경식씨는 지난 10월 제38회 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그 실력을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전승공예대전은 문화재청,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대회로 대한민국 전통분야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공모전으로, 경식씨는 3년 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상을 받은 바 있다. 7년간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경식씨는 지난 1995년 도예에 입문하여 전승공예대전, 기능경진대회 등에서 수차례 입상했으며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에 작품이 영구 전시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경식씨의 맏아들 지훈 군 역시 도예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문경전통찻사발 축제 행사의 하나였던 발물레 경진대회 학생부에서 3등을 차지해 천부적인 도공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증명했다. 김정옥 선생은 “저를 문화재로 지정해준 뜻은 내 기능을 후손 대대로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들과 손자가 잘 하고 있어 매우 흡족하다”며 “앞으로도 전통의 맥이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아울러 한국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