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근정포장, 2008년 이중섭미술상을 수상 등 많은 상을 받으면서 미술계의 ‘거장’으로 우뚝 선 정경연 작가

자기만의 독특한 표현 방법을 가진 작가들이 있다. 어떤 작가는 TV를 소재로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작가는 병뚜껑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 장갑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섬유미술 및 패션디자인과 교수인 정경연 작가는 우리가 사용하는 목장갑을 소재로 한 염색 혹은 꼴라쥬 작업을 거친 작품으로 그 독특한 작품세계에 매료된 이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정경연 작가에게는 별칭이 있다. ‘장갑의 작가’ 정 작가는 “면이라는 소재에서 느껴지는 서민적이면서도 푸근한 감성, 신분이나 지위의 높낮음에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장갑의 특성에 매료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삶의 이야기와 중생들의 이야기를 혼합기법과 혼합재료를 이용해 조형작업으로 나타내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일반 관객들은 물론, 석주미술상, 이중섭미술상 등을 수상할 정도로 미술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정평이 난 그녀의 작품세계
정경연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미국 메사추세츠 컬리지 오브 아트와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등에서 수학했고 모스크바 국립산업 미술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앞서 말한 별칭 ‘장갑의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정 작가는 평면과 입체, 섬유예술과 조형예술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특한 조형과 사유를 담아냈다는 미술계의 호평과 함께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학 시절,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소포 안에 든 장갑 한 묶음을 보고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는 그녀. “이 세상에 내 혼자 힘으로 되었던 것은 결국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는 정 작가는 “나에게 있어 장갑은 세상 모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장갑을 통해 작품활동을 결심하게 된 정경연 작가는 장갑을 통해 일찌감치 ‘전공과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계 파괴적 양상을 보인 작가’라는 평과 함께 21세기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또한 그녀의 작품세계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던 부분은 바로 불교이다. “불가의 인연법과 연기법은 작품을 제작하며 찾아가야 하는 이생의 나의 숙제이다”고 이야기하는 정 작가는 굳이 불교를 논하지 않더라도 종교를 가진 사람이건 안 가진 사람이건 우리가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오고 가는 사람들의 삶의 인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작품 활동에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1988년 미술기자상을 수상한 이래, 1990년 오사카 트리엔날레 특별상, 제1회 석주미술상, 2001년 국무총리 표창, 2005년 서울국제 마니프 아트페어 대상, 2006년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근정포장, 2008년 이중섭미술상을 수상 등 많은 상을 받으면서 미술계의 ‘거장’으로 우뚝 선 정 작가의 작품들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등 국내 굴지의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일본 후쿠오카미술관, 워싱턴 여성미술관 등 해외에서도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 활동 외 다양한 사회활동에도 적극적
또한 정 작가는 작품 활동과 함께 홍익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창의력과 성실함을 강조하는 교육자로 정평이 나 있다. 새로운 생각으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학생들, 자신의 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의를 보이는 학생들을 더 높이 평가하는 그의 수업은 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채워져 있다. 사회활동 참여에도 적극적인 정 작가는 (사)니트산?학패션디자인협회 명예회장, (사)한국텍스타일디자인협회 명예회장, (사)전국여교수연합회 회장 등을 맡고 있는 가운데 “예전에 비해 여권이 많이 신장됐지만 아직 비례대표를 비롯해 국회에서의 여성의원의 수가 매우 부족하다”고도 말한다. 여성이 사회에서 가지는 역할의 중요성과 여권신장의 필요성에 대한 발언도 적극적인 정 작가는 여러 사회활동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할 시간이 부족한 듯 보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삶도 버거웠을 법 하지만 그녀는 작품 활동을 자신의 삶과 동떨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제자들에게는 늘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작품 활동에 더욱 매진해 온 정 작가. “인생이 비단 이불 속에서도 눈물이 있고, 가난한 집에서도 웃음이 있듯이 행복은 자신이 선택하기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삶이 힘들어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것을 권하고 있다. 한편 정경연 작가는 최근 경기침체로 인해 더욱 악화된 젊은 작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젊은 작가들에 대한 후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우리나라가 문화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서 젊은 작가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후원을 당부했다.

올해로 작가 생활 31주년을 맞이한 정경연 작가는 장갑을 소재로 한 작품을 통해 서민이미지를 구축, ‘미술은 어렵다’라는 편견을 깨고 좀 더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작가이다. 특히 막 작품 활동을 시작하려는 젊은 작가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그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유행을 뒤쫓아 가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파는 작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세상의 이목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다보면 언젠가 좋은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 이야기하는 정경연 작가에게서 ‘작가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