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 ‘사랑한다’와 같은 감정을 물리적 측정이 불가능한 추상적 개념으로만 파악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마음에 드는 것을 보는 순간 두뇌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과 전기적 작용들은 이제 물리적 방법으로 측정 가능한 시대가 됐고, 심지어 좋아한다는 감정이 일어나는 과정을 과학적 인과관계로 밝히려는 연구들도 상당히 구체적인 해답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성과에는 물론 뇌 과학자들의 기여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의학자들과 정신생리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 심지어 고고학자들은 물론 오랜 옛날부터 논리 외적인 방법으로 그 관계를 표현해온 미술가들이나 문학작가들의 아이디어, 그리고 직접 정신세계를 추구하거나 컨트롤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던 종교인들이나 명상가들의 방법들도 인간의 감정 매카니즘을 과학으로 설명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IT분야 연구자들도 인간의 두뇌와 감정연구에 선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세기까지 인류가 이루어놓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결과들이 이제 서로 통섭하여 인류지식의 단계는 새 차원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엔돌핀을 비롯하여 사람이 사랑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인체의 면역기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수시로 키스를 하는 사람들(키스할 대상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감기에 훨씬 덜 걸린다는 연구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신체활성을 일으키는 엔돌핀은 천연 모르핀으로 고통을 잊게 한다.
흔히 모성(母性)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oxytocin)은 더욱 신비로운 물질이다. 옥시토신은 임신을 유도하고 젖이 잘 나오게 되는 등 모성기능과 연관된 호르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젖소에게 옥시토신을 주사하여 우유생산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근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옥시토신은 ‘관계의 호르몬’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인간관계를 좀더 부드럽게 하고 더 빨리 친근감을 느끼도록 하는 효과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의 레벨이 올라가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더 잘 일어나, 설사 처음 만난 사이더라도 자신의 비밀을 쉽게 털어놓을 정도로 감정에 작용을 한다.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형성될 때 옥시토신 레벨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이와 반대로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상황에서는 타인에 대한 경계가 이완되는 효과도 있다. 연구자들은 그러나 옥시토신에 대해 크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무차별적인 신뢰를 만드는 것은 아니며, 혹시라도 상대방이 도박적이거나 무책임한 얘기를 할 때 그에 따른 위험 신호들을 무시하게 만들 정도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호르몬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은 위험신호에도 민감하여 경계심을 유지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다만 이 호르몬이 분비되는 관계에서는 지나친 긴장을 해소시켜줌으로써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낯선 자리에서의 즉석연설이나 논쟁이 필요한 자리에서 옥시토신은 훨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비즈니스나 협상이 필요한 자리에서 동성끼리 대화하는 경우에 비해 이성의 참가자가 끼어있을 때 대화가 훨씬 부드럽게 풀려나가는 것을 우리는 자주 경험할 수 있다. 술을 마시거나 단지 휴식을 위한 자리로부터 딱딱한 이론을 다루기 위한 세미나에 이르기까지, 서로 우호적 감정을 가진 혼성의 그룹은 훨씬 더 대화가 부드럽게 풀려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옥시토신은 이 우호적 감정이 쉽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한 생물학적인 설명이 될 수 있겠다.

미국의 월터 캐논의 스트레스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존전략으로서 투쟁 또는 도피(Fight or Flight)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그에 비하면 옥시토신은 진정 또는 관계(Calm and connect)의 반응을 불러온다. 즉 스트레스와 반대되는 감정을 안겨주는 스트레스 해소 호르몬이기도 하다. 신뢰와 친근감의 결과로서 관대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므로 옥시토신은 사회생활의 성패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동물의 성적 감정에 관여하는 호르몬들은 단지 성생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즉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도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 이은주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