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찾아보면 ‘명품(名品)’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어로 명품을 뜻하는 ‘Prestige’ 역시 장인정신과 예술혼이 살아 있는 뛰어난 물건이나 작품을 의미한다.

▲ 서광수 명장은 “사람에게 혼이 있듯 불에도 혼이 있다. 사람의 혼과 불의 혼이 어우러졌을 때 제대로 된 도자기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듯 그릇의 쓰임새도 변했지만 고집스럽게 그릇에 혼을 불어넣는 장인의 정신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했지만 도자기들을 바라보노라면 얼마나 자연에 충실한가, 얼마나 사람을 위한 것인가를 느낄 수 있다.

도자기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드는 장인정신
50여 년 동안 오로지 도자예술에 온 몸을 불사른 예술가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무형문화재사기장41호, 대한민국명장 14호 한도 서광수 선생이다. 그가 도예계에 입문한 때는  1961년 14세의 어린 나이였다. 이후 5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로지 ‘도예’라는 외길을 걸어온 그는 국내에서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국적인 백자를 만드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지금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그의 작업장 한도요에서 서 명장은 지금도 전통 가마에 소나무로 불을 지피는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빚어낸다. 오늘날 도자기를 구울 때는 전통 장작가마와 현대식인 가스 가마 두 가지가 사용되는데, 가스 가마는 도자기 100개를 구우면 100개 모두 똑같이 나오는 반면 장작 가마는 불의 세기와 온도, 습도 등에 따라 각자 다른 도자기가 나온다. 때문에 장작가마의 성공률은 고작 30%에 불과하다. 서 명장은 “똑같이 만들어 칠해도 불을 많이 받거나, 덜 받는 것에 다라 다르게 나온다.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게 좋은 작품이 나와 줄 때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며 “장작 가마 앞에 서서 좋은 물건만 나올 수는 없다고 매번 생각한다. 나라고 매번 수십 개의 자기를 깨부수면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다 내 자식인데. 그래도 기다리는 것이다. 조바심 내지 않고, 아름답게 완성된 자기가 나올 때까지. 내 평생 이거 하나 가지고 가는 거야! 이런 마음으로 기다린다”고 전했다. 그가 이렇듯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도자기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겠다는 도예가의 장인정신 때문이다. 서광수 명장은 “당장의 이익을 추구했다면 도자기를 전통 방식으로 절대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명장은 백자, 청자, 분청, 진사 등 모든 종류의 도자기를 만들지만 그중에서 가장 아끼고 즐겨 만드는 도자기는 아무 문양이 없는 무지백자 달항아리다. 그가 빚어내는 백자는 같은 태토, 성형, 조각, 소성과정을 거친 작품들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다. 오묘한 붉은 색에 푸른 바다빛을 표현하듯 심오한 색조의 작품을 비롯, 우둘투둘 좁쌀 문양의 작품, 빗살이 새겨진 문양, 붓으로 힘차게 휘갈긴 듯 포효하는 문양 등 그의 작품들은 저마다 고귀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특히 그의 백자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옛날의 깊은 멋과 맛이 우러나 백자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어머니의 젖빛인 유백색을 완벽히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가 만든 백자 달항아리는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작품성과 예술성에서 정평이 나 있다.

한국 전통 도자기의 아름다움 전 세계에 알리다
최근 서광수 명장은 가장 한국적인 도자기로 세계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에서만 20차례가 넘는 개인전을 열 정도로 그의 작품은 지난 1960년대부터 이미 일본에서 큰 호응을 얻었으며, 지난 2009년에는 일본 국영방송 NHK에서 특집으로 한국도자기 명장을 촬영해 방영할 때도 그가 도자기를 굽는 모습이 일본 전역에 전파를 탔다. 후쿠오카 미술관, 다이마루 백화점, 교토 킨텐츠 백화점 초대전 등을 통해 팬도 생겨, 일본 아사이제과(주) 대표를 축으로 하는 ‘한도 서광수를 사랑하는 일본 모임’도 결성되어 있으며 매년 일본에 초청되어 전시회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해외에서 개최되는 초청 전시회를 통해 우리의 도자기 예술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백자철죽문호’(1986년作)는 유럽에 전시되었을 당시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최근 서광수 명장은 한국 전통 도자기의 명맥을 잇고,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1986년 동료 도예가인 청파 이은구, 유광열 등 6명과 함께 시작했던 ‘이천도자기축제’는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로 발전하는 등 이천도자기 발전의 견인차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 도자기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94년에는 문화부 장관이 주는 공로상도 받았다. 서 명장은 “사람에게 혼이 있듯 불에도 혼이 있다. 사람의 혼과 불의 혼이 어우러졌을 때 제대로 된 도자기가 만들어진다”면서 “요즘 젊은 도예가들은 너무 쉽게 작품을 만들려고 해서 안타깝다. 이제는 이익에 좌우되는 작업이 아닌, 우리 도자기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피력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