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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평론/박시춘과 함께 하는 한국대중음악사 여행
2013년 08월 02일 (금) 10:54:23 뉴스메이커 webmaster@newsmaker.or.kr

 탄생1백주년기념 ‘박시춘과 함께 하는 한국대중음악사 여행’특별전시회를 가다

작곡가 박시춘 탄생1백주년 기념 ‘노래박물관’ 특별 전시

-1930년대 유행가에서 2000년대 한류까지, 그 특별한 노래기행

글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올해 2013년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특별한 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있어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명사 격인 작곡가 박시춘(1913~1996) 선생이 탄생 1백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의 뿌리이자 기둥인 작곡가 박시춘이 남긴 노래와 악상은 근대 한국 대중가요의 초석이자 근간을 이루고 있다. 시대의 격동기를 관통하며 국민들로부터 애창되어온 그의 노래들은 여전히 한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이제금 현 한류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의 삶과 음악을 돌아본다는 것은 곧 우리나라 대중음악사를 돌아보는 셈이다. 시대의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음악과 삶이 재조명될 예정이다.
   
 
탄생 1백주년을 맞아 남이섬 노래박물관에서 펼쳐질 예정인 특별전이 그것으로 전시 타이틀은 ‘박시춘과 함께 돌아보는 한국대중음악사 여행-1930년대 유행가에서 2000년대 한류까지, 그 특별한 노래 여행’. 필자가 전시 책임을 맡아 오는 8월3일부터 12월까지 펼쳐진다. 남이섬에 위치한 ‘노래박물관’에서 펼쳐질 이 특별 전시는 우리네 삶과 대중문화를 함께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 전시회를 미리 가본다.

탄생 1백주년을 맞는 작곡가 박시춘(1913~1996).
시대의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노래들은 여전히 국민들로부터 애창되며 한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이제금 ‘한류’의 뿌리이기도 하다. 1930년대 그의 등장은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민요의 자리에 대중가요가 대신 자리하게 되는 신문화의 새 장(章)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 그 암울한 시대에 민족의 애환을 달래준 ‘애수의 소야곡’, 40년대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신라의 달밤’, ‘럭키 서울’, 남북 분단의 아픔을 그린 ‘가거라 삼팔선’, 그리고 50년대 6.25 한국전쟁 당시에 발표된 ‘전우야 잘 자라’, ‘전선야곡’을 비롯해 당시 피난민들에게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준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봄날은 간다’ 등... 일제 강점기로부터 8.15 광복, 6.25 한국전쟁을 거쳐 전쟁이 휩쓸고 간 잿더미 위에서 그 상흔을 복구하려는 50~60년대 우리네 궁핍했던 삶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격동기를 관통, 시대를 함께 했다.
국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노래로 함께 한 박시춘, 특히 어려울 때일수록 힘이 되어준 이 노래들은 지친 국민들에게 전해주는 일종의 응원가였다. 탄생 1백주년을 맞아 남이섬 노래박물관에서 펼쳐질 예정인 특별 전시, ‘박시춘과 함께 돌아보는 한국대중음악사 여행-1930년대 유행가에서 2000년대 한류까지 그 특별한 노래 기행’은 필자가 전시 책임을 맡아 오는 8월3일부터 12월까지 펼쳐질 예정이다. 남이섬에 위치한 ‘노래박물관’에서 펼쳐질 이 특별 전시는 우리네 삶과 대중문화를 함께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 전시회를 미리 본다.

작곡가 박시춘 탄생1백주년 기념 ‘노래박물관’ 특별 전시를 미리 본다
박시춘과 함께 하는 한국대중음악사 여행 ‘1930년대 유행가에서 2000년대 한류까지’는 연대별 기록전으로 노래박물관 1층 특별전시실에 전시된다.  각각 시대별로 ‘1930년대-대중음악 개화기 저항가요 시대’, ‘1940년대-우리말과 노래도 함께 해방된 8.15 광복, 그리고 남북분단가요 시대’, ‘1950년대-6.25 한국전쟁과 전쟁가요 ‘좋은 군가는 대포소리에도 지지 않는 예술적 무기’, 오향영화사 설립 ‘영화에는 반드시 주제가가 있어야 한다’는 등식 만들어’, ‘1960년대-소리의 혁명, 장르 다양화 시대 한국연예협회 초대 이사장 맡아’, ‘1970년대-대중음악의 선구자, 가요인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 ‘1980년대~1990년대-리메이크 붐, 다양한 대중가요의 공존시대’, ‘2000년대-온라인 시대에도 여전히 울리는 한류의 뿌리, 박시춘 가락’으로 나뉘어 전시된다.

[1930년대] 대중음악 개화기, 저항가요 시대
1930년대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꽃 피웠던 시기다. 민요, 재즈,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던 30년대에 박시춘은 손목인, 김해송과 함께 오케레코드 3대작곡가로 자리하며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도 현재 280 여 곡이 넘는다.
   
 

‘애수의 소야곡(남인수, 37년)’의 원곡인 ‘눈물의 해협(36년)’이 등장하는 1937년을 전후해 방송에서 ‘유행가’라는 용어 대신 ‘가요곡’이라 사용했고 레코드 산업 또한 호황을 누렸다. 당시 ‘소리판’으로 불리기도 했던 축음기 음반(SP)시대를 풍미했던 ‘애수의 소야곡’을 비롯해 ‘꼬집힌 풋사랑’, ‘눈 오는 네온가’, ‘항구마다 괄세더라’, ‘울며 헤진 부산항’, ‘서귀포 칠십리’ 등의 서정적인 멜로디부터 ‘왕서방 연서’, ‘총각진정서’, ‘세상은 요지경’ 같은 만요, 그리고 ‘신민요 풋난봉’, ‘산호빛 하소연’ 등 신민요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노래들을 발표했다. 작곡 활동 뿐 아니라 '조선악극단(朝鮮樂劇團)'에서 ‘아리랑보이스’를 결성, 현경섭, 송희선, 김해송, 이복본 등과 함께 중창과 판토마임, 그리고 악기 연주를 겸한 여흥을 무대에서 펼쳐보였던 엔터테이너였다. 아울러 전국 각지는 물론 멀리 만주로까지 이어지는 공연활동을 통해 고향을 잃고 떠도는 민족의 설움을 보듬어 주었다.

[1940년대] 우리말과 노래도 함께 해방된 8.15 광복과 남북분단가요 시대
우리의 말과 노래도 함께 해방된 1945년 8.15 광복. 광복 이후 최초, 최고의 히트곡으로 불리는 ‘신라의 달밤’과 남북 분단의 아픔을 그린 ‘가거라 삼팔선’ ‘고향초’ 등이 이때 만들어진다.
   
 

‘신라의 달밤’은 본래 일제 강점기 당시에 처음 만들어진 노래로 원곡의 제목은 ‘인도의 달밤’. 무대에서만 불리어지던 이 노래는 ‘이제 광복도 되었으니까 우리 것을 되찾겠다.’는 의지로 작사가 유호를 통해 제목과 노랫말을 바꾼 뒤 신라를 배경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바로 일제에 의해 잃었던 우리의 역사와 말을 되찾기 위한 의지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이 ‘신라의 달밤’의 빅히트를 계기로 박선생은 직접 럭키레코드사를 설립한다. 럭키 1호 음반인 '신라의 달밤'을 시작으로 '유호-박시춘-현인' 콤비가 탄생하고 '고향 만 리'-'비 나리는 고모령'-'럭키 서울'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다. ‘고향초(송민도)’, '낭랑18세(백난아)' 등도 모두 이 시기에 발표된 명곡들. 당시 우리나라 음반 산업은 일본 레코드사들이 모두 철수한 뒤라서 이 땅은 말 그대로 불모지였다. 물자 부족으로 인한 열악한 환경 또한 매우 어려웠다. 이때 럭키레코드사직접 설립, 음반을 직접 제작했다. 47년 5월, JODK(이후 중앙방송국, 현 KBS)의 전속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아 활동했고 '칠천국(七天國)', ‘은방울쇼' 단체를 구성해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박시춘은 광복과 더불어 비로소 자신의 의지를 한껏 펼쳤다.

[1950년-1] 6.25 한국전쟁과 전쟁가요,
‘좋은 군가는 대포소리에도 지지 않는 예술적 무기’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도 박시춘의 창작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육군 제1훈련소가'를 비롯해 ‘전우야 잘자라', ‘승리의 노래’, ‘임 계신 전선' '전선야곡' 등을 발표, 군의 사기를 높였고 아울러 전쟁터에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던 가족들이 심정을 노래에 담았다. 이러한 노래들은 일선과 후방의 연대감을 고취시키면서 포성소리와 함께 한반도에 넘쳐흘렀다. ‘좋은 군가는 대포소리에도 지지 않는 예술적 무기’임을 증명해보인 이 진중가요들은 전쟁에 상처 입은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전 국토의 4분의 3이 전쟁터로 변하고 전 국민이 전쟁터로, 또 피난민으로 내몰리던 이때 연예인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모두들 군예대에 들어가 ‘군번 없는 용사’로 병사들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다. 박시춘은 국방부 정훈국 직속의 문예중대 2소대장과 제주 모슬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 군예대장을 맡아 활동했다. 군 위문을 위해 155마일 전선을 스물일곱번이나 누비는 등 '군번 없는 지휘관'으로써 군사기 고취에 큰 공을 세운 박시춘은 이후 종군연예인공로패, 문화공보부장관 공로상(1967년), 제6회 대한민국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1950년대-2] 오향영화사 설립, 영화주제가 시대 개막
전쟁의 상흔이 채 가라앉지 않았던 50년대 후반. 1953년 휴전 이후 대중음악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갔다. 서구문화가 본격 상륙하면서 ‘춤바람 열풍’과 함께 맘보 등 경쾌한 리듬의 다양한 곡들이 등장,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샌프란시스코’ ‘봄날은 간다’ 등을 크게 히트시킨  1958년, 박시춘은 직접 오향영화사를 설립한다. 특히 '오향'은 제작하는 영화마다 영화주제가를 삽입, 영화음악의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남성 넘버원', '오부자의 노래', '가는 봄 오는 봄' 등이 그 것으로 이를 계기로 ‘영화에는 반드시 주제가가 있어야 한다’는 등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 가족이 영화에 출연하는 기록을 남긴 '딸 칠형제’를 비롯해, '가는 봄 오는 봄', '청춘쌍곡선' '오부자' ‘육체의 길’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영화사는 '장미의 곡(曲)' 개봉 날 터진 4.19로 인해 관객동원에 실패하면서 촬영소가 부도가 나는 등 악재가 겹쳐 문을 닫는 가슴 아픈 일화도 있었다. 영화주제가 시대의 개막을 알린 이 노래들은 궁핍했던 시절을 이겨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다.

[1960년대]‘소리의 혁명, 장르 다양화’, 한국연예협회 초대 이사장 맡아
4.19로 시작되어 5.16으로 이어지며 시작된 1960년대, 5.16 이후 각종 가요단체들이 한국연예협회로 통합되었고 62년 방송윤리심의위원회가 발족했다.
   
 
  박시춘은 광복 후 방송국 경음악 단장, 63년 10월에 창립된 연예협회 초대 이사장, 한국가요작가동지회장 등 그는 음악활동 외에도 연예계의 권익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57년부터 레코드가 SP에서 LP(long playing microgrove record)로 대체되고 기기도 축음기에서 전축으로 바뀌는 등 일대 혁신을 몰고 온 60년대 들어 가요계의 가장 큰 변화는 ‘소리의 혁명’. 1963년부터 LP가 10인치 크기에서 앞 뒤 여섯 곡 씩 담을 수 있는 12인치 크기로 제작되었고 64년부터 스테레오 음반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벽오동 심은 뜻은’, ‘피리 불던 모녀고개’ ‘돌지 않는 풍차’, ‘우중의 여인’, ‘고모령을 넘을 때’ 등 영화주제가를 발표하는 등 ‘소리의 혁명, 장르의 다양화’로 대변되는 60년대, 대중음악계를 리드했다.

[1970년대] 대중음악의 선구자, 가요인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상징되는 '청년문화'의 전성시대가 펼쳐지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시춘은 본격적으로 음악저작권협회와 한국가요작가협회 등을 이끌며 대중음악인들의 권익보호 활동에 앞장선다.
   
 
'일자상서(김부자)' '너 하나만을(이상열)' ‘사나이가 울고갈 때(배성)’ 등의 히트를 마지막으로 월남공연을 비롯한 각종 공연활동을 활발히 펼치던 1973년. 10월 17일부터 나흘간 ‘작곡생활 42주년 공연-박시춘 Show 대연예제전’이 대한극장에서 펼쳐진다. 당시 42주년 기념공연이라는 자체가 한국대중음악사에 처음 등장했을 정도로 그의 음악생활은 한국 대중음악사와 궤를 같이 한 개척자이자 선구자였다. “나의 이 노래를 기꺼이, 그리고 영원히 사랑했던 이 땅의 국민들께 드립니다.”라는 당시 무대인사는 지금까지도 이 땅의 모든 음악인들이 남기고 싶어 했던 상징적인 명언으로 남아있다. 이 42주년 기념음반을 나훈아와 손잡고 취입한 것과 함께 박시춘 멜로디를 연주한 경음악음반이 붐을 이뤘다. 백설희, 이미자, 패티김, 배호, 조영남, 은방울자매, 조미미, 바니걸스, 정종숙, 박일남 등을 비롯한 많은 가수들의 리메이크 음반을 발표, 러시를 이뤘다. 또한 ‘고향초(홍민)’가 새롭게 리메이크 되어 통기타 세대들에게도 사랑받았고 박시춘의 3남인 박재정은 유익종과 듀엣 ‘그린빈스(산과들)’를 결성, 2세 가요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1990년대] 리메이크 붐, 다양한 대중가요의 공존시대
1982년, 대한민국 대중음악계 인물 최초로 국민문화훈장 보관장 서훈받은 박시춘. 작곡활동 외에도 대중음악의 권익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던 만큼 사회적 영향력과 공헌도가 높았으며 동시에 수많은 대중가요인들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었다.
   
 
박시춘이 남긴 노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활발히 재조명된다. 옛가요 전문 프로그램인 KBS-1TV '가요무대‘에서 8백회 기념으로 펴낸 ‘가요무대 100선집’에는 박시춘의 곡이 무려 15곡이 수록되어 있고 또한 80년대에 mbc가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20선’에 무려 6곡이 포함되었을 정도였다. 그의 노래들이 조용필, 하춘화, 김정호, 김연자, 주현미, 윤복희 등에 의해 꾸준히 리메이크되는 가운데 '낭랑 18세(한서경)', '세상은 요지경(신신애)', '봄날은 간다(장사익, 한영애 등)' 등등 아날로그 음원이 디지털로 바뀌는 80년대를 지나면서도 꾸준히 사랑받을 정도로 박시춘의 멜로디와 화성, 리듬감은 세대와 시대를 초월한다. 한국인들만의 정서를 묶은 가락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 박시춘은 대중문화의 소중한 유산을 남기고 1996년 6월 30일,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제 박시춘이 없는 한국 대중예술, 그의 노래가 없는 우리 한국대중음악사를 말할 수 없다. 이렇듯 시대의 흐름을 국민들과 함께해온 선생이 남긴 노래들은 곧 우리 국민들과 함께 해온 삶, 그 자체였다.

[2000년대] 온라인 시대에도 여전히 울리는 한류의 뿌리, 박시춘 가락
2000년대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또 다른 진화의 길로 들어선다. MP3의 등장으로 음반의 시대에서 음원의 시대로 음악시장이 변하며 동시에 시간 장소의 구애 없이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울러 우리 대중음악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 '한류' 붐의 진원지가 되며 전 세계적으로 그 열풍이 이어졌다. 이와 때를 같이해 우리 대중음악의 뿌리에도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박시춘 노래비 또한 지난 90년대 ‘비 내리는 고모령(1991년 대구)’, ‘서귀포 칠십리(1997년 서귀포)’에 이어 2천년대 들어서도 ‘신라의 달밤(2000년 경주)’ ‘고향초(2000년 고성)’ ‘애수의 소야곡(2001년 진주)’ ‘굳세어라 금순아(2003년 영도)’ ‘서귀포 칠십리(2004년 서귀포)’ ‘임 계신 전선(2007년 강화)’ 등 전국 각지에 박시춘 노래비가 건립되고 또한 2002년 밀양에 생가도 복원되었다. 또한 박시춘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하는 학술심포지엄이 2009년에 개최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박시춘 탄생1백주년기념 헌정음악회가 후배들에 의해 펼쳐졌다. 이 헌정음악회에서는 이미자로 부터 보아, 수퍼주니어까지 세대별 가수들이 등장해 성악, 재즈, 포크, 판소리 등으로 박시춘 음악을 새롭게 편곡, 다양한 장르로 재현해 호평을 받았다. 이렇듯 민족의 격동기와 함께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져준 작곡가, 그리고 시대의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박시춘 가락은 지금도 새롭게 편곡되어 여전히 우리 곁에 흐르고 있다.

박시춘과 함께 한 한국대중음악사의 빛나는 얼굴들 100인’
또한 ‘작곡가 박시춘과 함께 한 한국대중음악사의 빛나는 얼굴들 100인’ 특별전도 노래박물관 1층 호반갤러리에 전시될 예정으로 이 ‘박시춘 명예의 전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시에 한국대중음악사를 빛낸 인물이기도하다. 그 주인공들은 [1930년대] 고복수 김정구 남인수 박향림 송달협 이난영 이인권 이화자 최병호 [1940년대] 고운봉 백난아 백년설 송민도 원방현 장세정 진방남 현인 [1950년대] 금사향 김시스터즈 도미 박경원 박단마 박재홍 방운아 백설희 손인호 신세영 신카나리아 심연옥 정향 황금심 황정자 [1960년대] 고대원 김용만 남강수 남일해 남상규 남진 문주란 박건 박재란 배호 백야성 안다성 안정애 오기택 유주용 이미자 쟈니브라더스 패티김 조애희 진송남 최숙자 한명숙 [1970년대] 금과은(투에이스) 김부자 김태희 나훈아 바니걸스 박일남 방주연 배성 여운 이상열 이성애 이영숙 조미미 조영남 하춘화 홍민 [1980년대~1990년대] 김도향 김연자 김정호 심수봉 조용필 윤복희 주현미 장사익 전영록 한서경 한영애 [2000년대] 보아 수퍼주니어 김범수, 그리고 길옥윤 김부해 김인배 김해송 김희갑 박춘석 백순진 손로원 손목인 손석우 신중현 심성락 유호 이봉룡 이봉조 이부풍 조명암 등 작가, 연주인도 100인에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박시춘 유품전과 함께 박시춘이 남긴 음반에 담긴 노래와 영화주제가를 돌아보는 회고전도 노래박물관 야외 회랑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매달 박성서의 토크콘서트 개최, 시대별 박시춘 음악과 한국대중음악사 재조명
이벤트도 풍성하다. 박시춘 탄생1백주년 탄신일인 10월 28에는 특별 행사로 ‘봄날은 간다’ 노래비 제막 및 ‘박시춘 평전’ 출판기념회와 더불어 오후 네시부터 축하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이 무대에 나설 초대가수는 원로가수 손인호 금사향을 비롯해 김도향 전영록 그리고 모던풍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색다른 복고를 선보이는 팀인 8인조 무드살롱 외 다수가 출연해 축하무대를 꾸민다.
또한  ‘1930년대 유행가에서 2000년대 한류까지’박시춘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 & 재평가하는 ‘박성서의 토크콘서트’ 또한 매달 한차례 노래박물관 매직홀에서 펼쳐질 예정으로 8월3일 오픈 공연은 금사향(원로가수), 나나(재즈가수), 박창조(박시춘 선생의 손자)가, 그리고  9월14일 ‘신라의 달밤-광복에서 한국전쟁까지’ 편에서는 한국 펑크록계를 대표하는 데뷔 16년차 록밴드 ‘타카피 (김재국, 김태일, 김남규, 이성식)’가 출연, 당시 음악을 재해석해 선보인다.
이어 10월9일(수) ‘봄날은 간다-소리의 혁명, 대중가요의 르네상스 50~60년대를 가다’ 편에서는 기타와 보컬의 조화, 라듀오(기타리스트 하타슈지+보컬리스트 난아진)가 출연할 예정. 이어 11월16일(토) ‘고향초-70년대 통기타시대의 한국대중음악’ 편에서는 지난해 2012년 대한민국연예예술상 여자포크싱어상을 수상한 ‘라나에로스포‘의 마지막 멤버 김희진양이 설 예정이며 12월14일(토) ‘1980년대 이후 2000년대 한류까지’ 편에서는 다양한 색채의 어쿠스틱 팝사운드 구사하는 차여울 밴드가 무대를 장식한다. 이 박성서의 토크콘서트는 해당일 오후 5시부터 노래박물관 매직홀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탄생 1백주년을 맞는 작곡가 박시춘 특별전 ‘박시춘과 함께 하는 한국대중음악사 여행’. 시대의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박시춘 가락, 탄생 1백주년을 맞아 그의 음악이 다시 재조명되고 재평가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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