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야기’ 저자  김정형 gorome@hanmail.net
■NLL(서해 북방한계선) 논란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6월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과 관련,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했다. 다만 대화록 공개의 구체적 시기와 조건을 놓고 이견을 보여 실제로 대화록 공개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조선일보 2013년 6월 22일)

통상 서해의 북방한계선(NLL)은 우리 군의 작전권이 미치는 지점인 백령도 서쪽 약 40마일까지를 말한다. 북한이 NLL을 문제 삼는 것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육상의 군사분계선은 명확히 설정된 반면 해상경계선은 정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1953년 정전 당시 서해 섬의 대부분은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한 유엔군과 국군이 점령하고 있었지만 유엔군의 대폭 양보로 섬의 통제권 기준은 전쟁 발생 전날인 1950년 6월 24일을 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전협정 2조 13항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중에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은 유엔군총사령관의 군사통제 하에 남겨두고 이 도서군들을 제외한 기타 모든 섬은 조선인민군총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사령원의 군사통제 하에 둔다’고 규정했다. 유엔사가 서해 제해권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지만 우리의 해상경계선을 서해5도로 축소·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전협정 당시 ‘켈로부대’ ‘동키부대’ ‘구월산유격대’ 등이 점령하고 있던 평안도와 황해도의 철산도, 대화도, 초도 등은 북한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정전협정 후 한 달이 지난 1953년 8월 30일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서해상에서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우방의 함정 및 항공기 초계활동의 북방한계를 내부 작전규칙으로 정했다. 아군의 북방작전한계선(NLL)이었는데 이후 한국군이 이 선을 실질적인 경계선으로 간주하고 북한 역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NLL은 실질적인 경계선으로 정착되었다.
북한은 1970년대 초반까지 연평도와 백령도 인근에서 10여 차례 남한 어선을 납치하긴 했으나 우리 해군력에 비해 전력이 열세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NLL을 문제 삼진 않았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12해리 영해가 국제적으로 일반화하자 어선을 남하시키는 등 NLL을 분쟁지역화하기 위한 시도를 감행했다. 하지만 당시의 문제제기는 대개 형식적이어서 우리 군이 경고하면 대부분 후퇴했다. 북측이 주장하는 12해리 내에는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등 서해5도가 모두 포함된다.

▲ 1999년 연평해전 당시 남한 고속정(오른쪽)이 북한 경비정(연기 나는 배)의 옆구리를 들이받고 있다.

북한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실질적인 경계선으로 정착

북한이 본격적으로 NLL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1973년 10월부터 11월까지 연평도, 대청도, 백령도 근해를 43차례 월선한 이른바 ‘서해 사태’ 이후다. ‘서해 사태’ 직후 열린 군사정전위 회의에서 북한은 처음으로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이북 지역이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면서 서해5도 도서에 출입하는 남측 선박이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국방부는 이때 북한이 정전 이후 처음으로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99년 6월의 연평해전은 북한이 NLL에 대해 취한 가장 강경한 반발이었다. 연평해전 후 “NLL은 미군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일 뿐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북한의 주장이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1999년 9월에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서해 해상분계선을 새롭게 설정·선언하고 2000년 3월에는 이 분계선을 기준으로 ‘서해5도 통항질서’를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그러면서 백령도 등 서해5도가 북측의 영해에 속하기 때문에 섬에 드나들 때는 자신들이 정한 2개 수로만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런 주장에 대해 우리 정부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반박하고 있다. 우선 휴전 당시 유엔군은 북한측 해상전역과 대부분의 섬을 점령하고 있었고 두 번째는 그동안 한국군이 실질적으로 NLL 이남 해역을 관할해왔기 때문에 사실상의 경계선으로 확정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1992년 9월 발효된 남북불가침 부속합의서 제10조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는 조항에 서명해놓고 이제 와서 NLL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기본합의서 위반이라는 것이다.

NLL을 양보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는 북한의 호전성

그러나 이 합의서 문구에 대해 진보측은 다르게 해석한다. 즉 합의서에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NLL이 군사분계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정협정에 NLL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현재의 NLL은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차단하기 위한 유엔군사령부의 내부 규칙에 불과하므로 영토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권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2007년 8월 NLL에 대해 영토개념이 아닌 안보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해 보수 측의 거센 반발을 샀다. 우리 군은 “육지와 달리 해상에서는 국가 간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NLL과 비슷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 경우 누가 그 해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느냐에 따라 경계를 가르는 것이 일반적인 논리”라는 주장이다.
이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는 북한의 호전성이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NLL에 대해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발언이고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위험이고 도박이라는 것이다.

■한국 월드컵 첫 출전
1954년 스위스 대회를 통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처음 밟은 한국 축구가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8회 연속이자 통산 9번째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 축구 대표팀이 6월 18일 달성한 8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 갖는 의미는 이보다 더 나은 기록을 가진 나라가 얼마나 되고, 어떤 나라들이 이런 기록을 갖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동아일보 6월 19일)

▲ 경기 시작 전 나란히 운동장으로 입장하는 한국과 헝가리 대표팀

한국이 월드컵 본선 무대를 처음 밟은 것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었다. 축구가 아직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종목이 아니고, 스위스 월드컵부터 본선 참가국이 16개국으로 늘어난 덕에 대회참가가 가능했다.
그렇다고 지역별 예선을 거치지 않은 무임승차는 아니었다. 당초 아시아 지역 예선에 출전신청을 낸 국가는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이었으나 중국의 기권으로 한·일 대결로 압축되었다. 홈앤드어웨이 방식인데도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감정을 이유로 일본팀의 국내 입국을 불허하는 바람에 한국은 불리함을 무릅쓰고 예선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치러야 했다.
예선전은 해방 후 최초의 한·일간 축구대결이라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김용식 대표팀 감독은 이승만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습니다”며 비장한 각오를 표명했다.
한국이 메이지신궁에서 일본과 1차전을 벌인 것은 눈비가 쏟아지는 1954년 3월 7일이었다. 결과는 5-1승. 14일 벌어진 2차전에서도 한국은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치며 2-2로 비겨 종합전적 1승1무 전적으로 본선 티켓을 따냈다.
문제는 스위스까지 가는 길이었다. 직항노선이 없던 때라 1954년 6월 9일 여의도비행장에서 KNA항공 소속 24인승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3박 4일을 기다렸으나 손에 쥔 비행기표는 12장 뿐이었다. 할 수 없이 경기일정에 맞추기 위해 김용식 감독과 주전선수 11명이 먼저 비행기에 오르고 나머지 선수는 다음 비행기를 기다렸다가 1차전이 끝난 후에야 스위스 땅을 밟았다. 주전 선수단은 몇 차례의 중간 기착지를 거쳐야하는 54시간의 장도 끝에 경기 전날에서야 가까스로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다.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습니다”

스위스 월드컵은 6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열렸다. 한국 대표팀이 스위스에 도착한 것은 6월 16일. 대회는 이미 막이 올라있었다. 연습은커녕 여독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은 6월 17일 당시 세계최강 헝가리와 첫 경기를 가졌다.
헝가리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등 국제대회 32전 전승 무패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 최강팀이었다. 한국은 헝가리에 0-9로 대패했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월드컵 사상 최다 점수차 패배였다. 선수라곤 11명뿐이었으니 경기 중 부상을 당해도 교체할 선수가 없었다. 다리에 쥐가 나 고통을 호소한 선수가 8명이나 되었다.
20일의 터키전도 0-7로 대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같은 2조에 속한 서독과의 경기가 남았으나 서독의 본선 진출과 한국의 탈락이 이미 확정된 터라 경기는 치러지지 않았다. 헝가리는 최강팀답게 승승장구하며 결승전까지 진출했다가 서독에 2-3으로 역전패하는 바람에 분루를 삼켰다.
이후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는 실패와 영광으로 점철된 도전의 역사였다. 1958년의 스웨덴월드컵은 대한축구협회 직원이 신청 서류를 분실해 나서지 못했고, 1962년 칠레월드컵 때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엉뚱하게도 아시아 예선에 편입시킨 유고슬라비아에 2연패하면서 본선 무대에 서지 못했다. 1966년 런던월드컵 때는 당시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던 북한에 패할 것이 두려워 예선 불참을 선언, 벌금을 물어야 했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과 4년 뒤 서독월드컵 예선에서는 연거푸 호주에 발목이 잡혀 출전 기회가 무산되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는 오일달러로 무장한 이란과 쿠웨이트에 밀려,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는 쿠웨이트에 매수된 콜롬비아 주심의 편파 판정에 희생되어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32년간 월드컵 본선 무대조차 밟지 못하다가 1986년 멕시코월드컵 때서야 비로소 출전 기회를 얻었다. 첫 상대는 축구신동 마라도나가 버티고 있는 아르헨티나였다. 세계 축구의 벽은 역시 높았다. 1-3 패. 그나마 박창선이 후반 28분 중거리슛을 성공시켜 월드컵 본선무대 첫 골을 기록한 것으로 위안삼아야 했다.
멕시코(1986), 이탈리아(1990), 미국(1994) 월드컵을 거쳐 1998년까지 총 5회 출전에 4무 10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단 한차례도 승리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한국이 세계 축구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였다. 4강 신화. 마침내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2010년에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1승1무1패의 성적으로 16강에 올라 한국 축구사상 첫 해외원정 16강 진출의 꿈을 이뤄냈다. 8강의 꿈은 우루과이에 가로막혀 다음 대회로 연기해야 했다.

■‘에셜론’과 미 국가안보국(NSA) 설립     
미국의 대규모 정보수집 효시는 ‘에셜론(Echelon)’으로 볼 수 있다. 에셜론은 냉전시대 초기 공산권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창설된 국제 정보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1946년 미국과 영국이 맺은 공산주의 진영 정보수집 네트워크 ‘미·영 안보협정(UKUSA)’을 근거로 탄생됐다. 이후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들이 합세해 각국에 기지국과 안테나를 세우고 공산권과 연관된 전화·팩스·위성통신을 감시했다. (문화일보 2013년 6월 14일)

▲ 영국 요크셔주 맨위드힐 공군기지에 있는 영·미 합동 감청 시설

‘누군가 엿듣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것은 영국의 월간지 ‘뉴 스테이츠먼’ 1988년 8월호였다. “프로젝트415는 1급 비밀 지구감시 시스템이다. 영국에서만 연간 10억 통화를 도청할 수 있다”고 폭로한 탐사보도 전문기자 던컨 캠벨의 이 기사를 신호탄으로 전 세계의 통신을 도?감청해온 비밀시스템 ‘에셜론’에 관한 기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캠벨은 몇 달 뒤 구속되었고 함께 기사를 쓴 미국 기자는 영국에서 추방되었다.
1997년 11월 영국의 런던 텔레그라프지는 유럽연합의 비밀보고서를 인용해 2차 대전 후 구축된 에셜론이 냉전 붕괴 후에도 존속하고 있으며 정부, 기업, 개인의 통신을 무차별적으로 도청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에셜론의 존재가 유럽의회 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유럽의회는 2001년 9월 5일 산하 에셜론위원회가 지난 1년여에 걸쳐 조사한 끝에 제출한 140쪽의 보고서와 암호체계강화 등 에셜론 방어책으로 권고한 44개 사항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에셜론위원회의 한 조사위원은 2002년 2월 일본, 한국, 독일, 터키, 노르웨이도 에셜론의 새 가맹국이라고 주장했다. 2000년 2월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에셜론은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을 비롯 교황과 테레사 수녀, 국제사면위원회, 그린피스 등까지 폭넓게 감청했다”는 미 국가안보국(NSA) 전직 요원의 증언을 보도해 충격을 던져주었다.
각종 언론 보도와 유럽의회의 ‘에셜론위원회’ 발표를 종합하면 에셜론의 실체는 이랬다. 에셜론은 냉전시대 초기 공산권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미국의 주도로 창설된 국제정보 감시망이다. 본격적인 활동은 미국과 영국의 첩보기관이 1946년 3월 5일 서명한 ‘영미안보협정(UKUSA)’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듬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가입하면서 5개국으로 확대되었다. 기독교를 믿고 영어를 쓰며 앵글로색슨 백인이라는 게 이들 5개국의 공통점이었다.

5개 회원국 공통점은 기독교, 영어, 앵글로색슨 백인계 국가

소련을 비롯 공산권을 표적으로 한 초기 시스템은 단순했다. 서로 수집한 정보를 주고받고 이를 중앙정보처리 본부로 보내는 정도였다. 그러나 미 국무성 암호반을 전신으로 한 미 국가안보국(NSA)이 1952년 11월 4일 미국 메릴랜드주의 포트미드에서 창설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대통령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NSA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정부의 공식발표도 없었고 언론과 의회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 NSA는 끊임없이 새로운 첩보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회원국에 공급했다. 감청시스템은 5개 회원국 10여개 장소에 배치되었다. 회원국들은 전세계 모든 종류의 통신정보를 수집·분석·공유했다.
정보 추출과정 자체는 다소 복잡하긴 했으나 개념도는 단순했다. 각 도?감청 기지의 슈퍼컴퓨터에 대통령, 테러, 범죄 등 수천수만 개의 키워드, 전화번호, 팩스, 주소 등을 미리 입력해 두면 도·감청으로 확보한 수억~수십억 개의 메시지 가운데 이들 키워드가 포함된 메시지를 찾아내고 이를 숙달된 요원들이 분석·판단하는 것이다.
NSA는 오늘날 미 정보기관 중 가장 큰 규모와 막강한 정보 수집력을 자랑한다. 예산은 물론 인력도 미 정보기관 중 최대다. 그런데도 정확한 실상은 미 정보기관 중 가장 두꺼운 베일에 가려져있다. NSA 설립에 관한 유일한 문건인 트루먼의 결재 사인이 든 7쪽짜리 대통령 메모랜덤을 둘러싼 소송이 1976년 벌어졌지만 공개되지 않았다.
영국의 도·감청 첩보기관은 ‘국가통신본부(GCHQ)’다. 에셜론 시스템 본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영국의 ‘맨위드 힐’ 기지에는 1950년대 중반 미국이 소련을 감시하기 위해 건설한 거대한 골프공 모양의 둥근 구조물이 20여개 서있고, 위성관리시스템이 있다. 이곳에서는 미국의 첩보위성이 보내는 정보를 저장하고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상공에 떠 있는 상업 위성이 중계하는 정보를 취합한다.
캐나다의 첩보기관 ‘통신안보부(CSE)’는 한국과 일본의 외교통신을 표적으로 하고 있고, 호주의 ‘방위통신대(DSD)’는 프랑스가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할 때마다 정보를 수집해 미국에 제공했다. 뉴질랜드의 ‘국가통신안보국(GCSB)’은 태평양과 인도양 상공의 통신위성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수십억 명의 가입자 정보 노출돼

오늘날 에셜론 시스템은 첩보위성 100여개를 이용해 전세계 모든 종류의 통신을 감청하고 있다. 위성과 각 지역에 설치된 감청시설은 전화, 팩스, 이메일, 휴대폰, 광케이블통신 등 모든 형태의 통신내용을 시간당 최고 수십 억건씩 감청한다.
에셜론의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안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경쟁국들의 통신까지 마구 도·감청하고 자국의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데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 마약 거래, 정치·외교 정보를 수집하는 게 본연의 임무인데도 기업과 국제무역에까지 감청을 서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NSA는 자국 내 CIA, FBI, DIA 등 정보기관으로부터 건네받은 내국인 감시명단을 이용해 급진 정치그룹으로부터 반정부 시위에 가담한 일반 시민들까지 감시하고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에셜론은 경쟁 국가의 자원을 헐값으로 사들이거나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거부하는 국가의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도 사용되고 있다. 1995년 미국의 보잉사와 유럽의 에어버스사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경쟁이 붙었을 때 에어버스사의 입찰가격이 미 NSA의 에셜론에 도청당해 결국 미국의 보잉사가 1998년 60억 달러의 항공기 판매 계약을 성사시킨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1991년 한국이 캐나다와 ‘캔두 원자로 건설’을 협상할 때 캐나다의 통신보안국이 한국 대사관과 외무부 사이의 모든 통신을 도청한 사실은 1998년 2월 28일 캐나다의 ‘파이낸셜 포스트’지가 CSE 소속 한 작전 담당요원의 폭로를 보도하면서 드러났다.
에셜론 관련 기사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2013년 6월의 한 기사에서 미 워싱턴DC 소재 ‘해외정보감시법원’이 미국 최대의 통신회사인 버라이즌에 “4월 25일부터 7월 19일까지 미국 내에서 혹은 미국과 다른 국가 사이에서 이뤄지는 고객들의 모든 통화정보를 하루 단위로 NSA에 제공하라”고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6월 7일에는 워싱턴포스트가 “NSA와 FBI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페이스북, 유튜브 등 인터넷 기업 9곳의 중앙 서버에 직접 접속해 가입자들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수십억명의 가입자 정보가 노출된 것인데도 미 정부는 “통화 기록 수집은 테러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취한 필수불가결한 조치였다”고만 해명할 뿐 정확한 실체를 밝히지 않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