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적인 공예는 곧 예술이었고, 그것을 만드는 장인(匠人)은 수백년을 이어오며 계승자가 있었다. 그 공예를 업으로 하고 긍지로 삼았던 사람들이 많았고, 이에 많은 거장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 영남요의 대표인 백산 김정옥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으로, 우리나라에서 사기장으로는 최초로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인물이다

외국의 경우 장인의 혼이 건재하여 대를 이어 그 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장인은 계속 사라지고 있으며, 지금은 문화재적인 기능보유자만이 겨우 그 명맥을 이어주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를 이어 장인의 예술혼을 이어가는 곳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투박하지만 자연의 멋 담긴 한국의 전통 도자기 빚다
경북 문경에 소재한 영남요. 이곳에는 9대째 한국의 전통 도자기를 빚고 있는 가문이 있다. 문경에 대를 이어 전통도자기를 빚는 가문은 여럿 있지만 9대째까지 이어 도자기를 만드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영남요의 대표인 백산 김정옥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으로, 우리나라에서 사기장으로는 최초로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인물이다. 1800년대 초반 김취정 선생에서부터 시작된 가업은 지난 200여 년간 충북 단양, 경북 상주 등을 옮겨 다니며 그릇을 구웠고 경지 광주의 관요에 징발되기도 하는 등 도예가문으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가문의 업을 이어 7대째 도자기를 빚고 있는 김정옥 선생은 ‘청화백자팔각병’과 ‘분청사기철화 당초문계룡산호’ ‘정호다완’ 등 자기 과시나 수사적인 기교 대신 투박하지만 고고한 자연의 멋이 고스란히 담긴 한국의 전통 도자기를 빚어 왔다. 그는 전기 물레대신 발물레로, 가스가마 대신 전통 장작 가마인 망댕이 가마로, 200여 년 전 조상들이 사용한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그릇을 제작한다. 그릇을 빚고, 문양을 새기고, 그림을 그리고, 뜨거운 불에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그 모든 과정을 손수하고 있는 그에게서는 도자기 명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고집을 넘어서 감히 범접하지 못할 위대함마저 느껴진다. 두 달에 한 번 불을 지피는 가마에는 다완 100여 점이 들어가지만 최종적으로 작품으로 남는 것은 3~4점도 채 되지 않는다. 김 선생은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면서 “가장 한국적인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법부터 전통적이어야 한다.

▲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통일 후 필요한 재원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통일 준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통일항아리’를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완성했다

많은 작품보다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로지 전통을 지키고 최고를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는 1991년 정호다완을 재현하는데 성공했고, 도예부문 초대 명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후 1996년 국내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으로 지정된 김 선생은 1999년 문경대학 초대명예교수에 이어 2000년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영예를 얻었다. 도공으로서의 명성은 세계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미국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캐나다왕립박물관, 독일베를린 동아시아 박물관,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 등에 작품을 전시하는 등 세계 각국에서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통일 후 필요한 재원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통일 준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통일항아리’를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완성하기도 했다.

‘명문 도예가문’ 9대째 이어간다

▲ 백자대호

최근 김정옥 선생은 가업이 자신의 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갈 수 있다는 데에 큰 행복감을 느끼는 중이다. 그의 아들 김경식 씨 뿐만 아니라 손자 김지훈 군까지 가업을 이으며 9대 도예가문으로 이어지며 ‘명문 도예가문’으로 명성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에 영남요는 대대로 쓸 수 있도록 지붕까지 갖춘 새 가마를 지었고, 매년 문화재청의의뢰에 따라 작업과정을 보여주는 공개행사를 통해 도자기 애호가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김경식 씨는 7년간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 지난 1995년 도예에 입문, 20년 가까이 영남요를 지키고 있으며, 전승공예대전이나 기능경진대회에서 수차례 입상,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에 작품이 영구 전시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경식 씨의 맏아들인 김지훈 군 역시 도예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최근 개최된 문경전통찻사발축제 행사의 하나였던 발물레 경진대회 학생부에서 3등을 차지하는 등 천부적인 도공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입증했다. 김정옥 선생은 “저를 문화재로 지정해준 뜻은 내 기능을 후손 대대로 이어 가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들과 손자가 잘하고 있으니 흡족하다”며 “앞으로도 전통의 맥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한 포부를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