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야기’ 저자  김정형

■한강 인도교 폭파

6·25전쟁 당시 정부가 북한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한강 인도교를 폭파한 것은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재판장 고영구)는 구중회 전 제헌의원 가족 등 6·25전쟁 당시 납북된 12명의 제헌의원 가족 2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1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5월 14일 밝혔다. (조선일보 2013년 5월 15일)

▲ 한강 인도교 폭파

강문봉 육군본부 작전국장(대령)이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에게 “적의 전차가 시내로 들어왔다”고 보고한 것은 북한군이 서울 최후의 방어선인 미아리 고개를 돌파한 1950년 6월 28일 새벽 1시 이후였다. 다급해진 채병덕은 6월 28일 새벽 1시 45분 최창식 공병감(대령)에게 “한강 다리를 폭파하라”고 명령했다. 한강 인도교로 달려간 최 대령이 이미 폭약을 장치하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던 공병팀에게 폭파를 명령한 시간은 새벽 2시 20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27일 새벽 2시), 신성모 국방장관(27일 오후 2시), 채병덕 육군참모총장(28일 새벽 2시) 등, 군 지휘 라인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끗발순서대로 한강을 건넌 뒤였다.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원조가 있을 것이니 국민은 총궐기해 반란분자들을 퇴치하자”는 사전 제작된 이승만 대통령의 육성녹음이 라디오로 방송된 것은 한창 폭파준비를 하고 있던 새벽 2시였다. 대통령 자신은 이미 서울을 탈출해놓고 서울시민에게는 총궐기하라고 한 것이다.
폭파에 앞서 최 대령이 “한강 다리로 진입하는 차량과 인파를 막으라”고 공병들을 한강다리 북쪽으로 보냈으나 공포에 휩싸인 채 다리 위로 밀고 내려오는 시민들을 막지 못했다.
새벽 2시 30분, 목격자들에 따르면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과 함께 밤하늘에 섬광이 번쩍하는 순간 수백 수천의 사람들과 차량들이 비명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뒤이어 살아남은 수많은 사람들이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채 한강 다리 북쪽으로 빠져나오는 생지옥의 아비규환이 연출되었다. 국방부 발간 ‘한국전쟁사’는 한강 인도교 폭파로 차량 50대, 사람 500~800명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폭파에도 불구하고 한강 인도교만 폭파되었을 뿐 인도교 옆의 복선철교는 부분 폭파, 다른 단선철교는 불발로 폭파되지 않았다. 폭파되지 않은 철교는 며칠 뒤 북한군 전차의 도강을 허용하게 된다. 폭파팀은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한 뒤 오전 4시쯤 광장동과 천호동을 연결하는 광진교도 폭파했다. 이 때문에 정부만 믿고 피난을 떠나지 못했던 서울 시민들은 꼼짝없이 적 치하에서 죽음의 공포를 견뎌야 했다.

군 상층부 모두 한강 건넌 뒤 폭파

▲ 폭파 후의 한강 다리 모습

더 큰 문제는 한강 북쪽에 남겨진 4만 4000명에 달하는 현역 군인들과 대포·차량 등 군장비였다. 적과 싸워야 할 장병이 고스란히 적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다. 한강 북쪽에 남겨진 병력 중 일부가 인민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동안 다른 병력은 소총만 휴대한 채 나룻배를 타고 소부대 단위로 강을 건넜다.
훗날 대통령이 될 박정희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박정희는 홀로 한강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감으로써 1948년 10월의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후 낙인처럼 달고 다녀야 했던 좌익이라는 사상적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박정희는 11년 뒤인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강을 반대방향으로 건너 정권을 장악했다.
한강 인도교 폭파는 다른 국군 부대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다. “춘천 사수”를 외치던 6사단장 김종오 대령은 이 소식을 듣고 저녁 6시쯤 춘천시민에게는 “피난하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춘천의 소양교를 폭파하고 원주로 후퇴했다. 경기도 파주시의 작은 하천 봉일천 일대에서 인민군을 악착같이 막아내던 국군 제1사단도 사수를 포기하고 한강을 건넜다.
곧 한강 다리의 때 이른 폭파시간을 두고 비판이 제기되었다. 인민군이 서울 시내 중심부에 들어온 시간이 6월 28일 오후 3시쯤이었으니 다리 폭파를 6~8시간 정도 늦추어도 큰 무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1950년 9월 15일 육군 계엄고등군법회의는 한강 인도교 폭파의 책임을 물어 최창식 대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최 대령은 6일 뒤인 9월 21일 국방경비법 제27조 적전비행혐의로 처형되었다. “명령에 따라 교량을 폭파한 것은 인정하나 상황을 잘못 판단, 너무 일찍 폭파해 막대한 차량과 군 병력을 추락시키고 전전(戰前)에서 비행 또는 태만함으로써 부대안전을 위태롭게 했다”는 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판결의 이유였다.
최 대령은 자신의 행동이 상관의 명령에 의한 불가피한 것이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격앙된 여론과 희생양을 만들려는 당시의 분위기에 파묻혀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1차 책임을 져야 할 폭파 명령자 채병덕 소장은 최 대령이 처형되기 두 달 전인 7월 27일 경남 하동전선에서 인민군의 기습을 받고 이미 전사한 뒤였다.

폭파 책임자 14년만에 무죄 선고받아
최 대령의 처는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인도교 폭파가 있고 11년이 지난 1961년 5·16 후 재심을 청구했다. 육군 보통군법회의는 1964년 10월 23일 최 대령에게 사후 14년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최 대령이 다리를 폭파한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상관의 작전명령을 따른 것이며 40분간 폭파시간을 늦추고 공포를 쏘면서 차량과 인마의 다리 진입을 막아보려고 했으나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폭파한 행위는 군 작전상의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에는 6·25전쟁 당시 납북된 12명의 제헌의원 가족 22명이 “국군이 아무런 예고 없이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고, 납북이 충분히 예상되는 제헌의원들에 대해 아무런 피란 조치를 취하지 않은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1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나 2013년 5월의 1심 판결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정부와 국군, 의회는 서울 사수(死守)에 대해 통일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인민군의 진군(進軍) 속도를 늦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다”며 “현재의 관점에서 다양한 역사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고의나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한강 인도교 폭파 전날인 1950년 6월 27일 대전으로 피신한 이승만 대통령이 라디오를 통해 “아군이 이미 의정부를 탈환했으니 서울시민들은 안심하라”는 내용의 방송을 한 데 대해서도 “서울시민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오키나와 독립 움직임

일본 오키나와(沖繩) 현의 일부 지식인이 본토의 차별에 항의해 2013년 5월 15일 류큐(琉球·오키나와의 옛 이름) 독립을 검토하는 단체 결성에 나섰다. 5월 1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마쓰시마 야스카쓰(松島泰勝·50) 류코쿠대 교수 등이 주도하는 ‘류큐 민족독립 종합연구학회’라는 단체가 이날 오키나와에서 발족했다.…새로 결성된 학회는 주민투표로 과반수 찬성을 얻어 독립을 선언하고 유엔에도 가맹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아일보 2013년 5월 16일)

▲ 오키나와 반환 문서를 교환하는 애그뉴 미 부통령과 사토 일본 총리(1972.5.15)

오키나와는 수백년 동안 ‘류큐(琉球) 왕국’으로 불리며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를 연결해 온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자체 군대는 없어도 무역과 외교를 이용해 독립을 유지했다. 1609년 일본의 1차 침략 후에도 1년에 두 번 중국에 조공을 바쳐 해상무역권을 유지했고, 일본에는 중국 몰래 정치적인 예를 갖췄다. 류큐는 이런 식의 세력균형을 이용한 외교와 해상무역으로 정치경제적 안정을 꾀했다.
역사적으로는 우리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조선왕조실록 온라인 검색 사이트에서 ‘유구국’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국역 기준 367건이 나온다. 그중 하나를 예로 들면 “유구국 중산왕이 신하라고 칭하면서 예물을 바치고 포로 8명을 송환하다”(1392년 윤 12월 28일 태조실록)라는 기록이 있다.
일본은 1609년부터 류큐가 자국의 속국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류큐가 1854년 미국, 1855년 프랑스와 독립국가로 조약을 맺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고 중국이 열강의 놀이터가 되면서 류큐의 이런 외교 정책도 한계에 달해 결국 1879년 4월 4일 일본의 침략을 받아 소리 없이 사라졌다.
류큐는 결국 일본의 오키나와현으로 정식 편입되었으나 1000km나 떨어진 일본의 본토로부터는 언제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그렇고 그런 존재 취급을 받았다. 태평양전쟁 종전을 앞둔 1945년 4월 1일부터 3개월 동안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는 버려진 섬의 위상을 단적으로 일깨워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1만 5000명, 일본 본토의 정규군은 6만 6000명이 목숨을 잃었으나 오키나와 현지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방위대 2만 8000명과 오키나와 주민 15만 명이 희생되었다. 이처럼 많은 주민이 죽음으로 내몰린 것은 미군의 본토 진격을 하루라도 늦추기 위해 오키나와 주민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일본 군부의 '옥쇄작전' 때문이었다.
패전 후에도 일본은 오키나와를 미국과의 흥정 대상으로 삼아 오키나와 주민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일본은 오키나와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한 미국이 1949년부터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를 건설할 때도 눈감아주었다. 1951년 9월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할 때 역시 일본 본토는 군정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대신 오키나와는 미국의 신탁통치 상태 그대로 두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오키나와를 방치하는 태도를 취했다.
미일안보조약이 발효된 1952년 4월 28일 이후 오키나와 주민은 본토 여행을 하려면 여권과 비슷한 신분증명서를 지참해야 했다. 그걸 들고 여행지 출입국 심사관에게 제출하면 ‘일본국으로의 귀국을 증명함’ 이라는 스탬프를 찍어주고, 돌아갈 때에는 거꾸로 ‘출국을 증명함’이라는 스탬프를 찍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존재

▲ 오키나와

1952년 미일안보조약의 발효 후 미군은 오키나와에서 이미 수용하고 있는 토지를 소유자와의 계약 없이도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 1953년 4월엔 토지수용령을 발동해 토지를 강제 수용했다. 이런 식으로 일본의 묵인 하에 미군이 수용한 토지만 오키나와 땅의 13%를 넘었다. 게다가 1955년 9월 미군 병사가 6세 어린이를 폭행살해하는 등 미군 범죄까지 계속되면서 주민들의 분노가 층층이 쌓였다.
1960년대 들어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이 본격화했을 때는 오키나와에서 B-52 폭격기가 베트남으로 발진하고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가 베트남전에 파병되는 등 오키나와는 미 군사력의 견고한 보루 역할을 했다. 그러자 베트남 반전운동과 맞물려 오키나와 주민들의 조국 복귀 운동이 더욱 거세게 전개되었다.
1964년 11월에 발족한 사토 에이사쿠 내각은 오키나와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미국에 오키나와의 반환을 요구했다. 1965년 8월엔 사토 총리가 전후 현역 총리로는 처음으로 오키나와를 방문해 “오키나와의 조국 복귀가 실현되지 않는 한 전후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베트남전 개입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미국 역시 오키나와 문제를 마냥 외면할 수 없어 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주되 오키나와 기지는 그대로 존속시키고 일본에는 새로운 역할을 부담시켜 대아시아 정책을 재정비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1968년 11월 19일엔 베트남 폭격을 위해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에서 발진한 B-52기 폭격기가 핵무기 저장소 부근에 추락·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 주민들을 경악시켰다. 다행히 핵무기가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1969년 2월 5만 5000여 명의 주민이 가데나 기지 앞에서 항의하는 등 점차 강도를 높여나가자 미국은 오키나와 주민의 조국복귀 요구나 일본의 국민감정을 무시하고는 오키나와 기지 사용마저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반환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오키나와 전투’ 버려진 섬의 위상 일깨워 줘
오키나와 반환협정은 1971년 6월 17일에 조인되고 중의원(1971.11.24)과 참의원(12.22)을 통과해 확정되었다. 그리고 1972년 5월 15일 0시, 사이렌과 기적소리가 일본 오키나와 전역에 울려 퍼졌다. 27년간의 미국 통치에서 벗어나 ‘오키나와현’ 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자축하는 감격의 소리였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핵과 미군 기지 없는 전면 반환을 요구하며 계속 반발했다. 그럼에도 반환은 그대로 진행되어 일본 각지에서 오키나와를 오가는 국제선은 국내선이 되고, 미국식으로 우측에서 달리던 차량은 일본식에 따라 좌측으로 달렸다.
그래도 본토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의 악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1975년 7월 17일 오키나와를 방문한 아키히토 황태자 부부가 위령탑에 참배할 때는 2명의 오키나와 청년이 화염병을 투척하고 ‘황태자 오키나와 방문 저지’ 벽보가 곳곳에 나붙었으며 일장기 ‘히노마루’ 가 불에 태워지거나 하수구에 처박혔다. 1999년 11월에 오키나와 출신의 가수 아무로 나미에가 천황 즉위 10주년 기념 피로연에서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 를 부르지 않은 것도 일본 정부에 대한 무언의 항의였다.
2007년에는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에 실릴 오키나와 전투 관련 내용 중 집단자결과 관련해 군의 명령 및 강제가 있었다는 기술을 문부과학성이 검정의견을 붙여 변경하자 오키나와현 전체에서 반대운동이 일어나 결국 11만 명이 넘게 참여하는 현민 대회가 오키나와 본섬과 낙도에서 개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교과서 왜곡 시도는 좌절되었지만 일본 정부는 교과서에서 불편한 내용을 삭제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으로부터 독립시켜 친 중국화하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어 중일 간의 새로운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