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본 적 없던 신종 범죄 오락 영화가 온다. 영화 <원라인>(3월 29일 개봉)은 대한민국 최초로 ‘작업 대출’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작업 대출’이란 은행 대출이 안 되는 사람들의 직업, 신용등급, 신분 등의 자격 조건을 조작해 은행을 상대로 대출 사기를 벌이는 것을 통칭하는 말이다. 실제로 2005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기 대출 방식의 하나이다.

신세영 기자 syshin@

<원라인>은 평범했던 대학생 ‘민재’가 전설의 베테랑 사기꾼 ‘장 과장’을 만나, 모든 것을 속여 은행 돈을 빼내는 신종 범죄 사기단에 합류해 펼치는 짜릿한 예측불허 범죄 오락 영화다. 주인공 ‘민 대리’가 20대 대학생이라는 설정은 ‘대출’이 사회에 진출하고 겪는 고민이 아니라 이미 대학생 때부터 맞닥뜨리는 현실의 문제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양경모 감독은 “평범한 대학생이 ‘작업 대출’ 세계에 뛰어든다는 이야기를 통해 돈에 대한 근심과 그에 따라 파생하는 문제가 단순히 어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라며 ‘민재’를 대학생으로 설정한 이유를 밝혔다. ‘민 대리’로 착한 남자 이미지를 완벽히 벗어 던진 임시완은 “기존에 많은 분들이 알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연기를 했다.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몰랐던 매력을 느꼈다”며 연기 변신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장 과장’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낸 진구는 “감독님이 능구렁이 같은 캐릭터를 원하셔서, 그런 모습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꾸며준 세트, 소품, 의상들 덕분에 연기하기 굉장히 편했다”고 말했다.

진짜 사기꾼들의 리얼한 세계를 담다
‘작업 대출’ 세계 속 신종 범죄 사기단의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를 담아낸 <원라인>은 신예 양경모 감독의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선과 꼼꼼한 준비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양 감독은 단편영화 <일출>(2015)로 제14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으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현실과 맞닿아있는 범죄 영화 소재를 찾던 그는 희대의 사기 수법이었던 ‘작업 대출’을 우연히 접하고 큰 흥미를 느껴 실제 작업 대출 업자부터 금융업 관계자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발로 뛰어 만났다. 이는 <원라인>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고,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을 탄생시키는 밑바탕이 되었다.

영화 속 신종 범죄 사기단은 사람들의 개인 정보를 몰래 모으고, 신상 정보를 조작해 은행을 감쪽같이 속인다. 대출 사기 행각을 벌이면서도 “은행 돈 받게 도와주는 게 내 잡이야. 이게 중요한 표현이다. 도와준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또 사기단 안에서 서로를 속고 속이며 욕망을 분출해 나가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예측 불허의 전개를 예고하며 한 시도 놓칠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첫 장편 데뷔작인 <원라인>을 통해 “이야기와 인물이 생동하는, 사람과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양 감독은 ‘작업 대출’을 소재로 프로 사기꾼의 세계를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그려냈다. 무엇보다 2005년의 시대적 배경과 공기를 실감나게 불어넣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위해 가장 고심한 것은 대사였다.

작업 대출 업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화려한 언변과 독특한 언어 습관을 흥미롭게 지켜봤던 그는 시나리오에 실제 용어들을 자연스레 녹여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사이즈’다. ‘사이즈가 별로다’, ‘사이즈 괜찮다’처럼 작업의 규모, 상대방의 외형, 하루의 컨디션 등 다양한 의미로 통용되는 대표적인 용어이다. ‘감겼다’ 역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로, 배신해 서로를 등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양 감독은 ‘세트 없는 올 로케이션’을 결정했고, 80여 군데가 넘는 장소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의 생생함을 살리는 데 중요한 것이 인물들이 뛰노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극의 분위기를 잘 담아낼 수 있는 곳이라면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것도 마다치 않았다. 원래 오프닝 장소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지만 헌팅 과정에서 발견한 한 인쇄소 골목에서 영감을 받고, 배경 설정을 전면 수정하기도 했다.

Q. 캐스팅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 총 14명의 배우들이 주·조연으로 등장한다. 원하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다. 배우들을 캐스팅하면서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배우들이 연기적으로 바라보는 지점이 감독과 같은 지점에 있는 지였다. 사실적으로 연기하는 걸 좋아하고, 어떤 장면에서 동기와 목적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고, 연기하면서 납득이 되지 않을 때 끊임없이 토론과 논쟁을 할 수 있는 배우들을 찾았다. 그런 부분에서 모든 배우들이 굉장히 열정과 신념이 있다. 두 번째는 다른 작품에서 보여줬던 모습들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았으면 했다. <원라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새로운 역할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길 원했다. 결국 원하는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이들과 현장에서 시너지를 내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Q. 임시완, 진구, 박병은, 이동휘, 김선영의 캐스팅 비하인드가 있다면?
- 사람들은 임시완을 보며 바른 생활의 사나이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처음 만났을 때 날카롭고 강인한 면들이 있다고 느꼈다. 아직 대중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숨은 모습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진구는 묵직하면서도 사람을 살살 녹게 하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장 과장’ 역할에 가장 적합했다. 큰 욕망을 가진 ‘박 실장’은 내면의 변화를 잘 표현하는 배우가 필요했는데 그런 점에서 박병은이 굉장히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송 차장’은 이동휘를 만나 유머와 해학이 더해졌고 ‘홍 대리’도 김선영을 만나 입체감 있는 인물로 거듭났다.

Q. 크레딧에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노래가 나오는데,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 영화를 만들 때 물리적, 분석적으로 접근할 때가 있고, 직관적으로 접근할 때가 있다. 사실 엔딩곡 같은 경우는 음악 감독과 같이 석 달간 고민했다. 가사가 <원라인>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음악을 삽입하고 시사회 때 한 번 봤는데 보고 나니 이 음악만큼은 고집해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부분들은 논리적으로 정리가 돼있다면, 엔딩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Dani California’ 곡 같은 경우는 시대적인 부분에서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Q. 자본의 어두움을 바탕으로 한 점에서 <마스터>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 전 소재이고 여전히 자본의 속성이 어둡다는 부분에서 어떤 의도가 있는가?
- ‘작업 대출’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현실에 발을 붙인 범죄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소재를 찾던 도중 실제 작업 대출 업자를 만나게 됐다. 작업 대출 업자들을 취재하다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자기가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음에도 그런 부분에 인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특별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굉장히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결국 그들이 하는 일도 대출을 못 받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 치는 행동이다. 그 이면에 있는 시스템의 부조리한 부분들을 좀 더 본질적으로 비춰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장들의 비리가 뒤쪽에 크게 자리 잡은 부분이 있다. 은행 이름을 지을 때는 크게 그런 부분들까지 고려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작품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작품의 다른 부분을 흉내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리얼리티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원라인>은 그런 리얼리티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이 있다. 직접 발로 뛰면서 작업 대출 업자들의 이야기를 조사했고, 작업 대출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Q. 연출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생동감이다. ‘작업 대출’ 소재는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고 주변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와 인물이 살아있듯 숨쉬길 원했고, 배우들에게 연기 디렉팅을 할 때도 리얼함과 생동감을 가장 중점에 두었다.

Q. 영화 속 시대적 배경이 2005~2006년이다. 구권에서 신권으로 바뀌는 시기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 2005~2006년은 일단 작업 대출이 성행했던 시기다. 그 당시에는 지금은 없어진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플립폰, CRT모니터, 브라운관 TV, 싸이월드 등 이런 소품들이 불러오는 흥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것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오던 시절이었다. ‘작업 대출’ 역시 인터넷으로 옮겨오던 과정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용어가 ‘원라인’이다. 누군가는 원라인 작업 대출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작품을 착안했다. 무엇보다 구권에서 신권으로 바뀌던 시대였기에 그 시기를 고집했다. 그 당시 한국은행 앞에서 신권을 받기 위해서 줄지어 있던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2005년~2006년의 구권과 신권의 교체시기를 영화 속에 담는다면 인상 깊었던 그 상황을 클라이맥스에 넣고 싶었다.

Q. ‘민 대리’가 활동하는 곳을 비디오방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는지, ‘민 대리’의 작업실로 들어가는 부분에서 잠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비디오가 보이는데 의도한 부분이 있나?
- 일단 작업 대출 업자들은 자신들의 사무실을 들키면 안 된다. 그렇기에 항상 자신들의 사무실을 다른 식으로 포장한다. 그 와중에 ‘민 대리’의 공간으로 고른 곳이 비디오방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좋아하는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넣고 싶었다.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비디오방 화면에서 등장하는 작품들은 모두 의도적으로 넣은 것들이다. 그 공간 자체도 ‘민 대리’가 가장 화려함을 맞는 부분이었기에 수많은 영화들로 둘러싸인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관객들에게 한 마디.
-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젊은 나이에, 충무로 새로운 세대들이 모인 영화이다. 찍으면서 기존 영화들의 관성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어 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원라인>이라는 영화 안에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하면 신선하고 재미있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만들었으니 부디 우리가 들려드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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